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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머즈 Oct 08.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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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가을, 일산, 윤성진 

 

  집에 들어오자 민이는 잠이 들었고, 아내는 기다렸다는 듯 민이의 교육 상황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매번 반복되는 브리핑 같아 건성으로 듣고 답했지만 일상적이지 않은 그녀의 목소리에 찜찜한 느낌이 들었다. 

  “오늘, 센터에 갔다가 「바로 여기」 커피숍에서 유나 엄마를 만났거든. 목동에서 다니는.” 

  “그래? 유나가 민이 보다 한 살 적지?” 

  “두 살 적지. 그 사람이 이상한 소리를 하던데.” 

  작위적인 목소리에서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며칠 전에 신촌에서 김은정 선생님이 어떤 남자랑 같이 걷는 걸 봤다는데. 혹시 신촌 간 적 있어?” 

  ‘세상 넓다’라는 말이 거짓 같이 느껴졌다. 

  “아니. 그런 적 없는데. 민이는?” 나는 텔레비전에 시선을 은신시키며 숨 쉴 틈도 주지 않고 화제를 돌렸다. 혜경은 성격대로 진도를 더 나가지 않았지만 나는 엎질러진 물을 어떻게 처리할지 불안하기만 했다. 

  그녀는 가습기 통을 들고 아이 방에서 나오며 말했다. “요즘 센터 아이들 목이 많이 아프고 수족구병 걸린 것처럼 입안에 수포 같은 상처도 생기고 그렇다네. 유나 엄마가 그러는데 한두 명이 아니래. 문제 있는 것 아냐?” 

  “너무 발성 연습을 열심히 해서 그런 거 아닐까?” 

  “유나도 목젖이 부어서 고생하고 있다고 하고.” 

  “음. 내 생각에는 왠지 발음 교정한다고 막대 사탕이나 플라스틱 숟가락 같은 걸 무리하게 사용하다 목젖도 건드리고 혀도 세게 누르고 해서 그럴 거 같긴 한데. 거기가 워낙 열심히 시키잖아. 좋은 것도 과하면 안 되지. 내가 얘길 한번 해야겠어.” 

  “그래. 당신이 다음 상담할 때 얘기 좀 해. 다른 엄마도 비슷하게 생각하나 봐. 과유불급이야. 부작용이 커지겠어.”   그러고 보니 민이도 입안이 자주 헐고 안 하던 헛구역질까지 하곤 했다. 식탁 의자에 앉아 혜경이 그림 카드 만드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봤다. 사진이나 인터넷에서 다운받은 그림 파일을 인쇄해 코팅한 다음 네모난 카드 모양으로 잘랐다. 능숙한 손놀림이었다. 호랑이, 고양이, 사자 그림만 수십 개는 되는 것 같았다. 그녀는 트릭을 정교화하기 위해 비슷한 그림을 있는 대로 찾아내 카드를 만들었다. 민이가 인생에서 어떤 트릭에도 속지 않기를 기도하듯이, 그녀는 그림 카드를 상자 속에 보물처럼 차곡차곡 쌓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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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 12일, 진해, 윤정민 

 

  오늘은 진 형사 동생이 떨어졌다는 담벼락이 보고 싶어 보육원이 있다는 성당으로 향했다. 철제 쇠문을 밀고 들어가자, 좌측 벽에 미사 시간과 월별 행사 계획표 같은 것이 붙어 있었다. 주위에는 사람 한 명 없었다. 정면의 본당 건물에 다가가서야 인기척이 있었다. 문틈 사이로 꽃꽂이로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는 중년 여성 두 명이 보였다. 건물 뒤편 놀이터로 갔다. 네모난 모래사장 옆으로 미끄럼틀과 그네, 시소가 있었다. 시소 뒤로 문제의 담벼락이 있었는데 생각보다 낮았다. 병 조각은커녕 못 하나 박혀 있지 않았고, 동물벽화 때문인지 삭막한 사고 흔적은 느낄 수 없었다. 놀이터 뒤편으로 가정집처럼 보이는 낡은 단층 건물이 보였다. 보육원인 듯했다. 뻑뻑하게 쇠 긁히는 소리가 들리며 미닫이 유리 현관문이 열렸다. 

