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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머즈 Oct 08.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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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여름, 일산, 윤성진 

 

  아내와 아들이 수업을 시작 하면 난 청소기를 돌리고 화장실도 청소했다. 식사 시간이 되면 아이와 함께 밥을 먹었고 민이가 낮잠을 자면 공부를 계속했다. 센터는 내가 아이를 데리고 다녔는데 아내는 쉴 수 있어 좋았고, 나도 그녀를 만날 수 있어 행복했다.   

  푹푹 찌는 여름 햇살에 지치는 날이었다. 센터에 민이를 데려다준 후 습관처럼 상가 건너편 카페에서 읽던 책을 꺼냈다. 부모가 쓴 자폐 치료 성공 수기였다. 한국어 번역본이 없었지만 읽고 싶은 책이라 서둘러 영어 원서를 구했던 것이었다. 책을 펼쳐 들자 내용은 눈 밖이고 그녀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안고 싶은 생각만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읽지도 않고 책장을 계속 넘겼다. 구석 테이블에 학부모로 보이는 여자 세 명이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 그녀들의 얘기에 신경이 곤두섰다. 

  “요즘 우리 애 목이 자주 붓는데. 센터에서 말을 많이 시켜서 그런가....” 

  “우리 애도 마찬가지야. 병원에서 목구멍에 찰과상 같은 것도 보인다고 그러는데.” 

  “찰과상?” 생기가 넘치는 하이톤의 여자가 놀란 듯이 물었다. 

  “발음 교정한다고 기다란 막대기 같은 걸 입에 넣고 막 누르고 그러지 않을까 싶어.” 

  “좀 심하긴 하다.” 콧잔등에 점이 난 여자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민이도 오래전부터 입속에 상처나 헌 부분이 많이 보였다. 대수롭지 않게 넘기기엔 느낌이 안 좋았다. 은정을 만날 때 자세히 물어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마칠 시간이 되어 센터로 올라가 정민을 데리고 나오며 은정의 허리를 살짝 감싸고 윙크했다. 사귀는 남자가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나는 처자식이 있었다. 만날 때면 복잡한 생각들은 뜨거운 갈망이 단번에 삼켜 버렸다. 그녀가 나 같은 아저씨를 왜 받아들였을까.... 웃기는 말이지만 내가 유혹당한 느낌도 들었다. 차라리 그녀가 나를 거부했다면 좋지 않았을까.... 그런 후회도 들었다. 민에게 인사를 시키기 위해 엘리베이터 앞에서 고개를 돌리는 순간, 센터 안쪽에서 서늘한 시선이 느껴졌다. 


  나는 미국뿐 아니라 일본의 치료 방법에 대해서도 연구를 계속했다. 일본은 학부모 자치 모임이 강해 부모들의 상호 유대감이 높았다. 나는 그들을 벤치마킹해 모임도 만들었다. 이름은 난쟁이로 직접 지었다. 특수 분야일수록 힘을 합치고 정보도 공유하는 것이 시너지가 된다는 확신 때문이었다. 나는 모임의 초대회장으로 추대되었고, 우리는 매주 목요일 오후에 뭉쳤다. 퇴사 후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끼리 만나게 되면서 삶에 활력을 얻기 시작했다.    

  민이의 발달이 속도를 내고 있었고 그것은 내 열정에 하늘이 감동한 것이라 자부했다. 모임 사람들도 민이의 발전이 빨라지자 내게 문의를 자주 해 오기 시작했다. 집으로 선물을 들고 찾아오는 사람, 음식을 대접하는 사람들로 바쁜 나날이 이어졌다. 민이는 앵무새처럼 음성모방만 하다 요구하는 단어부터 자발적으로 말을 시작하더니, 급격히 발화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듣고 읽어서 이해하는 단어 수는 보통 아이들보다 오히려 빨랐을 정도였다. 명사와 동사가 빨랐고 형용사와 부사는 느렸지만,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는 공감 능력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그 부분도 해결되기 시작했다. 공감 능력이 자폐아에게 한계점이란 걸 생각하면 새로운 지평을 연 거나 다름없었다. 난쟁이의 주문 덕분이었다.  


