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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머즈 Oct 08.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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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 4일, 진해, 윤정민 

 

  창밖으로 둥근 중원로터리 광장을 보니 문득 피자 페스티벌을 열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축제의 바깥세상과 달리 전통찻집은 무거운 첼로 소리와 한방차 향기만이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진 형사가 문을 활짝 열어 재치며 들어왔다. 물 빠진 청바지에 카멜색 가죽점퍼 그대로였다. 

  “어제는 경황이 없어 죄송했습니다.” 싸구려 똑딱 볼펜이 끼워진 누렇게 닳아빠진 작은 수첩을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그가 말했다. 전망대에서와는 다른 느낌이 들었다. 첫인상은 형사라는 직업을 고려해 봐도 이건 아니다 싶을 정도였다. 처음 만난 사람 팔을 뒤에서 움켜잡고 근육 양을 측정하듯이 주물럭거리던 건방진 모습, 깨진 앞니를 가까이 드러내며 협잡꾼 같이 기분 나쁜 웃음을 흘리던 모습, 목에 깁스를 한 것처럼 고압적으로 인사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그래도 능글맞은 표정만은 그대로였다. 주일에게 무슨 얘길 들었는지, 내게 얻어낼 게 더 있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정리해 보면 말이죠. 정민씨가 매일 새벽 장복산으로 달리기를 하러 갔는데 하필 그날 엎어져서 운동화 한 짝이 벗겨졌고, 그때 어떤 여자가 기다렸다는 듯 바위 뒤에서 짜잔 하고 나타나더니 운동화를 주워 가지고 정민 씨한테 다가왔다. 그런데 그 여자가 모자도 푹 눌러 쓰고 흰 마스크로 얼굴도 가린 것이 영 찝찝했다. 귀신처럼 무섭게 느껴져서 영문도 모른 채 무작정 도망쳤다. 이렇게 되는 건데.... 이게 말이죠.... 뭐랄까, 스토리가 엉성하다고 할까. 좀 그래요. 한번 물어봅시다. 원래 그렇게 겁이 많아요?” 그가 조소하듯 말했다. 

  “그냥 겁났습니다. 그게 다입니다.”

  “이해가 안 가네. 그러면 어떻게 인적 드문 새벽 시간에 어두컴컴한 그 산속에서 1년 넘게 혼자 달리기를 했나? 나는 진해 살면서 그 시간에 거기로 조깅하러 간다는 사람은 들어본 적도 없고 상상도 안 되거든. 내가 말이요. 오랫동안 복싱을 했어요. 같이 운동하는 형 동생들도 많단 말이지. 그 사람들 조깅 참 좋아해. 근데 한 번도 장복산 새벽 조깅은 들어본 적이 없다고. 알겠어요?” 첫인상은 변하지 않는다. 말이 악보의 점점 빠르게 같이 공격적 반말 형으로 바뀌고 있었다. 

  “형사님, 저도 처음 겪는 일이고 답답하긴 매한가지입니다. 그동안 한 번도 무섭다고 생각해 본 적 없습니다. 혹시 복싱하셨다니까.... 새벽에 조깅해 본 적이 있습니까?”

  “왜요?” 

  “새벽 조깅은 조용히 잠든 도시를 달리는 겁니다. 텅 빈 거리와 고요한 숲을 지나다 보면 설명이 안 되는 상쾌함이 있거든요. 아무도 밟지 않은 눈길을 걸어가는 느낌이랄까, 무섭다는 생각은 정말 안 듭니다. 바위 뒤에서 누군가 갑자기 튀어나오기 전까지는요.” 

