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은 대응하기보다는 기대한다.

by 황금지기


내일을 기약하는 일은 되도록 하지 말아야 한다. 삶은 오늘의 연속일 뿐이기 때문이다. "내일 하겠다"라는 말은 "하지 않겠다"라는 말의 다른 이름이다. 그러니 당장 시작하라. 완벽함은 시작한 자가 채워갈 내일의 몫이다. 그러나 행동의 속도와 마음의 속도는 다르다. 물리적인 속도에만 매몰되면 시간은 빠르게 흐르게 된다. 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성급한 자는 가장 먼저 시장에서 퇴장당한다.


진정한 행복은 성급함과 막연한 희망을 극복하는 데 달려 있다. 여유롭고 덤덤한 마음으로 시장의 흐름에 집중하면 그뿐이다. 아무리 예쁜 파동이라도 그것은 오직 확률의 영역에서만 존재할 뿐이다. 인간의 뇌는 좋았던 기억만을 편협하며 편집하기에, 보통의 인간은 대응 대신 기대를 선택한다. 예쁜 자리를 만들고도 무너졌던 숱한 실패의 기록을 망각하는 것이 인간의 치명적인 결함이다.


실력이 쌓인다는 것은 기대치가 줄었다는 것이다. 삶도, 투자도 기대치를 낮출 때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 진짜 행복과 마주할 수 있다. 투자의 실력은 마음속의 기대라는 거품을 얼마나 걷어냈느냐로 측정된다. 기대치가 바닥을 길 때, 수익은 우상향할 것이다.




“개인투자자가 지닐 수 있는 최고의 우위는 장기투자를 지향하는 것이다.” 세스 클라만의 통찰처럼 시장에서 이기려는 조급한 시도보다 ‘시간’이라는 도구를 믿는 것이 훨씬 현명하다. 여기서 장기투자란 단순히 특정 종목을 수년간 보유하는 물리적 인내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나만의 방식을 흔들림 없이 반복한다’라는 투자의 본질적 철학과 맞닿아 있다. 초 단위의 승부를 다투는 데이트레이딩조차 그 내면은 결국 원칙을 무한히 반복하는 장기적인 수행의 과정인 셈이다.


그러나 왜 이 단순한 반복을 지속하지 못하는가. 지루함을 참지 못하기 때문이고, 무작위 시장을 해석할 수 있다는 오만에 빠지기 때문이다. 타이밍을 잡을 수 있다는 착각, 단기 손실의 고통, 복리의 마법을 잊은 망각, 그리고 가격에 집착하는 조급함이 우리를 가로막는다. 남보다 낫다는 자만과 예측할 수 있다는 독선은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는 어려움’ 속으로 밀어 넣는다. 원칙을 반복하는 일은 단순해 보이지만, 그 단순함은 인간의 본능을 거슬러야 하기에 아무나 단순할 수 없다.


반복이 곧 실력이라면, 그 지루함은 곧 숙성의 과정이다. 장기투자의 핵심은 ‘시간’이라는 재료를 ‘원칙’이라는 견고한 틀 안에서 묵묵히 숙성시키는 일이다. 장기투자는 시간의 보유가 아니라 원칙의 반복이다.





사람의 마음이 수시로 흔들리는 것 또한 생존을 위한 본능일 뿐, 이를 '좋다'거나 '나쁘다'라고 평가할 실익은 크지 않다.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 극복의 대상일 뿐이다. 그러기에 시장 앞에 선 투자자에게 해 줄 최고의 조언은 "겸손하고, 또 겸손하라"는 한마디면 족하다.


파동은 에너지의 수렴과 발산을 반복하며 호흡하는, 감정이 없는 생물과 같다. 앞고점과 앞저점 사이에서 돌파 실패(Failure)를 거듭하거나 함정(Trap)을 파며 강하게 방향을 트는 등, 파동은 그저 등락할 뿐이다. 이러한 생리에 무지한 채 고점에서 매수하거나 저점에서 매도하는 추격은, 소중한 돈을 쓰레기통에 다발로 버리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물이 고이면 썩듯 에너지가 차면 반드시 발산해야 하기에 끝없는 횡보는 없으며, 여름이 가면 낙엽이 지듯 시세 분출 뒤의 조정은 자연스러운 파동의 삶이다.


파동은 에너지가 차면 반드시 발산하는 생물이다. 고개를 숙여 파동의 호흡에 박자를 맞추어야 한다. 여름의 끝자락에서 단풍을 막으려 애쓰는 것이 어리석듯, 꺾이는 시세에 매달려 희망을 품는 것은 돈을 스스로 버리는 일이다.