  정기 모임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며 아이들을 직접 가르치자는 결심을 굳혔다. 경제적 이유도 있었지만 스스로 전문성을 갖췄다는 자신감이 들었고 실력을 공개적으로 발휘해 보고 싶었다. 7월 17일 오전 10시. 혜경과 오랫동안 계획해 왔던 치료실을 드디어 오픈했다. 상호는 「내가 말을 할 수 있다면」으로 했다. 위치는 호수공원  분수대 뒤편의 단독건물 2층이었다. 필수 가구를 제외하곤 변변한 장식품 하나 없었지만, 입주 당일 입구 벽면에 레인보우 원장이 선물한 큰 거북이 인형을 걸었다. 치료사는 따로 없었고, 간단한 서무를 처리해주는 아르바이트 대학생 한 명을 임시로 채용했다. 치료방식은 아이의 치료에 부모교육과 참여를 병행하는 것이었다. 전문 치료사 없이 제한된 시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프로그램은 직접 민이를 통해 경험했던 것들과 미국과 일본 시스템에서 체득한 것을 혼합했다. 치료실 안에서 각종 교구를 사용해 1:1로 행해지는 치료는 1시간을 넘지 않았고, 호수공원 같은 야외에서 달리기, 자전거 타기, 킥보드 타기, 그네타기, 원반 던지고 받기, 율동하기, 저글링, 철봉, 줄넘기, 공놀이 등의 외부활동이 최소 3시간은 차지했다. 처음에는 아이들을 맡기고 잠시라도 쉬는 것을 기대했던 엄마들의 원성이 자자했지만 이내 자발적으로 따라왔다. 맞벌이하거나 바쁜 사람들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엄마들은 체육관에 오는 것처럼 매번 옷과 수건을 준비해 왔고 음료수 등 간식도 넉넉히 챙겨 왔다. 야외 활동에서 제일 중시하는 것은 저글링과 철봉이었다. 저글링의 경우, 수준을 섬세하게 구분하고 단계적으로 복잡성을 높여 나갔다. 잘 가르치기 위해서 반복적으로 저글링 연습을 했고 이른 아침 혼자서 저글링 연습을 하고 있으면 행인들이 재미있다는 듯 한참을 구경하고 갔다. 철봉은 다양한 동작을 적용했는데 특히 거꾸로 매달리기는 머리로 피를 몰아 뇌의 신경계통을 자극하는 데 활용했다. 

  평일 반나절 이상을 호수공원에서 아이와 같이 보내는 엄마들도 자의 반 타의 반 운동선수나 레크리에이션 강사가 되어갔다. 비나 눈 등으로 날씨가 안 좋으면 근처 체육관으로 이동했다. 때론 내 돈 내고 이게 뭔 고생이냐며 떨어져 나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자신의 아이가 나아질 수만 있다면 어떤 것도 희생하겠다는 의지로 가득했다. 민이는 레인보우센터를 그만뒀고, 모임의 부모들도 회장을 맡은 나의 학원으로 하나둘 옮겨오기 시작했다. 프로그램 특성상 레인보우와 병행하는 것은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바쁜 와중에도 그녀와의 만남은 횟수가 거듭되어 갔다. 탐욕의 에너지는 커져 가 죄책감의 실체를 삼켜 버렸다. 이동 거리를 줄이기 위해 호수공원 근처의 오피스텔도 잡아 007작전을 수행하듯 만남을 이어갔다. 그녀에게 확인하고 싶었던 아이들의 목 상처 같은 것은 불붙은 옷을 벗어 던지듯 눈먼 욕정에 단숨에 잊혔다. 민이가 회복되었고 나는 유명해지고 있었고 젊고 예쁜 애인과 만족스러운 만남이 있었다. 행복한 나날이 계속될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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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 15일, 진해, 윤정민 

 

  아버지가 이른 저녁 뜻밖의 외식을 권유해 우리는 한 수육 집에서 마주 앉게 되었다. 가게 외관은 허름했고 인테리어는 특색이 없었다. 손님도 많지 않았는데 분위기까지 어수선해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돼지수육과 맥주 2병을 주문하고, 차가운 바닥에 방석을 깔고 앉아 멀뚱히 합석할 한 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외식도 자주 있지 않을 뿐더러, 사전에 누군가와 식사한다는 말을 들은 적도 없었다. 오늘은 극히 예외적인 날이었다.        

