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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머즈 Oct 08.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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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여름, 일산, 윤성진 

 

  토요일 오후 신데렐라처럼 정시에 퇴근했다. 

  “정민아. 오늘은 엄마, 아빠랑 재미있는 데 가자.” 

  아들은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있었다. 진지한 표정으로 숟가락을 얼굴 가까이 들어 올려 두드리고 돌리고 물고 빨고, 기가 막힌 짓을 반복하고 있었다. 혜경이 숟가락을 휙 뺏은 후 옷을 갈아입히자, 정민의 표정이 일순간 일그러졌다. 

  “아빠랑 엄마랑 재미있는 데 갔다가 맛있는 것도 먹고 놀이터에도 가자.” 

  혜경은 옷을 갈아입힌 후 바로 숟가락을 돌려주며 안심시켰고 아이의 표정도 금방 밝아졌다.


  레인보우 언어발달센터는 일산 정발산역에서 호수공원으로 이어지는 중앙 광장의 좌측 상가 건물에 있었다. 2층 센터로 들어서자 밝은 조명과 녹색 벽지가 어둡고 칙칙한 상가 복도와 대비되어 순식간에 다른 세계로 공간 이동한 것 같았다. 쾌적해 보였지만 부모 대기실이 없다는 점은 아쉬웠다. 아이를 센터에 맡기고 어디서 1시간이나 대기해야 했다. 올봄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추천해 준 치료실은 왕복 2시간 거리였다. 이동도 피곤하려니와 버스나 지하철로 민이와 동행하는 것은 고역이었을 것이다. 주변 사람들의 애정 없는 눈빛과 수군거림에 아내는 말 못 할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그런 악조건에서 근처에 레인보우 같은 치료센터가 생겼다는 것은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격이었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혜경이 대학 오리엔테이션에 참가한 신입생처럼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 나도 허리 숙여 공손히 인사했다. 신경이 곤두섰다. 나는 눈동자의 미동 없이 그녀를 재빨리 스캔했다. 

  “안녕하세요. 네가 정민이구나. 안녕!” 나이는 얼추 비슷해 보인다. 목소리는 낮고 중성적인데 음역으로 보자면 도레미 정도에 머물 것 같다. 저렇게 단조로운 목소리가 말을 못 하는 민이에게 오히려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물결치듯 가슴까지 길게 내려온 갈색 머리, 반짝이는 나비 모양의 은색 머리핀, 얇게 정리된 일자 눈썹, 네이비블루 아이섀도. 짙은 아이라인, 엷게 바른 연분홍 립글로스. 코와 볼로 이어지는 연갈색 볼터치, 약간 두꺼운 윗입술, 아이보리색 블라우스와 십자가 은목걸이, 검정 가죽 치마. 커피색 스타킹, 앞코가 반짝이는 굽 낮은 검정 구두 그리고 은은한 양초 향기. 미국에서 학부와 대학원을 마친 특수아동 치료 전문가로 현지 병원과 학교에서 10년 넘게 임상경험을 쌓아온 베테랑. 미국식 생활 습관이 몸에 배서인지 표정과 목소리, 몸짓 모두 한국에서 좀체 느낄 수 없는 거리감이 있다. 특히 오렌지색 스카프! 어느 항공사 스튜어디스처럼 목을 감싸고 있는 과장된 스카프에 자꾸 눈이 간다. 내 시선에 부담을 느낀 듯, 그녀가 스카프를 살짝 만지며 말했다. 

  “이거요. 말을 많이 해서인지 목이 자주 쉬고 부어서 미국에 있을 때부터 항상 이러고 다녀요.” 

  당연히 그러겠지. 언어 치료사로 온종일 아이들과 씨름하다 보면 목이 남아나질 않을 것이다. 그건 말을 많이 하는 나도 잘 안다. 벌꿀 사탕을 입에 달고 사니까. 그녀는 사전에 제출했던 진단서와 설문지는 확인한 듯, 특별한 질문 없이 혜경을 바라보며 말했다. 

  “눈치를 채셨겠지만 정민이는 자폐증이 아주 심한 상태입니다. 뭐랄까.... 솔직히 말씀드려 고도 자폐증이라고 볼 수 있지요. 이런 경우, 미국에서는 만 3세 이전에 정밀진단을 받고 치료를 시작합니다. 물론 정부 지원도 적극적이고 대학, 병원 및 관련 사설 기관들도 유기적으로 맞물려서 잘 돌아가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겠지만요. 당연히 가정에서도 그 시스템에 녹아들 수밖에 없고요.” 

  원장의 말에는 지금까지 아이를 방치했다는 질책이 녹아 있었다. 만 3세라.... 정민이는 한국 나이로는 7세, 만으로 5세였다. 내막도 모르는 이방인에게 비난을 받는 것 같아 기분이 나빴다. 그래도 표정에 드러나지 않게 주의했다. 처음부터 척을 지면 안 되니까. 