  “하.... 이 사람 정말 답답하네. 지금 새벽 조깅 예찬론을 펼칠 때가 아니에요. 여보세요! 잠든 도시건, 화들짝 깨어 있는 도시건 간에 우리 상식적으로 한번 생각해 보자고요. 근처 모텔에서 발생한 실종 사건과 신발 잃어버린 것하고 뭔 상관이 있다고 자꾸 연관지어요? 바위 뒤에서 나타났다는 여자. 그냥 근처에 있다가 신발 주워 주려한 것 아닌가? 정민 씨가 겁이 많아서 오버한 거예요. 여자가 바위 뒤에 숨어 있었다고 했는데 좀 생각을 해 봐요. 생각을. 그거 이상하지 않아요? 뭐 하려고 바위 뒤에 숨어 있다 신발 주워  주러 기어 나와? 숨어 있으려면 그냥 계속 숨어 있지. 안 그래요? 그리고 신발에 이름이 적혀 있으면 돌려주겠지. 그냥 제자리에 던져 놓거나. 그 냄새 나는 신발 한 짝 가지고 뭘 하겠어요?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안 돌려준다면요? 제가 다시 가서 확인해 봤는데 신발이 없었습니다. 등산객 중에 그런 냄새나는 신발 한 짝 가져갈 사람도 없을 겁니다. 만약 그 사람이 실종 사건의 범인이라면, 제가 유일한 목격자가 될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답답한 마음에 목소리가 커졌다. 그때 휴대폰이 울렸고 진 형사는 한 손을 들어 양해를 구하며 밖으로 나갔다. 창밖으로 빨갛게 귀가 달아오른 채 허공으로 삿대질을 해대고 있는 그의 모습이 보였다. 형사보다는 딱 동네 양아치나 슬리퍼 질질 끌고 다니는 다혈질 아저씨가 더 어울릴 듯했다. 그가 씩씩대며 돌아와 자리에 앉았다. 

  “죄송합니다. 급한 전화가 와서.... 참 어디까지 얘기했더라. 그래서 정민 씨는 그 여자 얼굴이라도 기억나요?” 그가 수첩을 집어 들며 말했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얼굴은 가물가물합니다. 검정 야구 모자를 눌러 썼고 긴 머리가 가슴까지 내려와 있었습니다.” 

  “그 정도론 어림도 없어요. 몽타주도 안 되겠네. 주변에 의심 가는 사람은 없습니까?” 

  “전혀 없습니다.” 

  “근데 원래 이곳 분이 아닌 것 같은데 언제 진해에 오셨어요?” 

  질문이 급격히 신상 정보로 방향을 틀었다. 이미 뒷조사를 마쳤을 것 같은 구린 기분이 들었다. 

  “중학교 입학 때쯤 아버지와 이사 왔습니다.” 

  “아버님이 진해로 발령을 받으셨나요? 아니면 특별한 이유라도?”

  질문이 사생활을 파고들어 불쾌한 마음이 들었다. 

  “형사님.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전 그날 사건의 중요한 목격자가 될 수도 있어 여기 온 거지, 용의자로 온 게 아닙니다. 제 사생활을 갑자기 캐묻는 이유는 뭡니까?” 

  “음.... 아직 이런 경우가 처음이라 잘 모르나 본데 원래 탐문 수사란 게 그런 거예요. 요새 아무리 개인정보다 뭐다 중요하다 하지만 조사를 하려면 목격자에 대해서도 잘 파악해야 할 거 아니요. 오해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만 얘기해 주면 돼요. 제가 남의 사생활 알아서 뭐 하겠습니까? 안 그래요?” 

  “아버지는 말씀이 원체 없는 분이라 옛날얘기 잘 안 합니다. 저도 관심 없고요.” 

  그의 질문은 다시 선회해 아버지를 향하고 있었고 대부분 내가 답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표정과 말투에서 음흉한 속내가 느껴져 나는 가능한 말을 아꼈고 그도 대화를 이어가기 쉽지 않은 듯 30분도 지나지 않아 자리를 떠났다.     


  전통찻집을 나서며 불쾌한 대화가 떠올라 목덜미가 뻣뻣하게 당겨왔다. 태도를 보아하니 이용만 당하고 잘못하면 없는 죄도 덮어쓸지 모른다는 무서운 생각도 들었다. 신발 가져간 여자에 대한 찝찝함도 그가 해결해 줄 수 있는 부분은 아닐 듯했다. 

  “아버지. 다녀왔습니다.” 

  텔레비전에 집중하고 있는지 아무 말이 없었다. 거실 가득 중국어가 울려 퍼졌다. 거품 비누로 손을 씻고 간단히 먹을 것을 찾았지만 냉장고에는 마땅한 것이 없었다. 그 형사 놈 때문에 하루 일정이 꼬인 것 같아 짜증이 밀려들었다. 장복산 사건에 대해서도, 진 형사에 대해서도, 말해야 할 것 같아 아버지 옆으로 다가갔다. 