  음식은 분위기와 달리 정갈했다. 밑반찬만 봐도 딱 견적이 나왔다. 잘게 자른고추와 잘게 부순 땅콩이 알맞게 버무려져 있는 반질반질한 멸치볶음, 네모반듯하게 먹기 좋게 썰은 노란 호박전, 촉촉하고 매콤한 빨간 도라지, 노르스름하게 잘 구워진 두부가 돼지수육이 놓일 중간 자리를 비워 두고 주변에 먹기 좋게 놓였다. 맥주 2병이 나왔다. 아버지가 먼저 내 잔에 맥주를 따랐고, 나도 병을 받아 그의 잔에 가득 따랐다. 그때, 방 안으로 익숙한 얼굴이 들어와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김태우였다. 우린 오랜 친구처럼 자연스럽게 붙어 앉았다. 태우가 빈 잔을 채운 후, 아무 말 없이 첫 건배를 했다. 맥주 한 모금에 아버지가 침묵을 깼다. 

  “갑작스럽게 두 사람을 보자고 한 거는 둘이 친한 친구였는데,.... 지금부터라도 알고 지내라고 불렀다.” 

  아버지다웠다. 어이없게 이제야 태우를 소개하는 것이다. 태우야 오래전부터 나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해도 나는 전혀 몰랐던 것 아닌가. 누굴 바보로 아는가.... 기분이 급격히 곤두박질쳤다. 그동안 태우를 가로막고 있었던 장본인이 누군가.... 

  “태우야, 너는 민이 잘 알지?” 

  “네. 정민이 잘 압니다.” 태우는 당연한 듯 대답했다. 

  메인 요리인 돼지수육이 나왔다. 둥근 항아리 밑으로 작은 초 하나가 수육 접시를 따뜻이 데우고 있었다. 아버지가 수육 두 점과 양파를 고추냉이 간장에 찍어 먹고 말했다. “민아. 내가 진해에서 오랫동안 태우를 가르쳤는데, 네가 학교 가는 시간이라 마주칠 일이 없었을 거다.” 

  시간대가 달라 소개를 못 시켰다는 변명으로 들렸다. 알고 지내면 안 되는 것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태우는 우리가 일산에 살 때도 매주 토요일마다 와서 치료도 받고 너하고 같이 어울려 지냈다. 둘이 엄청 친했어.” 

  그는 복잡한 심경을 삼켜버릴 듯 연거푸 잔을 비웠다. 인제 와서 만남을 주선하는 그의 어색한 표정과 말투를 보니 태우가 먼저 날 만났다고 얘기했을 것 같았다. 그저 나는 그의 고뇌가 실종 사건과 연관이 없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그가 엄마처럼 사라져 버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계속 엄습해 왔다. 

  그가 맥주 2병을 더 시켰다. 

  “네가 마음이 아파서 오랫동안 말을 못 했을 때 말이다.... 남들 다 가는 초등학교도 못 들어가고 집에서 엄마, 아빠하고 온종일 같이 지냈을 때, 나는 태우가 오는 게 참 좋더라. 왠지 그리운 고향 집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가슴 졸이며 기다리던 선물이 도착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거든. 너도 태우 오는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그는 자신의 잔에 맥주를 따르며 말을 이었다. “근데 태우 아저씨가 일이 생기고, 네 엄마도 사고가 나면서 익숙한 것들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는데, 내 마음이 도저히 버티질 못하겠더라. 내려와서 일도 손에 안 잡히고. 네가 기적처럼 회복이 되어서 그걸로 버텨내긴 했지만, 너마저 안 좋았으면, 나도 어떤 선택을 했을지 모르겠다.” 그가 잔을 비웠다.    

  “그래서 태우가 성당 보육원에서 지냈던 건가요? 그때 아버지가 치료했던 거고요?” 나는 태우를 보며 얘기했다.

  “태우를 돌봐 줘야 했지. 말도 느려서 신경을 써야 했고.” 

  그가 말하는 동안 태우는 고개를 숙인 채 가만히 듣고 있었다. 나는 성당 담벼락 사건을 꼭 확인하고 싶었다. 

