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촉사고

by 이종열

늦은 봄쯤으로 기억되는 1982년 어느 때쯤~

날씨는 이두(二頭)의 형상을 한 뱀과 같았다.


저녁과 밤, 새벽은 추웠다.

그러다가 해가 뜨고 낮이 되고 뜬 해가 질 때까지는 살짝 더웠다.


그때 나는 은행에 입행한 지 아직 몇 달이 채 되지 않은 말단 신입행원이었다.

어설프게 입은 양복과 어설프게 맨 넥타이가 -나는 아직 사회 초년생이요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어느 하루


합숙소에서 걸어서 출근하는 내 눈에 길에서 자고 있는 노숙자 한 분이 들어왔다.

그분은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 철도 건널목에서 조금 떨어진 담 밑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아직 떠도는 공기가 따스함 보다 차가움이 많아서인지 그는 몸을 웅크리고 담 쪽으로 몸을 돌려 자고 있었다.

발 밑에 두어 병의 소주병이 뒹굴고 있었다.


뜬금없이 나는 문득 그때 그 노숙자가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까지 잘 수 있어서 저분은 좋겠다.

지금까지 자고 있어도 아무도 깨우지 않아서 저분은 좋겠다...


1982년

그때 은행의 거의 모든 업무는 전산화가 되지 않았고 때문에 모든 일을 수기(手記)로 처리해야 했다.

지금은 흔한 전자계산기도 지점 전체에서 대출계에 딱 한 대만 있었다.


하루에 일어난 모든 업무의 마감은 주판으로 계산해야 했고 종국에 사람의 손으로 하는 마감업무는 늘 늦었다.

하루의 끝은 늘 늦은 늦음과 좀 더 늦은 늦음만이 존재하였다.


운(運)이 좋은 어느 날은 저녁 8시쯤에 퇴근할 수 있었지만 그런 날보다는 대부분은 밤 10시가 되어야 할 수 있었다.

지점에서 꼬박 날밤을 새는 것은 부자가 밥먹 듯 흔한 일이었다.


입행하기 전에 나는 은행은 늘 오후 4:30분이면 퇴근하는 줄 알았다.

세상이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 진실은 아니었다.


한참 잠이 많았던 어렸던 그때의 나는 늘 잠이 부족하였고 잠 한번 실컷 자는 것을 갈망하였다.


... 나는 언제쯤 누구 간섭 없이 잠 한번 푹 잘 수 있을까?


그때는 비단 잠만 부족한 것이 아니었다.

시간도 내게 없었다.

그때 내게 일주일은 월요일, 일요일, 또다시 월요일이었다.


신(神)이 주신 이른 아침에 하루의 첫 장을 열고 나면 이내 저녁이 되었고 그 저녁은 금세 깊은 밤으로 나를 끌고 갔다.


업무시간 중에는 어떤 상황이 발생하였어도 그 상황을 생각하고 고민하고 판단할 겨를 없이 빠른 결정을 하고 그 결정을 행동으로 옮겨야만 했다.


내가 앉은 창구 밖 객장에는 손에 자신의 대기 번호표를 든 고객들이 내가 다음번 고객을 호명(呼名)하기만을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어서 처리하고 내 번호를 좀 불러다오.


늘 시간에 쫓겼고 잠을 갈망하였다.

그때는 그랬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나 보다.

세월은 그렇게 그렇게 흘러갔고 나도 세월과 함께 흘러갔다.


결혼하고

아이들이 태어나고

은행에서 내 직급도 하나씩 바뀌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출근하려고 아파트 현관문을 나서는 내 앞에 어떤 존재가 앞을 가로막아 섰다.

그 존재는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에 만져지지도 않았다.

그저 바람으로 느껴졌다.


- 당신 누구요?

내가 물었다.


- 나는 너를 데리러 온 세월이다.

이제 니 나이 오십하고도 다섯이니 그만 직장에서 내려오너라.

오래 다녔다.

그동안 고생도 많았고 ㆍㆍ


말을 툭 뱉은 그 존재가 바람과 함께 사라지고도 한참을 나는 현관문 앞에 서 있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존재가 말한 대로 그때 나이 쉰다섯의 나이였고 내 머리에는 흰 눈이 내려앉아 있었다.

목과 이마에 주름이 보였고 내 눈에 까만 뿔테안경이 씌워져 있었다.


그리고 보니 내 판단력과 기억력도 예전의 그것보다 훨씬 떨어져 있었다.


