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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머즈 Oct 08.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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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봄 ~ 2008년 봄, 일산, 윤성진 

 

  불행은 한 번에 몰려온다 했던가. 학원 사고 이후, 나는 치료에 집중할 수 없었다. 바닥에 입을 벌리고 굳어 있던 남자의 환영이 눈앞에 어른거리며 나타났고, 그럴 때면 오른 눈 밑이 심하게 떨려와 눈조차 제대로 뜰 수 없었다. 사고 소식을 접한 학부모들은 꺼림칙한 마음에도 당장 학원을 옮기진 않았다. 그래도 모두 나를 보며 수군거리는 것만 같았다. 아내도 충격을 받은 듯 말수가 적어졌고, 목적의식이 사라져 버린 사람처럼 생기가 없어졌다. 힘든 시절에는 민이가 회복만 될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신기루처럼 기적은 손에 잡혔다, 기적이 아닌 것처럼 빠져나가 버렸다. 민이의 회복은 당연한 수순이었던 것처럼 느껴졌고, 우리는 삶의 의미를 상실했다. 기적의 부메랑 같은 것일까. 그렇게 힘든 시절이 오히려 행복했었다는 자괴감이 들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김은정과 만남은 끊을 수 없었다. 그녀도 내게 더 집착했다. 브레이크 없는 욕망의 끝은 절망이었다.

  포근한 4월. 고향의 벚꽃 행렬이 호수공원에 도착한 날, 불행도 함께 행차했다. 김은정과 호수공원 앞 오피스텔에서 땀을 쏟으며 뒹굴고 있을 때였다. 자동차 바퀴가 도로를 긁는 소리가 날카롭게 들리더니 쾅 하는 대포 소리가 팡파르처럼 울려 퍼졌고 축하라도 하듯 사람들의 비명이 메아리쳤다. 그렇게 운명은 가혹하게도 아내와 아들을 도로에 내동댕이쳐 버렸다. 아들의 치료만을 위해 헌신했던 여자는 먼 곳으로 날아간 그 순간에도 아들의 운동화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신은 무료했던 내게 새하얀 붕대를 머리에 감고 산소호흡기를 단 아들이 회복되기만을 바라는 새로운 소망을 불어넣었다. 아내를 떠나보내는 날, 가슴의 피가 거꾸로 솟구쳐 오르는 것 같았다. 장모의 오열하는 소리가 귓가에 온종일 맴돌았다. 신이 내게 새로운 소명을 부여하지 않았다면, 아내에게 금방 따라가겠다고 말하고만 싶었다. 

  다행히도 마지막 희망이던 민이가 회복을 했고 퇴원하던 날, 존 김과 그의 딸이 병원으로 찾아와 무거운 얼굴로 나를 위로했고, 일산을 떠나는 사실을 아쉬워했다. 김성용은 상해치사죄로 집행유예 없이 5년 실형을 선고 받았고, 태우는 진해 성당의 보육원에 맡겨졌다. 그 후 김은정은 센터를 그만두고 연락이 두절되었고 레인보우 원장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근처 한정식집에서 코스 메뉴를 먹고, 호수공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큰 그네를 타는 그의 딸을 민이가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었다. 

  “갑자기 고향으로 가게 되어 아쉽지만.... 마음부터 잘 추스르고 힘내서 회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하긴요.... 부디 안정되면 제 아이 치료는 예전처럼 계속 부탁드렸으면 합니다.”  

  “아이 치료를요?” 

  “저는 사업도 있고 개인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남아 있어 계속 미국과 한국을 오갈 계획입니다. 전문가야 많지만, 윤 선생님이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그냥 전화나 인터넷으로 상담만 해 주셔도 됩니다. 계약은 동일하게 유지하고 싶습니다.” 

  후원에 가까운 계약이었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민이 기억은 회복된답니까?” 

  “의사 말로는 이전 기억은 거의 소실된 상태라고 합니다. 간헐적으로 기억들이 끊어져서 떠오를 수도 있고 연결될 수도 있지만 완전하게 기억을 회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건강하게 퇴원한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자폐를 앓았던 과거의 기억쯤이야 사라져도 상관없었다. 아내에 대한 사고 기억도 사라지는 편이 오히려 낳을지 모른다. 무엇보다 그 악마에게 당했을지 모르는 기억들은 모조리 사라져야 했다. 이제부터는 새로운 삶을 살라는 하늘의 계시를 나는 받아들이기로 맹세했고 집으로 돌아와 과거의 흔적을 모조리 지웠다. 

