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3. 이촌 한강 공원에서 IFC몰까지

엄마고래 숨쉬기(220909)

by 해이나


추석연휴 첫날. 둘째는 학원이 없다. 첫째는 학원에 보내고 둘째와 함께 걷고자 했다.

"둘째야~ 어디를 걷고 싶어?"

"음...한강 공원에서 자전거를 타고 편의점에서 라면을 끓여 먹고 싶어."

아뿔사. 나는 자전거를 못 탄다. ㅜㅜ

"그냥 걷는건 어때?"

"응. 좋아."

자전거를 못 타는 엄마를 알기에 쿨한 포기.

"내가 이촌 한강 공원까지 태워줄께."

멋진 남편. 고마워요~

이촌 한강 공원은 처음이다. 남편은 이쪽으로 주욱 걸어가면 편의점이 나오니, 잘 걷고 잘 먹고 오라고 하고 휘잉~ 첫째를 위해 떠난다.

하늘은 푸르고 맑다. 바람 한 점 없고 태양은 따갑게 내려쬐서 조금은 덥지만, 뭐 어떠랴. 둘째와 함께 걷는 길 아닌가? 더 크면 나랑 안 걸으려 할 텐데 시간이 있을 때 부지런히 함께 다녀야 한다.

양쪽에 자리잡은 사선으로 뻗은 높다란 나무가 너무 멋지다. 미술시간에 원근법 배울 때 자주 보고 그리던 나무였다. 이 그림같은 나무의 이름은 무엇인가 검색을 해 본다. '미루나무'이다.

어릴 때 불렀던 동요 '미류 나무 꼭대기에 하얀 구름이 걸려있네~' 그 동요의 미류나무인데, 맞춤법이 바뀌어 미루나무라고 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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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걷는데 저 멀리 63스퀘어가 보인다. 즉석에서 목적지를 변경한다. 이런 것이 걷기의 묘미 아니겠는가!

"둘째야~ 우리 저 다리 건너서 여의도로 갈까?"

"좋아."

쿨한 우리 딸. 멋지다!

"여의도 IFC몰에 가서 점심 먹고 아이스크림 먹을까?"

"한강에서 라면 먹기로 했잖아. 난 라면 먹고 싶은데."

목적 의식이 분명한 우리 딸. 나는 시원한 곳에 가서 편하게 먹고 싶은데 둘째는 이 따가운 볕 아래에서 1시간 반을 땀흘리며 걸은 후, 햇볕 가득한 한강변에서 라면을 먹겠다는 초심을 잊지 않는다. 훌륭하다!ㅜㅜ

카카오맵을 켜서 보니 원효대교를 건너는 것이 최단 코스이고, 다행히 원효대교 바로 밑에 한강 여의도 편의점 1호점이 있다. 여기에서 라면을 먹으면 되겠다. 그러면 다시 한번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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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덥다. 하지만 넓은 한강과 푸른 하늘, 하얀 구름, 멋진 빌딩숲의 광경을 보며 걷는 길이 새롭다. 더불어 둘째와 함께 도란도란 이 이야기, 저 이야기를 나누며 걸으니 즐겁다.

한강 철교를 지나 걷다보니 원효대교로 올라살 수 있는 엘리베이터가 보인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에서 내리는 순간! 현기증이 났다. 고소공포증있는데.....ㅜㅜ 생각보다 높았고 출렁거리는 한강의 모습을 옆눈길로 보자 멀미가 날 것 같고 어지러웠다. 안되겠다 싶어서 담대한 둘째가 도보의 한강 쪽으로 걷고 나는 차도 쪽으로 걷기로 한다. 지나다니는 차와 앞만 보며 30분 정도 열심히 걷자 드디어 끝이 보였다.

오오... 감사합니다! 오늘 건너보았으니 다음번에는 더 수월하리라. 생각하며 편의점을 향해 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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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지만 그늘진 파라솔 벤치가 몇 개 안남아서 자리를 찜해 놓아야할 것 같다. 둘째가 신라면을 고른 후 자리를 맡으러 가고, 나는 너구리, 얼음, 계란을 계산하고 라면을 끓이러 기계 앞으로 간다.


어허~ 라면 끓이는 기계라.... 어떻게 작동되는 기계인고... 열심히 읽어보니 바코드를 찍으라고 한다. 라면의 바코드를 들이댔지만 아무 반응이 없다.

옆에서 라면을 끓이는 젊은 남성분께 예의바르게 말을 건다. "저기, 죄송한데요. 이거 어떻게 하는 거에요?" 기계에 무지한 아줌마를 불쌍히 여긴 맘씨 착한 그분께서 끓이던 본인의 라면을 두고, 그릇의 바코드를 찍어야한다며 직접 시범을 보여주신다. 그런데 아무리해도 안 되고 결국 기계 고장인 것을 알았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를 외치고 편의점 직원분의 도움을 받아 다른 기계에서 라면을 끓이기 시작했다. 1분 30초를 남기고 계란도 넣었다. 후훗. 만족스럽다.

다음번에는 제대로 끓일 수 있도록 작동법을 잘 기억해 놓는다. 끓인 라면을 들고 와 둘째에게 나의 무용담을 이야기해주니, "내가 끓일걸." 한다. 아니야. 엄마도 자꾸 배워야지~

라면은 생각보다 맛있었고, 파라솔 테이블은 생각보다 시원하다. 나를 아는, 마음이 통하는 존재와 시원한 얼음물과 뜨거운 라면을 먹으며 맛있지? 맛있네. 다음에 또 오자를 연발하며 국물까지 다 먹는다. 난 원래 라면 국물은 안 먹는데 오늘은 다 괜찮다.

테이블을 정리하고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또 걷는다. IFC몰은 금방 갈 수 있다. 쇼핑몰 구경이야 언제나 즐겁지만, 둘째가 다리가 꽤 아픈 눈치다. 맥도날드에서 아이스크림만 먹고 얼른 일어났다.

자, 이제 집에 갈까?

지하철과 버스 중 고르라고 했더니 둘째는 버스를 타겠다고 한다. 버스정류장으로 가는 길을 잘못들어(역시나 난 길치ㅜㅜ) 건물을 한 바퀴 돌고 버스를 탔는데, 버스가 깨끗하고 자리는 비어있고 에어컨은 시원하다. 정신없이 자는 둘째 옆에서 나도 꾸벅꾸벅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 무사히 잘 내린다.




한강대교를 걸어서 건너보고 싶었는데 오늘 드디어 해보니 뿌듯하다. 더불어 한강 편의접에서 라면 끓이는 법을 배우니 이 또한 즐겁다. 다음번에는 마포대교를 건너보아야겠다.

그나저나 자전거 타는 법을 빨리 익혀야 하는데 고민이다. 딸들 7살 즈음에 아파트 놀이터에서 자전거를 가르쳤는데, 스스로 자전거를 타도록 도와준 3일 동안, 우수한 운동 DNA를 탑재하고 탄생하신 아들의 엄마들께서 10분만에 자전거를 탄 아들의 신화를 읊으시던 슬픈 기억이 있다. 내가 이 아파트에서 비틀거리며 자전거 연습을 하면 모두의 조롱거리가 되고 말거라는 공포심이 든다.

일단 큐브 맞추는 연습 중이다.^^


오늘 걸음수: 21,023보

읽은 책: 히가시고 게이고 '허상의 어릿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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