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심리 해부학 311 ~ 320
투자 심리 해부학 311 ~ 320
311.
낙관주의는 중간에 차질이 있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좋은 결과가 나올 확률이 높다는 믿음이다. 현명한 낙천주의는 확률이 나에게 유리하며, 중간에 많은 고난이 있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균형이 맞춰져 좋은 결과가 나올 거라는 믿음이다. <돈의 심리학>
확률적 사고는 낙관주의에 기반한다. 낙관주의적 믿음이 있어야 유리한 방향으로 장기간 복리 게임을 할 수 있게 된다. 이 믿음은 오직 복기와 반복 과정에서 잉태되고 성장한다. 상수는 시간 개념(시간 = 돈, 모든 것을 해결하고 ‘사람이 하는 모든 일도 시간이 한다’라는)을 이해하고, 인간의 지울 수 없는 본성인 성급함과 희망을 현재형으로 극복해 가는 사람이다.
312.
한 줌만큼도 되지 않는 머릿속 생각 저울을 내동댕이치고 아무 생각 없이 유리한 방향으로 기계적으로 등락해야 한다. 아는 거랑, 아는 자리에서 진입하는 거랑, 아는 자리에서 수익 내는 거랑은 다르다. 이것이 복기와 반복해야 하는 이유가 되고 시간을 이해해야지만 깨치게 되는 이유다. 아까워서 손실을 못 자르는 게 (손실 확정을 못 하는 게) 인간의 본성이지만 보통 아까울 때 자르는 게 제일 현명하다. 빨리 벗어나서 재차 진입점을 찾는 게 훨씬 빠르다. 버릴 때는 snow-ball 효과(손실이 커지면 더욱더 자를 수가 없는 심리)를 두려워해야 하고 커지기 전에 과감하게 버릴 줄 알아야 한다. ‘파산하지 않아야 한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파산만은 피해야 한다.’ 어찌 되었든 살아남은 종이 강한 종이고, 살아남은 종만이 진화한다. ‘Long. Slowly’ 감정이 잉태하는 일체를 버리고 생존에 모든 초점을 맞추면서 가다 보면 저절로 긍정적인 방향으로 진화하게 되고 늘 그렇듯이 시간은 살아남은 종의 편이다. 어디에서나 원칙을 지키는 게, 작은 것을 버릴 줄 아는 게, 지나치게 애쓰지 않는 게 현명함이다.
313.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치통을 과소평가하는 지식인의 말이다. ‘나는 느낀다. 고로 존재한다.’야말로 모든 생물을 포괄하는 훨씬 일반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진실이다. 나의 자아는 사유에 의해서는 당신의 자아와 본질적으로 구분되지 않는다. 사람은 많으나 생각은 적다. 우리는 모두 서로 전달하고 차용하고 서로 상대의 생각을 훔치기도 하면서 거의 동일한 것을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 누군가가 나의 발을 밟는다면 고통을 느끼는 사람은 나 혼자다. 자아의 토대는 사유가 아니라 고통, 즉 감정 중에서 가장 기초적인 감정인 것이다.” <불멸 – 밀란 쿤데라>
건강해야 심리가 굳건할 수 있고, 심리가 굳건해야 돈을 벌고 지킬 수 있다. 건강을 잃으면 세상은 종말을 향하게 되고 전부를 잃은 게 된다. 추격으로 심리적 압박을 주지 않아야 함도, 뇌동으로 극도의 스트레스를 주는 무모한 행위들을 그만두어야 함도 건강이 무너지면 세상 그 어떤 것도 가치를 상실하게 되고 추격이나 뇌동 같은 불안전한 행태는 심리적 고통을 가중하기 때문이다. 심리적 압박이 거듭되어서는 버틸 재간이 없게 된다. 최소한의 매매 시간과 횟수 그리고 lower leverage로 장기간 복리 게임을 추구하는 길만이 부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자 건강을 잃지 않을 수 있는 길이다. ‘행복으로 충만해지고 싶은가? 그렇다면 기대치를 끊임없이 낮추고 작은 것들의 속삭임에 귀 기울여라.
314.