  폭이 좁아지는 샛길로 접어들자, 하얀 털이 수북한 큰 개가 보였다. 주인으로 보이는 여자가 목줄을 놓고 있어, 존 김의 딸이 개에게 물리지나 않을까 신경이 쓰였다. 개가 가까이 다가와 주인에게 주의를 시키려 하자, 존 김이 느긋한 모습으로 내게 윙크했다. 아무 걱정 말라는 것 같았다. 

  “선생님은 보이지 않는 손이 있다고 생각하세요?” 그가 뚱딴지같은 질문을 했다. 

  “경제학에서 나오는 용어 말씀하시는 건가요?” 건성으로 답은 했지만, 나는 여전히 개 때문에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보다 일반적인 의미입니다. 저 개는 사람을 물지 않을 겁니다.” 

  “왜요? 꼬리를 흔들고 있긴 하지만 방심하다간....”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통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개가 딸에게 다가가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진짜 물리면 어떡하려는 것인가.... 개는 아이 주변을 맴돌았다. 

  “방심하다 개에 물리는 사람도 많지 않습니까? 특히 아이의 경우는 그런 일이 심심치 않게 일어납니다. 저렇게 큰 개는....” 

  “물론입니다. 개는 본능적으로 공격할 수도, 공격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저 개는 훈련을 아주 잘 받은 개로 보입니다.” 그는 개에 대해 잘 아는 사람 같았다. “개를 많이 다뤄본 사람은, 그 개의 본능과 통제방법도 잘 알지요. 고통을 주건 유인을 하건, 주인은 보이지 않는 손으로 개를 복종시킵니다.” 

  그가 개를 보며 보이지 않는 손의 철학까지 비유하는 이유가 선뜻 이해되지 않았다. 가끔씩 나도 그의 말처럼 무형의 목줄에 의해 내 목덜미가 당겨지고 있는 이상한 느낌이 들 때도 있었다. 두껍게 양 갈래로 꼬여 있는 하얀색 목줄을 내 목에 감고, 잡아당기는 검정 손의 환영. 두려움이라는 허상 속에 흔들릴수록, 그 검정 손은 더 강하게 목줄을 쥐고 이쪽으로 저쪽으로 나를 흔들어 댔다. 

  “선생님, 근심이 많아 보여 걱정입니다. 제가 도와 드릴 일이 있으면 언제든 말씀해 주세요. 사실.... 제 코가 석 자지만요. 제 목을 죄고 있는 사슬도 끊어 버리지 못하니....” 

  “실례가 안 된다면 그게 뭔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그가 망설인 후 다시 걷기 시작했다. “사람을 한 명 찾고 있지요. 아주 오래도록. 그 사람 때문에 지금도 두려움에 꼼짝할 수 없을 정도로 괴로울 때가 있습니다.” 그는 돌 하나를 집어 호숫가로 던졌다. 그의 딸이 달려와 아빠 모습을 흉내 냈다. “선생님, 저것 보세요. 돌을 던지는 작은 행동 하나도 제 딸은 절 모방합니다. 제가 겁쟁이처럼 행동하면, 제 딸은 그것을 분명히 기억하게 될 겁니다. 저는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제가 운명을 헤쳐 나가면 제 딸도 그것을 똑똑히 보고 배울 겁니다.”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요?” 

  “운명이란 뭐랄까, 기차를 타고 목적지를 향해 달리는 것에 비유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의 진지한 운명론에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이 같은 운명을 타고났다고 해 봅시다. 그 두 사람은 같은 목적지로 향하는 티켓을 끊고, 같은 기차를 타게 되는 셈이죠. 목적지, 시간, 이동수단이 동일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지나치는 풍경들과 정차역이 똑같다고 해도, 객차 안에서 만나는 사람과 나누는 이야기가 비슷하다 해도, 한 사람은 그냥 중간에 내려버릴 수도 있고 다른 기차로 환승할 수도 있습니다. 중간에 목적지를 바꾸거나, 이동수단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매우 귀찮은 일이긴 하지만 가능한 일입니다. 운명이 정해진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대부분의 사람이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어서겠죠. 인생의 모든 사건이 미리 정해져 있는 듯 느껴지지만, 사실은 선택의 결과물이고, 그 선택이라는 것은 우리 스스로가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는 가만히 있지만 않는다면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인생은 매우 귀찮은 일을 해야 할 필요도 있는 겁니다.” 그는 작별이 아쉬운 듯,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것 같았다. 선택으로 운명을 바꾸겠다는 것, 사람을 찾는다는 것 그리고 아이에게 모범을 보인다는 것의 관계에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 감이 안 오긴 했다. 