  “방금 형사 만나고 왔어요. 저희 집에 대해 꼬치꼬치 물어보는데  제가 뭘 대답할 수 있는 게 있어야지요. 아버지가 예전에 무슨 일을 했는지. 왜 갑자기 진해로 오게 되었는지....” 

  그가 빨라지는 내 말을 끊으며 물었다. “잠깐만.... 형사는 왜 만났냐?” 

  “미리 말씀을 못 드렸는데.... 며칠 전에 제가 장복산에서 달리기하다가 넘어지면서 신발 한 짝이 벗겨졌는데, 거기 있던 어떤 여자가 그걸 주워 주려고 했어요. 원래 그 시간엔 거기 사람도 없던데 다 그 여자 가까이서 보니까 꼭 귀신같더라고요. 낌새가 이상해 신발은 그냥 내버려 둔 채 도망쳤거든요. 근데 하필 비슷한 시간에 근처 모텔에서 실종 사건이 발생했대요. 전 그냥 그때 산에서 만났던 여자도 마음에 걸리고 해서 주일이가 소개해 준 형사에게 그때 상황에 관해 얘기했는데 그 형사가 쓸데없이 자꾸 아버지에 대해 질문을 하잖아요.” 

  사실 산에서 마주쳤던 여자가 날 찾으러 올까 겁이 난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는 내 얘기를 다 듣고는 다시 침묵했다. 대화는 끊어진 철로처럼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않았다. 애써 외면해 왔던 상황들이 점차 참기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가 듣든 말든 상관 않고 계속 혼잣말을 이어갔다. “형사가 뭘 숨기는 사람처럼 의심하는 것 같아 기분 나쁩니다. 뭔 말 좀 해 주세요. 아버지!” 

  “정민아!” 그가 내 이름을 불렀다. 뭐라도 말하려는 것인가. 오늘은 정말 얘기하려나.... 가까이 몸을 당겨 앉았다. 

  “네가 알아야 것이 있다.” 꽁꽁 싸매 놓은 이야기보따리를 푸는 것처럼 길게 운을 뗀 뒤, 그가 말을 이었다. “회사를 다니다 우연히 다른 길로 가게 되었다. 인생의 방향이 바뀌었지.” 

  “그게 아버지 학원인가요?” 

  “그렇게 되는 거지. 새로운 공부를 시작했었는데 그게 진로를 바꿔 버렸어. 절박했는데 운이 따라 줘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처음 듣는 얘기에다 구체성이 없어 단번에 이해하기 힘들었다. 이렇게 얘기할 수 있으면서 왜 이제까지 숨긴 건지. 형사를 만나고 왔다니까 입을 여는 것인가. 역시 마음에 들지 않는 사고방식이었다. 나는 억지로 고개를 끄덕이며 귀를 기울였다. 

  잠시 후 그가 다시 말했다. “응용행동분석이라는 공부를 했는데 그 당시에 한국에선 그런 공부를 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응용행동분석, 그게 뭔가요?” 

  “ABA라고 하는데 자폐 아동을 위한 특수 치료 방법 중 하나다. 미국에서는 오래전부터 일반화된 방법인데 그 당시 우리나라엔 전문가가 많지 않았지. 요즘이야 서서히 많아지고 있지만....”

  연이어 묻고 싶은 것이 있었지만 캐묻지 않았다. 오늘은 그가 처음으로 입을 연 날이었고 시작으로 그 정도면 충분했다. 


  


2002년 겨울, 일산, 윤성진 

 

