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구간이었지만, 마음은 오래 달렸다
무겁게 닫혔던 기억의 문이, 기적 소리 한 줄에 스르르 열렸다.
대학교 때나 한두 번 타보았던 무궁화호에 몸을 실었다.
창밖으로 스치는 풍경이 마치 오래된 필름처럼 느릿하게 흘러간다.
창문 밖으로는 회색빛 도심이 점점 멀어지고, 내 안에서는 잊고 있던 기억들이 하나둘 고개를 든다.
이생각 저생각, 그 시절의 나와 마주했다.
엠티 가던 날의 들뜬 공기, 선배들이 들고 있던 기타,
통기타 줄 사이로 햇살이 반짝이던 그 순간이 떠올랐다.
“너 기타 칠 줄 알아?”
“코드 세 개면 노래는 다 돼!”
허세 가득한 선배의 웃음소리가 귀끝을 간질인다.
그 시절엔 그 말이 그럴듯하게 들렸고, 세상은 한없이 넓고 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었다.
기차는 덜컹이며 앞으로 나아가고, 나는 문득 창밖의 구름을 바라본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서로 다른 플랫폼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이다.
그 시절 나는 늘 달리기만 했고, 지금의 나는 잠시 멈춰 선 채 풍경을 바라본다.
‘그래, 이런 여행도 괜찮지.’ 속으로 중얼거리며 창문에 머리를 기대본다.
덜컹, 덜컹—
기차의 리듬이 묘하게 마음을 흔든다.
그 흔들림 속에서 마음도 느슨해지고, 시간의 틈새로 잊었던 감정들이 스며나온다.
언제부터였을까.
나는 늘 목적지만을 바라보며 살아왔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그렇게 달려왔던 날들이 쌓여 계절이 몇 번이나 바뀌었다.
오늘은 단 한 번, 아무 계획 없이 ‘지금’을 타고 가고 싶었다.
이어폰을 꽂고, 음악 한 곡을 재생한다.
어쩐지 가사보다 ‘덜컹, 덜컹’ 소리가 더 정겹다.
한 정거장마다 문이 열리고 닫히듯, 인생의 문들도 그렇게 열리고 닫혔을 것이다.
그 사이로 스며드는 바람이 내 마음의 먼지를 털어낸다.
‘이래서 사람들이 기차를 타나 봐.’ 혼잣말처럼 중얼거렸을 때....
도착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순간, 나는 이어폰을 급히 뺐다.
“벌써?”
누구에게 묻는 것도 아닌 말이 입 밖으로 새어 나왔다.
여행의 낭만이란, 언제나 내가 마음을 놓는 순간 불쑥 끝나버리는 법이다.
창밖으로 스치는 건 풍경이 아니라, 지나간 청춘의 잔상이었다.
그 짧은 구간이 어쩐지 인생 같았다.
길게 느껴질 만큼 설레다가도, 어느새 도착해버리는 그런 여정.
기차에서 내리며 피식 웃음이 났다.
내가 떠난 건 여행이라기보다, 잠시 스쳐간 회상 한 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지난날의 나를 만나고 돌아왔다.
시간은 짧았지만, 마음은 오래 머물렀다.
기차가 멈춘 자리엔
내 청춘의 그림자가 내려섰다.
그렇게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내 지난날의 나를 만나고 돌아왔다.
아주 긴 여행을 다녀온 사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