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아이가 말한다. “엄마, 오늘은 뭐 했어?”

<홀로서기 10탄>

by 홍민희

앞으로 복직을 두 달 남겨두고 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남은 것이 아니라, 내 의지로 남겨두었다고 하자. 그러면 덜 슬플 것 같다.


처음 휴직을 할 때는 사무실과 집만 오가던 내가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낼지 막막하기만 했다. 돈보다 시간을 선택했으니 똑같은 시간 속에서 후회 없는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은 또 다른 스트레스가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만들까 더 전전긍긍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냥 마음 가는 데로‘괜찮다’싶은 수업은 여건이 되는 한 모두 신청한 듯하다.


캘리그래피, 기타, 오름해설사, 스피치, 한컴 한글, 정원 가꾸기, 브런치 작가 되기, 에세이 쓰기, 에니어그램 등 수업을 들었고, 일본어능력시험과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을 보았다. 여전히 오름을 오르고 있고, 글쓰기 수업을 듣고 있으며 챗 GPT 수업을 받을 예정이다.


나의 할 일에 적어놓으면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생각 없이 너무 많은 것을 욕심내었나 싶을 때도 있었다. 숙제처럼 정해져 있는 글쓰기가 은근히 부담스러웠고, 한국사 시험공부를 할 때는 자존심에 불합격이라는 창피함을 피하기 위하여 오름 가는 것도 빼먹으며 아이들에게 벼락치기의 진수를 보여 주듯 며칠을 새벽까지 공부하였다.


“저보다 더 바쁩니다.” 남편이 나를 놀리는 듯 내 친정 부모님께 요새 가장 많이 하는 말이다. 남편이 어떤 불만을 가졌던 출근이 늦은 남편보다 항상 먼저 집을 나섰다. 남들이 보면 쉴 줄 모르는 병이라 생각할지도 모르나, 꼭 쉬는 장소가 집일 필요는 없지 않은가.


직장생활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지쳐갈 때쯤이라 휴직을 하면서 사람을 좀 멀리해보고자 했으나, 새로운 사람들을 사귀며 여전히 사람과 사람 사이를 오가고 있다. 차이점은 나에게 ‘어떤 요구’를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어떤 생각’인지를 묻는 사람들 사이로 바뀌었다. 지금의 사람들 사이에서는 내 모습이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중요하지 않다. 내 생각 한 마디 정도만 말할 수 있다면 좋은 관계인 것이다.


요즘 산책을 밤 10에 하고 있다. 수능이 얼마 남지 않은 아들이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같이 산책을 해야 한다는 엉뚱한 루틴 때문이다. 아들은 사람이 아닌 고3이기에 명확한 이유를 따지진 않았다.

사람이 아닌 고3인 아들과 아빠랑 단둘이 있기 싫은 중1인 딸과 함께 오늘도 산책을 하고 있을 때 딸이 물었다.

“엄마, 오늘은 뭐 했어?”

“오늘은 에세이 수업 듣고, 도서관 가서 글을 썼지. 책도 읽어야 하는데. 책 읽을 때마다 졸려서 큰일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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