  “근데, 태우가 있던 보육원 놀이터에서 애가 한 명 죽었잖아요.” 갑작스런 화두 전환에 아버지는 어색하게 시선을 피했고 태우는 고개만 계속 떨구고 있었다. 

  “아는지 모르겠지만, 그때 죽은 애가 공교롭게 요즘 장복산 실종 사건을 맡은 진 형사 남동생입니다. 그 형사는 벌써 눈치챈 것 같긴 한데, 저도 최근에 알게 되었어요.” 나는 맥주 한 모금으로 목을 적신 후 말을 이었다. “그때 아버지 행동이 옳은지 그른지를 따지려는 게 아니라, 진 형사가 그 사건을 마음에 두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돼서요. 고의가 아니라 하더라도 그때 중학생이었으면 충분히 문제가 될 만한 사안이었는데, 결국에는 유야무야되었죠. 아버지는 당시 태우를 치료하는 선생님이었고, 그 분야에 독보적인 전문가였기에 경찰이나 법원에서 아버지 견해를 거스를 순 없었을 겁니다.” 

  태우가 조용히 잔을 비웠다. 나는 태우의 고의가 있었다고는 믿고 싶지 않았다. 태우를 보호했던 아버지의 행동에 진 형사가 적개심을 가지고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고 얘기하고 싶었다.

  “민아, 난 처음에 죽은 애가 그 형사하고 연관되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아직도 형사가 그 사건을 마음에 두고 있다면, 나를 물고 늘어지는 건 당연할 거고. 사실 그래서 태우가 더 걱정이다 .” 

  “왜 그 사람은 아버지하고 태우를 못 잡아먹어 난리죠? 자기 동생 죽고 엄마도 돌아가신 거는 안 된 일이지만, 태우가 고의로 그런 것도 아니잖아요.” 

  아버지와 태우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예전에는 사고를 일으킨 행동이 실수라면 덮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은 담을 수 없으니까....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진 형사를 보며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실수라도 응당한 처분을 내리지 않으면 남은 자의 고통은 배가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 마라, 하지 마라.’ 두 번의 울림이 귓가에 들려왔다. 

  “이젠 시간이 많이 흘렀고, 태우도 자폐증이 없어져서 그 형사가 따로 알아보기 전까지는 모르지 않을까 싶다. 그냥 조용히 넘어가는 게 어떠냐? 진 형사 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아버지는 고개 숙인 태우를 슬쩍 보며 말했다. 계속 움츠러드는 태우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어서 나는 화제를 돌렸다.

  “아버지, 학원에서는 태우만 가르쳤나요? 돈을 조금이라도 벌려면 학생들이 꽤 돼야 될 것 같은데....” 

  “부자 교포 한 명의 딸도 자폐증상이 있어 내가 수시로 봐줬다. 일산에선 한국 들어올 때마다 봐줬고 진해 내려온 이후로는 쭉 전화나 화상통화로 했지. 운이 좋았던 건지 다행히 그 아이도 좋아져서 그분이 나한테 경제적 지원을 많이 해줬어.” 

  “미국이 자폐 치료가 더 발달해 있지 않나요? 아버지가 전문가라고 해도, 저하고 태우, 그 애도 치료를 하셨다는 얘긴데....”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그는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일산에서 작은 치료실을 열면서 마음이 아픈 애들을 많이 만났지. 초반에만 400명 정도 상담을 했던 거로 기억해. 서울은 기본이고 제주도에서도 먼 길을 마다하고 직접 찾아오는 사람도 있었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도 잘 되는 애가 있었고 차도가 없는 애도 있었지. 따지고 보면 치료를 제대로 못 한 사람이 대부분이야. 혜경이 사고로 내가 정말....” 그는 또 급히 잔을 비웠다. 

  “아버진 한 번도 엄마 사고에 대해 저한테 말씀을 안 해 주셨잖아요? 저도 미치겠지만, 차라리 그냥 얘기하지 그랬어요....”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미안하다. 네가 충격을 받을까 겁이 났다. 내 아들이 그냥 과거를 털고 보통 아이처럼 자라 주면 좋겠다는 생각 이었어. 그게 내 마음대로 안 되는구나.” 