  “선생님이 그 사람을 찾는 목적이 아이에게 보여 주고 싶은 부분과 연결이 될 수 있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그 사람을 찾아서 반드시 제 아이에게 보여 주고 싶은 부분이 있습니다.” 그는 다시 돌 하나를 집어 호숫가로 던졌다. 그러자 그의 딸도 아버지를 따라 행동했다. 

  호수공원을 반 바퀴 정도 돌자 주차장이 가까워졌다. 그가 발걸음을 늦추며 천천히 돌아서 영화배우처럼 멋진 입가 웃음을 흘렸다. 나도 밝게 웃으려 애썼지만, 쉽지 않았다. 그는 또 연락하겠다며 엄지를 세우며 활짝 웃었고 그의 딸도 밝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안녕! 정민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상황이 이해 불가인 듯 멍했다. 이제부터는 아들에게 내가 아빠라는 것부터 다시 가르쳐야 한다. 새로운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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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 18일, 진해, 윤정민 

 

  나는 태우에게 엄마가 일본에 살고 있고 진해에도 가끔 오지만 죄책감 때문에 그의 주변만 맴돌고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희한하게 그는 놀라지 않았다. 자신의 상처마저도 관망하고 있는 사람 같았다. 심해에 가라앉아 버린 고통을 단번에 인양하기 벅찰 수 있을 것이다. 산산조각 내어 하나씩 건져내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엄마 기억은 나냐?” 

  “조금.” 

  “알아볼 수는 있겠냐? 거의 20년이 지났는데....” 

  “그냥 엄마 같은 느낌이 들 것 같은데.” 

  그녀의 연락처가 적힌 메모지를 건네자 그는 소중히 받아들었다.      

  “태우야. 자꾸 마음에 걸리는 게 있는데.... 일산 사고 관련해서 박영호 아저씨는 내가 운동화를 일부러 도로로 던졌다고 그러던데? 달리기 자랑한다고.” 

  “난 네가 발차기하다 우연히 신발이 날아간 거로 기억해.” 

  “그래? 발차기는 왜 했을까?” 

  “글쎄.... 그건 나도 모르겠다.” 

  헷갈렸다. 당시 사고를 증언해줄 수 있는 사람은 내 곁에서 함께 놀았던 태우가 유일하다. 박영호 아저씨는 잘못 들었던지, 기억이 흐려졌을 가능성이 크다. 

  갑자기 벨의 진동이 울렸다. 전화 올 데도 없었고 스팸도 아닌 것 같았다. 선뜻 떠오르지 않는 번호라 머뭇거리다 전화를 받았다. 병원 간호사였고 다급한 목소리였다. 또 무슨 사고를 친 것인가....  헐레벌떡 도착한 병실에는 처음 보는 남자가 동상처럼 우두커니 서 있었다. 중간키에 큰 눈의 미남형 얼굴에다 하얀 피부 때문인지 도회적이고 세련된 분위기가 풍겼고 익숙한 향기가 났다. 아버지는 흰 동공을 드러낸 채, 침대 위에 누워 두 손, 두 발을 뻗어 흔들어 대고 있었다. 벼락을 맞은 것처럼 덜덜거리는 모습이 당장이라도 정신병동 개인실로 옮겨야 될 것만 같았다. 비참한 기분이 폭풍처럼 휘몰아치는데도 그 남자는 목석처럼 아버지를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버지가 그와 함께 있다가 발작을 일으켰고, 그가 병원에 연락해 구급차로 함께 왔다는 것이었다. 그는 실종된 원장의 남동생 제이 김이었다.  