손가락을 꼽아 세어 보았다.

어느새 내가 은행에서 보낸 세월이 35년 3개월이나 되어 있었다.


조금 전 내 앞에 선 존재가 말한 대로 참으로 오래 다녔다.


그 이듬해 1월

나는 명예퇴직을 하였다.


퇴직을 결심할 때 나는 한치도 망설이지 않았다.


직장인의 나와 백수의 나는 많은 것들이 달라져 있었다.

이것이 달랐고 저것도 달랐다.

이것은 더 좋아졌고 저것은 더 좋지 않게 되었다.


실감되는 몇 가지 중에 하나는 매월 생기던 수입이 끊어졌다.

내가 하루에 만나고 상대하였던 여러 명의 사람들이 이제는 더 이상 나를 기다리지 않았다.

내게 주어져 그토록 내 어깨를 짓 눌렀던 성과목표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내 어깨가 가벼워졌다.


일순간 무지개가 사라지 듯 신기루가 없어지 듯 사라지고 없어졌다.

허전함 보다는 홀가분함이 더 많았다.


내 수입의 많은 것을 가져갔던 아이 셋 모두 고맙게도 나의 퇴직과 동시에 전부 제 자리를 잡아 떠났고 이제는 자주 내게 용돈도 주고 있다.


그러나 정작 퇴직이 주는 실감은 따로 있었다.

어리고 젊었을 때 내가 그토록 바라고 갈망하였던 시간이 갑자기 많이 생겼다.


단돈 1만 원을 갈망하였던 내게 갑자기 1억 원이 생긴 느낌이다.


이제 내가 아무리 늦잠을 자도 아무도 나를 깨우지 않고 나를 책망하지 않았다.


세상의 그 어떤 것도 흔하지 않고 귀해야 소중하다는 것을 요즈음 배우고 느낀다.

급작스레 주어진 어떤 상황을 판단할 시간조차 없었을 그때는 시간이 소중하였고 잠자고 있는 노숙자가 부러웠을 그때는 잠이 소중하였다.

내가 그토록 갈망하였던 이 둘이 이제 내 곁에서 지천으로 바짝 다가앉아있다.


그런데 희한하다.


젊었을 적 내가 그토록 갈망하였던 잠이 이제는 그리 많이 오지 않는다.

새벽 너덧의 시간이면 어김없이 나는 잠에서 깨인다.


지천으로 깔린 시간은 자주 내게 공허함과 외로움을 데려다 놓았다.


오늘 내가 꼭 해야 할 일이 없는 시간


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보다 나 혼자만의 시간을 선택하였다.

혼자 밥 먹고

혼자 골프 연습하고

혼자 여행하였다.


그렇게 시간을 죽였다.


그러나 역시 시간을 보내기에는 글쓰기와 독서만 한 것도 없어 보인다.

장편소설을 쓰고 있다.

2년째ㆍㆍ


지난달에도 혼밥을 하고 내가 즐겨 찾던 카페로 차를 몰았다.

단골카페가 생겼다.


그곳에서 커피도 마시고

독서도 하고

글도 쓸 요량이었다.


늘 그렇게 하였다.


그날따라 카페 주차장 입구에 차들이 많이 주차되어 있었다.


그래도 내가 누구인가?

32년 운전경력 베트랑 운전사가 아닌가?


주차된 좁은 차량 속으로 미꾸라지가 미끄러지듯 여유롭게 유영하며 카페 주차장으로 입성하고 있었다.


그때

-따르릉~~

휴대폰이 울렸다.


올해 초 서울로 발령 난 후배 지점장의 전화였다.

운전 중에 휴대폰을 사용하면 안 된다는 기본 중의 기본을 오랜만에 온 후배에 대한 반가움과 32년 된 내 운전경력이 지웠다.


받았다.

-아이고

이 지점장

바쁘신 분이 우째 미천한 백수한테까지 전화를ㆍㆍ


말하는 순간

-뿌지직

후배에 대한 내 인사소리와 동시에 조수석 문짝에서 소리가 들렸다.

본능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아 차를 세웠다.


후배한테는 내가 다시 전화하겠다 하고 전화를 끊었다.


내려서 본 내차 조수석에 흰색 승용차가 딱 붙어 있었다.

... 큰일이다.

접촉사고다.


카페 주차장 입구에 주차해 놓은 흰색 승용차 뒷 범퍼와 내 조수석이 서로 입을 맞대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지나가는 사람도 없고 원래 있던 사람도 없었다.