  “그저 늦은 아이라 생각했어요. 옹알이도 10개월 때인가, 또래보다 빨라서 자폐 같은 병은 생각조차 해 본 적 없어요. 그저 내성적 성격 때문이겠거니 짐작만 했지, 방치한 것은 아니에요. 틈만 나면 같이 시간을 보냈어요. 몸으로 놀아 주고 책도 읽어 주고, 휴일이면 공원, 동물원, 수족관 나들이도 다니고 나름대로 노력을 많이 했어요. 벌써 초등학교 갈 나이가 되어 버렸지만....” 

  아내의 차분한 말에는 인정받지 못한 노력 탓인지 울분의 기운이 표출되고 있었다. 원장은 혜경의 목소리가 드문드문 떨려오자, 난처한 듯 시선을 내게 돌리며 말했다.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해 봐야죠. 다만,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도 설명서를 따르지 않으면 소용없다는 거 아시죠? 그래서 미리 당부말씀 드리지만 한 가지는 명심하셔야 합니다.” 

  시작도 안 했는데 한 가지 운운하며 강조하는 것은 사기꾼들의 꿍꿍이가 아닐까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저희 프로그램은 한국에 보편화되지 않았고 미국처럼 보험 적용도 안 되기 때문에 치료비가 부담될 수 있습니다. 그래도 일단 시작하면 중단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현재 대체할 수 있는 치료법도 없어서 중단하면 부작용이 생길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부작용요?” 혜경의 눈동자가 커졌다. 

  “세균성 감기에 걸리면 항생제 같은 것을 쓰지 않습니까? 증상의 완화 여부와 상관없이 처방받은 항생제는 함부로 투약을 중단해선 안 되는 이치와 같습니다. 그 이유야 뭐 내성 때문이란 것은 잘 알고 계실 거고요. 한 번 내성이 생기면 이후에 다시 시작할 때는 몇 배나 더 힘들어질 수도 있습니다.” 

  일견 수긍이 갔지만, 왠지 중독 약물처럼 중독 프로그램에 빠져드는 건 아닌지,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논리라는 게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아닌가. 비싼 치료비를 끝도 없이 부담하라는 말인가. 한 번 시작하면 벗어날 수 없다는 것 아닌가. 적어도 그녀가 놓아줄 때까지는. 협심증 환자처럼 가슴이 쪼여 왔다. 하지만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선택지는 없었다. 나는 의논 후 결정하겠다며 일단 센터를 빠져나왔다. 센터 문을 닫고 어두침침한 상가 복도로 나오자, 앞으로 펼쳐질 암울한 미래처럼 순간 앞이 보이지 않았다. 

  “다른 방법도 없으니 해야 할 것 같은데 비용이 만만치 않네.” 혜경은 내 동의를 구하듯 중얼거렸다. 

  “당연히 해야지. 지금 돈이 얼마가 들던, 치료가 우선이다. 다른 건 아껴도. 요즘 부모들 조기교육에 엄청나게 투자하잖아. 정민이 치료비도 그것과 다를 바 없어.” 나는 애써 힘줘 말했다. 

  “효과가 있을까? 1년, 2년 시간이 지나도 효과가 없으면 어떡하지? 다시 시간과 돈을 돌려 달라고 할 수도 없고.” 혜경은 걱정이 앞선 듯 말했다. 

  “겁부터 먹으면 어떡해? 세상일이 다 똑같지 뭐. 선택하고 책임지고. 그거라도 해 보는 수밖에 없어. 대신 우리도 많이 노력하자. 아무리 전문가라고 해도 자기 자식 대하듯 하지는 않을 것 아냐. 누가 뭐래도 자식 교육의 마침표는 부모가 찍는 거니까.” 

  돈 문제가 발목을 붙들고 있었지만, 아내도 그것을 모를 리 없었다. 그저 흔들리지 않으려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호수의 기운이 차분해지는 밤이 되었다. 

  “정민아 아빠한테 와봐. 뽀뽀.” 시선조차 마주치지 않는 아들을 향해 오늘 밤도 혼잣말을 반복했다. “부르면 쳐다봐야지. 이리 와 봐! 아빠 해 보라고!” 공허한 메아리처럼 내 목소리가 되돌아왔다. 아빠라고, 엄마라고 단 한 번만이라도 불러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괜히 눈물이 날 것 같다. 언제부터였던가 정민은 다른 아이들과 다른 모습을 보였다.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한 세 살 이후로, 선생님들이 아들의 이상행동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알림장에 조심스러운 말로 표현하더니, 급기야 면담을 요청하고 걱정 어린 핀잔을 주기 시작했다. 다른 학부모들의 시선도 불쾌하게 느껴졌다. 그때마다 우리는 어린이집을 옮겼고 선생님들과 학부모를 등 뒤에서 비난했다. 그렇게 아내와 나는 우리 둘만의 고독한 섬에 아들을 가두고 우리의 방식대로 아픔을 위로하고 견뎌 왔다. 하지만 오랫동안 이연되어 누적된 상처는 출구를 찾지 못하고 곪아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정민아!” 나는 고함을 쳤다. 당연히 아이는 쳐다보지 않았다. 

