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초엽,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속 우주의 일상성이 부여하는 초월적 공감 속으로
SF는 효율적으로 다른 세계를 구성해낸다. 그리고 지구에 사는 우리가 새롭게 구상하는 세계는 지구와 최대한 다를 것이다. 머나 멀고, 높디높은, 이름 모를 외계인이 있고, 거대한 우주선이 하늘을 가로지를 것이다. 그리고 그런 새로운 세계에서의 ‘체험’(경험과는 다르다)이 SF 장르의 흥미진진함과 클리셰 파괴를 돕는다.
하지만 김초엽 작가의 우주는 공식적인 SF 세계를 의심하며 시작된다. “우리는 행복하지만, 이 행복의 근원을 모른다(19쪽)” 유토피아를 형성했는데, 감히 행복을 의심할 줄 아는 SF 세계관이다. 김초엽 작가에게 유토피아란, 멀디 멀으며, 높디높은 곳이 아니다. 유토피아는 ‘유리되는’ 곳이 아니다. 유토피아는 마치 돌아오기 위한 여정과도 같다. 그래서 책 속의 존재들은 불완전하다. 불완전한 그들은 흉터와, 나이, 인종, 성별에서 사회가 흔히 말하는 결함을 가지고 있다. 10년, 혹은 100년 그 이상의 시간적 괴리 속에서, 어쩐지 그들에게서 우리의 모습이 보인다. 공간적 괴리와 선망을 갖춘 우주에 일상성을 부여한다는 것은 그러하다. 결국 이 책은 우리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소설의 마지막 작품 이후 수록된 해설에서 문학평론가의 첫 문장은 이러하다. ‘김초엽의 SF소설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미래다.’ 그 문장이 믿기지 않아 여러 차례 읽었다. 내가 읽은 김초엽 작가의 SF소설은 전혀 미래가 아니다. 이건 현재이면서 심지어 과거조차 될 수 있는, 그저 우리의 이야기이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관내분실’은 도서관에서 들은 이야기에서,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독일에 있는 요양원 노인을 위한 가짜 버스 정류장 기사에서 시작했다는 점이 그러하다.
SF라는 이국적 장르를 ‘우리’와 밀접하게 접지시키며 김초엽 작가는 SF를 새롭게 발굴해냈다. SF가 안락하게 만들어내는 미래의 세계는 신기루일 뿐이다. 오히려 우리 터전의 복제품과도 같은 김초엽 작가의 SF세계야말로 정밀하기에 손에 쥐여진다. 우리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SF적 상상력은 그저 도구쯤으로 쓰여 버린 이 소설은, 개척적인 면이 있다.
그래서, 궁극적으로 작가가 제시하는 우주의 일상성은 ‘초월적 공감’으로 귀결된다. 이는 우주의 맹점이다. 우주를 숭배가 아닌 공감의 대상으로 보는 것 자체가 신선하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라는 말이 있다. 이때 달은 진리 혹은 이상이고, 손가락은 그 사실을 가르쳐주는 수단일 뿐이다. 그러므로 이 말에 따르면 손가락을 보는 것은 바보 같은 행동이다. 하지만 지금 이 책에 대입하자면 책은 손가락과 같다. 이 책은 우리가 진리에 대입하던 달을 가리키지 않는다. 땅 위에 서서 달을 다시 보는 시각에 대해 논하고 있다. 달을 어떻게 볼 것인가. 달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선 땅 위를 아는 것이다. 우리의 세계를 이해했기에 김초엽 작가의 우주는 어느 때보다 우리의 머리맡에 가까이 떠있다. 우리는 우리 주변에서 사회가 판정하는 개조인과 비개조인을 쉽게 찾아볼 수 있고, 재경 이모에 대한 편견을 오늘도 받고 있다. 하지만 김초엽 작가의 시선은 누구보다 따뜻하다. 우리는 다시, 우리 주변에서 편견에 맞서 싸우기 위해 머나먼 고향을 포기한 순례자들은 찾아볼 수 있으며, 재경 이모가 새로운 몸으로 변화시켰을지도 모르는 세상의 한 조각을 감히 상상할 수 있다. 공감이야말로 초월적인 것이다. 우리의 우주를 구성하는 것은 그런 것이다.
다만 아쉽게도 비판을 위한 비판을 하자면, 우주의 일상성보다 초월성이 부각되는 작품도 있다. 또 다른 수록작품인 ‘스펙트럼’과 ‘공생 가설’에서 우주는 여전히 손에 닿지 않는,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초월적인 공간으로 다루어진다. 즉, 우주를 다루는 방법이 통일적이지는 않다. 결국 우주가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는 공간이라는 점을 인정하게 되는 순간이다. 그래서 우주는 “놀랍고 아름다운(96쪽)” 공간이라고 설명된다. 이는 우리의 불완전함에 대한 인정이기도 하다. 두 이야기에서 여전히 우주는 지구의 결핍을 위한 것으로 다루어진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와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 속 그들이 결핍을 사회가 선망하는 공간으로 채우려 들지 않았다는 점과 대비된다는 점에서 아쉬운 부분이다.
SF가 필연적으로 다루는 우주는, 우리의 불완전함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와 연관돼 있다. 문학은 가장 쉽게 환상을 다룰 수 있는 존재이다. 하지만 환상과 현실은, 행복과 슬픔이다. 둘은 너무나 가까이 맞닿아있다. 문학이 언제나 답을 제시할 필요는 없지만, 너무나 가까운 것들을 서로를 쉽게 침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