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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머즈 Oct 08.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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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 7일, 진해, 윤정민 

 

  축제는 계속되고 있었고 나는 달리는 생활을 그만뒀다. 그 건방진 형사 놈을 만난 이후로 머릿속이 더 혼란스러워졌기 때문이었다. 뭔가 꿍하고 숨기는 아버지에 대한 궁금증은 늘어만 갔지만 동시에 잠잠하다 갑자기 중얼거리는 그의 병이 악화하는 건 아닐지 걱정도 쌓여 갔다. 큰 병원에서 정밀검사라도 받아 봐야 할 텐데 집에서 뭉그적거리고만 있었다.      


  저녁 반찬거리로 생선을 사러 나갔다. 지난번 기사 식당에서 풍겨 나오던 고소한 냄새 때문이었다. 깔끔하게 손질된 생선이야 얼마든지 마트에서 살 수 있었지만, 오랜만에 수산물이 많은 중앙시장에 가보고 싶었다. 지하 입구로 들어가자 예전에 기억하던 소란스럽고 어수선한 분위기는 어디에도 없었다. 자로 잰 듯 반듯하게 구획된 길을 따라 질서정연하게 줄지어 있는 반찬가게들을 하나둘 지나치자 생선 가게들이 나왔다. 나는 이방인처럼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후미진 구석에서 생선을 손질하고 있는 젊은 남자를 봤다. 하얀 얼굴에 애니메이션 주인공처럼 턱이 가늘고 체격이 좋은 사람이었다. 주변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손길에만 집중하고 있는 그에게로 자연스레 발걸음이 향했다. 

  “저기. 구워 먹으려 하는데요. 이게 뭔가요?” 좌판 앞에 가지런히 정돈된 생선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더니 나와 시선을 마주치지 않고 말했다. “고등어입니다.” 어색한 말투였다. 마치 그의 군대 상관이 된 기분이었다. 억지로 만들 수 없는 성실하고 예의 바른 분위기가 풍겨 왔다. 고등어 몇 마리를 샀다. 검정 비닐봉지 두 장을 빙빙 돌려가며 꼼꼼하게 싼 생선을 건네받는 순간, 위화감이 느껴질 정도로 하얗고 긴 손이 보였다.  


  낡은 후드 팬 때문인지 문을 열어 놓아도 집안 곳곳은 연기로 가득했다. 식사 후, 아버지가 좋아하는 큰 병맥주와 그의 취향에 맞춰 가스 불에 미리 구워 놓은 마른 오징어를 쟁반에 올려 들고 왔다. 그의 치명적인 약점은 병맥주와 오징어였다. 거품이 나게 컵에 맥주를 가득 부었다. 콸콸 쏟아지는 소리와 거품이 묘한 앙상블을 이루었다. 컵에 붓고 나면 맥주를 규정 짓던 브랜드의 이미지는 금방 잊히게 되고, 마시는 사람의 취향만 남을 뿐이라고 그는 말했다. 알몸으로 사람을 인식하는 그런 기분이 든다나 뭐라나.... 이런 분위기면 오늘도 그에게 비밀 시리즈를 들을 수 있을지 모른다. 내 꼬락서니가 꼭 여름밤 시골 할머니 옆에 누워 귀신 얘기를 고대하는 어린아이 같았다.   

  “아버지. 우리 예전에 일산에 있었죠?” 그가 컵을 내려놓자, 나는 마음속에 담아둔 말을 본격적으로 꺼냈다. 

  “그래, 일산 살았지.” 

  “기억이 거의 없어요. 큰 호수공원에 자전거가 지나다니고.”

  “그래.... 사고 때문에 기억을 할 수 없게 되어서....” 그가 한숨을 크게 내쉬며 말을 흐렸다가 컵을 다시 들었다. 자극하고 싶지 않아 곧바로 화제를 돌렸다. “생각나서 그러는데 혹시 학원에서 아버지께 치료 받는 학생이 있었나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서요.” 오징어를 얇고 기다랗게 찢으며 말했다. 

  “인연이 된 사람들은 있었지.” 

