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나 루켄 지음/ 김세실 옮김
지금까지 중 기억나는 실수는 ____________ 이다.
실수를 하고 난 후 나는 _____________ 한다.
실수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물건을 잃어버리거나 약속을 잊어버리는 실수,
시험을 볼 때에 아는 것을 틀리거나, 단순 계산을 틀리게 한 실수,
다 아는 길을 잘못 가서 엉뚱한 곳에 도착하는 실수,
그럴 의도가 전혀 아니었는데 말과 행동으로 오해를 사는 실수.
또 어떤 실수가 있을까요?
실수를 하고 난 후 어떻게 행동하시나요?
'실수를 인정하는 사람'들은 결과에 책임을 지거나, 사과를 하거나, 앞으로 반복하지 않고자 다짐을 할 것입니다.
'실수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은 회피하거나, 변명을 하거나, 남 탓을 하거나, 그냥 버티기도 합니다. 최악의 경우에는 자신의 실수를 드러나게 한 사람에게 복수를 다짐하기도 하지요.
이 책에서는 실수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까요?
얼굴을 그립니다.
그런데 앗, 실수! 눈 하나를 너무 크게 그렸네요.
이번에는 반대편 눈을 더 크게 그려버렸습니다.
이것을 만회하려 안경을 씌웠어요. 흠. 괜찮아.
그런데 이번에는 팔꿈치는 뾰족하고 목은 너무 길게 그렸네요.
아이의 신발과 땅 사이가 너무 떨어져있는 것도 실수!
그런데 롤러스케이트를 신기면?
와! 이 생각은 실수가 아니에요.
실수를 가리기 위해 더하고 더한 그림들은 점점 더 풍성해집니다.
실수와 가림의 시도가 계속 쌓여 풍성해진 그림 속에 아이의 모습이 바뀌어갑니다.
점점 더 거대해지는 그림 속에
더 이상 실수는 보이지 않습니다.
이것은
단지 하나의 작품일 뿐입니다.
내가 너보다 더 나이가 많다는 것은, 내가 너보다 더 많은 실수를 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실수를 했어.'라는 말을 '시행착오를 겪었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책은 '시행착오'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시행착오'는 오른쪽 문을 열고 나갔는데 출구가 아닌 경우, 다시 돌아와 왼쪽 문을 열고 나가는 것을 말하지요.
이 책은 실수를 지우개나 화이트로 지우거나, 종이를 찢어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그리지 않습니다.
실수를 나의 작품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고 끌어안고 거기에 더하기를 합니다.
짝짝이 눈, 뾰족한 팔꿈치, 너무 긴 목, 이상한 다리 각도.....
수정하지 않습니다. 다 받아들이고 롤러스케이트, 모자, 풍선, 나무 등 점점 더 풍성한 것들을 더해갑니다.
우리 삶이 그러합니다. 지나간 과거는 지우지도 찢어내지도 못하지요. 그러기에 이 책은 인생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며 잊고 싶고, 지우고 싶은 과거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동네 슈퍼에서 물건을 빼돌리다가 걸린 적이 있었습니다.(다행히 걸려서 다시는 안 했습니다.) 초등학생 때 일진 아이들이 저를 못살게 구는 게 화가 나서 행운의 편지를 보내기도 했습니다.(절대 지지 않는 성깔) 저를 좋아한다고 고백한 남학생이 병약하여 창피해하며 소리 지르고 도망 다녔습니다.(상처 줘서 미안해.) 남자아이들을 너무 많이 때려서 한 남학생의 엄마가 찾아와 좋게 타이르셨습니다.(죄송합니다.) 예쁘다는 소리를 들으면 백만 번쯤 곱씹으며 좋아했습니다.(공주병) 머리카락을 뽑아대는 '발모벽'이 있었습니다.(다행히 머리숱이 많습니다)
이외에 딸로서 실수, 직업적인 실수, 엄마로서의 실수, 아내로서 실수, 며느리로서 실수,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실수...... 다 쓰려면 '나의 실수들'이라는 제목으로 20회 정도 브런치 연재가 가능할 듯합니다.
저는 늘 실수들을 잊으려고 애썼습니다. 기억이 올라올 때마다 뺨을 때리고 고개를 흔들어 대며 '저리 가, 저리 떨어져!' 외쳤습니다. 하지만 절대 떨어지지 않았고 오히려 기억이 자학으로 승화되었습니다. 더불어 우울이 심화됩니다.
너는 이렇게 못되었구나. 너는 이렇게 나쁜 아이로구나. 너는 교회 다니면서 이것밖에 안되니. 너 따위는 이 세상에서 없어져도 돼! 그래, 네가 하는 일이 다 그렇지.
이 그림책을 읽으며 사고의 전환을 합니다. 내가 다 받아들였더라면, 이런 나를 인정했더라면, 부족하고 어리석은 나의 과거와 과오를 부정하지 않고 거기에 그림을 더했더라면.
그러면 우울하지 않았을까요? 아마도 조금은 덜했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그렇게 해보려고 합니다. 여기에 쓰는 이 글이 그 시작일 수 있겠네요.
부족한 한 사람으로, 어리석은 실수의 대가로, 허물 많은 엄마로 나의 과거를 인정합니다. 그리고 이제 여기에 더하기를 하겠습니다. 현실에서 도망가고 싶었지만 이제 나와 딸을 위해 우울증에 대한 책을 좀 더 열심히 찾아서 읽어보려 합니다. 음.. 그리고 강아지를 한 마리 키워볼까 합니다. ^^ 아파트에서 기르기 괜찮다는 말티푸?? 또, 마음을 달래고 있는 둘째를 위해 자주 손 편지를 쓰려고 합니다.
나이 먹음이 그림의 풍성함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요. 실수는 시작이기도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