  베란다 너머 순백의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하늘에서 솜털 같은 눈이 내리던 날, 하얀색 토끼털 옷으로 무장한 정민이 귀엽다고 한 무리의 여학생들이 둘러싸며 웃음 짓던 벤치가 내려다보였다. 아무 걱정 없던 시절에 떠나버린 그녀들의 웃음소리가 쓸쓸한 벤치에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오늘은 서둘러 레인보우센터에 도착했다. 평소 사람들로 붐비던 주변 상가들도 고요했다. 카페, 음식점, 술집, 뷰티 숍, 마사지 가게가 즐비한 상가를 지나치며 아름드리나무가 우거진 푸르른 잔디 위를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상상해 본다. 정민이를 선생님에게 보낸 후 아내와 습관처럼 센터 건너편의 카페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따뜻한 커피 한 모금에 정민의 재롱잔칫날이 떠올랐다. 아이들이 몇 줄로 나란히 무대 위에 섰고 정민이는 보이지도 않는 맨 뒤에 서 있었다. 그래도 내 눈엔 명사수 총구에 놓인 표적처럼 아이가 잘 보였다. 익숙한 동요가 시작되자 아이들은 저마다 피아노를 치고, 북을 치고, 귀엽게 춤을 춰댔지만 맨 뒷줄의 정민이는 멍한 표정으로 박자에 맞지도 않게 탬버린을 두드리고 있었다. 연습 때 야단을 많이 맞은 탓인지 두드리는 손은 힘도 없어 보였다. 아이의 시선은 객석의 웃음 짓는 사람들 너머에 있었다. 아들의 마음이 느껴져 차마 그대로 보고 있기가 힘들었다. 나는 자리에서 빠져나와 한참을 밖에서 서성였다. 화창한 하늘을 보니 서러움이 흘러내렸다. 나는 아들이 공교육 속에서 성장하는 데 한계가 있음을 깨달았다. 아내가 아이와 함께 집이란 작은 섬에 고립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장모의 말처럼 아이를 무리해서 바꾸려 하지 않았다면, 혜경도 편히 지낼 수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아내는 아이의 하나밖에 모르는 친구로 살았다. 그랬기에 레인보우는 정민에게도, 아내와 내게도 구세주였다. 

  아내가 상담 일지 작성을 멈추며 시간을 물었다. 평화로운 한 시간이 어느새 끝나가고 있었다. 황급히 카페를 빠져나와 센터로 들어갔다. 안내 데스크 직원이 뒤쪽 상담실로 들어가도 좋다는 손짓을 했다. 상담실에는 김은정 치료사가 미소를 지으며 민이 뒤에 서 있었고 그 옆에 원장이 있었다. 원장은 언제나 풀 메이크업에 미용실에 다녀온 듯 손질한 머리였고, 김은정 치료사는 몸매를 드러내는 옷을 즐겨 입었다. 치마나 바지는 타이트했고, 타이츠도 원색 계통의 화려한 것이 많았다. 그녀를 볼 때마다 갈증이 났다. 자폐 치료라는 것은 한 아이가 인간으로 태어나 기초적 삶을 영위할 수 있느냐 없느냐, 그런 중요한 문제였지만 그녀에 대한 성적 상상은 멈추지 않았다. 

  “김 선생님이 잘 설명 드렸겠지만, 우리 민이 정말 잘하고 있어요. 제가 미국에서 재활을 이끈 경험이 많으니까 지금처럼만 믿고 따라와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원장의 말은 단호하고 설득력이 있었다. 그녀가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 “한국에는 아직 우리 방식의 전문가들이 부족하지만, 우리 센터에서는 제가 열심히 지도하고 있고 선생님들도 빠르게 노하우를 흡수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치료는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나요?” 노하우가 궁금했다. 

  “3세 이전에 두뇌 속에 기본 프로그램을 심는다. 자극과 수정을 반복하며 프로그램을 업그레이드한다. 끝입니다.” 

  “저번에 가능성이 보인다고 했던 이유가 뇌 속에 발음 프로그램이 작동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는데 혹시 가정에서 확인할 수 있는 다른 것도 좀 있을까요?” 나는 가능한 희망의 증거를 확인하고 싶었다. 

  “눈 맞춤입니다.” 

  “원장님, 정민인 저희와도 눈을 거의 맞추지 못하는데요.” 

  “적절한 자극을 반복하면 가정에서도 분명히 알 수 있을 겁니다. 눈 맞춤은 상호 소통의 기본이고 그것이 돼야지 커뮤니케이션 욕구가 자연스럽게 생겨나 언어 발달도 촉진되는 것입니다.” 

  “눈 맞춤이 잘 된다는 것은 아이가 외부 자극에 잘 반응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거네요.”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정민이의 강한 자폐 성향은 청각, 촉각, 특히 구강  집착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상동 행동도 심하고요. 이런 집착을 역이용해 눈 맞춤을 유도하면 언어 발달, 사회적 상호작용, 나아가 놀이 기술을 단계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게 됩니다. 집에서도 과자든 장난감이든 만화든 민이가 좋아하는 것을 강화제로 사용하며 반복훈련을 시켜 나가야 합니다. 시키는 것을 잘하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컴플라이언스가 머릿속에 잡히게 만들어야 합니다.” 원장은 눈에 힘을 주며 말했다. 