  “얌마!” 악에 받쳐 다시 더 크게 고함을 질렀다. 그래도 아들은 무시했다. 순간 화산이 터지 듯 분노가 솟구쳐 아이에게 달려가 주먹을 들어 올렸다. 머리를 쥐어박고 뺨을 때리고 마구 두들겨 패 버리고 싶은 충동이 마음속에서 부글거리고 있었다. 이게 다 너 때문이야. 네가 태어나서 내 인생이 엉망이 되어버렸어. 이 새끼가. 정신 똑바로 못 차려! “정민아!” 제발 한 마디라도 해. 아이를 때리고 싶은 마음이 커져만 갔다. 힘껏 쥔 주먹이 무심한 아이의 머리 위에서 떨렸다. 때려선 안 된다. 절대 때려선 안 된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다. 아이의 잘못도 네 잘못도 아니다. 그냥 이것이 네 인생이다. 폭발 직전에, 귓가에 많은 말들이 맴돌고 있었다. 분노로 응축된 엔트로피는 자연의 섭리를 거슬러 순식간에 사그라졌다. 

  움켜쥔 주먹을 가까스로 내리고 소파에 주저앉았다. 롤러코스터 같은 감정이 솟구쳐 올랐다가 누그러지자 이번에는 자책감이라는 괴물이 나타나 한없이 비참한 기분이 들게 했다. 책장에서 영어, 중국어, 일본어로 된 똑같은 동화책을 하나씩 꺼내 민이 옆에 앉았다. 미안하다.... 볼 뽀뽀를 하고 아들을 힘껏 끌어안았다. 아이는 무심히 동화책 속 두더지 캐릭터를 손톱으로 긁고 있었다. 알아듣던 말던, 영어책부터 읽기 시작했다. 다른 부모가 할 수 없는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자존감이 올라갔다. 우리말도 한 마디 못하는 아이에게 부질없는 짓이라는 걸 알았지만, 자위행위를 멈출 수 없었다. 일본어는 시작도 안 해 아이가 곤한 숨소리를 내며 잠들어 버렸다. 아이의 목덜미와 엉덩이를 살며시 받쳐 들고 안방에 눕힌 다음, 좋아하는 담요를 덮어 줬다. 자폐도 같이 잠든 듯 아이의 모습은 평화로웠다. 

  지금은 어떤 말도 못 하지만, 아이는 내 목소리를 또렷이 기억할 것이다.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지 간에 나는 아이에게 내재한 그 기억을 끄집어낼 것이다. 이 아이는 내가 20년 넘게 쌓아 올린 것보다 더 외국어를 잘 하게 될 것이다. 시원한 맥주 한 모금을 들이키며, 미래는 소망대로 이루어지리라 자신을 세뇌했다. 아들과 아내가 모두 잠든 한여름 밤의 베란다는 내게 유일한 피서지였다. 이제 겨우 정착하는가 싶었는데 그 안정감은 모래성에 불과했던 것이었을까.... 남은 잔을 천천히 비우며 청명한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이것이 내 인생인가.... 하늘에서 누군가 손길을 내밀어 줄 것 같은 밤이었다. 구원의 손길인가. 어둠의 손길인가.


  5 


2018년 4월 3일, 진해, 윤정민 

 

  나를 부르는 아련한 소리다. “정민아, 난쟁이의 말을 들으려면 어떻게 해야지? 오른 검지와 엄지를 눈에 이렇게 대고 말해 봐. 난쟁이의 말을 들어라! 그래. 이제 난쟁이의 말이 들리지?” 아버지 목소리였다. 해괴하게도 그의 주문이 꿈에서 나를 부르고 있었다. 눈을 뜨니 최면에 걸린 것처럼 그의 속삭임이 귓가에 생생했다. 오전 5시 3분. 습관적으로 눈을 떴는데 달리기의 발동은 걸리지 않았다. 그래도 다시 한 번 가 볼까.... 그래, 뭐가 무섭다고. 보리차 한 컵을 마시고 화장실에 다녀온 후 다시 신발장 앞에 섰다. 오늘은 짝을 잃어버린 999 대신 555를 골랐다.  