  그는 조사를 위해 진해에 잠시 내려와 있고 누나 행방을 찾기 위해 이곳저곳 수소문하고 있다고 했다. 어딘가 낯이 익었지만 그를 만났을 가능성은 없었다. 아버지는 간호사 두 명에게 붙잡힌 채 안정제를 맞고 경직된 팔다리를 떨어뜨린 채 겨우 잠이 들었고 나는 그와 병실 밖으로 나왔다. 먼저 감사하다는 인사부터 전했다. 아버지가 그의 누나와 친분이 있지만 나쁜 짓을 할 사람이 아니라는 속마음도 전하고 싶었다. 그도 아버지를 의심하고 있을 게 뻔했기 때문이다. 복도에 놓인 기다란 의자에 앉을 때 뽁. 뽁. 작지만 자극적인 소리가 들렸다. 고양이처럼 귀가 계속 쫑긋거렸다. 뽁, 뽁. 뽁. 그 소리는 서너 번 더 들리더니 멈췄다. 그가 습관적으로 내는 입술소리 같았다.    


  “호텔을 어떻게 알았는지 아버지가 갑자기 찾아왔어요. 무슨 생각으로 왔는지.... 별 얘기도 안 했는데 갑자기 발작을 일으켰고.... 예전부터 그랬어요?” 그는 웃고 있었다. 감정을 얼굴에 잘 드러내지 않는 포커페이스인가. 누나를 걱정하는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아버지는 왜 그를 찾아갔던 것일까. 

  그가 왼쪽 다리를 꼬고 말했다. “누나와 제가 미국에 처음 갔을 때, 운동을 하는데 못 따라할 때가 많았어요. 영어도 못하고 특별히 공부를 잘했던 것도 아니고 체구는 작지 힘도 약하지. 운동이라도 잘했으면 좋았을 텐데. 오히려 못했죠. 방해된다고 제대로 하는 게 없다고 놀림 받고 괴롭힘도 많이 당했어요. 그 이후로 저희에겐 방어 수단이란 게 생겼거든요. 뭔지 아세요?” 

  이 사람이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일까. 엉뚱한 내용 전개였다. 

  “모르겠습니다.” 나는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아픈 척하는 거예요. 그러면 변명이 통했죠. 발이 아픈 척, 배가 아픈 척했지요. 마치 잘 할 수 있는데 어쩔 수 없는 것처럼. 욕을 먹을지라도 동정심을 끌어내는 것이, 자존심을 짓밟히는 것보다는 좋았지요.”

  아버지가 아픈 척해서 동정심을 끌어 내고 있다고 돌려 비판하는 것 같았다. 기분이 나빴지만 나는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는 왜 그러신다고 생각하세요?” 

  “모르겠습니다. 왜 그쪽으로 찾아갔는지도 모르겠고.”

  “아픈 척해서 변명이 통하는 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결국은 자신을 변명 속에 갇히게 만들죠. 그럼 진짜 아프게 되어 버리죠.”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지만, 평소에도 아버지가 자주 아프셨습니다. 오해는 하지 마셨으면 좋겠습니다.” 그가 아버지를 의심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진해라는 곳이 돌아다녀 보니까, 살기 좋은 곳 같네요. 오래 사셨어요?” 그가 곁눈질로 물었다. 기분 좋은 얼굴은 아니었다. 

  “네, 저는 아버지 따라 중학교 때 내려왔습니다. 지금은 서울에 있다가 잠시 내려온 거지만....” 

  “아기자기하네요. 높은 건물들이 마음대로 경관을 해치는 분위기도 아니고, 뭔가 계획적으로 만들어 놓은 느낌도 들고.” 

  “예전에는 높은 건물이 거의 없었습니다. 군사지역이라 고도제한에 묶여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스카이라인이 바뀌기 시작했어요. 인구도 많이 늘어나고 있고요. 예전에는 10만 명 정도였는데, 지금은 그 2배 정도 될 거예요. 이제는 통합되었으니까 창원시 진해구라는 표현이 맞겠지요. 원래 이 도시가, 러일 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한 후에 해군 항으로 개발하기 시작하면서 일제가 계획도시로 조성한 곳이에요. 여기는 구도심인데, 예전에 일본인들만 5천 명 넘게 살았던 동네죠. 군사도시라 엄격하게 한국인과 일본인 거주 구역을 구분했다 해요. 원래 이곳에 살던 한국인들은 외곽으로 강제 이주되었지요. 그래서 여긴 장옥이라고 일본 주택들이 원형 그대로 보존되고 있는 곳들이 꽤 있습니다.” 나는 가이드라도 된 양 열심히 설명했다. 그가 잔잔한 미소를 지었지만 진지한 호기심이 있다거나 잘 설명해 줘서 감사하단 표정으로 보기는 어려웠다. 