  치료 방법이 개 훈련과 비슷해 서글픈 생각도 들었다. 잘하면 과자를 주고, 더 잘하도록 유인하는 것이라.... 잠시 양해를 구하고 상담실을 나왔다. 화장실을 찾으며 모델하우스 구경하듯 센터 내부를 다시 한 번 꼼꼼히 살펴봤다. 복도의 녹색 벽면에는 광고하듯 원장의 미국 학위와 자격증, 미국에서의 치료 경험을 증빙하는 문서들이 반짝이는 유리 액자에 걸려 있었다. 신뢰감이 들었다. 의사가 아니라도, 사람을 치료하는 전문가라 부럽기도 했다. 치료실의 작은 창으로 아이들이 그린 것으로 보이는 그림들이 보였다. 방음 시설을 했는지 내부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맨 안쪽의 원장실은 치료실과 달리 작은 유리도 없는 철문에 지문 인식기까지 있었다. 내부 화장실은 상가의 공용 화장실과 달리 따뜻한 물이 나왔고 싸구려 인공 방향제 대신 플라스틱 꽃병에 생화가 꽂혀 있었다. 나는 관찰을 마치고 조용히 상담실로 돌아왔다. 


  “미국도 자폐가 많은가요?” 알고는 있었지만, 미국 전문가인 그녀에게 재확인하고 싶었다. 

  “자폐는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어느 곳이나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다만 미국은 정부지원이 좋죠. 연구도 깊이가 있고요. 특히 조기 치료 시스템이 좋습니다. 저는 자폐 레이더라고 하는데요. 조기 경보가 좋으니 당연히 대비도 잘 합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게 있습니다. 사회 통념이 한국과는 비교가 안 되죠. 제가 미국에 있었다고, 미국 예찬론자라서 그러는 거 절대 아닙니다. 오히려 한국보다 나쁜 것도 많습니다. 아동 학대나 성범죄도 많고요. 어떤 제도도 완벽할 순 없지요. 근데 솔직히 말씀 드려 자폐 같은 특수교육 분야는 미국과 우리나라 간의 격차가 너무 크게 납니다. 항공우주기술같이 거창한 분야가 아니라도 말입니다. 지금 한국은 대학병원을 통틀어 봐도 자폐 치료 전문가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인 걸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일하게 된 계기도 그것 때문이긴 하지만요.” 

  거침없는 원장의 말을 듣고 있으니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녀가 내게 희소성의 가치를 설파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원장은 빨리 말한 탓인지 죄송하다며, 테이블 위의 물을 마시고 목을 몇 번 가다듬었다. 그녀의 오렌지색 스카프 사이로 낮고 둔탁한 가래 끓는 소리가 들렸다.  


  센터를 나와 근처 서점에 들렀다. 혜경이 보물이라도 찾은 듯 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 이곳에서 특수치료 책은 아내만큼 잘 아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도서관에는 관련 서적이 부족해 주변의 서점들을 뒤지고 다녔기 때문이다. 민이가 소리를 치며 매대의 책들을 차례대로 두드리고 다니다 책 몇 권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피로의 그림자가 들러붙기 시작했다. 아내는 대수롭지 않은 듯 민이의 손을 잡아당기며 다그쳤지만 불편한 시선에서 벗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민이 손을 잡고 황급히 서점을 빠져 나왔다. 

  집으로 가는 길에 모퉁이 가게에서 과자를 몇 개 샀다. 이제부터는 작은 과자 하나라도 달라는 대로 그냥 줘서는 안 되겠지. 아파트 단지 중앙에도 입주민들을 위한 큰 마트가 있었지만, 우리의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작은 가게로 향했다. 가게 아저씨는 민이가 보통 아이들과 다르다는 걸 알고 있을 터였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환한 미소로 잘 생겼다는 칭찬을 빼놓지 않았다. 그냥 하는 말이건, 진심이건,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고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그저 그 편안한 미소와 작은 칭찬이 고마웠다.  

  민이는 좋아하는 과자를 가슴에 품고 금방이라도 다 먹어 버릴 기세더니 집에 돌아오자 과자 봉지를 곁에 둔 채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 혜경이 책 봉지를 거실 탁자에 올려놓았고 나는 슬며시 책을 꺼내 들었다. 영어 원서였고 아내가 읽을 가능성은 없었다. 

