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를 하다 보면 돌파구가 하나쯤은 필요하다. 운동, DIY, 독서, 영화 감상 등 본인이 몰두해서 잠시 육아를 잊을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좋다. 육아에 내 모든 걸 걸어 버리면 나라는 사람은 조금씩 지워지고 그렇게 되면 불안한 마음에 더욱더 육아에 집착하고 또 스트레스를 받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더 단순하게는 육아를 하면서 긍정적인 활력을 얻기 위해서라도 취미생활 하나는 있으면 좋다.
나 같은 경우는 출산 후 100일쯤부터 수영을 시작했다. 아이를 낳기 전 오랫동안 했던 운동이기도 하고 노인들에게도 접근성이 쉬운 운동이니만큼 몸에 큰 무리가 가지 않겠다는 판단이었다. 아이를 낳고 나서 운동을 언제쯤 시작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참 다양했다. 맘카페에서만 검색해 봐도 운동을 하려면 반년은 있어야 한다는 사람, 더 보태서 일 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사람 등 여러 의견들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가장 정확한 건 나의 출산을 도맡아 준 의사선생님이라고 판단했다. 산후 검진 때 운동을 언제쯤 시작해야 하는지 여쭤봤더니 당장 시작해도 괜찮다고 해서 시작하기로 한 게 100일쯤이었다.
나는 물속이 편안하다. 누군가는 물 공포증이 있기도 하고 물 하면 차갑고 꺼림칙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지만 나는 물이 좋다. 예전에 사주를 한번 본 적이 있는데 나의 사주는 오행(五行) 중에서도 목(木)이 두드러지는 사주라고 했다. 물을 양분으로 삼는 나무의 성질을 닮아서일까? 아무튼 어렸을 때부터 물이라면 깊든 물살이 세든 딱히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이런 나에게 수영은 최적의 운동이었다. 시작하자마자 앞줄에 서는 동네 수영장 나름의 에이스(?)가 되었고 나중에 출산한지 몇 달 안 된 것을 밝히니 같은 반 수강생들은 깜짝 놀랄 정도였다. 수영을 할 때만큼은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 일단 체력 소모가 큰 운동이라 운동을 하는 도중에 다른 생각이 끼어들 틈이 없다. 또 뒤에 다른 사람이 바짝 붙어서 따라오기 때문에 생각의 심연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노라면 속도가 늦춰져 사고가 날 수도 있기에 의식적으로 생각을 지우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수영을 하는 동안은 아이 생각이 거의 나지 않는다. 아니, 할 수가 없다.
게다가 나는 휴직 중이었기에 수영장에서 만난 수강생들과의 대화는 나의 유일한 사회생활이었다. 수줍음이 많고 착한 사춘기 중학생인 남자 수강생, 초등학생 아이 둘을 키우고 있는 성격 끝내주는 여자 수강생, 자식들을 대학까지 다 보낸 뒤 술과 여행을 즐기고 있는 재밌는 아저씨 수강생 등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벌써 나와 일 년이 넘게 함께 하고 있는 수영 동지이다. 나이도 하는 일도 모두 다르지만 초면에 거의 반라의 상태로 만난 우리는 고리타분한 장유유서따위 집어치우고 '○○회원님'이라고 부르며 금방 친해졌다. 다 동네 사람들이기 때문에 한번은 주말에 시간을 맞춰 한 회원님 집에 모여서 직접 담근 막걸리를 한잔한 일도 있었다. 대화(라고 쓰지만 사실상 독백이다.) 상대가 아기밖에 없는 상황에서 말이 통하는 어른과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것도 취미생활을 하는 큰 장점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외에도 소박하지만 내가 수영을 하면서 좋아하는 순간이 있다. 바로 물 아래에서 위로 떠오르는 순간이다. 특히 배영을 하기 위해 입수 후 수면을 바라보며 올라오는 순간을 가장 좋아한다. 그 순간은 미지의 세계에 도착하기 직전인 것 같기도 하고 이름 모를 화가의 멋진 작품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 같기도 하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은 수중의 적막 속에서 물이 나를 밀어 올리는 힘을 온전히 느끼며 슬며시 떠오르는 그 짧은 순간에 나는 잠깐 별세상에 다녀온다. 쓰면서도 아무한테도 얘기해 본 적 없는 순간이라 괜히 나만의 비밀을 발설하는 부끄러운 기분이 들기도 한다. 혹시 수영이 힘들게만 다가오고 별 재미를 못 느낀다면 물 속으로 풍덩 들어가 수면을 바라보며 올라와보기를 추천한다. 귀는 먹먹하고 눈앞엔 수영장의 조명이 살짝 투과돼 반짝이는 물빛을 보면서 천천히 떠오르는 느낌이 나쁘지 않을 것이다.
출산 후 아기를 바라보면 가슴이 답답하고 호르몬의 노예가 된 것처럼 괜스레 슬픈 생각만 드는가? 물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면 당장 수영을 시작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