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젊은 작가] <밤의 여행자들>과 함께

by 서성
p.129
"진짜 재난이 뭔 줄 아십니까?"


도서관에서 예약자가 끊이지 않을 정도로(나도 예약을 해야 했다) 인기 있던 소설 치고는 암울함과 무력감이 내내 감도는 소설이었다.


재난을 여행거리로 삼은 현재, 혹은 미래의 이야기. 그 프로필에서 인지한 '여행'이라는 단어는 설핏 경쾌한 인상을 주었다.


(아래로 줄거리가 이어집니다. 약간일지라도 스포를 원치 않은 분은 주의해 주세요.)


하지만 이 이야기는 온전히 한 인물의 시점에서 개인의 비극을 가지고 시작한다. '정글'이라는 대형 여행사에서 10년이나 근무한 '고요나'는 어느 날 '퇴물'이 된 자신을 발견한다. 10년 간의 노고가 무색하게, 주변의 환경은 금세 야몰차 진다.


결국 사표를 낸 그녀에게 간사한 상사가 내민 대책은 출장을 빙자한 휴식이다. 폐지 직전인 여행지에서 재난 패키지를 즐기며 겸사 폐지를 검토해 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녀가 떠난 '사막의 싱크홀' '무이'에서는 예상을 뛰어넘는 일들이 계속된다.


이 '예상을 뛰어넘는 일'이란 소설의 신선한 소재만큼이나 극적이다. 소설을 읽으며 내내 몰아친다는 기분에 잠겨 있었다. 마치 쓰나미처럼, 사건과 음모는 몰아치고, 여행은 '점. 점. 점' 재난이 되어 간다.


그 사이에서 무엇보다 거대했던 감상은 무력감이었다. 소설을 정중앙에서 관통하는 '재난'이라는 소재 그대로, 이 소설의 흐름 또한 무력감의 테마를 유지한다. 특히나, 거대한 일들이 모두 지극히 개인의 온전한 시각 안에서 서술되고, 그 테마를 연극으로 발전시키는 '작가'의 존재가 그러하다.


진짜 재난은 무엇일까.


재난은 개인에게도, 사회에게도, 세계에게도 도사린다. 내가 느낀 것은, 재난은 '무'라는 것이다.


나는 살면서 겪어본 것이 개인의 재난뿐이다. 하지만 이 소설 속의 재난은 사회, 혹은 세계의 것이다. 그러한 재난 뒤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무'는 죽음이고, 그것은 개인의 최대 재난인 종말이다. 사회적, 세계적 재난은 초월적이다.


그 안에서 느끼는 무력감.

쏟아지는 듯한 소설의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속독이 됐지만, 여태 읽은 소설 중 탈력감이 가장 심하다. 탈력감의 중앙에는 비극서사와 연극적 구성이 자리하고 있다.


특히 후자의 경우 소설 후반에서 도드라지게 진행되는데, 그야말로 소름이 돋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세상이 마치 어둠 속에서 누군가 관전하는 어설픈 연극 무대 같다고 느낀 적이 있다. 하지만 이 소설 속에서는 그것이 극대화된다. 우리는 재난 앞에서 그저 '여자35', 딱 그 정도이다. 더욱 비극적인 것은, 이 소설만큼은 아니지만 대다수의 재난은 인간의 지분이 크다는 현실이다.


우리는 매순간 우리를 죽이고 있다.


여행에 대한 비판도 주목할 만하다. 주인공이 우연한 채무로 인해 발견한 성수기 이후의 여행지는 마치 퓨즈가 꺼진 크리스마스 트리와도 같다. 언제 반짝였냐는 듯이 고요하다.


이건 현재의 여행과도 닮아 있다. 여행이 박차를 가하는 현시점에서 여행은 항상 '즐거움', '해방'의 테마가 필수인 유희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여행을 가서 보는 것은 여행지가 아니다. 그냥 여행 그 자체를 즐기러 갈 뿐이다. 여행자가 떠난 이후의 여행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떨어진다. 그러니까 여행은, 연극과도 같을지도 모른다. 모두 웃기로만 약속한 무대 말이다. 무대의 뜨거운 조명 아래 그림자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모두 보이지가 않는다.



여러 모로 생각할 점이 많은 소설이다. 신선하고 흥미로운 소재와 암울하고 날카로운 주제가 충돌하는 독서는 사고를 산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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