한 사람이 얘기했다. “아가씨 장사할 때도 시비붙으면 맘 편하게 돈 돌려주고 조금 손해 보면 진상들이 걸러지니까 나중에는 장사하기 편해요.” 아닌 것을 버릴 줄 알아야 맘도 편하고 돈도 편안해서 새끼를 치게 되는 법이다. 손실이 적을 때 잘라주어야 돈이 안심하고 새끼를 칠 수 있을 게 아닌가? 아닌 자리를 ‘손절’로 거듭해서 잘라내다 보면 나중에는 걸러내게 된다. 아닌 걸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그렇게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서 ‘손절’로 비워야 ‘원함’이 들어설 자리가 만들어진다. ‘손절’은 시장에서 꿈꾸는 자의 최소한의 예의다. 세상사 매한가지고 이건 자연의 이치다. 비워야 채워지는 법이다.
315.
<돈의 심리학을 통한 사색 ①>
인간의 본성은 바뀌지 않기에 ‘역사가 반복되는 게 아니라 사람이 반복하는 것이다.’ 아무리 열심히 공부하고 마음을 열어도 공포와 불확실성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갖는지 제대로 재현할 수 없기에 시간 개념을 이해하고 병아리 눈물만큼의 변화를 쌓아서, 복기와 반복의 시간을 쌓아서 변신할 수밖에 없기에 투자는 다수의 무덤일 수밖에 없다. ‘안전마진 (=lower leverage)’을 염두에 두고 장기간 복리 게임을 해야 하고, ‘포트폴리오 사고’로 기계적으로 등락해야 한다. “라스베이거스에서 이기는 유일한 방법은 들어오자마자 나가는 겁니다.” 시장에서 개미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기계적인 대응을 반복하는 길뿐이다.
왜 누적을 쌓아야만 하는가? 작은 것이 불어나면, 그러니까 작은 성장이 미래 성장의 동력 같은 역할을 하게 되면, 그 출발점이 거의 논리를 거부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비상한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그 대단한 성장을 이루고 지켜가기 위해서는 누구나 겪게 되는 예측 불가능한 수많은 오르막, 내리막을 견디고 살아남아야 한다. 투자에서의 오르막, 내리막은 후회와 시장의 끊임없는 조롱이다. “유리한 고지에 서는 것과 살아남는 건 전혀 별개의 문제다. 전자는 후자를 필요로 한다. 파국은 피해야 한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장기간 살아남는 자가 강한 자다. 파산하지만 않는다면 결국엔 가장 큰 이익을 얻는다. 시장은 겹치면서 등락하고 세상은 적응하면서 진보한다. 복리의 원리는 큰 수익률에 의존하지 않는다. 그저 썩 괜찮은 수익률이 중단 없이 최대한 오랫동안 유지되기만 하면 결국엔 승리할 것이다. 등락·부분·누적·복리가 목표가 되어야 하는 이유다. 유리한 방향으로 지속해서 반복하기 위해서는
왜 lower leverage여야만 하는가? 시간 개념에 대한 진정한 깨달음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중요한 것은 많이 이기는 것이 아니다. 이길 때 크게 이기고, 질 때 작게 지는 것이다. 크게 이기는 그 순간에 집중해야 한다. 꼬리가 전체를 흔든다. ‘부엉이는 보는 게 많아질수록 말이 줄었습니다. 말이 줄어들수록 듣는 게 많아졌습니다.’ 매매 횟수가 줄어들수록 보이는 게 많아지게 된다. 경제학은 시간이 지나면 상황이 바뀐다는 사실을 초석으로 하기에 대응이 생존의 필수요건이 되고, 꼬리가 몸통을 흔들기에 이익을 길게 가져가는 것 또한 필수다. 아무리 내가 옳다고 해도 내 앞에 있는 칩을 몽땅 걸 수 있는 순간은 없다.
시장의 끝없는 조롱에 굳은살이 배이고, 내성이 쌓이면서 일상처럼 바라보게 되는 과정이 실력이 쌓이는 과정이다. 실수의 여지를 생각할 때 엄밀한 의미에서 ‘견딜 수 있는 것’과 ‘정서적으로 가능한 것’ 사이의 차이를 간과하기 쉽다. 이게 이론과 실전의 차이이고, 개미들이 끊임없이 실패하는 이유이자 대표적 착각이다. 돈의 신은 대가를 치르지 않고 이득을 취하려는 자들을 좋게 보지 않는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매력적인 허구와 스토리는 왜 통계보다 강력한가. 이것이 뇌동의 토대이기에 극복해야 할 대상이고, 손실이 뇌동의 양분이기에 수익보다는 잃지 않아야 한다. 인간은 나만의 시각과 세상 경험을 바탕으로, 그 경험이 아무리 제한적이라고 해도 설명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인간의 한계이자 본능이 자기합리화다. 시장은 변한다는 게 경제학의 초석이듯이, 자기합리화가 뇌동의 초석이다. 내가 얼마나 모르는지를 인정하는 것은 자신의 통제를 벗어난 일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지를 인정하는 것과 같다. 받아들이기 힘들 수 있다. 상수는 인생도 행운과 우연이 점철된 확률임을 받아들이고 확률적 사고를 토대로 하는 사람이다.
