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를 줄이려면 무리하지 않아야 한다.

by 황금지기


“묘수 세 번이면 필패다.” 박치무 바둑 칼럼리스트는 이 격언을 통해 대응의 어려움을 설명한다. 보통의 사람들은 판세가 불리해지면 승부수를 던지거나 기사회생의 묘수를 꿈꾼다. 절망적인 형세를 일거에 뒤집는 회심의 묘수, 묘수는 패망과 죽음으로 내몰리는 백척간두의 어딘가에 존재한다. 그 힘든 상황을 세 번이나 넘나들었다면 어찌 기운이 남아 있으며 어찌 승리를 바랄 수 있겠는가.


시장에서 실수를 줄이는 길은 무리하지 않는 것이며, 묘수가 필요하지 않은 상황을 이어가는 것이다. 묘수가 필요하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무리했다는 증거이다. 무리는 필연적으로 실수를 부르지만, 무리하지 않으면 형세는 두터워진다. 서봉수 9단의 말처럼 바둑에는 오직 정수와 실수만이 존재할 뿐이다. 자충과 무리, 이 두 가지는 실수의 대명사와 같다. 실수는 실력 부족이 첫째고, 유리할 때의 방심이 두 번째이고, 불리할 때의 초조함이 세 번째다. 바둑은 실수의 게임이고, 좋은 수가 아무리 많아도 단 한 번의 치명적인 실수를 당해낼 수 없다.


실수는 실력 부족에서도 오지만, 유리할 때의 방심과 불리할 때의 초조함이라는 감정의 틈에 실재한다. 돈을 잃으면 심리가 흔들리고, 심리가 흔들리면 무리하게 된다. 수익보다 ‘잃지 않는 것’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자충과 무리를 버리고 정수만으로 일관할 때, 실력은 묘수 없이도 승리하는 두터운 경지에 이르게 된다.


묘수의 유혹은 무리했다는 증거이자 뇌동의 전조다. 역전승을 바라는 마음이 곧 무리이며, 그 무리가 계좌를 백척간두로 몰아넣는다. 원칙에는 정수만이 존재한다. 묘수보다는 지루한 정수가 기계적으로 원칙을 따르도록 할 것이다.




시장에 보편적인 진리는 없으며, 자신에게 맞는 방법이 존재할 뿐이다. 시장은 확실하다고 믿는 순간 틀릴 확률도 높아지며, 맞을 확률이 높은 만큼 언제나 틀릴 가능성도 그만큼 높다. 뜻밖의 일은 수시로 벌어지며, 일어날 확률이 있는 일은 언제 어디서든 일어난다. 이 냉혹한 확률의 세계에서 살아남으려면, 항상 '실수의 여지'를 마련해 두어야 한다. 그 여백을 많이 둘수록 생존의 가능성도 커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설령 손실이 발생하지 않았더라도 그 과정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음을 알아차리는 능력이다. 이익으로 마무리했다 하더라도 시세 분출 직후의 무리한 진입이나 추격은 본래 손실 가능성이 컸던 자리였다. 단지 행운이 작동하여 최악의 상황을 피했을 뿐, 행운과 위험은 동전의 양면처럼 항상 뒤를 쫓고 있다. 확인하지 못한 위험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모른 채 지나간 것뿐이다. 이 모든 우연과 위험의 공존을 인지하며 한없이 겸손해질 수 있다면, 이미 거대한 성장의 문턱을 넘은 것이다.


겸손은 위험을 알아차리는 가장 날카로운 감각이다. 오늘 거둔 이익이 온전한 실력이 아닐 수 있음을 늘 자각하라. 수익의 달콤한 가면을 쓰고 있는 우연한 행운을 가장 경계해야 한다. 위험은 보이지 않을 때, 그리고 안전하다고 믿을 때 가장 치명적인 발톱을 드러낸다. 실수의 여지를 두지 않는 빽빽한 원칙은 작은 변수에도 쉽게 부러지기 마련이다.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는 전혀 알 수 없어도 우리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는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미래를 알 수 없음을 인정하고 단념하고서 주기를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리가 현재 주기의 어디쯤 위치하는지 확인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투자의 본질이다.”

