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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열 Mar 23. 2023

김치 한 조각이 3만 원 이라니 ㆍㆍ

딱 김치 한 조각을 먹었을 뿐인데 나더러 3만 원을 내란다. ㅠㅠ


주류(酒類)와 비주류(非酒類)는 진정 가깝고 친하게 지낼 수 없는 관계인가 보다.

 부류는 진정 기찻길 같고 젓가락 같은 평행선의 간격을 두고 지내야만 하는 것일까?


나는 지독한 비주류(非酒類)이다.

술을 마시지 않는다.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마시지 못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거의 하나도 마시지 못한다.


옛날 분들이 말하던 '밀밭 옆으로만 가도 취한다는 사람'이 바로 나이고 나의 집안사람들이다.

살아 계실 때 나의 아버지는 가끔씩 박카스를 드시고도 얼굴이 붉을 때가 있었다.

술도 유전적인 면이 있나 보다.


명절 때 집안 4촌들과 숙부들 전부가 모이면 성인 남자가 8명인데 이 8명이 작정을 하고 먹어도 막걸리 반 병을 먹지 못한다.

차례에 쓴 막걸리는 차례가 끝나면 바로 싱크대로 가서 버려진다.( 어느 집안은 차례에 쓴 막걸리는 물론이고 마트에서 박스로 사서 마신다고 하던데ㆍㆍ)


오래전 직장에서 지점전체 회식을 하였을 때 소주 2잔을 마시고 거의 실신을 하고 있는 나를 보고 동료들이 병원으로 데리고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고민하였다고 하니까 우리 집안 주량이 상상이 되지 않는가?


나에게 퇴직이 좋은 것 중에 하나가 그때처럼 술을 억지로 먹지 않아도 된다는 것도 있다.

 

술이 약해도 너무 약한 나에게 비주류의 애환이 생겼다.

뭐 자주 겪는 일이라 새삼스럽지도 않지만 말이다.


지난주에 매월 하는 골프모임에 참석을 하였을 때 일이다.

나는 워낙 골프 마니아이고 골프에 진심이라 매월 참석해야 하는 월 모임이 8개나 된다.

그리고 8개의 모임에 가급적이면 참석을 하려 하고 있다.


그 8개의 모임 중에는 나와 막역한 사이의 동반자들도 있고 또 어떤 모임의 동반자들은 나와 성향이 다소 맞지 않지만 내가 그저 골프가 좋아 참석하는 모임도 더러 있다.


지난주 모임의 동반자들은 친하고 막역한 사이라기보다 아직은 서먹함이 더 많은 모임의 골프였다.

은행에서 업무적으로 알게된 은행원과 고객과의 모임이었다.


 번째 홀을 돌았을까?

느닷없이 오토바이 한 대가 골프를 하고 있는 우리가 있는 곳으로 오더니 하얀 비닐봉지를 건네고 갔다.


나는 동반자 중에 누군가 골프용품을 카운터에 두고 와서 골프장에서 가져다주는 줄 알았다.


헉!!

그런데 그 비닐 안에는 소주, 맥주, 막걸리가 가득 들어 있었고 그 술병 아래에는  꽤나 비싼 음식이 놓여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람?

그리고 보니 오늘 동반자들이 나를 제외하고 전부 술이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주당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술을 등에 지고는 가지 못해도 마시고는 갈 수 있는~~

  

그때부터 골프는 술과 함께하는 야유회가 되었고 술에 취한 세 명의 귀여운(?) 골퍼들은 이곳이 필드인지 술집인지 잘 구분을 못하였고 그들이 저지르는 귀여운 만행(?)을 맨 정신으로 있는 나와 캐디가 얼르고 달래야만 했다.

 

샷을 해야 할 타이밍에도 술잔을 권하며 귄주가(勸酒歌)를 불렀고 퍼트를 해야 하는 그린에서 조차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진행을 늦추었다.


골프는 앞, 뒷팀 간 주어지는 시간이 7분인데 이들은 10분은 예사로 넘기고 뒷팀에서 보내는 따가운 눈초리는 고스란히 맨 정신을 가진 나와 캐디가 감당해야만 했다.


덕분에 나의 골프 루틴은 산산이 흩어지고 부서졌다.

이런 날은 그러려니 얼른 마음정리를 하고 지금 상황을 즐기면 된다는 것은 가끔씩 이런 일을 겪었던 나의 구력이 그다지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멘털관리를 잘 주었다.


그런데 전반 9홀을 마쳤을 때 일이다.

그들은 지금껏 마신 술이 모자랐는지, 아니면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시동이 걸려고 그랬는지 그늘집에서 또 술을 시키고 안주를 시켜서 먹었다.


그들이 술을 마시며 대화하는 동안 비주류(非酒類)인 나는 그들의 수다 행렬에서 완전히 이방인이 되었고 40여분 동안 그들 대화의 변두리에서 그저 듣기만 하였다.


후반 라운드는 그야말로 주객전도의 상황이 되었다.

비싼 그린피(코로나 팬데믹 이후 그린피가 올라 주말 그린피가 꽤나 비싸졌다)를 낸 골프는 主가 아닌 客이 되었고 술이 主가 되었다.


전반홀에서 마신 술이 아직 깨지도 않았는데 후반홀에서 더 보태어 마셨으니ㆍㆍ


그날 나의 골프는 완전히 망가졌다.

골프는 멘털게임인데 이들의 늦장 플레이에 다급해진 내 마음이 샷을 흔들리게 하였고 그들이 늦은 만큼 내 마음이 바빠졌다.


덕분에 평소 나의 타수보다 15타가 더 나왔다.


이런 골프도 있구나

멘털을 가다듬고 동반자들과 헤어질 무렵 입이 떡 벌어질 일이 생겼다.


그늘집 계산을 누군가 한 사람이 하였는데 12만 원이 나왔다며 1인당 3만 원씩 내라고 하였다.


캐니피 14만 원은 당연히 1/n로 내야 하는 것이 맞지만 그늘집 값 12만 원은 경우가 다르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내가 먹자고 한 것이 아니고 그들이 먹자고 나한테 동의를 구한 것은 더더욱 아닌데 이런 경우에도 1/n의 공식을 적용하는 것이 맞나 싶었다.


그날 나는 젓가락으로 딱 김치 한 조각만 먹었을 뿐인데 3만 원을 부담하는 것이 맞나 싶었다.

내 골프를 다 망치게 한 술값을 나보고 나누어 내라니ㆍㆍ


이런 거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싫어하는 기색을 보이면 다른 동반자들한테 따돌림을 당할까 봐, 나이 든 남자가 쪼잔하게 보일까 봐 표정관리는 하였지만 그날 내 기분은 온전히 상할 대로 상하였다.


※ 작가님들~

제가 쪼잔한가요?

나이 든 제가 나잇값 못하는 얕은 생각인가요?

작가님들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그 날 속상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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