무리하지 않아야 물리지 않는다.

by 황금지기


거시경제는 누구도 감히 예측할 수 없으며, 치밀한 상권분석조차 언제든 틀릴 수 있다는 겸허한 전제하에 시세를 바라봐야 한다. 경매든 매매든 모든 투자는 철저히 확률적 사고로 접근해야 하며, 파산하지 않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원칙은 바로 ‘절대 무리하지 않음으로써 물리지 않는 것’이다. 물리지 않아야 투자의 선순환이 이어진다.


손실이든 이익이든 무리한 욕심을 부리지 않고 제때 자르고 챙기는 자만이 악순환의 늪을 피할 수 있다. 어린아이가 수없이 넘어지는 걸음마를 떼어야 비로소 걷고 뛸 수 있고, 마침내 마라톤도 가능해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이치다. 나쁜 습관을 없애야 기다림을 배울 수 있고, 기다림 끝에 대응의 감각이 깨어나며, 그 감각이 반복될 때 습관이 몸에 배게 된다. 이것이 투자가 요구하는 정직한 배움의 과정이다.


무리함은 악순환의 시작이고, 무리하지 않음은 선순환의 토대다. 아이가 걸음마를 배우듯, 오늘 끊어낸 단 하나의 나쁜 습관이 훗날 복리의 마라톤을 완주하게 할 가장 강력한 에너지가 될 것이다.




“‘견딤’이 ‘쓰임’을 결정하고, ‘견딤’이 ‘내공’을 결정한다.” 정호승 시인의 말이다. 시장의 파도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견디는 시간이 비로소 투자자의 내공을 단단하게 빚어내고, 비로소 시장에서 쓰일 수 있는 도구로 우리를 완성한다. 망설임 없는 단호함은 명확한 단순함에서 나오고, 그 단순함은 치열하게 파고든 사유의 결과다. 치열함이 없이는 명료함을 얻을 수 없으며, 본질을 뚫어질 때까지 관찰하는 통찰력 없이는 결코 단순함의 경지에 이를 수 없다. 단순함의 궁극은 곧 정교함이다.


“완성이라는 것은 더 이상 더할 것이 없을 때가 아니라, 더 이상 뺄 것이 없을 때 이루어진다.” 생텍쥐페리의 말이다. 복잡한 지표와 화려한 기법을 걷어내고, 오직 생존에 필요한 본질만 남았을 때 원칙은 완성된다. 더 이상 뺄 것이 없는 단순한 원칙으로 시장의 조롱을 견뎌내며 단호하게 대응하는 것. 그것이 바로 상수가 도달하는 명료함이다.


덜어냄은 원칙을 완성한다. 더 이상 뺄 것이 없는 단순함이 곧 가장 정교한 무기다. 명료함으로 무장한 자만이 시장의 조롱을 뚫고 승리한다. 빼야 할 것을 과감히 빼지 못해 남아 있는 복잡함은 결국 영혼을 흔들 뿐이다.



류지현 LG 감독은 “타석에서 움직임이 적다. 면이 많은 스윙이라 컨택 능력이 좋다. 공격적일 때는 공격적이고, 지켜볼 때는 출루하고, 필요할 때는 타점을 올려준다. 성장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라며 한 선수를 칭찬했다. 훌륭한 타자의 비결은 간결함에 있다. 불필요한 움직임을 덜어내야 비로소 정확한 타격이 가능해진다.


투자 역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요동치는 심리의 움직임을 최소화하고, 무뎌진 감각으로 기계적인 대응 능력을 키워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시장의 추세와 내 방향이 일치할 때는 과감하고 공격적으로 수익을 극대화하고, 추세가 반대로 흐를 때는 수익보다‘잃지 않는 것에 집중하며 철저히 수비적으로 임하는 태도다. 이처럼 공수의 조화를 이루며 누적 수익 그래프를 우상향으로 들어 올리는 과정이 바로 투자자가 오르는 깨달음의 비탈길이다.


타석의 간결함이 안타를 만들듯, 마음의 간결함이 수익을 만든다. 공수의 조화를 이루며 멈추지 않고 성장하는 자는 결국 우상향의 목적지에 닿게 된다. 불필요한 동작을 덜어내고 성장을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고 있다면, 이기는 길 위에 서 있는 것이다.




“쾌락에의 가장 큰 장애물은 고통이 아니라 망상이다. 실제로는 꿈에 불과한 것을 소유하려는 욕구가 마음을 파고들며 끝내 전소시키고 마는 그 망상적인 소유욕.”

