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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금지기 Oct 19. 2024

무리하지 않아야 물리지 않는다.

투자 심리 해부학 331 ~ 340

투자 심리 해부학 331 ~ 340

331.

거시경제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과 상권분석은 언제나 틀릴 수 있다는 전제하에 시세를 결정하되 확률적 사고로 경매에 접근해야 한다. 투자에 있어 절대 파산하지 않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절대 무리하지 않음으로써 물리지 않는 것이다. 무리하지 않아야 물리지 않는 법이다. 선순환 구조로 순환하기 위해서는 물리지 않아야 하고, 손실도, 이익도 무리하지 않고 자르고 챙겨야 악순환의 늪에 빠지지 않게 된다. 어린아이가 걸음마를 시작해야 걸을 수 있고, 뛸 수 있고, 뛰다 보면 마라톤도 가능하게 되는 게 자연의 이치이듯이 나쁜 습관을 없애야 기다릴 수 있고, 대응하는 감각을 키울 수 있고, 대응하다 보면 반복할 수 있는 습관이 자연스럽게 배는 게 투자에서 배움의 과정이다.        

   



332.

야구에서 잘 맞았다고 다 안타가 되는 게 아니다. 어떤 결과든 받아들이고, (배트 중심에 맞은 그 감각을 새기면서, 예쁜 자리까지 기다려서 진입했던 그 감각을 새기면서) 행운과 우연이 점철된 어떠한 상황도 언제든지 만들어질 수 있음을 인정하고 다음 타석에서 평상심을 유지하는 게, 반복으로 안타를 만들어내는 게 굳이 글로 미화하자면 심리의 미학이다. 이것저것 따져보고 생각의 수고로움을 더해도 어떠한 훌륭한 기법이 더해져도 확률일 뿐이니 결국은 실타래가 좀 더 꼬일 뿐이다. 투자자에겐 망할 놈의 필연이다. “산다는 건 삶이란 연극 무대에서 연기를 하는 거야. 누구나 다. 연기 잘하는 사람은 많은 것을 얻고, 독선과 자만에 빠져 서툴거나, 연기를 제대로 배우지 못해 무지한 사람들한테서 더 많은 것들을 빼앗아 가는 게 인생의 유일한 법칙 같아. 흰머리가 나기 시작해서야 내 연기가 얼마나 서투르고 무지했는지를 알았어. 얼마나 치열하게 파고들어서 인생 대본에 녹아들 수 있느냐 이것으로 그 사람의 크기가 결정되는 거였어.”       

  



333.

원초적 욕망(성급함)을 이겨낸 1차원적 극복(시간)이 전제되어야만 ‘수익보다는 잃지 않는 투자’라는 기본 중의 기본에 이르게 된다. 감정의 변화무쌍함(희망)을 이겨낸 2차원적 극복(공간)이 전제되어야만 인생 곡선을 우상향으로 들어 올리는 깨달음의 비탈길을 오르는 투자자가 된다. 시장의 끝없는 조롱을 이겨낸 3차원적 극복(감각) 단계에 이르면 비로소 지속 가능성의 고원에서 일가를 이루게 된다. 매일 깨달음의 비탈길을 갈팡질팡 위아래로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버텨야 한다. 사람의 생각은 태생적으로 짧은 데다가 삶의 중턱을 지나면 시간과 더불어 망각도 짙어져 간다. 지금 생각이 옳을 수도, 틀릴 수도 있는 다만 확률일 뿐임을 행동으로 증명해 가는 삶, 맞아도 틀려도 상관없는 인생이어야 편하다. 혀끝에서 말을 삼켜야, 너무 애쓰지 말고 보낼 줄도 알고, 알면서도 그냥 지나칠 줄도 알아야 편하다. 시장에 맞서는 건 기도하는 것과 같아질 뿐이다. 시장은 쳐서 이기는 대상이 아니라 기다림과 순응을 배우는 위대한 스승이고, 마치 동굴과 같다. 탐욕도, 성냄도 벗어버리지 못하면 영원히 암흑에 갇히게 되지만 인간의 본성을 내려놓는 순간 어둠 속에서도 길을 찾게 된다.          



334.