  “누구 찾아오셨어요?” 긴 백발을 뒤로 묶어 올린 예순은 훌쩍 넘어 보이는 여자였다. 구부정한 자세에 초라한 행색이었지만 얼굴은 어린아이처럼 해맑았다. 

  “특별히 누굴 찾으려는 건 아닙니다. 그냥 예전 기억이 나서요.” 얼버무렸지만 그녀는 내 속을 훤히 들여다보는 듯 눈을 껌뻑였다. 그녀는 쇳소리 나는 현관문을 마저 닫고는 다가왔다. 

  “요즘은 담에 저렇게 예쁜 그림을 그려 넣죠.” 

  “네.... 덜 삭막하네요. 예전에는 담 위에 철조망 같은 게 많이 쳐져 있었던 것 같아요. 여기서 오래 근무하셨어요?” 

  “근무요? 살았다고 봐야죠. 40년도 더 되었어요. 가끔 애들이 찾아 오는데 사람이 계속 바뀌니 좀 어색해하긴 합니다.” 

  “죄송하지만 한 가지만 여쭤도 될까요?” 

  그녀는 얼마든지 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에 여기 담벼락 위에서 놀던 아이 하나가 사고로 죽었다던데요.” 

  예상 못 했던 것일까.... 그녀는 실눈을 뜨며 얼굴을 찌푸렸다. 

  “곤란하면 안 하셔도 됩니다. 저는 J 베이커리 근처에 살고 있는데 친구랑 얘기하다가 생각이 나서 찾아와 봤습니다.” 

  불편한 표정이었지만, 잠시 후 그녀가 모래성을 보며 말했다. 

  “태우라고 있었어요.” 

  갑자기 귀가 쫑긋거렸다. 

  “아빠하고 일산 갔다가 무슨 사고가 났는지 아빠가 교도소에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그 애가 여기 들어왔죠. 엄마도 없고 친척도 없었던 것 같아요. 애가 참 착하긴 한데 말을 못 해서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지도 못했죠. 장난이 심한 편은 아니었는데 높은 데를 어찌나 좋아하던지 겁을 안 내고 이곳저곳 올라갔어요. 타일러 봐야 소용도 없었고.... 그러다 저기 담벼락에서 사고가 났던 거예요. 피해자 가족과도 원래 잘 아는 사이였다는데 사고 났을 땐 태우를 어찌나 몰아붙이던지. 이해야 가지만.... 그 상황에서 보호자 한 명 없고, 말도 못 하는 아이가 대응을 어떻게 했겠어요.” 그녀는 당시 상황이 안타까운 듯 혀를 찼다. 

  “그 아이 아버지가 감옥에 가 있는 동안 전혀 보호자가 없었습니까?” 나는 내 아버지를 염두에 둔 채 넌지시 이야기했다. 

  “고마운 분이 계셨지요. 태우를 매일 아침 9시쯤에 데리고 가서 3시쯤에 돌려보내곤 했거든요. 말하는 치료를 시킨다고 그랬죠. 태우 아버지와 친구 사이라고 했어요.” 

  솔직히 말할까 하다 안 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사실 태우도 거의 소년범이 될 뻔했는데, 그 선생님이 잘 처리해 줘서 무죄가 된 거로 알고 있습니다. 그분 아니었으면 부자가 나란히 교도소에 있었을지 몰라요.” 

  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가 왜 떨어졌는지 기억하시나요?” 

  그녀가 내 옆얼굴을 잠시 쳐다본 후 말했다. “그게. 담 위로 애들이 몇 명 올라갔는데 정확히 본 애가 없어요. 태우는 말을 못 하지, 죽은 애는 말이 없지.” 

  “그럼, 피해자 가족들은 왜 태우를 몰아붙였습니까?” 

  “같이 놀던 애 하나의 진술 때문이에요. 죽은 애가 떨어지기 직전에 하는 말을 들었다고 해서 일이 커진 거지.” 

  “그게 뭔데요?” 

  “하지 마라! 하지 마라! 큰 소리로 두 번 그랬다고 해요. 분명히 들었다고 했는데. 어디 본 사람이 있어야지. 애들끼리 장난치고 놀다 보면 정신없잖아요. 이런 말, 저런 말 다 나왔겠죠. 아무튼 그래서 난리가 났었어요. 죽은 애도 불쌍하지만, 하마터면 태우 인생도 잘못될 뻔했죠. 그 애가 나쁜 짓 할 아이가 아니라는 거는 누구보다 제가 잘 알거든요.” 