  “그럼 이렇게 가까이 있는 태우도 못 만나게 막았던 이유가 엄마 사건으로 제가 충격 받을까 그런 겁니까?” 

  그가 뜸을 들인 후 말했다. “난 네가 그냥 현재를 살아가길 바랐을 뿐이다. 좋지 않은 과거를 보듬고 살아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른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고요?”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내가 직접 발로 뛰며 알아냈던 사실들만 술자리를 빌려 고백하고 있었다. 일종의 책임회피 심리였다. 아직 내가 알아내지 못했던 사실들도 틀림없이 있을 것이고 그것은 그가 함구하고 있을 것이다. 나중에 또 뒷북을 칠 것이다. 돌아가는 모양세가 그랬다.    


  30 


2005년 가을, 일산, 윤성진 

 

  청명한 가을 하늘빛 마세라티가 호수공원 안으로 천천히 들어와 멈췄다. 하얀색 롱 패딩을 입은 소녀가 내렸다. 뭉게구름 같은 하얀 옷에 이목구비가 뚜렷한 얼굴, 이마 왼쪽으로 살짝 내려온 앞머리, 목화 향이 날 것 같은 소녀였다. 운전석에서 또 한 사람이 내렸다. 그녀의 아빠 재미 교포 존 김. 헐리우드 영화 속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부녀를 나는 주차장에서 반갑게 맞았다. 그의 딸이 주머니에서 손을 빼며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자폐증 소녀답지 않게 나의 두 눈을 차분히 응시했다. 나는 그들을 2층으로 안내해 사무실 내부를 간단히 설명했다. 그는 그간 미국에서 있었던 재미있는 일들을 특유의 유쾌함으로 풀었고 나도 최근의 근황을 설명했다. 회사를 그만둔 일. 사무실을 운영하는 일. 치료프로그램을 구성하는 일 등을 차례차례 얘기했고 그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다. 그의 딸은 구석 선반에 놓여 있는 장난감을 한참 동안 관찰하고 있었다. 그제야 보통 아이들과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미국에서는 치료가 잘 진행되었습니까?” 

  “저하고 여동생도 참여해 열심히 했지요. 여하튼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습니다. 아들은 최근에 경과가 어떻습니까?” 

  “요즘에야 겨우 성과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한번 말이 터지니까 봇물 터지듯 쏟아지는 느낌입니다. 투자로 비유하자면 끝도 없이 바닥을 기다가 갑자기 수직으로 치솟아 계속 상한가를 치는 것 같은 그런 느낌입니다. 그 폭발이 우연처럼, 전혀 예상하지 못하는 때에 찾아왔습니다.”

  “다행입니다. 물이란 것도 100도가 되기 전까지 끓을 기미가 잘 보이지 않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요, 인과관계를 맺기 위한 필연적인 움직임은 내부에서 진행되고 있지만 사람들은 그런 지체현상을 견디기 힘들어 하지요. 자폐로 고통받는 사람이 정말 많은데, 대단하단 말씀밖에 드릴 수 없군요. 우리 딸도 아드님처럼 좋아지면 좋겠는데.... 앞으로 많이 배워야겠습니다.” 그는 입술을 일자로 굳게 다물고 사무실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궁금한 점이 있는데, 정민이 치료실 있잖습니까.” 그는 창밖을 내다보며 갑자기 레인보우센터 얘기를 꺼냈다.

  “네. 민이가 열심히 다녔죠.” 

  “혹시.... 그 원장이란 분은 성함이 어떻게 되나요?” 분위기가 사건을 추리하는 매서운 형사 같았다. 

  “사만다 김 입니다. 나이는 제 또래고 이 분야에서는 한국에서 독보적인 분일 겁니다.” 

  “여자 분인가요?” 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 여자 분입니다. 뭐 때문에 그러시는지요?” 

  “예전에 미국에서 제 딸을 봐주신 분이 있는데 한국으로 들어갔다고 들어서 혹시나 물어봤습니다.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그는 별일 아닌 듯 얼버무렸지만, 목소리에서 예리함이 묻어났다. 