316.
투자자는 말할 것도 없고 미래를 잘 다루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구체적으로든 약식으로든 확률분포를 만들어야 한다. 확률분포를 잘 만들면 확률은 적절한 행동 방침을 정하는 데 도움이 된다. 하지만 확률을 알고 있다고 해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는 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여러 가지 일이 일어날 수 있지만, 실제로 일어나는 일은 딱 하나라는 것이다. 우리는 ‘평균적으로’ 어떤 결과를 기대해야 하는지 알지만, 그것은 실제로 일어날 일과 아무 관련이 없다. 내 생각에 투자에서 성공은 복권당첨자를 뽑는 것과 비슷하다. 둘 다 볼풀(가능한 결과의 전체 범위)에서 공(결과)을 뽑아서 결정된다.
하나의 결과는 매번 여러 가능성 사이에서 선택된다. 뛰어난 투자자는 볼풀에 어떤 공들이 있으며, 따라서 추첨에 참여할 가치가 있는지를 판단하는 감각이 좋은 사람이다. 즉 뛰어난 투자자들은 다른 사람들처럼 미래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정확히 알 수는 없어도 미래의 경향에 대해 평균 이상의 이해를 하고 있다. ‘경향에 대한 통찰력을 가지고 확률을 내 편으로 만드는 사람’이다. 하지만, 설사 확률을 안다고 해도 즉 경향에 대해 더 뛰어난 통찰력을 가졌다고 해도 진짜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모른다는 것이다. 병 속에 든 공의 비율이 검은 공 70에 흰 공 30이라도 다음번에 무슨 색 공을 뽑을지 알 수 없다. 흰 공보다 검은 공을 뽑을 확률이 더 높지만 그래도 여전히 30%의 확률로 흰 공을 뽑을 수 있기 때문이다.
병 안에 검은 공 외에 흰 공이 들어 있고, 다음 공을 선택할 때 특히 무작위와 외인적 힘이 영향을 미친다면 그 결과는 확실하지 않다. 이 모든 사실에도 불구하고, 결과에 대한 확실성이 있어야만 게임이 참여할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경향에 관해 지식의 우위가 있다면 장기적으로 성공하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병 속에 검은 공 70개와 흰 공 30개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도 유리한 확률은 수없이 실행했을 때 평균적인 값으로 단기적으로는 무작위성으로 인해 상당한 차이가 난다. <하워드 막스>
317.
“일단 실패할 (이길 수 없는 때가 있다는) 가능성을 이해하고 나면, 언제 카드를 접고 다음 판으로 넘어가야 하는지 알게 된다. 그러면 당신은 오랫동안 게임판에 눌러앉아 돈을 잃는 판세가 뒤집히기만을 기다리는 사람들보다 더 빨리 판단을 내릴 수 있다.” <부의 원칙 – 래리 하이트>
우상향의 누적 수익 그래프를 장기간 그리기 위해서는 손실에 익숙해지는 법을 먼저 배워야 한다. 손실이 뇌동의 양분이 아니라 우상향 그래프의 양분이 되는 법을 배워야 한다. 투자는 대부분 시간을 골대에서 멈추고 기다리다가 가끔 따라붙는 것이어야 한다. 파동을 그리다 보면 기회는 늘 있지만 대부분은 기회가 아니다. 기회가 아닌 자리에서 자꾸 들어가니까, 아닌데도 자꾸 버티니까 꼬인 실타래를 풀어내기도 어려운 것이다. 아무리 해도 기다림은 참 어렵다.
318.
<돈의 심리학을 통한 사색 ②>
아무것도 아닌 미천한 생각을 극복하고 ‘손실을 막고 이익을 따라가는’ 추세 추종 = 흐름으로 투자자의 관점이 이동하는 데 엄청난 시간이 소요된다. 공포와 불확실성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갖는지 제대로 재현할 수 없기에 경험과 복기와 반복으로 극복하는 데에도 엄청난 시간이 소요된다. 더 큰 패턴 = 더 큰 흐름 = 추세에 주목할수록 사고는 확률적 사고로 진화하게 되고 살아남을 확률도 높아지게 되고 끝날 때까지 끊임없이 유리한 방향에 서야 살아남는 자가 된다. 대부분은 ‘현재’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지금의 승패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반복되고 있는가?’ 시간을 이해했느냐가 핵심이다.