  “그렇군요....” 

  어디선가 양키 캔들 향이 났다. 그가 말을 하며 무심코 입술을 모아 다시 뽁, 뽁 거렸다. 그 모습을 본 순간, 총알이 머리에 구멍을 낸 것처럼 강렬한 장면이 떠올랐다. 그 장면은 너무나 강력하게 각인된 것이었다. 뽁, 뽁, 뽁.


  “정민아. 이리 가까이와. 그렇지. 아! 하고 입을 크게 벌려봐. 그렇지! 이제 입술을 모으고 뽁. 뽁. 뽁. 잘하네. 뽁, 뽁, 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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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여름~겨울, 일산, 윤성진 

 

  한순간에 좌표를 잃은 학부모들은 대부분 레인보우센터로 되돌아갔다. 레인보우는 규모가 더 커져, 호수공원 맞은편 오피스텔 건물로 확장 이전했다. 학부모 대기실도 만들었고, 수업 후에는 곧바로 10분의 상담 시간을 가졌다. 치료사만 15명으로 불어나 한국에서 가장 많은 자폐 전문가를 보유한 집단이 되었다. 센터는 철저히 응용행동분석 치료프로그램을 중점으로 운용했고, 그 시스템으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가면이 벗겨진 악마가 은신하자, 아이러니하게 센터는 발전을 거듭하고 있었다.  


  떠나더라도 학부모들에게 인사는 하고 싶었다. 서울에서 온 학부모들이 예전 센터가 있던 곳의 작은 카페, 「바로 여기」에 하나둘 모여들었다. 먼저 도착한 사람은 총 여섯 명이었다. 모임의 리더인 윤경 엄마가 모임의 취지에 관해 이야기를 꺼냈다. 

  “여러분, 아시겠지만 오늘은 윤성진 선생님 환송회입니다. 향수병이 생겨 잠깐 내려가시지만 금방 올라오시겠답니다.” 그녀가 말하며 크게 웃었고 학부모들도 손뼉을 쳤다. 그녀가 말을 이었다. “정말 헌신적으로 아이들을 치료해 주신 선생님께 다시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엄마들이 일제히 내게 고개를 돌리며 박수를 보냈다. 

  “그럼 선생님 말씀 듣고, 질문 시간 가지겠습니다.” 

  사람들은 다시 박수를 쳤고, 나는 엉거주춤 일어나 답사를 했다.    “지금, 이 순간도 얼마만큼 피곤하고 스트레스가 많을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불확실하고 절망적이고 우울해지는 상황, 모두 공감합니다. 그래서 아이를 치료하는 것보다 여러분의 마음을 끝까지 붙들어 매는 것이 우선입니다. 잘 되든 안 되든, 평가점수가 낮든 높든, 미래를 예단하고 흔들릴 필요 없습니다.” 나는 졸업식 축사 중인 명사처럼 또박또박 진심을 전했다. 박수가 이어졌고 뒤늦게 도착한 사람이 자리에 앉자, 서로 아는 체하느라 분위기가 다시 어수선해지기 시작했다. 맨 끝자리에 앉아 있던 수민 엄마가 찌푸린 얼굴로 질문을 개시했다. 

  “선생님 얼굴 뵙고 드리는 마지막 질문일 수 있겠네요.... 책을 봐도 모르겠고 어디서 상담이라도 받을라치면 전부 돈이라 답답합니다. 자제분도 그렇겠지만, 사실 자폐 아이 마음을 들여다본다는 게,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아서요. 말도 못 하고 손짓·발짓으로도 어떤 표현도 못 하는 아이 마음을 무슨 수로 들여다본다는 것인지. 작은 팁이라도 알려 주시면 좋겠어요. 교과서적인 것 말고요. 매일 아이만 보고 있으면 가슴이 꽉 막힌 것 같아 정말  죽기 일보직전입니다.” 

  여기저기서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보였다. 