<하워드 막스, 투자에 관한 생각>


미래의 방향을 알 수 없다는 사실을 겸허히 인정하고 단념할 때, 파동의 진짜 얼굴이 보인다. 쏟아야 할 에너지는 미래를 예측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 주기의 어디쯤 서 있는지를 확인하고 걸맞은 행동을 하는 데 있다. 이것이야말로 투자의 본질이며 흔들리지 않는 중심이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현재 주가의 위치를 냉철하게 파악하고, 가장 유리한 지점에서 초기 진입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방향을 맞추려 들지 말고, 결과가 어떻든 그것은 매번 확률의 영역이었음을 인지해야 한다. 언제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하며 생존하는 것이 투자자의 첫 번째 목표가 되어야 한다. 주가의 유리한 위치를 알고 초기 진입하지 못하면, 시장의 사소한 흔들림에도 평정심을 잃게 되고 길게 가져가기 힘들다. 결국 싸게 사기 위해 묵묵히 기다리는 미학이 투자의 정수다.


미래 예측을 단념하고 현재 주가의 위치에 집중하라. 주가의 위치라는 객관적 사실에 집중하면, 미래를 맞히려는 마음의 무게는 자연히 가벼워진다. 방향을 맞히려는 조급함은 영혼에 무거운 짐을 지우지만, 현재의 위치를 파악하고 순응하는 태도는 마음을 무아의 경지로 인도한다.




날마다 투자라는 행위를 반복한다는 것, 그것은 숱한 시행착오 끝에 빚어낸 원칙이라는 작은 배를 강물 위에 띄우는 일이다. 너무 애쓰지도, 성급하지도, 헛된 희망에 들뜨지도 않은 채 그저 묵묵히 노를 저을 뿐이다. 불확실성과 변동성, 공포와 의심, 그리고 등 뒤에서 들려오는 끝없는 조롱과 후회의 지껄임을 견디며, 안개가 자욱한 강물에 온몸을 맡기는 것이다.


매 순간 행운과 우연이 미소 지을지, 위험과 실수의 여지가 앞길을 막아설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올 것은 오고 갈 것은 간다는 진리를 믿으며, 그저 파동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비록 지금은 앞이 보이지 않는 안개 속에 있을지라도, 믿음을 현실로 바꾸어 줄 지속가능성의 고원으로 향한다.


투자는 원칙이라는 배를 타고 안갯속을 나아가는 과정이다. 안개 너머에 도달할 고원이 있음을 믿고, 노를 놓지 않는 것이 지속성의 본질이다. 작은 배(원칙)를 믿어라. 오늘도 묵묵히 저어가는 그 노질 하나하나가 바로 지속가능성 자체다.




“가격과 가치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라. 투자의 성공은 ‘좋은 자산을 사는’ 게 아니라 ‘자산을 잘 사는 것’에서 나온다. 가치투자자에게 투자의 시작은 가격이어야 한다. 투자는 가격이 적당할 때만 매력적일 수 있는 것이다. 가격을 고려하지 않은 선택을 두고 옳고 그름을 평가하는 건 의미가 없다.”

<하워드 막스, 투자에 관한 생각>


가치보다 싸게 사려는 노력이 매번 승리하지는 않겠지만, 그것이 불확실한 시장에서 취할 수 있는 최선인 선택이다. 마주한 필연의 시간을 이해했다면, 이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물어야 한다. 투자는 단순히 부를 쌓는 수단이 아니라, 기다림과 대응의 과정에서 자신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찾아가는 수행의 길이다.


이 모든 지평을 넓히고 시간을 다스리는 행위의 전제는 바로 건강이다. 원칙이 무너지면 마음은 끝없는 생각의 굴레를 돌 뿐이지만, 건강이 무너지면 시간 자체를 다룰 수 없게 되어 투자는커녕 세상도 의미를 잃는다. 투자자 최고의 미덕은 규칙적인 식사와 운동으로 몸을 돌보는 것이다. 건강한 몸으로 한 걸음씩 앞으로 디디며, 주어진 오늘을 찬란하게 살아내는 것. 그것이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드는 가장 현명한 전략이다.