  현관문을 나서니 답답한 콧속이 시원해졌다. 벚나무들은 손님맞이에 피곤한지 곤히 잠든 채 가지를 축 늘어뜨리고 있었다. 몸의 내비게이션이 입력되자 지난 시간을 복기하려는 무의식이 몸을 조종했다. 방사선으로 쭉 뻗은 도로를 따라 3개의 로터리를 천천히 지나다 보니 잘 정돈된 축제 천막들이 도로 곳곳에 보였다. 텅 빈 거리는 쓰레기 하나 없이 깨끗했다. 벚꽃들이 도열하고 있는 여좌천에 도착해서는 습관처럼 속력을 냈다. 오래된 주택들에 하나둘 불빛이 켜지고, 어딘가에서 함성도 들려왔다. 벚꽃의 도시이자 해군의 도시다웠다. 세찬 바닷바람을 맞으며 나처럼 뛰고 있을 20대 청춘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나마 안도감이 들었다.  

  조금씩 경사로가 가까워지자 섬뜩한 기분이 휘몰아쳤다. 바위 뒤에서 그 여자가 입가에 피를 뚝뚝 흘리며 불쑥 나타날 것만 같았다. 에이 그냥 돌아갈까.... 어둑한 산길을 올려다보니 뛰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져 아래로 방향을 틀었다. 엉거주춤 그녀와 마주쳤던 등산로 주변의 울타리를 두리번거렸다. 신발이 떨어졌던 큰 바위 뒤편도 변한 것은 없었다. 아무도 없었고 내 운동화도 없었다. 새벽의 그 여자가 실종 사건과 관계가 있다면, 그녀가 범인일 가능성도 있다. 그 시간에 수상한 행색으로 바위 뒤에 숨어 있다가 나타날 이유는 없을 것이니까. 꿍꿍이짓을 벌이다 내가 나타나니 놀란 나머지 바위 뒤로 몸을 숨겼을 것이다. 우연일 리 없는 이유는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다. 지난 1년간 이런 일은 한 번도 없었으니까. 내 운동화는 그녀가 가져간 게 틀림없다. 그냥 뒀으면 여기 있었겠지. 누가 그런 걸 손대겠는가. 그런데 내 얼굴도 봤는데 나를 그냥 둘까. 경찰에 신고할까, 지인들에게 알릴까, 어영부영하다가는 위험해지는 것 아닌가. 나는 망상에 시달리며 여좌천을 내려왔다. 사거리 구석 기사식당 앞에는 이른 시간임에도 택시 기사 몇 명이 벌써 이를 쑤시며 허리를 돌리고 있었다. 구수한 청국장 냄새와 생선 굽는 냄새에 침이 넘어갔다. 시계추처럼 반복되는 아침 식사 메뉴에 특별히 추가하고 싶은 것이 생겼다. 


  식사 후 커피를 마시며 아버지께 물었다. 물론 답변을 기대한 건 아니다. “왜 이곳으로 다시 오셨어요? 고향이라서 오신 건가요? 직장도 그만두고.” 그래. 답해줄 리 없지. 더 머뭇거렸다간 난쟁이의 주문이 시작될 것 같았다. 그 상황만은 피하고 싶어 나는 기다리지 않고 서둘러 말을 이었다. “여기서 무슨 학원인가 오래 하셨잖아요? 국제전화도 많이 하시고. 학교 다닐 때 아버지 직업란에 학원 원장이라고 기입하면 무슨 학원이냐고 꼭 담임이 물어봤어요. 그때마다 정말 곤란했거든요. 설마 스파이는 아니죠?” 역시 아무 대답이 없다. 무시당하는 기분에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그는 잔을 내려놓고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켰다. 일본 방송 NHK였다. 상식적으로 아프다 해도 아들의 질문에 적어도 답은 해야 하지 않을까. 말하기 힘들면 적당히 거짓말이라도 꾸며내던지. 그게 정상일 것이다. 이건 뭐 말을 가르친다는 사람이 상대의 질문에 대꾸조차 안 하니 엉터리도 이런 엉터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온종일 CCTV, CNN, NHK 같은 외국 방송을 소일거리 하듯이 보는 노인. 어디 써먹을 것도 아니면서 자식에게 줄곧 쓸모없는 외국어 테스트나 시키고. 비밀이 너무 많고 일반적이지 않은 사람이다. 이 그로테스크한 노인이 정말 내 아버지이긴 한 걸까?  

  답답한 마음에 J 베이커리로 향했다. 사실 갈 데도 마땅히 없었다. 여느 때처럼 J의 아르바이트생은 반갑게 웃었다. 가볍게 눈인사를 한 다음 벚꽃 빵, 찹쌀 도넛 하나씩과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삐걱거리는 나무 계단을 올라갔다. 테라스의 고정석에 앉으니 정겨운 새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후, 주일이 연체동물처럼 다가왔다. 

  “오늘은 일찍 왔네.” 

  “그냥. 답답해서....” 