<박웅현, 책은 다시 도끼다>


투자의 본질은 미래를 맞히는‘예측에 있지 않다. 오히려 ‘예측하지 않고도 어떻게 이득을 볼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과정이다. 주가가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든, 어떤 사건이 벌어지든 ‘나에게 유리하도록 판을 설계했는가?’가 승패를 결정한다. 상수는 예측할 필요가 없는 상태에 머문다. 그들은 양방향의 가능성을 모두 열어둔 채, ‘짧은 손실과 긴 이익’이라는 비대칭적 확률 구조를 통해 선순환의 궤도를 만들어 낼 뿐이다.


“보고 듣기를 바라는 사람이라면 서둘러서는 안 된다. 서두르면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아무것도 듣지 못할 것이다.” 서두름은 눈앞의 실체를 가리고 망상을 키운다. 말과 행동이 성급한 이의 목적이 타인의 눈에 쉽게 읽히듯, 성급한 투자자의 부질없는 희망에 사로잡혀 있음을 시장은 금방 눈치채고 그를 가장 손쉬운 먹잇감으로 삼는다. 망상적인 소유욕을 버리고 서두름을 멈출 때, 시장의 흐름이 보이기 시작한다.


예측은 망상이고 확신은 독약이다. 확신은 계좌와 영혼을 태워버릴 치명적인 망상에 불과하다. 서두르지 않는 자만이 시장의 실체를 본다. ‘틀려도 상관없는 구조’를 짜는 것에 집중하라. 짧게 내어주고 길게 취하는 비대칭의 판을 완성하는 것이 목적이다.




세상 사람 누구나 똑똑해지기를 갈망하지만, 인간이라는 유한한 틀 안에서 우리는 절대적으로 평등한 존재일 뿐이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흐르고, 시장에 공짜 점심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똑똑하다고 믿는 마음은 필연적으로 자기 함정에 빠지기 쉽다. 그 함정의 이름은 편협한 시선, 독선, 그리고 자만이다.


한 분야의 정점에 서서 세상을 통찰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기에 그들을 현자라 부른다. 그러나 통찰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흐름에 묵묵히 순응할 줄 아는 자 역시 현자라 불리기에 충분하다. 시장에서 뼈아픈 실패를 반복하며 경험을 쌓아온 이들이라면, 이 말에 깊이 공감할 것이다. 시장에서 살아남는 것은 똑똑함이 아니라, 흐름을 거스르지 않는 겸손한 태도이기 때문이다.


똑똑함이 자만이 될 때 시장은 함정이 된다. 똑똑함은 단순한 도구일 뿐, 진짜 승부처는 흐름을 따르는 순응의 미학에 있다. 지식이 독선으로 변하는 마디마디마다, 시장은 그 오만의 함정 속으로 거칠게 밀어 넣을 것이다.



시장이 무서운 이유는, 단 하루 원칙을 어기는 것만으로 모든 공든 탑이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쌓아 올린 성공의 누적도 자만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추세 추종의 모범 답안지라 불렸던 제시 리버모어조차 끝내 비극적인 생을 마감해야 했던 곳이 바로 이곳이다. 그러므로 시장을 떠나는 그날까지, 수익이 커지는 만큼 고개를 숙여가기 위해 애써야 한다.


수익의 크기만큼 지나칠 정도로 겸손해야 한다. 흔히들 '맞히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애쓰지만, 진정으로 애쓰고 또 애써야 할 지점은 겸손해지는 것 그 자체다. 올 것은 결국 오고 갈 것은 간다는 삶의 진리 앞에 낮추는 법을 배워야 한다. 투자는 단순히 자산을 불리는 기술이 아니다. 지독한 어려움을 헤쳐 나가며 끝내 포기하지 않는 법을 익히고, 낮춤과 겸손을 체득해 나가는 도구임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투자는 겸손을 배우는 도구다. 수익이 커질수록 고개를 숙여라. 수익은 시장이 만드는 선물이고, 겸손은 당신이 빚어가는 인격이다. 맞히려는 오만을 버리고 겸손하기 위해 애쓰는 자만이 최후의 승자가 된다




유리함은 불리함으로 변하고, 불리함은 다시 유리함으로 뒤바뀐다. 지지와 저항이 얽히고설키며 파동은 그저 등락할 뿐이다. '한없이 갈 것 같고, 이번에는 정말 갈 것 같은' 그 조급한 예상을 비웃듯 파동은 겹치며 흔들린다. 파동은 필연적으로 겹치면서 떨 주고, 다시 붙이기를 반복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소수의 많이 가진 자가 다수의 적게 가진 자를 지배하기 어렵기 없기 때문이다.