원칙으로 찬란한 하루가 최고의 수익이다. 가격이 쌀 때까지 기다리는 인내도, 원칙을 지키는 용기도 결국 건강한 신체라는 토대 위에서만 가능하다. 계좌의 숫자를 불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 숫자가 늘어나는 시간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건강을 지키는 일이다.




신용거래를 선택했다는 것은 주관을 버리지 못한 채 '과잉 확신'의 갇혔다는 명백한 증거다. 레버리지에 기댄 확신에는 유연함이 깃들 틈조차 없다. 처음에 버려야 할 고집을 버리지 못한 채 결국 나중에 시장에 의해 강제로 버려지게 되고, 우왕좌왕 매매 횟수만 늘리는 악순환에 빠진다. 이 종착역은 언제나 '한방'에 대한 갈구와 '꽂힘', 그리고 결국 내면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간절한 기도'로 이어진다.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하고 있기에 하늘에 매달리는 것이다.


투자자의 길은 이 악순환을 끊어내는 데서 시작된다. 조급함은 실수를 부르니 신중해야 하고, 장고 끝에 악수를 두게 되니 진입의 순간에는 과감해야 한다. 정해진 원칙대로 기다리다 자리가 오면 진입하되, 흐름에 따라 담담히 대응하는 것. '성급함'이라는 뜨거움과 '두려움'이라는 차가움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중도'의 길은 참으로 험난하다. 하지만 투자자는 이 조화로움을 찾기 위해 오늘도 깨달음의 비탈길을 한 걸음씩 묵묵히 올라야 한다.


레버리지는 과잉 확신과 불안한 기도의 산물이다. 레버리지는 조급함과 공포를 증폭시키는 기폭제일 뿐이다. 기도가 필요 없는 담담한 원칙만이 당신을 생존과 조화로 인도한다. 원칙이라는 단단한 지팡이를 짚고 성급함과 두려움 사이의 좁은 길을 걸어가는 태도 자체가 조화로움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전망 이론'의 굴레에 갇혀 있다. 이익이 나면 서둘러 위험을 회피하려 수익을 확정 짓고, 손실이 나면 오히려 위험을 감수하며 끝까지 버티는 '처분 효과'에 지배당한다. 이는 자신의 판단이 틀렸음을 인정해야 하는 심리적 불편함을 회피하려는 본능적 방어기제다. 그러나 주가는 추세를 이어가려는 '모멘텀'의 속성을 지니기에, 이익은 짧게 자르고 손실은 길게 끌고 가는 이 평범한 습성은 시간의 문제일 뿐 결국 필패로 귀결된다.


많은 이들이 손실 구간에서 물타기로 버티다 본전 근처에서 작은 이익만 나도 서둘러 청산하며 위안 삼는다. 이러한 행동은 다수의 평범한 심리가 빚어내는 ‘생각하지 않음’이 끔찍한 악으로 이어질 수 있는 ‘악의 평범성’과 같다. 장기투자라는 핑계를 대며 역매매를 정당화하지만, 이는 결국 심리적 학대이자 원칙에 대한 배반이다. 소수의 승자가 되는 길은 명확하다. 이 보편적인 본성과 정확히 반대로 행동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본능을 거스르는 소수의 좁은 길로 들어서라. 생각하지 않고 본능에 몸을 맡기는 마음의 편안함이야말로 원칙에 저지르는 가장 큰 악이다. 다수가 걸어가는 자기 위안의 넓은 길에서 이제는 과감히 빠져나와야 한다.



남성은 과잉 확신의 덫에 걸리기 쉽고, 여성은 안전의 욕구로 인한 처분 효과에 취약하다고 한다. 시장에 정답이 없는 이유는 이 극단적인 양극단 사이에서 중성의 길을 새로이 내야 하기 때문이다. 시장이 이토록 가혹하게 느껴지는 것은 지극히 인간적인 편향을 극복하며 동시에 세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첫 번째 토끼는 ‘시간’이다. 이는 원칙이 정한 자리가 올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시간 통제를 의미한다. 두 번째 토끼는 ‘공간’이다. 지지저항의 경계에서 챙기고, 자르고, 갈아타기를 반복하며 흐름에 몸을 맡기는 공간 통제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토끼는 바로 ‘감각’이다. 이는 ‘엄마의 손맛’과 같아서, 누구도 정확히 정의할 수 없지만 분명히 실재하는 직관의 영역이다. 시간과 공간을 온전히 통제할 수 있게 될 때, 성실함과 꾸준함은 감각이 되어 내면에 스며든다. 그제야 내면의 평화와 더불어 그토록 갈망하던 고원에 도달하게 된다.