  “그럼 있었다는 얘기네요. 혹시 저와 비슷한 또래가 있었나요?” 

  익숙한 침묵이 흘렀다. 왜 숨기는 것일까.... 중요한 순간에 침묵하긴 해도, 그가 허풍쟁이가 아닌 것은 분명했다. 적어도 자기만족에 취해 어설픈 영광을 안주 삼아 자식 앞에서 주사나 부리는 그런 부류의 인간은 아니었다. 괴팍한 형사가 뒷조사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는 하찮은 사람이 아니라, 수상한 사람의 범주에는 해당하는 것이다. 그는 잔을 비우고 스스로 맥주를 가득 채우며 다시 얘기를 시작했다. “어렵사리 ABA 자격증인 BCBA라는 국제행동분석사 자격증도 따고 영어 원서도 닥치는 대로 구해서 읽었어. BCBA를 가진 사람은 그 당시 손에 꼽을 정도였지. 그나마 나는 영어에 자신 있어 미국 책 참고하면서 다른 사람보다 어렵지 않게 공부할 수 있었어.” 술기운 때문인지 그가 떠벌리기 시작했다. 맥주 한 병을 재빨리 더 가져왔다. 귀신 이야기의 클라이맥스가 다가오는 것처럼 나는 한마디 한마디에 귀를 기울였다. 잘 가다가 삼천포로 빠져, 주문만 외지 않기를 빌었다. 

  “BCBA가 대단한 거네요.” 

  “그래. 보통 사람들이야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겠지만, 국제행동분석 전문가는 ABA라는 방법으로 학교, 병원, 일선 치료 기관들의 전문가를 지도하는 전문가라고 보면 돼. 전문가들의 마스터지.” 

  그가 말이 많아지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런 자부심을 오랫동안 꽁꽁 묶어 뒀으니 얼마나 답답했을까. 

  “왜 이제까지 아무 말씀 안 하셨어요?” 

  “음.... 민아. 진 형사 때문에 신경 많이 쓰이겠지만, 그냥 날 좀 믿어 주면 좋겠다.” 맥주와 오징어 때문인지 그는 솔직했고 난생처음 미안하다는 말까지 했다. 만약 형사가 파고들지 않았다면 그는 이런 이야기들을 털어놨을까? 영원히 자신의 가슴속에 묻어 버리지나 않았을까. 피치 못해 숨기는 이유란 것이 혹시 나와 연관된 것이 아닐까....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엄마는 어떻게 된 거예요?” 가장 기피하는 카드를 내밀었다. 그의 눈가에 짙은 그림자가 내려앉았다. 어릴 땐 아버지가 회피하듯 말하는 이혼 얘기를 곧이곧대로 믿었다.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겠지, 언젠가 찾아와 미안하다 한 마디라도 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했을 뿐이었다. 엄마의 흔적을 모조리 없애 버리고 얘기조차 하지 않는 이유는 그것밖에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는 엄마를 욕하는 일이 한 번도 없었다.

  그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엄마는 민이 많이 사랑했고 고생이라면 정말 다른 사람보다 몇 배는 더 했을 거다. 그러니 원망은 하지 마라.”

  “그런데 왜 버리고 떠났죠? 왜 오래도록 찾질 않죠? 연락은 할 수 있을 텐데요. 전화 한 통 없잖아요? 어떤 애는 이혼한 엄마가 자기 보고 싶어 안달이라는데, 전 기억도 안 나고 뭐 사진이나 추억이나 남아 있는 것도 없고 솔직히 답답해 죽을 것 같습니다.” 

  나는 남은 맥주를 단번에 비웠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맥주와 오징어의 약발은 딱 거기까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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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가을, 일산, 윤성진 

 

  가족여행이라도 떠나 듯 서울행 광역버스를 탔다. 유명 대학병원에 민이 진단 예약을 잡았기 때문이었다. 관광버스의 짙은 선탠 차창 안으로 단풍 구경인지, 묻지 마인지, 정체 모를 설렘에 들떠있는 중년들의 마음이 느껴졌다. 캠핑카를 사서 아이랑 공기 좋고 경치 좋은 곳으로 떠나는 상상을 해 본다. 이제 장애 진단을 받아 낙인이 찍히게 되면, 아이의 인생에 그 낙인은 그림자처럼 평생 따라다닐 것이다. 그래도 혜경은 더 미루지 않기를 원했다. 오히려 당당히 낙인을 찍고 그것을 직시하며 더 분발하기를 원했다. 망설여졌지만 나는 한발 물러서 아이의 입장에서 진짜 옳은 것이 무엇인지 고민 끝에 결론을 내렸다. 