  “네.... 그럼 태우란 아이는 아버지가 교도소에서 나온 이후에는 집으로 바로 돌아갔습니까?” 

  “그렇지요. 몇 년 동안 여기서 쥐 죽은 듯 지내다가 그렇게 나갔어요. 당시 어찌나 말이 많던지. 안 그래도 불쌍한 애를 시한폭탄 보듯 하고 나쁜 소문이 쫙 퍼져서, 여기 근처로는 아이들이 놀러 오지도 않았어요. 태우는 그 후로 친구도 없이 계속 혼자 지냈을 거예요. 아시겠지만 여기가 워낙 좁은 동네라 말이 많아요. 그런데요, 참 희한한 게 그 뒤로 태우가 거짓말처럼 말문이 트였다고 들었어요. 지금은 중앙시장에서 생선 가게 한다던데.” 

  그녀는 내가 태우 친구라는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그의 근황까지 알려주며 내 눈치를 살폈다.  

  감사하단 말을 연이어 반복하며 나는 허리를 두어 번 숙였다. 정문 철제 쇠문을 열며 무심결에 뒤돌아보자, 그녀가 우두커니 서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손주를 멀리 떠나보내는 할머니 같은 눈빛이었다. 어색해서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태우가 놀림을 당해 진 형사 동생을 죽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난하고 공격할 대상조차 잡을 수 없던 진 형사의 어린 가슴속 상처도 이해되었다. 날벼락 같은 어린 동생의 죽음 후, 남편 없이 아들만 바라보며 고생하던 엄마마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면.... 나라면 그 슬픔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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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겨울, 일산, 윤성진 

 

  ABA 치료 방법은 다양했고 아들에게 가장 적합한 방식이 무엇일지 고민을 거듭했다. 책상에서 엄격하게 가르치는 것보다는 생활 속에서 신체활동을 동반하는 방법이 더 좋을 것 같았다. 아이에게 자발적인 즐거움을 끌어내고 싶었다. 혜경이 선물한 책은 고시 공부하듯 애독했고, 인터넷으로 관련 자료는 닥치는 대로 읽었다. 전문가가 부족한 분야에서 독보적 장인이 될지 모른다는 상상에 흐뭇했고, 열심히 할수록 민이의 회복이 빨라지는 자기최면에 행복했다. 오기가 생겨나고 많은 아이를 치료하는 환상이 보였다. 

  거리는 연말 분위기로 들떠 있었다. 구세군 냄비의 종소리가 울려 퍼지고 가는 곳마다 크리스마스 캐럴이 들렸다. 점심 식사 후 자리에 돌아오자 존 김에게 갑자기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빡빡한 미팅 일정상 차선책으로 퇴근 후 가벼운 식사를 선택했다. 평소보다 조금 일찍 회사를 나섰다. 버거킹은 지하철 3호선 양재역에 붙어 있었고 집에 돌아가기도 좋은 위치였다. 그가 버거킹을 선택한 것이 의외였지만,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나름의 배려라고 생각했다. 매장문을 열고 들어서자 창가 쪽에 걸터앉은 그가 한 손을 들어 올렸다. 롱 다리 아래로 자주 볼 수 없는 하얀색 구두가 눈에 들어왔다. 첫 만남의 노란 나비넥타이만큼 신선했다. 그는 백구두도 아무렇지 않게 신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다. 둘 다 햄버거 세트를 주문했다. 그는 빨대를 사용하지 않고 콜라를 마셨다. 물방울무늬 남색 머플러가 세련돼 보였다.


  “당분간 미국에 있을 예정입니다. 제가 현재 귀사에 투자한 금액은 세 군데로 분산해서 총 200억 정도 됩니다. 김현수 애널도 정확한 내역은 모를 겁니다. 혹시라도 중요한 일이 생기면 연락 부탁드립니다.” 

  ‘200억....’ 주주명부를 봐도 그 정도 금액을 투자하는 기관투자자는 드물었다. 

  “미국에는 아직 사업하시는 게 있습니까?” 질문 후 햄버거를 한 입 베어 먹었다. 

  “사업 때문에 가는 건 아닙니다. 아이놈 건강이 안 좋아서, 다시 치료를 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비밀을 뱉어 버린 사람처럼 어색해했다. 