정의할 수 없는 감각이 진짜 실력이다. 시간의 지루함을 견디고 공간의 변동성에 대응하는 훈련이 반복되면, 어느 순간 머리가 아닌 온몸이 먼저 반응하는 감각의 단계에 진입하게 될 것이다.




낡은 모텔을 운영하며 재건축의 막대한 이익마저 거절한 할머니의 일화는 우리에게 투자의 본질을 묻는다. 할머니 모텔이 포함된 블록 전체를 매입하겠다는 제안을 했고 해당 블록에서 할머니만 제외하고 나머지 건물주들은 모두 동의했다고 한다. 구도심이고 모텔이 너무 많아 수익성이 떨어지고 건물이 낡았기에 동의하는 게 상당한 이익이었다고 한다. 할머니가 이익을 포기한 이유는 명확했다. 준비되지 않은 자식들에게 목돈을 쥐여주게 되면 결과가 뻔했기에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투자자 역시 마찬가지다. 온전히 자기 것으로 승화한 감각 없이, 그저 행운과 우연이 겹쳐 거둔 큰 이익이 과연 삶의 단단한 동아줄이 되어줄 수 있겠는가?


시장에서 깨지며 깨치고, 온몸의 세포가 기억하는 관점을 명확히 세우지 못했다면 수익은 모래성일 뿐이다. 관점이 원칙이라는 단단한 뿌리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숙성 시간이 필요하다. 반죽이 어느 순간 빵으로 부풀어 오르고, 몇 년간 땅속에서 뿌리를 뻗던 대나무가 싹을 틔운 뒤 무섭게 자라나듯, 실력도 임계점을 지나야 한다. 감정이 간헐적으로 개입할지라도, 감각으로 무장한 원칙이 뿌리 깊게 박혀 있을 때만 미래의 어느 순간을 온전히 담보할 수 있다.


뿌리 없는 수익은 독이 든 성배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만난 큰 행운은 할머니의 철없는 아들들에게 독이 될 돈처럼, 원칙을 무너뜨리고 오만함의 늪으로 인도할 것이다.




뿌리 없는 나무가 없듯, 모든 일에는 근본이 있어야 한다. 투자자에게 그 근본이자 뿌리는 시장과의 자신과의 싸움을 통해 길어 올린 나만의 원칙이다. 뿌리 깊은 나무는 가뭄을 타지 않는다. 근본이 튼튼하고 깊어야만 시장 어떤 흔들림도 견뎌낼 수 있다. 투자 초기에 겪는 작심삼일의 좌절도, 숱한 시행착오의 아픔도, 본성을 이기지 못해 반복하는 나쁜 습관의 도돌이표조차도 땅속 깊이 뿌리가 내려가고 있는 시간이다.


최후의 생존자가 되는 비결은 지능이 아니라 꾸준하게 하는 시간에 있다. 투자자의 최고 덕목은 똑똑함과 비범함이 아니라 ‘성실함’과 ‘꾸준함’이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듯이, 욕심의 가지를 쳐내지 않으면 원칙은 흔들린다. 채워가는 배움의 마디마다 욕심을 쳐내면서 단순해져야 한다. 수많은 기법과 성공 신화에서 자신에게 맞는 단 하나의 틀(원칙)을 세우고, 선택과 집중으로 그 틀을 끝까지 지켜내야 한다.


꾸준함은 신에게 바치는 최고의 경배다. 꾸준함이 모든 기교를 이긴다. 똑똑해지려 애쓰기보다 성실해지기를 선택하라. 욕심의 가지를 과감히 쳐내고 단순한 원칙 하나를 벼리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다.

keyword
이전 10화평상심을 잃으면 모든 걸 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