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리 하워스부스 글. 그림 / 장미란 옮김
어둠을 좋아하시나요? 싫어하시나요?
어둠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있으신가요?
책의 임금님은 왜 어둠을 금지했을까요?
초등학생 중 어둠을 무서워한다는 아이가 꽤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이런 아이들의 대다수는 귀신이나 유령, 뱀파이어 등이 등장하는 애니메이션, 책, 영화를 자주 접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친구들 앞에서 자신은 무서운 영화나 만화를 보아도 아무렇지도 않다고 말하며 '나는 너보다 더 용감해'라는 심리에 도취되기도 합니다. '너는 뭐 그런 걸 무섭다고 하냐? 넌 겁이 많구나.' 친구들 앞에서 히어로인 듯 말하지만, 정작 어두워지며 비가 오거나, 밤이 되면 무서워하고 악몽을 꾸는 경우가 많습니다.
혹은 어렸을 때의 어둠과 관련된 트라우마가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둠 속에서 혼이 나거나 맞았거나 갇혔거나 울었던 경험들, 한밤중에 자다가 깼는데 주위는 깜깜하고 방에는 자신밖에 없었던 경험들.
저 또한 어둠을 무서워했습니다. 저의 두려움은 TV 프로그램 '전설의 고향'과 '뱀파이어'가 나오는 영화들, 친구들이 즐겁게 알려주곤 한 무서운 괴담들(화장실 괴담, 홍콩할매, 무덤 위에 세워진 학교의 비밀 이야기 등)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초등학생 때에는 무덤을 밀고 그 위에 세워진 우리 학교에 12가지 비밀이 있는데, 그 비밀을 아는 사람은 12살 생일이 되는 날, 밤 12시 12분이 되는 순간 죽는다는 괴담을 믿었습니다. 저는 그 12가지 비밀을 모두 안다고 생각했고 초등학교 5학년 생일날, 부들부들 떨면서 시계만 쳐다보았습니다. 그날따라 왜 이리 잠이 안 오는지 밤 12시가 넘어가는데 의식이 더 또랑또랑하니 분명해지고 있었습니다. 밤 12시가 넘어가고, 온 집안의 불이 다 꺼졌는데 갑자기 사람 발자국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덜덜 떨면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귀를 쫑긋 세웠습니다. 살짝 이불을 내리니 다시 사람 발자국 소리가 들렸고 멈추지 않고 일정간격으로 들리는 소리에 심장이 쫄깃쫄깃 내려앉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발자국 소리가 들리기만 하고 문이 열리지는 않았습니다. 살그머니 몸을 일으켜 불을 켜고 시계를 보니 12시 12분이 지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고 다시 들으니 내가 발자국 소리라고 생각해던 것은 벽시계의 초침 소리였습니다.
저는 이때 사람이 겁을 먹으면 헛것이 보이고 헛소리가 들린다는 것을 이해했습니다. 공포가 사고를 지배하면 사물을 제대로 인식하기 어려워진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여러분은 어둠과 관련된 어떤 에피소드가 있으시나요?
여기에서의 어둠은 이런 어둠과는 조금 다릅니다. 그냥 '어둠' 그 자체가 주는 공포입니다.
아마도 이런 공포는 타고난 인간의 본성과도 연결되지 않을까 합니다. 우리는 어둠 자체를 무서워하는 본성을 가졌으니까요.
이 책의 임금님은 왜 어둠을 금지했을까요?
어둠을 무서워하는 사내아이가 있었습니다.
이 아이는 왕자님이었어요.
왕자님은 커서 임금이 되면 어둠을 '금지'하고 말겠다고 다짐합니다.
어둠을 금지하기 위해 소문을 퍼뜨립니다.
-어둠은 무서워
-어둠은 지루해
-어둠은 여러분의 돈을 훔쳐갑니다
임금님은 인공태양을 만들어 하루 종일 세상을 밝게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은 밤낮없이 축제를 하며 즐거워했지만, 곧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지요.
잠도 푹 잘 수 없었습니다.
임금님은 백성들의 마음을 돌리고자 성대한 축제를 열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환한 대낮에 불꽃을 쏘아 올려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몰래 불을 끄지 시작했습니다.