시장도 나의 빈틈만을 노리고 있으니, 넋 놓고 한방을 꿈꾸거나 기도해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 투자자는 침착하게 끊임없이 시장의 리듬을 타야 한다. 적절한 때에 청산하며 방어하기 위해, 그리고 정해진 자리를 기다려 진입하며 공격하기 위해 마음의 리듬을 유지해야 한다. 개인투자자에게 닥치는 위험은 결국 단 하나, '돈을 잃을 가능성'으로 귀결된다. 원금을 잃는 순간 복리의 마법은 멀어지며, 심리가 무너진 상태에서는 본전을 찾을 확률보다 남은 돈을 잃을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투자자는 자신과 궁합이 맞는, 확률 높은 자리를 스스로 만들어 내야 한다. 어떤 파동을 맞닥뜨리더라도 당황하지 않고 잃지 않으며 수익을 누적할 수 있도록 감각을 다듬어야 한다. 화려한 미사여구는 사치일 뿐이다. 매매를 거듭하면서도 '잃지 않는 것'에서 자신감의 싹이 트고, 그것이 '누적 수익'으로 증명될 때 자신감은 꽃을 피운다.


잃지 않을 수만 있다면, 꽤 훌륭한 투자자다. 생존이 곧 최고의 전략이다. 잃지 않는 매매가 반복될 때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라는 강력한 자기 신뢰가 뿌리내린다. 자기 신뢰는 어떤 기법보다 강력한 무기다.



야구에서 승률 4할과 6할은 열 번의 승부에서는 고작 두 경기 차이에 불과해 보인다. 시작은 엇비슷한 종이 한 장 차이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이 승부를 백 번, 이백 번, 천 번으로 거듭하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반복할수록 ‘미세했던 차이는 기하급수적으로 벌어져 결코 따라잡을 수 없는 거대한 장벽이 된다.


시간이 흐르고 횟수가 거듭될수록 상수와 하수의 차이는 확연하게 드러난다. 하수의 부족한 실력은 실패를 거듭하며 또 다른 실패를 끊임없이 잉태한다. 결국 시간이라는 냉혹한 심판은 하수를 삶의 막다른 모퉁이까지 몰아세운다. 아주 작은 원칙의 준수, 그 종이 한 장의 차이에 시간이 더해지면서 누군가는 상수가 되고, 누군가는 소리소문없게 된다.


시간은 정직한 심판이다. '한 번쯤이야'라는 작은 원칙 위반의 역습은 삶의 벼랑 끝으로 밀어 넣을 수도 있다. 실력의 차이는 그 미세한 우위를 얼마나 오랫동안, 얼마나 정직하게 반복했느냐에 달려 있다.




모든 현상은 변하기에 집착할 이유가 없다. 이 무상의 원리를 깨닫는 자가 진정한 부자가 된다. 득도의 길은 단순한 비움에 있다. 비어 있는 상태, 즉 무가 곧 도(道)다. 본래 아무것도 없는 근원을 따라 만물이 자연스레 운행되듯, 투자자 또한 억지로 무언가를 하려 애쓰지 말아야 한다.


상선약수(上善若水) 즉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순리를 따르며, 어떤 그릇에도 자신을 맞추는 유연함을 가졌으나, 결국 바위를 뚫고 바다에 닿는 강인함을 품고 있다. 또한 포정해우(庖丁解牛), 즉 숙련된 도축사가 소의 뼈와 살 사이의 틈새를 알아 칼날을 상하지 않게 하듯, 경지에 이르면 힘을 주지 않아도 시장의 결을 따라 여유롭게 움직이게 된다. 삶과 투자가 서투를 때는 실수를 연발하지만, 통달하면 무엇을 하든 여유가 생기게 된다. 만약 손실이라는 독화살을 맞았다면, 즉시 화살을 뽑아내고 평상심을 되찾는 것이 우선이다.


투자의 도는 비움(無)에 있다. 매번 요동치는 마음은 살아있는 동안 끝없이 관찰하고 극복해야 할 대상일 뿐이다. 시장을 힘으로 이기려 들고, 생각대로 움직여달라고 떼를 쓰며 고집부리는 것은 달걀을 바위에 던지는 어리석음일 뿐이다.




시장에 머무는 한, 삶은 행운과 우연으로 점철될 수밖에 없다. 아쉬움과 후회는 그림자처럼 따라붙고, 위험과 실수의 여지는 항상 곁에서 산책하는 개처럼 우리와 동행한다. 파동은 그저 무심하게 등락하며 제 갈 길을 갈 뿐이지만, 인간은 그것을 끊임없이 판단하고 해석하며 기어이 '확신'과 '확정'의 틀에 가두려는 동물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논리를 지어내는 '좌뇌의 지껄임'에 흔들리고 갈등하는 존재다. 이 깊은 틈새를 메우기 위해 심리를 탐구하고, 흔들리는 마음을 지탱할 잣대를 세우고자 인문학의 바다에 빠져드는 것이다. 확률적 사고를 한다는 것은 결국 반복을 견뎌 복리 게임을 완성하겠다는 의지다. 투수가 야구공에 박힌 108개의 실밥이 손가락 마디마디에 감각으로 돋아날 때까지 수만 번의 공을 던지듯, 타자가 자신만의 완벽한 스윙 궤적을 만들기 위해 온 힘을 다하듯, 투자 감각도 그렇게 반복 속에서 완성된다.