  “책도 안 가져온 거 보니까 무슨 일 있나 본데.” 호기심 많고 관찰력 뛰어난 친구다웠다. 

  “그냥 할 말이 좀 있어서....” 

  “돈 빌려 달라는 거 아니지?” 주일은 피식 웃으며 꼬았던 다리를 풀고 의자를 테이블 가까이 바싹 당겼다. “뭔데?” 

  “그 실종 사건 있잖아. 저번에 얘기했었던....” 

  “혹시 네가 범인이냐?” 과장된 목소리로 그가 말했다. 

  “아니. 장난치지 말고. 너한테 얘기는 안 했는데 사실 내가 매일 새벽에 그 모텔 근방으로 달리기를 했거든. 한 1년 넘게. 실종 사건 당일도 그렇고.” 

  “그래서?” 주일이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 

  “그날은 희한하게 처음으로 등산로 입구에서 엎어졌어. 신발 한 짝도 벗겨지고.” 

  “그래서? 빨리 얘기해. 속 터지겠다.”

  “신발 찾으려고 두리번거리는데 아래쪽 큰 바위 뒤에서 갑자기 어떤 여자가 쓱 나타나더니, 내 신발을 주워서 다가오는 거야. 하얀 마스크에 모자를 푹 눌러써서 얼굴은 보이지 않았어. 게다가 검정 장갑까지 끼고 있더라고. 영 이상해서 그냥 도망쳤지 뭐.” 털어놓자 속이 시원했다. 

  “뭐? 잠깐만. 도망쳤다고? 그냥 신발 주려고 했던 거 아냐?” 

  “그럴 수도 있는데, 내가 그 동네 한두 번 달려본 것도 아니고 거의 1년 동안 똑같은 시간에 달렸거든. 그런데 지금까지 그런 사람은 본 적이 없어. 너무 이상하더라.” 

  “그럼 넌 그 산속에서 신발 한 짝만 신고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도망친 거냐?” 갑자기 주일은 배를 잡고 웃기 시작했다.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근데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어서....” 나는 걱정되는 부분을 꺼내놓기 시작했다. 

  “또 뭔데? 신발에 이름이라도 써 놨냐?” 의미 없이 뱉은 말이지만 사실이었다. 

  “그래. 신발 안쪽에 이름을 써 놨다.” 

  “아. 놔. 초등학생도 아니고. 이 친구야. 요즘 신발에 누가 이름 써 놓냐.... 가만있어 봐. 어쩌면 이거 일이 되겠는데....” 주일은 웃음기 가시지 않은 얼굴로 코를 한 번 훌쩍거렸다. 

  “거기 다시 가 봤냐? 신발 없지?” 

  “오늘 아침에 가봤는데 없었어.” 

  그는 눈알을 좌우로 빠르게 굴리며 뭔가 생각난 듯 잠시 기다려 달라는 말을 남기고 1층으로 황급히 내려가더니, 가쁜 숨을 내쉬며 자리로 돌아와 테이블 위에 명함 하나를 올려놓았다. 

  ‘형사 진용호. 진해경찰서 강력범죄수사팀’ 

  “친한 형인데, 이번 사건 담당 형사거든. 연락하면 도움 될 것 같아서.” 

  낯선 형사 이름을 본 순간, 꽁꽁 얼었던 불안감이 녹아들며 현실로 스며드는 것 같았다. 왠지 일이 커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주일이 먼저 일어난 후, 남은 커피를 마시고 빵집을 나왔다. 우체국으로 사용되던 러시아풍 건물을 돌자, 산 위에 우뚝 솟은 하얀 건물이 보였다. 도시 한복판에 위치한 나지막한 제황산의 전망대였다. 예전엔 일제의 러일 전쟁 전승기념탑이 있던 곳이라 사람들은 그곳을 탑산이라 불렀다. 축제 기간이라 전망대에 오르려는 사람들로 케이블카 입구와 계단이 붐벼 나는 인파에 쓸려가 듯 365계단을 올라갔다. 어릴 때 친구들과 가끔 오긴 했어도 이곳에서 형사를 만나게 될 거라 생각하진 못했다. 주일이 전화로 진 형사에게 나를 소개했을 때, 그는 바로 만나길 원했고 약속 장소도 형사를 만나기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곳으로 정했다. 주일과 진 형사, 두 사람 모두 생각나는 즉시 움직이는 부류였다. 좁은 계단을 돌고 돌아 전망대 꼭대기 층에 도착했다. 밖으로 나오자 바람들이 오랜만에 조우한 듯 여자들의 긴 머리칼을 나부끼고, 연분홍 꽃잎들과 춤추며, 나의 식은땀 위로 스쳐 지나갔다.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 내 왼팔을 세게 붙잡고 몇 번 주물럭거렸다. 황당한 표정으로 돌아보니 능글맞게 웃고 있는 깨진 앞니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진 형사였다.