시장은 영원히 소수의 강자와 흐름을 읽는 현자들만의 리그로 남거나, 혹은 시스템 자체가 소멸하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이것이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자본주의다. 그럼에도 인류 역사상 다수에게 이토록 기회를 제공하고 기술의 진보를 평등하게 누리게 한 시스템은 없었다. 우리는 이 불공평하고도 평등한 자본주의의 바다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파동이 겹치는 그 혼란스러운 구간을 기다림의 신호로 읽어야만 먹잇감에서 벗어나 생존하는 자의 리그에 발을 들일 수 있다.


겹치며 인내를 시험하는 것이 파동의 본능이다. "지금 당장 갈 것 같은" 미끼를 물게 되면 강자의 먹잇감이 된다. 유리함과 불리함이 교차하면서 등락하는 변덕스러운 파동의 속성을 인정해야 한다.




세상사 옳고 그름을 따져 무엇하겠는가. 시간은 쉼 없이 흐르는 강물 같아서, 애써 부여잡고 따져보았던 옳거나 그른 것들 대부분은 결국 한 줌 먼지가 되어 허공으로 흩어질 뿐이다. 대의와 명분을 내세우며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자 했던 젊은 날의 호기도, 시장의 향방을 기어이 맞추어 보겠다고 부질없이 집착했던 과거의 망상도 강물을 따라 떠나버리지 않았는가.


'맞추고 틀리는 것'이 대체 얼마나 큰 의미가 있겠는가. 이 단순한 진리를 깨치기 위해 너무나도 많은 인생의 수업료를 지급해 왔다. 이제는 물처럼, 바람처럼 세상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그저 파동을 그리며 살아가고 싶다. 오르면 오르는 대로, 내리면 내리는 대로 그 곡선 따라 흐르다, 붉은 노을로 저물어 가는 인생이라면 아름답지 않겠는가. 집착의 닻을 올리고 순응의 돛을 펼친 뒤에야 보이는 평온, 그것이 도달해야 할 최후의 안식처다.


맞출 때가 아니라 틀려도 상관없을 때 평온이 깃든다. 시장에서 고통받았던 이유는 '반드시 맞추어야 한다'라는 오만 때문이었다. 강물에 던져버리라. 파동은 맞히라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흘러가라고 존재하는 것이다.




반복과 복기를 통해 실력을 매일 새롭게 해야 한다. 시장이 에너지를 응축하며 때를 기다릴 때, 투자자도 에너지를 모으며 함께 호흡해야 한다. 그러다 시장의 움직이기 시작할 때, 그 시세의 버스에 살포시 올라탈 수 있어야 한다. 이 '살포시'라는 말은 성과에 조급하지 않은 여유로움이며, 결과에 연연해하지 않는 덤덤함이다.


시장과의 엇박자가 잦은 것은 실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며, 뇌동과 추격의 유혹에 흔들리는 것은 노력이 미천하기 때문이다. 밀려오는 후회와 아쉬움의 크기는 감각의 빈자리가 크기 때문이지 다른 이유는 없다. 성과는 기다림의 미학으로 씨를 뿌리며, 대응으로 가꾸어 가는 자신만의 예술 작품이다. 나라는 존재를 잊고 오직 흐름에 반응하는 무아지경(無我地境)은, 곧 모든 세포가 깨어나 시장과 하나 되는 감각지경(感覺地境)으로 이어진다. 이것이 인간 본성을 넘어선 자기 극복의 결정체다.


뇌동과 엇박자는 노력의 부족이 보내는 신호다. 후회의 크기만큼 복기하고, 아쉬움의 크기만큼 기다려야 한다. 시장을 탓하고 마음은 실력과 노력이 아직 임계점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신호다.




엘리엇 파동이론이 말해 주는 충격 파동의 강함과 조정 파동의 약함은, 가진 자는 더 가지고 없는 자는 끊임없이 결핍되는 자본주의의 원리와 궤를 같이한다. 투자의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조언을 꼽으라면 단연 「돈 = 추세 - 심리」라는 공식이다. 거대 자본이 파동을 그리며 인간의 심리를 뒤흔드는 것은 시장 경제의 합법적인 작동 원리다. 인간의 본성은 화려한 충격 파동의 막바지나 고통스러운 조정 파동에 시각적으로 쏠리게 되어 있고, 큰돈은 단지 그 시각적 취약성을 반복해서 이용할 뿐이다.


작은 이익을 놓치거나 서툰 대응을 하는 사소한 실수들은 전체 게임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정작 두려워해야 할 것은 방심과 막연한 기대로 인한 뇌동과 추격이다. 마치 꼬리가 몸통을 흔들듯, 이 치명적인 실수들이 투자 전체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아쉬움과 후회, 그리고 실수는 투자라는 여정에서 ‘교양 필수 과목’이다.


시각에 속지 말고 주가의 위치를 보아야 한다. 그러나, 실수는 누구나 한다. 실수로 인한 손실조차 성장을 위한 필수 수업료임을 인정해야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살아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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