  유명 소아정신과에서 진료를 보는 것은 힘든 여정이었다. 발달장애 아이들이 늘어나는 속도에 전문 기관의 공급이 따라가질 못하고 있었다. 진료실로 들어가자 그토록 만나기 힘들었던 소아정신과 전문의가 앉아 있었다. 생각보다 젊었다. 역시 표정은 사무적이었고 눈빛은 잔잔히 흔들림이 없었다. 그녀는 우리의 초조함을 대단하게 느끼지 않는 듯했다. 여의사는 발달 설문지를 읽으며 질문을 개시했다. “정민이 지금 어디.... 유치원에 다니고 있나요?” 

  “아뇨, 네 살 이후로는 쭉 집에 데리고 있습니다.” 

  “언어, 사회성 등 모든 영역에서 심각한 발달지연이 있네요. 도와주는 분이 계신가요?” 여의사는 혜경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남편이 퇴근할 때까지는 제가 그냥 이것저것 시키고, 남편이 오면 함께 놀아 주고 있습니다. 주말에는 산책이나 운동도 하고요.” 

  “어디 보자.... 청력도 이상 없고, 대 근육, 소 근육도 괜찮고, 운동신경도 문제가 없는데.... 그래도.... 검사는 해 봐야 알겠지만 보나마나 아주 심각한 수준이겠어요. 언어로 묶으나 자폐로 묶으나 뭐, 어떤 거로 묶더라도 장애 1급에 들어갈 것 같습니다.” 차가운 눈동자가 혜경의 무너지는 눈빛을 관조하고 있었다. 

  혜경이 머뭇거리다 뜸들이던 말을 꺼냈다. “우리 애가 좋아질 수 있을까요? ABA라는 치료를 계속하고 있는데, 더디지만 확실히 발전이 있거든요. 치료 센터에서도 잘 한다고 격려도 많이 듣는데요. 혹 다른 치료도 병행하면 많이 좋아질 수 있을까요?” 

  “어머니, 이런 말씀 드리기는 안타깝지만, 정민이는 현재 나이를 고려할 때 통계적으로 정상 범위로 들어갈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기대를 많이 하면 힘들어질 수 있고요. 그냥 현실을 받아들이시는 게 좋습니다. ABA라고 하셨죠? 물론 어느 정도 효과가 나타날 순 있겠죠. 하지만 자폐 치료에 정답 같은 것은 없습니다. 약 먹는 방법, 언어치료나 감각통합치료, 놀이치료 등을 병행하며 꾸준히 해 보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잘 된다면야, 신발이나 양말 공장의 단순 조립라인에서 일할 수도 있을 겁니다. 간단한 영화관 안내나 바리스타 밑에서 일하는 아이도 있고. 딱 그 정도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게 최선입니다. 스스로 먹고사는 문제만 해결할 수 있어도 사람 구실은 다 한 거죠.” 냉정한 현실이랍시고 부모들 마음에 대못을 박는 그녀의 냉소적 태도에 분노가 끓어올랐다. 

  “자폐아 중에서도 특정 분야에, 특별한 재능을 보유한 아이도 있지 않나요?” 반발심이 생겨 꼬투리를 잡았다. 