  그는 한동안 한국에 머무를 계획이라며 갑작스럽게 내게 딸의 치료를 부탁했다. 그리곤 안주머니에서 동그랗게 말린 종이 몇 장을 끄집어내어 내밀었다. 딸의 치료 기록이었다. 예상한대로 IQ를 수치화할 수 없는 서번트증후군에 가까운 아이였다.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천재성 자폐아였다. 치료 환경도 부족함이 없을 터였다. 나는 기록지를 사이에 두고 그와 오랫동안 상의했다. 그의 눈빛은 꿈을 향한 청년처럼 살아 있었다.  

  “미국에서는 평일 5시간씩 선생님이 붙어서 홈 티칭을 했습니다. 주 25시간입니다. 한 창 뛰어다닐 나이에 집에만 붙들려 있는 게 보통 일이 아니지요. 한국에 있는 동안만이라도 신체 활동을 많이 시키고 싶습니다. 제 아이가 활동적인 것을 아주 좋아합니다. 그래서 선생님 교육 프로그램이 정말 마음에 듭니다. 전적으로 동의하니까 저한테 설명해 주신 프로그램에 맞춰서 진행해 주십시오. 미국 ABA와 밸런스를 잡아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연이어 말을 꺼냈다. “그리고 이런 말씀을 지금 드려도 될지 모르겠지만, 이런 치료는 단기간에 끝날 것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가능하면 앞으로도 오랫동안 아이를 케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비용에 대해서는....” 

  그가 말을 멈추며 반대쪽 안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을 더 꺼내 내밀었다. 계약서로 보였다. 회사 생활을 하며 연봉계약서란 것에 형식적으로 서명한 적은 있었지만, 아이를 앞에 두고 계약서부터 내미는 것에는 어색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계약서는 치료를 맡은 학원 쪽에서 먼저 제시하는 것이 순서가 아니었던가. 그에게 고용된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확인 부탁드립니다.” 

  단호하게 주장하는 그의 말에 못 이기는 척 계약서를 살펴봤다. 주 2회 수업, 1회 3시간. 4주마다 치료비를 지급하고 금액이 자그마치 4주에 3만 달러였다. 3만 달러면 원화로 환산해 대략 3천만 원이었다. 시간당 백만 원이 넘었다. 아무리 부자라지만 도저히 납득이 안 됐다. 마지막의 면책조항은 더 기가 막혔다. ‘치료성과를 보장하지 않는 것에 동의한다.’ 그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저기. 이건 좀.... 과한 것 같습니다. 이제 겨우 시작인데.”

  그는 이해한다는 듯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얘기했다. “선생님, 저는 현재에 가진 모든 것을, 미래에 가지게 될 모든 것을, 이 아이에게 물려줄 생각입니다. 제 딸이 앞으로 똑바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면 그것이 아무리 많은 부일지라도, 한순간에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선생님은 제 미래자산을 지켜주는 일을 하시는 겁니다.” 

  ‘미래자산을 지켜주는 일이라....’ 고민이 되었지만 인정받는 것 같아 기쁘기도 하고 또 목돈을 만질 수 있다는 욕심도 생겼다. 계약서를 책상 위에 올려 두고 함께 호수공원에 산책하러 나가기로 했다. 채비를 하는 사이, 그가 출입문 옆에 우두커니 서서 신발장 선반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운동화를 보고 있었다. 아홉 켤레 하얀색 아식스 운동화였다. 

  계약서를 보니 오래전 기억이 떠올랐다. 명동 롯데백화점 앞 구둣방. 나는 선물로 받은 구두 티켓을 현금으로 바꾸고 있었다. 티켓과 학생증을 제시하고 돈을 거슬러 받는 순간, 그 좁은 공간에 쭈그리고 있던 아주머니가 뚫어지게 내 눈을 쳐다보며 불쑥 말을 꺼냈다. “아들 공부 좀 가르쳐 주세요!” 

  그렇게 시작된 과외로 나는 대학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육십 평이 넘는 그녀의 강남 아파트를 방문했던 그 순간과 처음으로 받았던 꽃바구니 속 하얀 봉투. 이백만 원. 그것도 그녀가 가진 미래의 부를 지켜주는 대가였던 것일까. 과거에 느꼈던 감정과 어딘지 모를 공통점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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