하늘이 깜깜해졌구요.
온 나라의 불이 꺼진 순간
불꽃이 밤하늘을 화려하게 수놓았습니다.
임금님은 이제 밤을 허용합니다.
잘 때는 아직 무서워서 작은 등하나를 켜놓고 잔답니다.
책을 읽기 전에 실제적인 밤과 어둠을 생각했다면, 책을 읽고 나니 인생의 어두움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됩니다.
열심히 살았으나 다가오는 인생의 장애물, 환난, 역경, 괴로움, 절망......
건강문제, 돈문제, 공부문제, 취업문제, 부모님과의 문제, 자녀와의 문제......
믿었던 사람의 배신, 사기.....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천재지변, 전쟁, 사고..........
내가 뭘 잘못했기에 이 일이 나에게 생기는가? 하늘을 향해 따지기도 해보고
내가 과거에 잘못한 일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것인가? 자학도 해보고
삶의 덧없음과 허무함에 대한 철학자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도 하고
삶의 고난을 극복하고 일어난 위인이나 동시대의 훌륭한 분들의 에세이를 읽기도 합니다.
저는 우울이라는 어둠을 성실과 책임감으로 이겨내려고 애쓰며 살았습니다.
겉보기에 잘 웃고 성실했기에 티 내지 않고 아무도 원망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최선을 다해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몇 년 전 저의 우울을 극대화시키는 직장에서의 문제가 있었지만, 남편의 이해로 잠시 휴직하며 이 또한 잘 이겨내어 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 와중에 생긴 사랑하고 믿었던 둘째의 우울증은 저의 하늘을 무너지게 하였습니다. 제가 감당하기에 너무나도 어두운 어둠입니다.
처음에는 학교만 그만두고 조금 쉬면 좋아질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몇 주만 쉬고 학원을 다니다던 둘째는 자해를 시도하였고, 자해의 수준이 높아지고, 지속되었습니다. (입원을 하려고 병원을 알아보았으나 어느 곳도 가능하지 않았습니다)
병원을 다니고 상담치료를 받음에도 대인기피는 점점 더 심해지고 지금은 집 밖을 한 발자국도 안 나가려고 합니다.
헬스장에서 한 시간 정도 걷고 샤워하고 왔었는데 이제는 헬스장도 가지 않습니다.
밥도 잘 먹었는데 이제는 밥도 안 먹고 며칠 전에는 이틀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아 결국 저는 아이 앞에서 울고 말았습니다.
둘째는 말했습니다.
"엄마 아빠가 나랑 상관없이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저는 이 말이 곧 죽겠다는 말로 들려 공포에 시달렸습니다. 내가 외출하고 집에 돌아왔는데 아이의 방문을 여는 순간 아이가 쓰러져있는 상황이 계속 연상되면서, 나 또한 집 밖을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이 어둠이 과연 나의 인생에, 둘째의 인생에 필요한 어둠일까요?
'그렇다'라고 말하려니 눈물이 먼저 나옵니다.
하지만 '그렇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래야 아이가 좋아질 거 같기 때문입니다.
'아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저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을것 같습니다.
과거를 탓한들 현실이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지금의 내가 바뀌고 인내하며 미래를 기대해야합니다.
'그렇다'라는 대답 만이 결국 아이가 좋아질 거라는, 회복될 것이라는 희망을 줍니다.
둘째가 이 시간을 극복하고 좋아져서
후에
자신처럼 우울하고 불안하고 대인기피가 심한 동생들을 도울 수 있는 멋진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어둠은 정말 필요한 어둠이다'라고 말하고, 말해보고 싶습니다.
저 또한 우울로 고통받는 자녀들의 부모님을 만나면 함께 끌어안으며 서로 위로를 나눌 거 같습니다. 위로하며 희망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이 어둠은 유익한 어둠이고 불꽃놀이의 찬란함을 더 위대하게 보게 할 인생의 장치일 뿐이다고 말해보고 싶습니다.
사람들은 해마다 그날 밤을 기념하려고 불꽃놀이를 했어요.
어둠이 얼마나 소중한지 잊지 않으려고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