  “저희 아들도 건강이 안 좋아서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저절로 말이 나와 버렸다. 

  “무슨?” 존 김은 수평으로 향하던 창밖의 시선을 창가 테이블 앞으로 떨어뜨렸다. 

  “자폐증이 심합니다. 정확한 치료법도 몰라 학원 다니고 집에서도 열심히 교육하고 있는데, 쉽지가 않습니다. 좀체 나아지지 않습니다.” 입 밖에 낸 적 없는 비밀을 버거킹에서 털어놓았다. 

  “그렇군요....” 그는 고개를 들며 말했다. “인생이 재밌습니다. 제 딸도 자폐아입니다.” 그도 입 밖에 낸 적 없을 비밀을 털어놓았다. 비밀이 비밀을 불러냈고 이산가족 상봉하듯 비밀들은 서로를 얼싸안았다.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가는 사람이 보였다.

  “제가 징크스가 하나 있습니다. 미국에서 사업할 때, 주변에서 안 된다고 하면 더 잘되더군요. 투자할 때도 지인들이 그건 아니라고 하면 더 잘되었지요. 정말 이상한 일이죠. 독불장군도 아니고, 고집을 부리면 더 잘되었어요. 물론, 처절하게, 보이지도 않는 밑바닥까지 외로움이 몰려와도 견뎌 내야 잘되는 거지, 못 견디면 단 몇 분도 진지하게 생각 안 하는 사람들 말대로 돼 버리는 겁니다. 잘 될 것도 안 되게 될 겁니다. 제 딸도 사실 모두가 포기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아내조차 오래전에 저와 딸을 떠났습니다. 어미가 배 아파 낳은 자기 자식도 포기하는 마당에, 세상 어느 누가 견딜 수 있겠습니까? 쉽지는 않겠지요.” 재미 교포는 한 구절씩 끊어서 얘기하며 오른 손목, 왼 손목을 차례로 돌렸다. 마치 자신을 향해 최면을 걸고 있는 사람 같았다. 

  “네. 쉽지 않지만 저도 그저 제 운명이려니 합니다. 그렇게 생각해야 견딜 수 있거든요. 계속 이것저것 찾아보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나는 자신의 노력을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어 떠벌리듯 말했다. 

  “회사 일도 많이 바쁘실 텐데.... 전 이번에 운 좋게 좋은 사람을 소개받았습니다.” 

  “개인 교사인가요?” 

  “네. 응용행동분석 대학원 교수로 오랫동안 재직한 분입니다. 그분과 함께 일했던 조교 두 명도 함께 고용할 예정입니다.” 

  쿵 하고 고용이란 단어가 내 앞에 떨어진 것만 같았다. 함께 햄버거를 먹고 있는 그가 부자라는 사실을 망각했던 탓이었다. 갑자기 그가 일어나더니 아무렇지 않게 카운트에서 콜라 리필을 받아 왔다. 200억 투자가의 콜라 리필이었다. 나는 콜라가 부족하다고 느꼈을 때, 단 한 번도 리필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다. 아니 리필이란 게 있는지도 몰랐다. 그는 콜라 값을 절약해서 개인교수에게 딸을 치료시키는 부조화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사업 때문에 바쁜 것도 있었지만, 아이의 발달지연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던 게 제일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그가 콜라를 마시며 말했다. “사실 숨기기에 급급했지요. 만 3세 이전에 집중치료를 했으면, 완치될 가능성이 50%가 넘는다는데. 내 아이가 자폐라는 상상조차 싫었으니까요.” 

  그는 내가 처한 현실의 복사본을 내미는 듯했다. 누구나가 비슷한 진행 과정을 겪는 것처럼 느껴졌다.  

  “저도 마찬가지긴 합니다. 지금도 혼자 끙끙 앓고 있으니까요. 노력은 하지만 자신이 생겼다가도 사라지고. 도저히 갈피를 못 잡겠습니다.”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새 시간이 많이 흐르고 있었다. 그의 긍정적 말투와 고뇌로 가득한 두 눈을 보니 냉혹한 부자의 이미지는 달아나고 그저 비슷한 처지의 형 같은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버거킹에서 각자 갈 길로 돌아갔다. 나는 지하로 그는 지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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