  “자폐 치료에서 제일 중요한 부분인 동시에 어려운 점이지요. 저절로 닫혀 버린 아이의 마음을 귤껍질 까듯이 열 수만 있다면야, 그건 이미 치료한 거나 매한가질 겁니다. 인간의 소통 수단인 언어로 표현이 안 되는 아이 마음을 이해하는 것은 부모라도 너무나도 어려운 일입니다. 아시겠지만 저도 정답은 없어요. 그렇지만 아주 조금이라도 비집고 들어갈 방법은 체득하고 있습니다. 아이가 관심을 두는 것을 우선 찾아내야 하고, 이왕이면 많이요. 다음에는 그것으로 드라마나 영화를 찍는 감독처럼 다양한 상황을 연출해 내야 합니다. 어렵죠. 예를 한 번 들어볼게요. 과일 젤리를 좋아하는 철수가 있습니다. 철수 동생의 손에 젤리 1개를 쥐여 줄 때와 2개를 쥐여 줄 때, 그 아이가 동생을 보고 어떻게 행동하는지 동영상 촬영하는 것처럼 유심히 살펴봅니다. 동생 손의 젤리 1개를 뺏을 수도 있고, 2개 다 뺏을 수도 있고, 아니면 동생 주변을 맴돌 수도 있고, 아예 무관심할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철수 손에 직접 젤리를 쥐여 줄 수도 있지요. 이런 작은 실험과 관찰을 통해 철수와 동생의 상호작용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들은 너무 다양하고 많아서 억지로 머리를 짜내려면 엄두가 안 나죠. 그렇지만, 할 수밖에 없습니다. 보통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여러 상황에 노출되고 그 상황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을 우리 아이들은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전문가의 도움도 적절히 이용하고 비슷한 사람들끼리 각자 팁을 공유도 한다면, 도움이 될 수 있을 겁니다.” 

  머리를 뒤로 묶어 올린 지석 엄마가 물었다. “지석이는 일곱 살인데 아직 입도 뻥긋 못합니다. 매일 플라스틱 같은 딱딱한 것을 이로 물어뜯고만 있고요. 어떤 때는 심지어 먹기까지 합니다. 아무리 말려도 제가 안 보이면 그 짓을 하고 있습니다. 병원에서도 학원에서도 책에서도 뚜렷한 개선 방법은 없습니다. 그저 아기처럼 구강 집착의 전형이 우리 애한테 남아 있어서 그렇다고 얘기하는데, 멈출 방법이 없을까요? 정말 걱정됩니다.” 

  “제 아이도 비슷한 현상이 있었습니다. 그런 자기자극은 마법 봉을 탁 치면 사라지듯, 단번에 소거할 방법은 없습니다. 머리가 간지러워 죽겠는데 손을 묶고 긁지 말라 야단만 치는 경우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어떻게든 가려운 곳이 생기면 긁고 싶은 것이 감각을 가진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입니다. 아이는 심심할 때, 원하는 무언가 말하고 싶을 때, 그 충족되지 못한 욕구를 표출할 수 없어서 딱딱한 것을 물어 그 욕구를 해소합니다. 그런 욕망 해소용 자기자극은 역으로 이용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오히려 학습효과를 얻는 방향으로 역이용하는 것이지요. 또 자기자극이란 것도 하나에 머물지 않고 계속 변화해간다는 것도 고려해야 합니다. 싫증을 느낄 때마다, 아이가 원하는 것으로 바꿔주고 그것을 강화제로 사용해 새롭게 교육에 적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다 보면 하나의 자기자극은 자연스럽게 사라지거나 다른 자극으로 옮겨갈 겁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도 있고 가로 젓는 사람들도 있었다. 작정이라도 하고 온 듯 질문은 계속 이어졌다. 검정 블라우스에 뽀얀 얼굴의 재영 엄마가 준비한 다이어리를 펼쳐 보며 질문했다. 

  “제 아이는 말도 잘하고 인지능력도 우수한 편에 속하지만, 심리적으로 너무 불안합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예측 불가능할 정도의 발작을 할 때가 있습니다. 어떤 때는 10분 넘게 웃음을 멈추지 않고, 어떤 때는 한 시간 동안 울음을 멈추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공통적으로 청소기 소리, 공중화장실 핸드 드라이기 소리를 들었을 때, 친구가 넘어져서 울음을 터뜨릴 때, 전자레인지의 삐삐거리는 소리, 난방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가 들릴 때 등, 주로 특정한 소리에 감정이 격앙되기 시작합니다. 병원이나 전문가들의 의견도 특정 소리에 지나치게 민감한 경우가 있으니 조심하라는 등의 내용이 전부입니다. 특정 소리에 덜 민감해지는 방법이 없을까요?”