안나 카레니나에서의 레빈은 무아지경(행위 주체는 사라지고, 행위가 저절로 이어지는 상태) 상태에서 낫이 저절로 풀을 베었다. 그것은 행복한 순간이었다. 레빈은 오랫동안 베어나감에 따라 더욱더 무아지경의 순간을 느끼게 되었다. 그런 때에는 낫 그 자체가 생명으로 가득 찬 육체를 움직이고 있기라도 하듯이, 일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데도 일이 저절로 정확하고 정교하게 되어갔다. 그런 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이제 그의 일에서 그에게 커다란 만족을 안겨 주는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한창 일하는 동안, 그에게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까맣게 잊게 되고 갑자기 일이 쉬워지는 순간이 찾아들곤 했다. 바로 그 순간에는 그가 벤 줄이 치트가 벤 줄처럼 고르고 훌륭해졌다. 하지만 그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기억해 내고 더 잘해 내려고 애쓰는 순간, 그는 노동의 힘겨움을 고스란히 느꼈고 줄도 비뚤비뚤해지고 말았다.” “그가 아니라 한 자루의 예리한 낫이 혼자서 저절로 싱싱한 풀을 베고 있는 것 같았다.” “그의 온몸을 적신 땀이 그를 시원하게 해 주었고, 등과 머리와 팔꿈치까지 걷어 올린 팔에 내리쬐는 태양은 노동에 단단함과 끈기를 북돋아 주었다. 무의식의 순간이 점점 더 빈번하게 찾아들었고, 그럴 때면 자기가 무엇을 하는지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낫이 저절로 풀을 벴다. 행복한 순간이었다.” “레빈은 풀을 베면 벨수록 망각의 순간을 더욱더 자주 느끼게 되었다. 그럴 때는 손이 낫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낫 자체가 생명으로 충만한 그의 몸을, 끊임없이 스스로를 의식하는 그의 몸을 움직였으며, 그가 일에 대해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아도 마치 마법에 걸린 것처럼 일이 저절로 정확하고 시원스럽게 진행되었다. 이럴 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다만 이처럼 무의식적으로 행해지는 동작을 멈추고 무언가를 생각해야 할 때, 작은 풀숲이나 괭이밥 덤불을 깎아내야 할 때는 일이 힘겹게 느껴졌다.” 톨스토이는 몰입은 자아 해방이라 했고 그래야 세상과의 진정한 교감이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진정한 소통(=말 없는 소통, 침묵 속의 응시)은 말은 자제하고 듣거나 보는 데 집중하는 걸로 보았다. ‘죽음을 기억하라. 오늘 밤까지 살라. 동시에 영원히 살라.’ 죽음을 기억하면 현재가 놀랄 만큼 풍요로워진다는 말이고, 죽음의 기억하는 삶은 변화를 수용하겠다는 의지이고, 시간과 더불어 살겠다는 의지다. 변화를 거부하고 싶은 인간의 본성을 넘어서서 살면서 어떠한 대상에 무아지경이 되어 변화를 느끼지 못하고, 시간을 잊어버릴 수 있다면 죽음을 기억하면서 동시에 초월하는 삶이 된다. 

유튜브에서 들었던 석영중 교수의 <안나 카레니나>에 관한 내용이다. 변화를 받아들이면서 더 쉽고 편안한 이상으로 나아가는 득도(得道)의 길을 파동이란 도구를 통해 찾고자 했다. “나의 생활 전체는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던 그것과는 상관없이, 매 순간순간이 이전처럼 무의미하지 않을 것이다.” 레빈이 느꼈던 소설 속 마지막 감정처럼 무아(無我)를 향해 무슨 일이든지 일어날 것임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내게 기쁨과 행복을 넘어 전율을 가져다줄 성장을 위해 한 걸음씩 가야 함을 새긴다.          




335.

‘견딤’이 ‘쓰임’을 결정하고 ‘견딤’이 ‘내공’을 결정한다. 정호승 시인의 위대한 말이다. 단호함 그리고 단순함. 단호함은 단순함에서 나오고, 단순함은 치열함의 결과다. 단순함의 궁극은 정교함이다. 치열함이 없이는 명료함을 얻을 수 없고, 뚫어질 때까지 관찰하는 통찰력이 없이는 단순함에 이를 수 없다. 본질만 남은 단순함은 더 이상 뺄 게 없을 때 완성된다. 생텍쥐페리의 말이다.          




336.