  


2002년 가을, 일산, 윤성진 

 

  정민은 센터에 잘 적응하고 있었고 1시간씩 일주일에 세 번 진행하는 수업도 빠지지 않고 다녔다. 나는 학부모 상담이 있는 날이면 어김없이 휴가를 내고 센터를 방문했다. 센터에 도착하자 민이를 전담하는 김은정 치료사가 덧니를 살짝 드러내며 웃었다. 나는 아이의 머리를 선생님 쪽으로 살짝 눌러 어색하게 인사를 시켰다. 

  아이가 선생님 손을 잡고 치료실로 들어갔고 아내는 합격 발표를 기다리는 것처럼 들뜬 얼굴이었다. 오늘은 아내가 좋아하는 태국 요리를 사 주고 싶어 슬쩍 말을 꺼냈다. “간만에 근처에서 맛있는 거 먹고 올까? 똠야꿍 어때?” 

  “됐네요. 상담 때 물어보고 싶은 것도 생각해야 해서 마음에 여유가 없어. 그냥 저기 가서 차나 한잔하며 기다리자.” 혜경은 센터 맞은편 상가 1층의 커피숍을 가리켰다. 학부모 대기실 역할을 하는 곳이었다. 아이를 기다리며 밖으로 떠도는 게 야속했지만, 이 작은 커피숍도 센터 덕분에 장사할 수 있겠단 생각도 들었다. 「바로 여기」 커피숍은 작은 규모만 빼면, 조용한 분위기에 직원도 친절했고 커피 한 잔에도 성의가 느껴져 기분이 좋았다. 무엇보다 싼 커피 값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 센터에 아이를 맡기는 부모들이 이곳을 아지트처럼 느끼는 이유도 나와 비슷하지 않을까. 아이한테는 시간당 십만 원이나 하는 수업을 시키면서, 정작 자신은 커피 값 몇백 원 아끼기 위해 이곳으로 오는 것이다. 

  특수교육이 열악한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레인보우센터에 아이를 맡기는 부모들은 그나마 형편이 되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의 평범한 가정은 보험도 안 되는 비싼 치료에 부담을 가질 것이다. 치료라는 것이 한두 가지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언어, 놀이, 감각통합, 미술, 음악, 운동 등 치료 학원을 늘려갈수록 경제적 부담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고 그 책임은 오롯이 부모의 몫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장애아 전문 특수교육 시설을 어느 지역에 만들기로 했다 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그 지역 대부분 사람의 맹렬한 반대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우리 사회의 냉혹한 현실이고 민얼굴이다. 아픈 아이보다 하루라도 더 살고 싶은 부모들의 불안감이 상식으로 고착될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혜경은 상담지에 질문할 사항을 기록하느라 열심이었고 나는 멍하니 창밖의 거리를 내다보고 있었다. 그 풍경 속에 언제 들어왔는지 그녀가 아른거리기 시작했다. 빨간 입술 속 귀여운 덧니를 살며시 드러내며 웃고 있는 김은정 선생님이었다. 정민의 손을 잡고 걸어가던 그녀의 뒷모습이 보인다. 골반에 착 달라붙은 청바지 곡선을 떠올리며 커피를 음미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해?” 아내가 말하자 연기처럼 그녀가 사라졌다. 

  센터에 도착해 복도에서 민이를 기다렸다. 아들이 차분한 표정으로 김은정 치료사와 함께 걸어 나왔다. 이상하게 아들보다 그녀에게 눈길이 쏠렸다.   

  “정민이 오늘도 수업 잘 끝났습니다. 이쪽으로 잠깐 오세요.”   그녀는 씩 웃으며 긴 팔로 상담실을 가리켰다. 우리가 상담실 의자에 앉자 그녀는 윤정민이라고 적힌 녹색 클리어 파일에서 엑셀로 작업된 것 같은 발달 단계표를 꺼냈다. 발달 영역별로 여러 칸이 구분되어 있고 달성한 부분에는 알록달록 색깔이 칠해져 있었다. 여백 곳곳에 빼곡하게 쓴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아직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경과가 좋습니다.” 그녀는 고개를 들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선생님.” 차분한 치료사와 달리 아내는 볼까지 달아오르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사실, 저희 치료 방법은 만 3세 이전에 시작하지 않으면 따라가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네....” 

  “아이한테는 언어 두개골이란 것이 있거든요. 태어나면서 활짝 열려 있다가, 만 3세가 되는 시점에 쿵 하고 닫혀 버린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이후에는 아무리 좋은 걸 뇌 속에 심으려 해도 불가능하지요. 문은 이미 닫혔으니까요. 그런 이유로 자폐아 언어 발달에 최선의 방법은 그 문이 닫히기 전에 언어 프로그램만이라도 일단 뇌 속에 심어 놓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문이 굳게 닫혀 버리더라도, 훈련이라는 외부 리모컨을 통해 내부 프로그램을 자극하고 업그레이드시켜 나갈 수 있거든요. 정민이는 단순 연령으로만 판단할 때, 언어의 문은 이미 쿵 닫혀 버린 상태입니다.”

