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심리 해부학 341 ~ 350
투자 심리 해부학 341 ~ 350
341.
유리하다가 불리해지고, 불리하다가 유리해지고 (그렇게 지지저항이 변하면서) 그렇게 파동은 등락할 뿐이다. 등락하다 상방으로 강한 에너지가 들어오면 상승추세인 게다. 유리할 때를 기다려서 진입하고, 불리해지면 대응해야 하는 이유는 ‘한없이 갈 것 같고, 이번에는 갈 것 같고, 지금 당장 갈 것 같아도’ 파동은 겹치면서 등락하기 때문이다. 등락하기 위해서는 파동은 겹치지 않을 수 없다. 겹치면서 떨 주고 붙이지 않으면 많이 가진 자가 적게 가진 자를 지배할 수 없기 때문이다. 파동이 겹치지 않으면 자본주의 시장 논리가 아니기에 파동은 영원히 겹칠 것이고, 소수의 많이 가진 자와 현자들, 그들만의 리그로 영원히 남거나, 없어지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이게 약육강식의 자본주의이고, 그래도 다수의 못 가진 자들에게도 자본주의 이상의 세상은 지금까지 없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래도 평등이란 가치가 중시되고, 기술의 진보는 거의 평등하게 누릴 수 있으니 말이다.
342.
삶도 파동이고, 산다는 것 또한 인생 파동을 따라 등락하는 게 아닌가! 그렇다면 현명한 삶의 조건은 확률의 이해에 있지 않을까? 가령 한 번의 거래에서 좋은 물건을 싸게 샀다고 가정하자. 다음 거래에서도 이렇게 거래할 수 있는 확률은 거래가 거듭될수록 점점 떨어진다고 봐야 사는 게 편안하다. 시장에서도 확률적으로 검증된 모델을 만들었고, 원칙에 따라서 확률적 사고를 하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실패(손실)를 확률적 범주로 기꺼이 받아들이게 된다. 성공의 횟수가 늘어나면 경계하게 되고, 실패의 횟수가 늘어나도 확률을 믿기에 더욱 침착해지게 된다. 실패(손실)를 받아들이는 태도가 성공의 잣대가 되고, 필연적 시간이 태도를 만든다. 파동은 크게 봐도 등락하고, 작게 봐도 등락하고, 추세도 등락하면서 가고, 올리면서 내려오고, 누르면서 올라간다.
343.
세상사 옳고 그름을 따져서 무엇하겠는가? 그저 흐르는 강물처럼 시간은 흐를 것이고 애써 따져본들 옳거나 그른 것들 대부분은 한 줌도 안 되는 먼지로 사라질 것을. (나름 대의라 칭했던) 명분을 찾아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자 했던 젊은 날들도, 부질없이 질기게 맞추고자 했던 시장에서의 과거도 강물이 되어 떠나버렸지 않은가? ‘맞추고, 틀리고’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시장에서 이것을 깨치는 데 너무나도 많은 인생 수업료를 지급하게 된다) 물처럼, 바람처럼 세상사 흐름대로 파동을 그리면서 살다가 노을로 지는 인생이면 아름답지 않겠는가!
344.
반복과 복기로 실력을 거듭 새롭게 해서 시장이 에너지를 모을 때 같이 에너지를 모으고, 시장이 갈 때 살포시 시세 버스에 올라탈 수 있어야 한다. (‘살포시’가 바로 여유로움이고 덤덤함이다) 실력이 부족하기에 시장과의 엇박자가 잦은 것이지 다른 이유는 없다. 노력이 부족하기에 뇌동과 추격의 유혹에 시달리는 것이지 다른 이유는 없다. 감각이 부족하기에 그 크기만큼 후회와 아쉬움의 크기가 결정되는 것이지 다른 이유는 없다. 투자는 기다림의 미학이 맞고, 대응으로 만들어가는 (나만의) 예술 작품일 수밖에 없고, 무아지경(無我地境) = 감각지경(感覺地境)이란 자기 극복의 결정체다.
345.
엘리엇 파동이론에서 언급하듯 충격파는 강하고 조정파는 약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부익부 빈익빈’ ‘가진 자는 더 가지고, 없는 자는 지속해서 없다’라는 시장 경제의 원리와 맥을 같이 한다. 자본주의에서는 「돈=추세–심리」라는 공식은 투자에 관해서는 가장 위대한 조언 중 하나다. (돈으로) 파동을 그리면서 심리를 흔드는 건 합법이고 시장 경제의 원리다. 인간의 본성은 충격파의 막바지나 조정파에 시각적으로 쏠리고 큰돈은 단지 인간 본성인 시각적인 취약성을 반복해서 이용하기만 하면 된다. 잘못 챙겨서 이익을 놓치는 것과 같은 작은 실수들은 게임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방심과 막연한 기대가 만드는 뇌동과 추격이 꼬리가 몸통을 좌우하듯이 한두 번이 전체를 좌우하게 된다. 실수나 아쉬움이나 후회는 투자나 인생에서 교양 필수 과목이고, 늘 손익은 병가지상사다. 이걸 깨쳐야 성장한다.
346.