  “정민이는 말씀하신 Idiot Savant, 바보 석학 같은 증상으로 절대 분류될 수 없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그냥 눈에 띕니다. 저절로 빛이 나지요. 뭘 특별히 교육하거나 해서 재능이 나오는 게 아닙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힘들어지니까 그런 건 아예 기대를 접으시는 게 좋습니다. 정민이는 정신분열이나 지적장애도 동반하고 있을지 모르는 정도니까요.” 여의사는 희망의 지푸라기를 냉정하게 쓸어버렸다. 역시 구석에서 우두커니 벽을 두드리는 정민에게 단 한 번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마음에 없는 연기라도 해 주면 좋으련만, 모든 감정노동을 거부하는 그 고고한 눈빛에서 나는 분한 마음을 겨우 삼키고 있었다. 아내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선생님, 자폐아는 뇌의 신경다발이나 전달물질이 보통 아이보다 복잡하고 많아서 뇌의 신호 송수신에 장애가 잘 일어난다는 말도 들어봤는데요. 만약에 말이죠. 그 꼬여있는 신경 다발이 실타래가 풀리듯 잘 연결만 되고, 넘치는 전달물질이 윤활유로 쓰인다면, 오히려 뇌 발달이 빨라질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이래 봐도 나 만만한 사람 아니야 라고 항변하고 싶었다. 

  여의사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며 날카로운 목소리로 맞받아쳤다. “저기, 아버님. 보세요. ABCDEFG라는 송신호가 있고, 가나다라마바사라는 수신호가 있다고 쳐봐요. A는 가에, B는 나에, C는 다에, 차례대로 연결이 되어야지 정상적인 인지와 의사소통이 가능하다고 보면요. 보통 아이들은 A와 가, B와 나의 연결을 가르치면, C부터 G까지는 알아서 찾아가요. 시키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학습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런데 정민이 같은 경우는, C부터 G까지 알아서 학습이 안 된다는 거예요. 일일이 찾아서 억지로 연결해 주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자 그럼 생각해 보세요. 어떤 고양이 한 마리 사진을 보여 주고 그것을 고양이라고 가르쳤을 때, 다른 아이들은 수백 종의 다른 고양이 사진을 보여줘도 그것이 고양이라는 것을 대부분 알아챕니다. 그런데 정민인 모를 겁니다. 자연스럽게 확장이 안 되니까요. 인지의 일반화가 불가능하다는 말씀입니다. 쉽게 말씀 드려 하나부터 열까지 아니 수백억 개까지 전부 일일이 언어와 사물, 언어와 동작, 언어와 심리의 대응 개념을 묶어 줘야 하는 겁니다. 아시겠습니까? 이게 어디 보통 일입니까? 포기하란 말씀은 아니지만, 인간의 뇌가 스스로 연결되고 확장이 되지 않으면 가르치는 데도 한계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럼 하나씩 묶어 주면 되지 않습니까? 하나부터 수백억 개까지 수천억 개라도 묶어 주면 되는 거 아닙니까?” 나는 목소리를 높여 소리쳤다. 여의사는 놀란 듯 큰 눈동자로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온몸이 떨렸지만 나는 냉정하게 마음을 가라앉히고 말을 이었다. 그래도 목소리가 떨렸다. “양말을 만들 건, 설거지를 하건 간에 지금 꼭 그런 얘기를 할 필요가 있습니까? 이제 겨우 여덟 살입니다. 선생님. 아직 아무것도 시작 안 한 나이란 말입니다. 선생님이 전문가시니 장애 1급이라면 현실은 인정해야겠지요. 하지만 1급으로 정했다 해서, 우리 아이가 언제나 그렇게 유지되는 것이 무슨 하늘의 원리입니까? 1급이 영원히 유지되지 않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전국의 수많은 부모가 선생님의 말에 상처를 받을까 두렵습니다. 아니 희망의 끈을 놓아 버릴까 두렵습니다. 희망 고문의 부작용은 말씀 안 하셔도 잘 알지요. 우리 인생도 다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정해져 있는 것 같다고 그 현실을 바꾸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은 저로서는 이해가 안 됩니다.” 

  “여보!” 혜경이 나의 등을 잡아끌며 소리쳤다. “선생님 말씀 잘 알겠습니다. 그럼 열심히 하겠습니다.” 

  여의사는 끝까지 정민을 보지 않았다. 나는 여의사에게 시선을 거두고 떨리는 주먹을 꼭 쥐었다. 아들의 눈망울은 내 마음을 알고 있다는 것처럼 서글퍼 보였다.         