  “네....” 혜경이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요.... 희한하게 훈련을 시켜 보니 리모컨의 전파를 수신하는 안테나가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네?” 옆에 있던 혜경이 글썽이기 시작했다. 나는 어떤 분야이건 간에 확신이란 말이 얼마나 꺼내기 어려운 말인지 알고 있었다.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엄청난 내공이 있거나 그 반대이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사기꾼일 것이다. 

  “선생님! 민이 뇌 속에 안테나가 들어 있다는 증거가 뭔가요?” 

  “발음을 들 수 있습니다. 정민이는 아직 자발화가 안 되지만, 한글 자음과 모음을 흉내 낼 수 있습니다. 보통 아이들처럼요. 외부의 리모컨을 조정하면 내부의 정민이 안테나로도 그 신호를 수신하여 반응합니다. 쉽게 말씀 드려 엄마라고 하면 엄마라고 하고, 아빠라고 하면 아빠라고 말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정민이가 발음을 다 할 수 있는데 아직 안 하고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집에서는 아무리 음성모방을 시켜도 못했었는데요.” 나는 놀라 물었다. 

  “그렇습니다. 일단 문이 닫히고 외부 자극을 수신할 수 있는 안테나가 뇌 속에 없는 아이들의 경우, 평생 어떤 말도 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런 경우도 상당히 많습니다. 사람이지만 오직 동물처럼 울부짖는 소리만 낼 수 있을 뿐이지요. 상상이 안 가시겠지만, 저는 그런 아이들을 많이 봐왔습니다. 그냥 온종일 동물이 울부짖는 소리만 내는데 그게 아이들의 의사 표현 방식으로 고착화돼버린 것입니다. 다행히 정민인 노력하면 말을 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건 확실합니다.” 

  확실이라는 말의 단호함에 다시 울컥했다. 그녀는 책임감이라는 무거운 짐을 굳게 붙들고 있는 사람인가, 사기꾼인가. 솔직히 커리어를 봤을 때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대단한 사람이라 기대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귀엽고 섹시하다는 느낌만 잔뜩 품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만나 왔던 사람들을 통틀어 이런 사람이 있었던가. 그녀에게서 예사롭지 않은 신념이 느껴졌다. 진정 자기 일을 사랑한단 말인가.... 

  정민이 지루한 듯 갑자기 상담실 한 쪽에서 가지고 놀던 삼십 센티 자를 바닥으로 던졌고 그녀가 허리를 숙였다. 왜 이런 때, 하필.... 나도 모르게 그녀의 가슴골로 눈이 갔고, 입술이 바짝 말랐다. 쉴 새도 없이 침이 넘어가 옆에서 울먹이는 아내의 시선을 본능적으로 피했다. 은은한 백합 향의 그녀가 망망대해에서 표류하던 우리에게 아주 작은 불빛을 비추었다. 


  “민아, 오늘 재미있었어? 선생님 어때? 엄마는 민이가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열심히 공부해서 얼른 친구들이랑 어울려 놀고 엄마 아빠랑 조잘조잘 얘기도 많이 하고 동화책도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 응?” 혜경은 엘리베이터 앞에서 쪼그려 앉아 민이의 두 팔을 잡고 말했다. 아들은 여전히 무심한 듯 두리번거리다 벽면으로 다가가 벽을 긁고 두들기며 벽체 속 유령들과 모스 신호 같은 것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오늘은 할머니 집에 놀러 가자. 민이 좋아하는 파전 많이 부쳐 주신다네.” 아내는 기분이 좋은 듯 정민을 꽉 껴안았다. 센터에서 처가가 있는 파주까지 멀지 않은 거리였지만, 자주 방문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아내는 언제나 장모가 어릴 때부터 반대만 하고 도와주는 것 하나 없이 간섭만 심한 사람이라고 불만을 표시하곤 했다. 하지만 장인이 일찍 돌아가시고 홀로 아내를 키웠을 그 고생의 무게는 달아보지 않아도 내겐 충분히 느껴졌다. 설사 장모가 정민이를 돌봐 줄 수도, 경제적 도움도 줄 수 없다 해도, 그저 근처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안정감을 느꼈다. 아내는 투덜거렸지만 고립된 마음이 나침반처럼 엄마로 향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오늘처럼 파주에 가는 날은 아내에게서 한껏 엄마 앞에서 자랑하고 싶은 어린 딸의 마음이 느껴졌다.     