다수가 보기에 착하게 보이는 사람도 두 종류가 있지 않을까? 자신만의 세계에서 사유하고 행위를 함으로써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그저 착해 보이는 사람과 자신보다는 타인에 대한 배려심이 강해 타인으로 인해 마음 한쪽이 아파서 착하게 보이는 사람 두 종류가 있지 않을까? 마찬가지로 꿈꾸는 무아도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나만의 생각의 세계에 함몰된 무아와 자신을 떠나 주변 환경에(마치 이타심처럼), 흐름에 동화되는 무아가 존재하지 않을까? 어디쯤 와 있을까? 착함도 그 중간쯤일 것이고, 무아도 깨달음의 비탈길에 들어섰을 것이다.
347.
보유 시간과 수익이 반비례하는 건 파동은 겹치면서 등락하기 때문이고, 그것에 더해서 심리가 흔들리기 때문이다. 매매 횟수와 수익이 반비례하는 건 깨치고 나면(깨치기 이전의 조금만 더 지나면 온통 수익일 것이라는 착각의 늪에서 벗어나면) 비로소 적게 가진 자에게, 지극히 너무나도 인간적인 자에게 시장은 헤어날 수 없는 늪지대임을, 평생 동물원이 아닌 곳에서 눈빛이 마주치면 안 되는 맹수의 사나운 눈빛을 지척에서 마주하는 곳임을 그나마 보호장구 하나 없이 알몸으로 마주하게 되면 알게 된다. 이 세상 그 어떤 기법도 나침반일 뿐 내비게이션일 수는 없다. 정답은 없고 대응만이 희망 저 너머에서 (극히 소수일 수밖에 없는) 감각이란 이름으로 투자자를 한없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헤매는 동안 시간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추억은 어느덧 멀리 달아날 것이니, 나침반일 뿐임을 깨치는 데에만 많은 세월이 걸릴 것이니 투자라는 행위는 살면서 절대 맞아서는 안 되는 (범인이 맞지 않기를 기도해야 하는) 큐피드의 화살과도 같은 것이 아닐까?
348.
알려지면 악재는 호재가 되고, 호재도 악재가 된다. 호재도 악재도 처음에는 쉬운 파동을 만들지만, 알려지면 쉽게 가지 않고 등락하면서 나름 분석한다. 시장은 좋은 놈도, 나쁜 놈도 아니고 이상한 놈이다. 대상이 이상하기에 참여자는 이성적인 판단을 애초부터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걷는 놈 위에 뛰는 놈 그 위에 나는 놈은 인간 본성의 범주일 수도 있겠지만, 시장은 그 위에 있는 이상한 놈이기에 아주 쉽게 인간의 본성 위에서 존재한다. 뛰는 놈도, 나는 놈도 아닌 이상한 놈을 상대하고 있다는 인식이 ‘돈이 부리는 심술과 마법이 만드는 판’이라는 인식이 시장의 본질을 이해함이다.
349.
’吾友我(오우아) 나는 나를 벗 삼는다. 吾對我(오대아) 나는 나를 대응한다.’ (상대가 나이고 내가 곧 적이기 때문에 내가 내 마음을 가지면 적에게 내 마음을 읽히는 것이기 때문에 결정적 순간에 동전을 보고 확률에 맡겨라. - 시골 의사 박경철)
그래야만 숱한 고비들을 그 경계에 서서 건너갈 수 있다. 생의 누적 수익 그래프를 우상향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 반드시 건너야만 하는, 지속 가능성의 고원에 머물기 위해서 반드시 그리해야만 하는 운명의 강 앞에 서야 한다. 그 강이 바로 대응의 강이다. 쉬운 파동을 타는 방법은 보여주기 전의 첫 번째 파동이다. 첫 번째 파동은 쉽게 주지만, 이미 누구나 알 수 있는 두 번째 파동부터는 쉽게 가지 않고 애태우는 게 파동이다. 지지저항이 바뀐 이후 첫 번째 자리나 돌파나 붕괴 이후 첫 번째 자리처럼 첫닭이 우는 여명의 자리여야 한다. 해가 뜨고 천지가 환해지면 ‘잘 가시게’ 보내버리는 게 확률적 사고다. 이미 노을이 질 때 피 터지게 뇌동하고 추격했던 이는 죽고 여명에서 다시 태어나야 한다.
350.
아는 것보다 적게 말하고, 나이가 들수록 혀끝에서 삼키면서 적게 말해야 한다. (무리하지 말고) 한꺼번에 다 먹으려 들지 말고 먹을 만큼만 먹어야 한다. 시세 직후에는 횡보나 조정이다. (무리하지 말고) 시장과 같이 에너지를 모으면서 챙기면서 기다리면 결국에는 추세 흐름대로 간다. 크게 크게 보면서 원칙을 지킴에 온 힘을 다하되, 잠깐 스쳐 가는 사람의 일이나 사소한 것들을 잘하려고, 잘 보이려고 너무 애쓰지 말아야 하듯이 작은 것에 연연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 애쓰거나 연연하는 태반은 기억조차 힘들고 시간이 지나고 나면 다 고만고만해질 뿐이다. 시장에서 커다란 문제가 되는 건 감정적 얽매임이자 감정의 엉킴이 꼬리 사건을 만났을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