  도대체 내가 왜 이러지. 시간이 갈수록 분노 조절이 힘들어졌다. 진료실을 나서자 내부의 소란에는 무관심한 듯 멍한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의 머리 위로 가까스로 붙들고 있는 희망과 체념의 흑백 끈이 이리 흔들, 저리 흔들 시계추처럼 움직이는 것만 같았다. 피로감 가득한 눈빛은 쳐다보기만 해도 전염되는 것 같았다. 인사라도 하고 싶지만, 그들도 내 관심을 원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의사도 그렇게 자기 자신을 지켜나가는 것일까. 수많은 환자를 일정한 에너지로 대하려면 엄격한 절제가 필요할지 모른다. 게다가 정신과가 아닌가.... 매몰차 보였지만 현실을 객관적으로 설명했을 뿐이다. 위선적으로 거짓말을 한 것도, 과장되게 헛된 희망을 주려는 것도 아니었다. 어쩌면 그녀가 잘못한 것은 없을지 모른다. 단지 난.... 그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뿐이다. 

  조울증 환자처럼 그녀를 향한 분노가 잦아들기 시작했다. 후회가 몰려왔다. 한 아이가 바닥에 드러누워 개구리처럼 다리를 오므렸다 펴기를 반복하고 있었고 부모는 포기한 듯 신경도 쓰지 않았다.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이 뭐가 좋은지 행복한 웃음을 짓고 있다. 반대쪽 다른 아이는 늑대처럼 괴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부모는 어디 갔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두 아이 모두 민이 보다 한두 살 어려 보였다.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고 머리가 지끈거렸다. 데이터만으로 증상을 진단하고 판단하는 것이 최선일까. 장애진단이란 것이 효율적으로 편차를 측정하고 관리하기 위해 세상이 만들어 낸 시스템이 아닐까. 다수의 보통 사람과 다른, 예외적 편차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정말 이 사회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가. 예외적인 사람이 사고 칠 확률이 보통 사람들보다 높다 말할 수 있는 것인가. 정부의 혜택을 안 받으면 어떨까. 아직 도화지 같은 마음에 색안경을 쓴 사람들의 애정 없는 색을 입힐 필요가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들이 다시 불붙기 시작했다. 

  서둘러 병원을 빠져나와 일산행 버스에 올랐다. 귓가에 늑대 소년의 울음소리가 계속 맴돌았다. 아오. 아오.           

  일산에 도착해 혜경은 민이를 데리고 마트로 갔고, 나는 빵을 사기 위해 버스 정류장 건너편 단골 빵집에 들어갔다. 가만히 보니 인테리어 벽지가 화사한 연분홍 벚꽃 문양이었다. 손님이 많았던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바구니들에 남은 빵이 거의 없었다. 

  “아직 이른데, 벌써 빵이 많이 나갔네요. 혹시 아침에 먹을 식빵 같은 거 남은 거 없나요?” 인기척이 있는 매장 안쪽을 향해 큰 소리로 말했다. 

  “잠깐만요. 여기 밤 식빵 하나 남은 게 있네요.” 보름달 같은 느낌의 여주인이 기다렸다는 듯 빵을 가져오며 반갑게 말했다. 빵을 신줏단지 모시듯,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들고 있었다. 

  “아침에 전자레인지에 20초 정도 데우고 뜯어서 이걸 찍어 드시면 맛있을 겁니다. 커피도 곁들이면 좋고요.” 그녀는 카운트 옆 냉장 진열대에서 하얀색 생크림 플라스틱 용기를 꺼냈다. 

  “이거는 서비스로 드릴게요” 

  “아.... 감사합니다.” 양은 적어 보였지만 따뜻한 손길이 느껴졌다. 그녀는 빵을 종이봉투에 넣고 의미심장한 웃음을 띠며 말했다. “요즘 애들 키우기 힘들지요? 저희 때도 얼마나 힘들던 지.... 근데 지나 보니까 그때가 제일 행복했던 것 같아요.” 