류지현 LG 감독은 “타석에서 움직임이 적다. 타격 자세가 면이 많은 스윙이라 컨택 능력이 좋다”며 “공격적일 때는 공격적이고, 공을 봐야 할 때는 공을 지켜보고 출루하고, 타점을 필요할 때는 타점을 올려준다. 성장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라고 칭찬했다. 투자도 시간 속에서 심리의 움직임이 무뎌지면서 기계적인 매매로 대응능력을 키워야 하고, 무엇보다도 추세 방향에서는 공격적으로 접근하고, 반대 방향에서는 수익보다는 잃지 않도록 수비적으로 접근하면서 누적 수익 그래프를 우상향으로 들어 올리면서 깨달음의 비탈길을 올라야 한다. 성장을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면 잘될 수밖에 없다. 세상 이치가 그러하다.          




337.

‘쾌락에의 가장 큰 장애물은 고통이 아니라 망상이다. 실제로는 꿈에 불과한 것을 소유하려는 욕구가 마음을 파고들며 끝내 전소시키고 마는 그 망상적인 소유욕.’ ‘보고 듣기를 바라는 사람이라면 서둘러서는 안 된다. 서두르면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아무것도 듣지 못할 것이다.’ <책은 다시 도끼다> 

투자의 본질은 예측이 아니라, ‘예측을 안 하고 어떻게 이득을 볼 것이냐?’다. 양방향으로 언제 어디서 어떤 확률이 벌어져도 ‘나에게 유리하게 판을 짤 것이냐?’다. 예측할 필요가 없는 상태가 되어야 하고, 양방향을 열어두고 짧은 손실과 긴 이익의 비대칭 구조 즉 확률적 사고로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말이나 행동할 때 성급하면 (아무리 감추고 포장하려 해도) 타인의 눈에 쉽게 목적이 보이듯이, 시장에서 성급하면 부질없는 희망을 품고 있음을 시장은 금방 눈치채게 되고 손쉬운 먹잇감이 된다.           




338.

누구나 똑똑하고 싶어 하지만, 만인은 인간이란 틀에서 절대적으로 평등한 동물이다. 시간은 만인에게 평등하고, 공짜 점심은 없다. 똑똑함은 필연적으로 자기 함정에 빠질 확률이 높다. 편협한 시선과 독선 그리고 자만이 그것이다. 한 분야의 전문가이자 세상을 통찰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기에 그들을 현자라고 부르는 것이니 단지 만인 중 삶의 흐름에 순응하는 자 역시 현자라고 부를만하다. 시장에서 경험이란 게 쌓인 이들은 이 말에 공감할 것이다.          




339.

시장이 무서운 건 단 하루 원칙을 어기면 그걸로 끝나게 된다는 것이다. 아무리 오랜 시간 쌓아 올린 공든 탑도 단 하루 만에 무너질 수 있는 곳, ‘추세 추종’의 모범 답안지였던 제시 리버모어도 자살로 생을 마감하게 되는 곳이 바로 시장이다. 항상 떠날 때까지 수익이 더해질수록 (수익의 크기만큼) 고개를 숙이기 위해 애써야 하고, 지나칠 정도로 겸손해야 한다(너무 애쓰지 마라. 올 것은 오고, 갈 것은 간다는 게 삶의 진리이지만, 실전에서 맞추기 위해 너무 애쓰지 말고, 투자자는 겸손하기 위해서 애쓰고 애써야 한다). 투자는 지독한 어려움을 헤쳐 나가면서 포기하지 않는 법을, 낮춤과 겸손을 배우는 도구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340.

심불시불 지불시도 ‘마음은 곧 부처가 아니다. 앎이 곧 도가 아니다.’ <쇼펜하우어. 문장론> ‘알기 위해서는 물론 배워야 한다. 그러나 안다는 것과 여러 조건을 통해 스스로 깨달은 것은 엄연히 다르다. 앎은 깨닫기 위한 조건에 불과하다.’ ‘중요한 것은 시습(時習), 즉 배운 것을 때때로 익히는 노력입니다. 이 문장을 늘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양적으로 부족하더라도 주관적인 이성으로 내가 책에 담긴 내용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소중한 지식이 된다는 사실도요. 이런 식의 책 읽기가 되어야 삶이 바뀐다고 봅니다.’ <책은 다시 도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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