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말한다. “엄마도 손재주를 갖고 싶어.”

<홀로서기 8탄>

by 홍민희

과한 욕심을 부렸다고 깨닫는 순간은 항상 맞닥뜨려야 알 수 있다. 맞닥뜨리기 전에 알 수 있다면 덜 수고스럽고 나에 대한 자아비판도 덜 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책을 읽을 때마다 좋은 글귀는 무작정 공책에 필사를 하다 보니, 글씨를 예쁘게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휴직을 하면서 제일 먼저 신청한 것도 캘리그래피 수업이었다. 문화센터와 평생학습관 두 군데를 매주 한 번씩 돌아가며 ‘붓펜캘리그래피, 플러스펜 수채캘리그래피’ 수업을 4개월 정도 받았다. 두 과정 모두 캘리그래피 수업이긴 했지만, 다른 선생님이라 가르치는 방법이나 글 쓰는 스타일도 달랐다.


수업시간 한창 글씨 연습하고 있는데 선생님이 지나가니 손으로 쓱 가렸다. “손으로 가린다고 안 보여요?” 내 모습을 놓치지 않고 선생님은 꼭 한마디를 하셨다.

앞에 마주 보고 앉으신 수강생분이 웃음을 꾹 참으면서 말했다. “나처럼 초등학생 글씨 같다고 말 들을까 봐 가렸어요?” 그 말에 나도 웃음을 꾹 참으려 고개를 끄떡였다.


수업은 재미있었다. 뛰어난 우수생은 될 수 없었지만 결석하지 않는 모범생은 되려고 노력하였다. 수업이 거의 끝나가고 있을 무렵이었다. 4개월 수업을 받았지만, 실력이 없으니 아들에게 <수능대박!>이라는 문구 하나 써준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선생님. 손재주 없는 사람도 실력이 올라가긴 할까요?” 답답한 마음에 선생님께 물었다.

선생님은 고민 없이 말씀하셨다. “그럼요. 재능이라기보다는 연습이 더 중요한 게 아닐까요. 굳이 재능을 따지자면, 손재주보다 눈재주 있는 사람이 잘하긴 하죠. 저는 처음에 ‘곶자왈’이라는 글씨가 너무 어려워서 ‘ㅈ’ 자만 하루 종일 연습하기도 했는데요. 요새도 시간만 있으면 커피숍에서 연습 엄청해요.”

나도 사람 많은 커피숍에서 연습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만 되어도 소원이 없겠다고 생각하며 선생님을 향해 웃었다. 수업이 끝나고 개근상으로 붓펜도 선물 받았지만 ‘완성된’이 아니라 ‘연습 중’인 글씨에 머물렀다.

"사실 그림 그리기는 손재주보다 눈재주가 더 중요하다. 그런데도 우리는 늘 손을 문제 삼는다. 재능이 타고나지 않아서 손이 말을 안 듣는다는 이야기를 자주 접한다. 손은 억울하다. 어렸을 때 젓가락 연습하던 때를 생각하면 손을 이해할 수 있다. 연습 없이 잘 그리는 사람은 없는 거니까. 모든 재능은 연습으로 만들어진다고 믿는다. 그러니까 무턱대고 ‘똥손’이라고 손을 탓하지는 말아야 한다.”


이기주 에세이 『그리다가, 뭉클_매일이 특별해지는 순간의 기록』의 한 구절이다. 이 구절은 예쁜 글씨 옆에 멋있는 그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갖고 있던 나를 움직이게 했다. 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하는 ‘드로잉’ 수업을 신청하였다.


첫 수업날이었다. 수강생들끼리 서로 인사를 주고받고 있었다. “어머, 저번 강의에서 보고 또 보내요. 저도 이어서 그림을 그리려니 수업을 또 신청했네요.” 뭐야? 심화반이라고 안 적혀 있는 데.

선생님이 들어오시고 수업에 대해 설명하셨다. “저번 학기에 수업받았던 분들 꽤 많이 보이네요. 과정명에 심화를 넣으면 많이 신청 안 하실까 봐 그냥 ‘드로잉’이라고만 했어요” 이건 무슨 소리인가? 초급은 받기 어렵다는 건가?

“수업 계획서는 그냥 쓴 거고, 수강생분들 그리는 거 보면서 그거에 맞혀서 수업 진행 할게요. 그림은 보는 사람마다 평가가 다른 거라 자기 개성에 맞게 그리면 돼요.”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수업 계획서에 선 그리는 것부터 나왔길래 신청했는데. 선 하나 그릴 줄도 모르는 사람한테 개성 있는 그림은 또 어떤 거지?

3시간 수업은 누가 사 온 꽈배기를 먹고, 선생님과 친한 수강생 수다를 듣고, 무슨 기법인지는 설명 없이 명암으로만 표현해 보라서 연필로 스케치북을 새까맣게 칠하니 끝이 났다.


“엄마. 결국 드로잉 수업 취소했어. 3시간 수업받으니 3만 원 제외하고 환불되더라. 1시간에 만원이라니. 빵 먹고 수다 떠는데 1시간 쓰더니만” 주말 저녁 아들과 산책하며 그동안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내가 무슨 그림을 그린다고. 수업 두 개나 받은 캘리그래피도 지금 연습도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너무 욕심이 과했던 거야. 드로잉 수업 듣는 동안 내내 후회를 얼마나 했다고. 이 시간에 캘리그래피 연습이나 할껄하고 말이야”

짜증 섞인 내 말을 가만히 듣던 아들이 물었다. “엄마는 캘리그래피 하다가 갑자기 왜 드로잉 수업 신청한 거야?”

아들의 물음에 곰곰이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엄마도 손재주 한번 갖고 싶어서. 그림 잘 그리면 손재주 있다는 소리 듣잖아. 근데 욕심이 지나쳤다. 지나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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