  “그건 감각과잉 증후군입니다. 작은 시계 초침 소리도 천둥소리처럼 들릴 수 있어요. 농담처럼 들리시겠지만 어떤 아이들은 지하의 수맥도 찾아낼 수 있고, 미세한 전파 소리도 들을 수 있습니다. 지금 말씀하신 소리는 어떤 아이에게는 너무나 괴로운 소리일 수 있습니다. 그런 소리에 익숙해지면 되는데 쉽지 않은 것으로 압니다. 동물의 발달한 후각을 없애기가 쉽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래도 간접경험을 이용해 그 소리가 위협적이지 않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도록 훈련해야 합니다. 가정에서 프로그램을 짜는데 단계는 최대한 세분화해야 합니다. 출발점이 1이고 도착지가 10이라고 가정했을 때, 보통 아이들이 1, 2, 3과 같은 단계로 10에 도달한다면, 우리 아이들은 0.01, 0.02, 0.03과 같은 단계로 10에 도달하게 해야 합니다. 100배의 노력이 더 필요합니다.” 

  곳곳에서 들려오는 한숨 소리를 가로지르며 리더가 말했다. “제가 딸의 관찰 일지를 쓰기 시작한 것은 윤 선생님 영향이 컸습니다. 여러분들도 잘 알다시피 우리 모임의 초대 회장인 윤 선생님도 아들이 중증자폐를 앓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매일 관찰 일지를 써서 자기 아들이 어떤 식으로 세상을 보는지 알고자 노력했습니다. 자신의 관찰을 통해서 아들의 마음을 알아냈다는 것이죠. 청소기를 돌리다가 그 말이 생각나서 펑펑 울었던 적도 있습니다. 써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관찰 일지라는 것이 보통 힘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초등학교 이후로 일기 한번 제대로 써 본 적이 없던 저로서는 지금도 사실 너무 귀찮습니다. 그래도 이를 악물고 딸의 마음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하루하루 참고 있습니다. 기적적으로 제 딸은 말이 조금씩 늘긴 했는데, 무슨 부작용인지 몰라도 바나나, 가지 등 기다랗게 생긴 물건에 심한 거부감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원인을 곰곰이 떠올려 보니... 조금 부끄러운 얘기지만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전 오랫동안 남편으로부터 심한 성적 학대를 받았는데, 우연히 아이가 그런 모습을 본 것이 아닐까 생각하니 마음이 찢어지게 아픕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아이가 두려워하는 부분을 없앨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입이 바싹 타들어 갔다. 그녀의 말이 멈추자, 빨간 후드티를 입은 민진이 엄마가 테이블 앞으로 몸을 바싹 당기며 말했다. “윤경 어머님 말씀도 일리는 있습니다만, 우리 아이 경우를 생각해 보면 조금 이상한 점이 있어요. 우리 민진이도 똑같이 바나나, 가지, 오이 등 기다랗게 생긴 물체에 심각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거든요.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요샌 진짜 바나나만 보면 경기를 일으킬 정도예요. 사시나무 떨듯 몸을 부들거린다니까요. 저는 남편과의 관계도 나쁘지 않고, 또 부부관계를 아이가 본 적도 없을 거로 생각해요. 아이가 그런 증상을 보이는 것을 보면 뭔가 다른 이유가 있을 거 같아요. 애가 한동안 목이 붓고 입안이 헐고 그래서 병원을 자주 다녔어요. 혹시 레인보우센터에서 바나나나 오이 같은 걸 입에 넣고 심하게 연습시켜 그런 건 아닌지 걱정됩니다.” 

  나는 커피머신 뒤에서 무언가를 만들고 있는 청년과 눈이 마주쳤다. 그가 심하게 떨리는 내 다리와 비겁한 마음을 훔쳐보는 것 같아 급히 시선을 돌렸다. 원장은 새빨간 거짓말을 했다. 그놈에게 당한 아이는 한두 명이 아닐 것이 확실했다. 실상이 밝혀지면 그 악마의 죄를 덮은 비겁한 나는 이 세계에서 영원히 일어서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가까스로 마지막 모임을 마치고 아들과 함께 호수의 도시를 황급히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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