  장모는 장인과 사별 후 홀로 지내다 우리가 결혼하기 전 작은 식당을 운영하는 네 살 연하와 재혼했다. 새 장인은 오랫동안 독신으로 지내다 소개를 통해 장모를 만났다고 한다. 그의 자세한 삶의 내막은 알지 못하나 이마에 깊게 팬 주름살, 검게 부르튼 손, 절룩거리는 걸음걸이에 지난 인생이 고스란히 투영되어 보였다. 

  파주 주택가에 위치한 식당은 4인용 테이블이 6개, 귀퉁이 자투리 공간에 2인용 테이블 2개가 겨우 붙어 있는 작은 식당이었다. 주방 안쪽으로 들어가면 두 사람이 생활하는 작은 공간이 나오는데 방 하나에 화장실이 하나 붙어 있었다. 칼국수를 메인 메뉴로 여러 가지 술안주를 파는데 손님이 요청하면 메뉴판에 없는 음식도 만들어 준다. 이런 고객 지향적 서비스는 가게의 입지적 불리함을 극복하는 데 기여했을 것이다. 오후의 햇살이 식당을 가득 채우면 민이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보이지 않는 햇살과 그림자를 관찰하곤 했다.


  “엄마, 오늘 민이 치료 받고 왔어.” 혜경은 부엌에서 바지런히 움직이고 있는 장모를 향해 말했다.

  “그래. 잘돼야 하는데.” 그녀는 덤덤히 말했다. 

  “아직 이거다 하는 치료법이 나오지 않아서 오래 걸릴 것 같긴 해. 그래도 하는 데까지는 해 봐야지. 한시라도 어릴 때 치료해야 효과가 있다는데, 아무래도 초등학교는 연기하는 게 좋겠어.” 혜경은 그 누구에게도 속 시원히 털어놓지 못하는 이야기들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햇살 가득한 식당 한구석에서 독백처럼 속삭이는 딸의 무거운 고민을 장모는 듣는 둥 마는 둥 자신의 할 일만 할 뿐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장모는 아내의 대화 친구는 될 수 없는 듯 보였다. 그녀는 정민이의 자폐 현상을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은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더 스트레스 받지 않고 사는 것이 그녀의 명확한 행복관이었다. 모녀지간이라 해도, 온전히 서로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문득 한 여인이 떠올랐다. 자기 친구가 있을 때는 민이를 집에 못 데려오게 했던 사람이었다. 부끄럽다는 이유를 빙빙 돌려 말하던 여인. 그녀는 내 어머니였다. 부끄러움도 유전인가.... 현관문이 열렸다. 장인은 햇살 놀이에 정신없는 정민에게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었다. 

  “정민이 왔네. 할아버지가 맛있는 거 줄까?” 그는 주머니에서 막대사탕 2개를 꺼내 정민에게 건넸다. “특별히 2개 주는 거야.” 

  민이는 사탕을 받아들고 딱딱 부딪히며 놀기 시작했다. 

  “윤 서방, 여기 파전 다 부쳤어. 얼른 먹게. 정민이도 이리 와.”    장모는 크고 둥근 하얀 플라스틱 접시에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파전을 들고 나왔다. 파전은 민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었고, 누구랄 것 없이 각자 먹는 부분은 정해져 있었다. 바싹하게 구워진 바깥쪽은 정민이 차지였고, 중심부 야채와 해산물이 많은 부분은 아내와 내 차지였다. 정민이는 맛있는 것을 먹을 때면 냠냠 쩝쩝 같은 소리를 냈다. 나는 그 소리가 듣기 좋았다.   

  “맛있냐?” 장모는 먹기 좋도록 파전 가장자리를 자르며 말했다. 

  “자, 아 해 봐. 할머니가 줄게.” 그녀는 파전 조각 하나를 집어 정민의 입에 넣으려 했다. 

  “아....” 

  그녀가 갑자기 아내를 보며 말했다. “민이 입안에 뭐 생겼냐?” 

  “왜? 잘 모르겠는데.” 

  “조금 아파하는 것 같은데....” 

  “뜨거운 거 먹어서 그런 건가. 후후 많이 해서 줘 엄마. 평상시에 뜨거운 거 잘 안 먹어서 입안이 헐 수도 있어.” 

  “그래. 알았다.” 그녀는 갸우뚱하며 후후 한참을 반복한 후 찡그리는 아이의 입속으로 파전을 집어 넣었다.  

  한가한 낮에 손님도 없는 장모의 일터에서 도란도란 함께하는 소박한 잔치만으로도 아내는 스트레스가 풀리는 듯했다. 지난 몇 년 동안 친구들과 교류도 없었으니 당연할 것이다. 아이를 둔 친구와는 경쟁적인 자식 자랑에 마음이 불편했을 것이고 미혼 친구와는 대화 주제에 교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가끔 만나던 친구들과도 하나둘 멀어지며 그녀는 철저히 혼자가 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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