  “네....” 그때가 제일 행복했다.... 이렇게 하루하루 겨우 버티며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이 시간이, 과연 제일 행복할 수 있을까.... 병원에서의 억울함 때문인지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져 난처했다. 종이봉투를 받아 들며 어색하게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참. 저번에 사모님하고 아드님 다녀가셨을 때 들었거든요. 고향이 진해라고 하던데, 저희는 아저씨가 진해 J 베이커리 생길 때부터 거기서 일하다가 여기 신도시 조성되면서 왔어요.” 그녀가 친한 척 고향 얘기를 했다. 난 그녀가 아들에게 따뜻한 사람, 편하게 빵을 살 수 있는 사람 정도로 남아 줬으면 좋겠단 생각을 했다. 

  “다음에 인사 한번 드리러 오겠습니다. 그럼 수고하세요.” 

  빵집을 나와 걷다 적색 신호등 앞에 멈춰서 무심코 뒤돌아 빵집 간판을 봤다. 「April City」 4월의 도시였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15 


2018년 4월 8일, 진해, 윤정민 

 

  아침 일찍 주일에게 전화가 왔다. 시간 될 때 가게에 잠시 들르라는 것이었다. 포근한 햇살에도 변덕스러운 바닷바람에 연두색 재킷을 걸치고 J 베이커리로 향했다. 블루베리 치즈 크림이 얹어진 바삭한 크루아상 하나를 쟁반의 하얀 종이 위에 올린 후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2층으로 올라갔다. 시간을 정하지 않았음에도 자리에 앉자마자 그의 휘파람 소리가 들려왔다. 어디선가 삐걱거리는 계단 소리를 듣고 있는 것 같았다. 

  주일은 다짜고짜 아버지 학원의 수강생 얘기부터 시작했다. 아버지 학원의 수강생은 김태우라고 했다. 어이없게 중앙시장 생선 가게에서 만났던 하얀 손의 그 청년이었다. 그의 아버지가 진해의 한 요양병원에서 지내고 있는데, 우연인지 주일의 아버지와 같은 병원이라 그에 대한 정보도 흘러나올 수 있었다.  

  김태우는 아버지에게 오랫동안 치료를 받았고 자폐증이 거의 없어졌다고 했다. 말투가 어눌하긴 해도,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아버지 덕이라고 하니, 더욱 기가 찼다. 그럼 아버지는 김태우 하나를 위해 학원을 운영했단 말인가.... 큰 매출과 세금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생선 장수의 미스테리에 궁금증이 커져만 갔다.


  “김태우 아빠는 김성용. 택시 운전을 오래 했고 엄마는 최유진. 미용실에 다녔대. 걔가 어렸을 때 엄마가 집을 나가 버려서 아빠가 혼자 키웠다는데, 자폐 증상이 심해서 동네에서도 유명했대. 괴상한 소리를 지르면서 온종일 골목길에서 혼자 빙글빙글 돌아다녔다고 하네. 뭣 때문인지 중간에 위탁 시설에도 몇 년 있다가, 집에 다시 돌아왔고. 아빠가 그 요양병원에 들어간 이후로는 집에서 혼자 살고 있다고 해. 걔 아빠는 말기 암이래. 폐암.” 

  헛웃음이 나왔다. 아무리 동네가 좁다 해도 인터넷에서 정보를 검색한 것처럼, 무슨 압수수색으로 탈탈 턴 것처럼, 주일의 입에서는 김태우의 신상이 줄줄이 꿰어져 나왔다. 

  “대단하네. 그런 것까지 어떻게 알았냐?” 

  “우리 아버지가 그 병원에 있으니까 사람들한테 들었겠지 뭐. 근데 이상한 점은 병원 총무과장이 그러던데, 김태우 아버지의 병원비를 네 아버지가 내주고 있다는 것 같던데. 병원 관계자들도 수상하게 생각한다더라. 비용이 만만치 않거든. 거기가 요양병원이긴 해도 출입이 안 되는 특별한 데도 있고, 주말이면 주차장에 독일 차가 기본으로 깔리는 곳이야.” 

  “진짜? 말이 안 나오네....” 