  “영어책을 샀네? 뭐야 ABA, 응용행동분석?” 

  “당신 읽으라고.” 아내는 홍차를 마시며 아무렇지 않게 답했다. 

  “왜 나보고 읽으라는 거지? 센터에서 추천해 준 건가?” 

  “센터에서 말했잖아. ABA라고 하는 거.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그거 전문화된 곳이 거의 없잖아. 외부 기관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우리도 잘 알고 있어야 할 것 아냐. 당신 스스로 연구하는 방법밖에 없겠더라고. 당신 영어도 끝내주잖아.” 아내는 천진난만하게 말했다. 억울했던 걸까. 그녀는 민이의 세계로 나를 초대했다. 


  


2018년 4월 5일, 진해, 윤정민 

 

  “계십니까?” 빚 독촉하듯 위협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윤정민 씨 계십니까? 진용호입니다.” 어떤 고지도 없이 그는 집 앞에서 내 이름을 크게 부르고 있었다. 

  “누구냐?” 소파에 앉아 CNN을 보던 아버지가 물었다. 

  “형사 만났다고 말씀드렸잖아요. 그 사람이 온다는 말도 없이.... 잠깐만요.” 황당했지만 현관문을 열었다. 

  “아이고 이거. 죄송합니다. 불쑥 찾아와서.” 전혀 죄송할 것 없다는 얼굴이었다.   

  “무슨 일로 그러십니까? 어제 충분히 말씀드렸다고 생각하는데. 연락도 없이 오시면 곤란합니다.” 

  “실례지만 지금 댁에 아버님 계시죠?” 뜬금없이 형사는 아버지에게 용건이 있는 사람처럼 굴었다. 

  “계시는데요. 왜 그러세요?” 

  “조사하다 보니 아버님께 확인하고 싶은 것이 생겨서요. 잠깐이면 되니까 몇 가지 질문 좀 드리고 가도 되겠습니까? 오래 안 걸릴 겁니다.” 형사는 막무가내로 들어오겠다는 기세였다. 계절에 어울리지도 않는 카멜색 가죽점퍼에서 큼큼한 땀 냄새가 풍겼다. 

  “잠깐만 계세요. 여쭤 봐야 하니까.” 불쾌했지만 형사와 실랑이를 벌일 수는 없었다. 거절하길 바랐지만, 아버지는 별일 아닌 듯 진 형사를 집 안으로 들였다. 그는 거실로 들어서자 CNN 방송이 의아한 듯 힐끗 고개를 돌렸다가 이내 아버지께 손을 내밀며 인사했다. 아버지도 소파에서 일어나 두 손을 내밀고 허리를 숙였다. 

  “영어 잘하시나 보네요. 진해에 미군 부대가 있어 저도 어릴 때 AFKN인가 뭐 그런 것도 듣곤 했는데.” 

  그가 눈알을 굴리며 주변을 살폈다. 아버지는 그의 의사를 확인 후, 내게 커피를 부탁했고 리모컨으로 볼륨을 낮추며 그에게 용건을 물었다. “제가 무슨 도움이라도....” 

  “뭐. 대단한 건 아닙니다. 얼마 전에 실종 사건이 하나 생겼는데 여간 골치 아픈 일이 아니네요.” 그가 능청스럽게 아버지의 위아래를 훑어봤다. 

  “형사님 담당입니까? 그 사건?” 갑자기 아버지가 따지듯 물었다. 

  “아. 그게.... 제가 어떻게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어색함과 자신감이 교묘히 뒤틀린 표정이었다. 나는 커피 3잔을 만들어 가져왔다. 철학이 담긴 커피가 마음에 들었는지 그는 커피 향을 맡으며 만족하는 표정을 지었다. 동그란 잔이 코를 덮는 순간, 찻잔 위로 그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진해가 고향이시죠?” 

  “그렇습니다.” 

  “보자.... 일류 대학 출신에 일류 기업에서 승승장구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갑자기 귀향했다. 뭐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능력 있으신 분이라 회사에서 잘린 거는 아닌 것 같고.” 누구나 궁금하게 여기는 것이었다. 