“이 업계에서 끝내주는 사람이라면 열 번 중에 여섯 번은 맞히겠죠.” 틀려도 손실을 막을 수 있어서 상관이 없어야 한다. 은행에 있는 현금은 인생을 좌우하는 중요한 선택을 우리 스스로 할 수 있게 만들고,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시간을 배당금으로 주고, 기다림도 여유로운 현금에서 나오고, 무엇보다도 여유로운 마음은 여유로운 현금의 토대 위에서 자란다. 현금이 쌓여가야 (조금이나마 변하기 시작하고) 여유로워지고, 여유로움은 다시 현금을 불러들인다. 마찬가지로 충분한 현금이 있어야 기다릴 수 있고, 기다릴 수 있음이 다시 현금을 불어나게 한다. 이게 선순환 구조다.
확률(승산)을 알아야 좋은 베팅을 반복할 수 있다. 이기는 베팅은 결과에만 있을 뿐 시작점에는 없다. 좋은 베팅을 반복한다는 게 바로 확률적 사고이고, 확률적 사고는 결과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 안전마진(=lower leverage)의 목적은 예측을 불필요하게 만들고 심리적 동요 없이 기계적으로 등락하기 위함이다. 시장에서 자신이 짊어진 위험이 제값을 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 시간을 이해해야 한다.
“나에게는 매몰 비용이 없어요.” 카너먼의 말처럼 끊임없이 ‘과거의 나’를 버림으로써 새로운 추세를 추종해야 한다. 대부분은 실제로 해보면 더 어려운 이유는 우리가 자만하는 탓도 있지만, 더 큰 원인은 우리가 성공의 대가를 잘 알아보지 못해 그 값을 제대로 치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시장이 요구하는 가장 큰 대가는 끝없는 조롱을 견디어 낼 수 있는 인격적 도약이다. 한 단계 또 한 단계씩 도약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게 시장을 이해하는 관건이다.
319.
기다림의 적(敵)은 지금 당장 하고 싶은 성급함이고, 누적의 적(敵)은 지금 당장 벌 수 있을 것만 같은 희망이다. 인간의 본성을 지울 수는 없겠지만 그나마 극복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이 흐르면 마침내 강물이 바다에 도착하듯이 말이다.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강물은 바다와 만났다는 필연의 진리처럼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미래의 나’는 ‘다른 나’일 것이다. 상수는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어찌할 수 없는 (도무지 어찌할 수 없는) 필연의 시간을 깨치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시장을 바라보는 자다. 중요한 건 눈에는 보이지 않고 마음으로 봐야 보이고 성급함이나 희망과 같은 감정은 각자가 자신의 마음을 봐야 비로소 보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는 단점에 사람의 마음은 수시로 변한다는 단점이 더해져 투자를 더욱 어렵게 만든다. 사람의 생각은 변하기에 인류는 진보한다. 맞느냐, 틀리느냐? 문제가 아닌 ‘승산이 있느냐? 반복할 수 있느냐?’ 문제로 존재하는 확률의 세계에서 맞추려고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기에, 돈과 심리가 늘 동일 선상에 있기에 투자는 깨친 소수의 ‘그들만의 리그’인 것이다.
320.
우리는 자신에게 자주 눈이 멀게 된다. 우리의 자아는 두려움과 욕망 때문에 자신이 저지르는 실수를 알아차리지 못한다. 우리는 손실을 감당하길 원하지 않기 때문에 상황이 곧 반전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버티면서 자신을 속인다. 그런 식으로 자신을 스스로 심각한 위험에 빠뜨리고 잘못된 현실에 집착한다. 많이 잃는 사람들은 어려움을 만나면 손실을 최대한 줄이고 수익을 늘리는 대신에 얼어붙는다. 이에 따라 작은 손실이 깊고 넓은 구멍으로 변한다. 마치 바닥에서부터 물이 차오르는데 헤엄도 못 치는 사람이 삽으로 계속 땅을 파는 형국이 벌어진다. 나는 손실을 줄였기 때문에 금융시장에서 살아남았고, 수익을 늘렸기 때문에 부자가 되었다. 신고가에 뛰어들었는데 가격이 하락하고 있으면, 어떤 시장이든 털고 나와야 합니다. 손절매해야 살아남습니다. 정말입니다. <부의 원칙 – 래리 하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