  무슨 돈으로 그 사람들을 다 먹여 살리고 있는 걸까.... 아버지는 무슨 짓을 하고 있을까.... 

  “참 이상한 얘기도 있더라고.” 

  “또 뭔데?” 

  “걔가 성당 위탁 시설에 있을 때, 사고가 있었다네.” 

  “무슨 사고?” 

  “오래전에 그 성당 외벽 위에 유리병 조각들이 박혀 있었대.” 

  “못 본 것 같은데.” 

  “그런 게 있었나 봐. 옛날에는 담장 만들 때 위에 유리병 조각들을 박는 곳이 많았대. 아무튼 걔랑 어울리던 또래 애들이 신기했는지 담벼락에 같이 올라갔다가 한 명이 떨어져서 뇌진탕으로 죽었다네. 위험하다고 그렇게 성화를 부렸다는데....”

  뇌진탕이라.... 다리를 다친 것도 아니고.... 

  “이후에 난리가 나서 주변에 유리병 박혀 있는 담벼락 싹 다 없앴다고 그래. 그때 같이 있던 아이 하나가 김태우가 밀어서 아이가 죽었다고 말했다네. 그것 때문에 문제가 된 거래.” 

  “밀어서? 진짜?” 

  “뭐. 그래도 결국에는 그냥 애들끼리 장난치다 사고 난 거로 마무리되긴 했는데 법정 공방도 있고 한참 시끄러웠다 하네.” 

  “우린 전혀 모르고 지냈잖아?” 

  “그러니까. 나도 기억이 전혀 안 나는데.” 

  멀쩡한 아이가 어느 날 사고로 죽는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끼쳤다. 내가 김태우였더라도 충격이 컸을 것이다. 

  “참. 정민아. 실종자가 일산의 유명 자폐 치료 학원 원장이라네. 레인보우센터라고 있다는데.” 

  진 형사가 왜 우리에게 그러는지 단번에 감이 왔다. 아버지가 실종된 여자와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확실히. 진해에서 자폐와 연관된 사람도 많지 않을 것이고, 더군다나 우리의 예전 생활 근거지가 일산 아니었던가. 의심을 살 만했다. 그런데 아버지는 지금까지 실종된 사람 얘기를 한 번도 하지 않았을까. 

  “주일아. 넌 진 형사 잘 알지? 난 그 인간 종잡을 수가 없네. 너한테는 어떤지 모르겠는데 몇 번 만나다 보니, 좋게 보려 해도 어렵다. 형사면 그래도 되나 싶기도 하고.” 

  “그 형님? 어릴 때 가정 형편이 어려웠다고 하더라고. 찢어지게 힘들게 살다가 희한하게 잘 풀린 거라 볼 수 있지. 아빠 없이 엄마가 화장품 판매원을 하면서 형제를 키웠다는데, 어느 날 동생이 갑자기 죽었다나 뭐라나. 그런 얘기는 어려운 주제라 자세한 거는 모르겠고, 아무튼 동생 죽고 엄마도 정신이 완전히 나가 버렸다고 그러던데. 뭐 환청이 들리고 계속 약 먹고 잠만 자고. 충청도 어디 정신 병원에 오랫동안 입원해 있다 자살하셨대. 그렇게 뒷바라지해 주는 사람도 없이 혼자 지내니 비뚤어지는 게 당연하겠지.... 거리에서 싸움질하고 어린 애들 돈 뜯고. 그래서 자기가 형사가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고 그러더라고.” 

  “사고는 안 쳤나 보네? 그런 사람이 형사가 될 정도면....” 

  “나도 경찰서에서 단체로 빵 주문도 들어오고 해서 오가며 알게 된 거지 뭐. 이 좁은 동네에서 그냥 형 동생 하는 거고.” 

  모르긴 해도 진 형사 같은 어린 시절을 보냈다면, 지독히 마음고생이 심했을 것이다. 그렇게 의식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안 그래도 그 형한테 어제 밤늦게 전화 왔었는데 예전에 우리 집에서 오랫동안 일했던 제빵사 아저씨에 관해서 물어보더라.” 