  “객지에서 오래 살다 보니 고향도 그립고 아이도 여기서 키우면 좋을 것 같아서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면접 답변처럼 그럴 듯하게 꾸며댔지만, 형사는 이미 철저히 뒷조사를 마친 상태인 듯했다. 

  “여기서 무슨 일을 하셨죠?” 역시 알면서 물어보는 말투였다. 나는 답변하는 아버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작은 학원 하나 운영했습니다.” 

  “영어, 수학 보습학원 같은 건가요?” 

  형사의 질문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아버지는 잔을 내려놓으며 텔레비전을 껐다. 

  “ABA 학원입니다. Applied Behavior Analysis 라고 하는 응용행동분석 기반의 자폐 치료 학원입니다.” ABA가 튀어나왔다. 

  “음....” 그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거렸지만 이미 학원을 알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그의 연기에서 패턴이 보였다.

  “ABA라.... 여기서 그걸로 자폐 치료를 하셨단 말씀인가요? 지난한 연구를 하셨던 게 아니고요. 거참 난해하네. 누굴 바보로 아나. 여기서 치료할 사람이라도 있었습니까?” 본성이 이빨을 드러내기 시작했음에도 아버지는 침착했다. 

  “ABA는 입증된 자폐 치료 방법임에도 오래전 한국에서는 생소한 분야였고 전문가도 거의 없었습니다. 희소성에 전망도 있어 공부를 시작했고 자격증도 따고 학원도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진해도 많지 않았을 뿐이지 치료하는 학생도 있었습니다.” 

  아버지 말을 듣다 보니 한 아이가 어렴풋이 떠올랐다. 중2, 따뜻한 봄날이었고 야외 견학이 있어 버스를 타고 해군사관학교로 향하고 있었다. 시끌벅적한 분위기 속에서 친구들과 장난을 치다 우연히 창밖으로 걷고 있는 아버지를 봤다. 또래로 보이는 남자아이의 손을 잡고 있었는데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그 아이는 무표정한 얼굴로 삐딱하게 고개를 옆으로 돌린 채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을 자신의 손에 담으려는 듯 손가락을 쥐었다 펴고 있었다. 행동이 너무 특이해서인지 앨범 속 사진처럼 정확히 기억이 났다. 아버지가 가르친 학생이었을까.... 

  “그래도 그렇지 멀쩡한 직장을 그만두고 말이죠. 한적한 이곳에서 학원을 운영한다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잘 안 가네요. 여기서 자폐 비슷한 그런 사람들을 본 적도 없거든요.” 그가 갑자기 입맛을 한번 다시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어떤 계기가 있었던 게 아닙니까? 아니면 뭔가 중간에 빠진 이야기가 있던지 도대체가 연결이 되어야지요.” 초면임에도 짜증 섞인 말투가 거칠어지고 있었다. 의도적 화법에 공격적인 성격까지 더해져 그의 목소리가 한 옥타브씩 올라갔다. 그는 질문에 꼬리를 물어 가며 긴장감을 극대화하는 배우같이 보였다. 처음 당하는 사람들은 괴상한 그의 대화법에 두려움을 느낄 것 같았다. 

  “다른 계기라고 할 것까지 없습니다. 서울에서는 학원 차릴 형편도 안 되고, 고향에서 관련 공부도 하면서....” 

  갑자기 그가 답답한 듯 아버지 말을 끊으며, 버럭 무슨 말인가를 쏟아내려 했다. 그때, 핸드폰이 울리는 바람에 그는 전화를 받았고 변함없이 달아오른 얼굴로 버럭 소리를 지르며 폰을 안주머니에 신경질적으로 쑤셔 넣었다. 

  “선생님. 아직도 이해가 안 되거든요. 일이 생겨서 다음에 다시 좀 뵈었으면 합니다.” 그는 손목시계를 확인한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만족스런 표정으로 음미하던 커피는 반이 넘게 남아 있었다. 

  “형사님, 잠깐만요. 아버지는 왜 조사하시죠? 실종 사건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 알려 주실 수 없습니까?” 나는 종종걸음으로 현관까지 그를 따라나서며 물었다. 그가 카멜색 가죽점퍼를 한 손에 잡고 신발을 신었다. 

  “다음에 말씀 드리겠습니다. 커피 잘 마셨습니다.” 그는 가벼운 묵례 후, 신발장을 곁눈질하며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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