아주 짧은 0.0001초 동안 생각 하나가 스치고 지나갔다.

... 그냥 가뿌까?


그러나 그것은 아니었다.

32년 내 운전 경력에 부끄러운 일이었고 무엇보다 62년 내 인생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흰색 차량 운전석에 붙은 전화번호로 전화하였다.


전화기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남자였다.


여차저차해서 전화하였노라 하였더니 금세 나왔다.

아주 젊은 친구였다.

처음 본 나를 대하는 첫 모습이 착하고 순진해 보였다.


내가 청년에게 딜(deal)을 하였다.

-내가 비록 그대 자동차를 긁었지만 그 긁힘이 그리 크지 않고 여기에서 보험으로 처리해도 될 것이지만 그렇게 하면 자칫 나와 그대의 보험수가가 오를 수 있으니 현금으로 처리하자.

30만 원을 주겠다.

하였다.


사고 처리비용이 50만 원을 넘지 않으면 현금처리가 유리하다고 보험사로부터 여러 번 들어왔던 터이라 내 지식이 그렇게 시켰다.


-저는 아직 이런 경험이 많지 않고 일천하니 그리 할 수는 없고 책(冊)대로 보험으로 처리하겠다.

그가 내게 말했다.


무슨 일이던 원칙대로 하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라는 그의 원칙이 그리 시켰을 터이다.


오늘 접촉사고 처리에 관한 결정권이 젊은 친구에게 있으니 내가 더는 주장 할 바가 없었다.


그렇게 하기로 하고 각자의 보험사에 연락하고 청년과 헤어졌다.


이제부터 오늘 사고의 마무리는 각자 보험사들이 알아서 할 일이다.


내 거래 보험사에서 사고 난 현장을 사진으로 찍어 보내 달라 하였다.

접촉장면과 주차장 입구에 바짝 주차해 있는 그의 차를 찍어 보내 주었다.


그래도 큰 사고가 아닌 접촉사고로 액땜하였으니 감사하고 다행이라 생각하고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저녁때쯤 낯선 번호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낮에 난 사고자의 번호라는 것을 내 직감이 일러주었다.


-선생님!

우리 보험사에서 저한테 전화가 왔는데 오늘 사고의 과실이 선생님이 9이고 제 과실이 1이라고 알려 왔습니다.

보험사에서 상대방인 선생님께서 인정하시면 저의 과실은 0으로 할 수 있다고도 하였습니다.

해서 생뚱맞지만 선생님께서 100% 과실인 것으로 인정해 주시면 안 될까요?

주차되어서 가만히 있는 제 차를 박은 분이 선생님인 것도 사실이고요.


순간 내 머릿속으로 짧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헐

이 친구 착하고 순진한 줄 알았는데 속셈은 조금 엉큼하구먼.

그러니까 진작에 아까 내가 30만 원으로 퉁치자 했을 때 그렇게 할 것이지ㆍㆍ


그런데 이 친구 말이 맞다.

틀리지 않았다.


... 그건 당신 사정이고 당신이 그곳에 불법으로 주차하지만 않았어도 애시당초 이런 일은 없었잖아.

세상일에 100%가 어디에 있어?

택도 없는 소리 하지 마라 캐라.


머리에 빨간 뿔이 난 악마가 내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 아니야

이 청년이 무슨 죄야?

비록 정식 주차는 아니었지만 주차를 하고 회사에 출근하고 일한 죄 밖에 없잖아?

내가 고작 돈 몇 만 원에 내 양심을 팔수야 없지.

청년이 말하는 대로 해줘.

하얀색 옷에 하얀색 날개를 가진 천사가 반대편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내 양심과 오늘 접촉사고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는 사고(事故)에 대한 10%의 지분.


어느 것을 버리고 어느 것을 취할까?


악마도 천사도 서로 양보의 기색이 1도 없다.

이제 내가 결정해야 할 일이다.


-그러세요.

내가 100% 과실이 있는 것으로 처리할게요.

다 내 잘못이니까요.

그쪽 보험사한테 그리 말씀하세요.


내가 결정을 내렸다.


악마는 금세 사라지고 천사는 내게 손가락으로 OK사인을 보이며 윙크를 하고 사라졌다.


잠시지만 부끄러웠다.

그깟 몇 푼에 그동안 내가 공부해 온 내 정의와 평정심이 잠시 흔들렸다는 것이ㆍㆍ


그날 내 마음속에서 양심과 돈이 접촉사고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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