  “제빵사 아저씨?” 

  “우리 가게 창립 멤버야. 박영호 아저씨라고.... 지금은 일산에서 빵집 하셔.” 

  “일산? 그 사람은 또 무슨 관계지?” 

  “형이 김태우를 찾아가서 어떻게 너희 아버지를 알게 되었는지 물어본 모양이야. 그랬더니 김태우가 일산 박영호 아저씨를 통해 너희 아버지를 소개 받았다고 말했대. 제빵사 아저씨가 김태우 아버지하고 친한 사이였던 가봐.” 

  “그럼 우리 아버지는 일산에서부터 김태우를 알게 된 거군.” 

  “그렇게 되는 거지.” 

  그렇다면 김태우를 통해 잃어버린 내 기억도 복원시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태우는 처음부터 나를 알고도 모른 척했던 것이다. 머뭇거릴 틈이 없었다. 나는 주일에게 고맙다고 인사한 후, J 베이커리를 나와 서둘러 중앙시장으로 향했다.         

  그는 변함없이 생선을 손질 중이었다. 살며시 이름을 불렀다. 

  “김태우 씨 되시나요?” 

  놀란 눈으로 그가 고개를 들었다. 능청스럽게 왜 놀랄까. 이미 알고 있으면서.... 

  “몇 시에 끝나나요? 괜찮으면 차나 한잔 할 수 있습니까?” 

  “지금도 괜찮습니다.” 기다렸다는 듯, 그가 도마 위에 물을 뿌리고 고무장갑을 벗기 시작했다. 친구처럼 우리는 중앙시장을 나와 입구 우측 건물 2층 카페 로망스로 들어갔다. 카페 내부는 커피 향 대신 피자 냄새로 가득했다. 

  “절 아시죠? 초면이 아닐 테지만 저는 예전 기억을 못 하니 이해 부탁드립니다.” 

  “우리는 일산 친구입니다.” 

  “혹시 일산에서부터 저희 아버지한테 수업을 받았던 겁니까?” 

  “네.” 

  거칠 것 없는 그의 대답에 나는 사라진 기억을 복원해 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뭘 숨기려 했건 간에, 추억을 공유했던 친구가 멀지도 않은 곳에 버젓이 살고 있는데 왜 아버지는 어설프게 숨기고 그랬을까. 아버지에게 달려가 따지고 싶었다.    

  “진해에서 일산까지 그 먼 거리를 혼자서 다녔습니까?” 

  “버스로 아빠와 토요일마다 올라갔어요.” 

  “그때 저도 만났었나요?” 

  그가 잠시 말을 멈췄다. 

  “불편한 거 있으면 말씀 안 하셔도 되는데. 제가 정말 기억이 안 나서 그럽니다. 그 학원 앞에서 사고로 기억을 잃어서.” 

  그가 다시 말을 이었다. “매주 올라갈 때마다 만났습니다. 호수공원에서 달리기도 하고 재미있었는데....” 

  머리도 꼬이고 말도 꼬였지만 엄마가 제일 궁금했다. 

  “기억하실지 모르겠는데 우리 엄마는 만나 보신 적 있어요?” 

  “네!” 

  그의 대답에 철렁 가슴이 내려앉았다. 아버지에게도 듣지 못했던 엄마의 기억을 그에게서 들으니 기분이 묘했다. 

  “기억나는 대로 말해 주면 안 될까요? 가능하면 자세히.” 

  “사고가 나서 돌아가셨어요.” 

  사고.... 두려움이 몰려왔다. 그의 뜸 들이는 입술을 보고 있으려니 속이 타 들어갔다. 죽음이 눈앞에 아른거리는 러시안룰렛의 긴장감 같은 것에 비유될 수 있을까. 그의 입에서 총알이 튀어나오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어쩌면 아버지가 옳았을지 모른다. 모든 비밀은 허물어지는 일순간에 충격이 가해지는 법이다. 그가 자연스레 입을 열었고, 순식간에 총알이 날아와 머리를 관통했다. 고통이 시작되었다. 나는 기억의 뚜껑이 열리고서야 아버지가 이해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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