시장은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 그저 움직인다. 머리(좌뇌)가 자꾸만 “왜?”라고 물어오기 시작할 때, 투자자는 길을 잃고 미로에 빠진다. 시장은 당신에게 친절히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다. 시장은 그저 존재하며 움직일 뿐이다. 인문학을 공부하는 목적은 내 뜻과 다르게 움직일 때 좌뇌의 지껄임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함이다.



삶의 본질은 흐르는 시간을 따라 물처럼 그냥 걸어가는 데 있다. 구구절절 설명하고 해석하며 판단하는 것은 어리석음에 가깝다. 아는 것보다 적게 말하며 묵묵히 '그냥' 행하는 것이 지혜다. 투자의 본질 또한 이와 같다. 중심을 잡고 그저 오르락내리락을 반복하는 무의미의 축제, 혹은 반복의 축제 속에 뛰어드는 일이다.


이 본질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흔들리지 않는 자신만의 확실한 관점을 세워야 한다. 헤아릴 수 없는 시행착오를 거치며 주가의 위치(때), 쉬운 방향과 장단, 그리고 앞고점과 앞저점 사이의 지지·저항에 대한 명확한 철학을 정립해야 한다. 자본주의의 꽃이자 인간 심리가 부딪히는 극한의 현장인 투자는, 그 자체로 또 하나의 깨달음의 입구다. 겉보기엔 무의미해 보이나 그 안에 모든 의미가 담긴 이 반복을 생의 축제로 받아들여야 한다. 세월 앞에 장사 없듯, 시간을 더하고 또 더하면 깨달음은 필연적으로 찾아온다.


투자는 반복되는 무의미의 축제 속에 몸을 던지는 일이다.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변화라는 초석 위에서 지금도 축제가 한창이다. 해석하려는 욕망을 내려놓을 때 시장의 장단이 들리기 시작한다.




세상사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으며, 나의 판단 또한 '맞을 수도, 틀릴 수도' 있다. 주가는 '등락할 수도, 혹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기에, 어떤 결과가 닥쳐도 "그렇구나!" 하고 넘길 수 있는 '상관없는 상태'로 끊임없이 받아들이는 자가 상수다. 변한다는 진리를 뼈에 새긴 이 '등락 군자(登落 君子)'는 대중이 가지 않는 길을 묵묵히 걷는다.


그는 시장 앞에서 겸손하게 말한다. "단지 확률일 뿐이다. 행운과 우연에 편승할 수도 있고, 위험과 실수의 여지에 머물 수도 있다." 사람이든 세상이든 기대치를 낮추면 그만이다. 그저 연속해서 손실 상태를 만들지 않으며, 확률에 근거해 유연하게 움직일 뿐이다. 그는 오늘도 이래도 좋고 저래도 상관없는 무심으로 파동을 마주한다.


상관없는 상태를 만들어 내는 것이 바로 ‘대응’의 본질이다. 상수는 결과로부터 자유로운 '상관없는 상태'를 유지하는 '등락 군자'다. 판단이 틀려도 "그렇구나"라고 말할 수 있는 유연함이 최고의 기술이다.




야구에서 타자가 타이밍이 맞지 않았을 때 미세하게 배트 그립을 조절해 공을 맞혀내는 감각은 수만 번의 반복과 훈련을 거친 시간의 선물이다. 어린 타자들이 변화구에 쉽게 대처할 수 없기에 먼저 공을 골라내는 능력부터 키워야 하듯이, 투자자 또한 애매한 구간을 흘려보냄으로써 '잃지 않는 능력'을 최우선으로 길러야 한다. 이것이 바로 투자의 8할을 차지하는 심리의 요체다.


변화구를 완벽히 대처할 실력이 부족하더라도, 나쁜 공을 골라내어 볼넷으로 출루할 수 있다면 그것은 이미 훌륭한 능력이다. 이처럼 시장에서 '잃지 않고 투자를 마쳤다'라는 사실 자체가 이미 놀라운 실력 향상의 증거다. 변화구를 골라낼 수 있다는 실력은 눈이 변화구의 궤적을 읽기 시작했다는 뜻이며, 애매한 자리를 그냥 보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실력이 향상되었다는 확고한 신호다.


애매한 자리를 흘려보내는 것은 절제의 완성이다. 애매함을 골라내는 눈이 깊어질수록, 투자자의 유연함은 완성된다. 하수는 모든 파동에 배트를 휘둘러 기어이 안타를 만들어 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자멸하지만, 상수는 자신이 ‘칠 수 있는 공’에만 온 신경을 집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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