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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마중

꽃은 아직 아니랍니다

by 이종열

어느 날인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말은 이제 옛말이 되었고 핑계가 되어 버렸다.


작년 이맘때쯤은 분명 맞는데 정확히 어느 날인지는 잘 생각이 나지 않아 휴대폰에 있는 '갤러리' 앱에 들어가 자세히 보았다.

'2021년 2월 14일 (일)'이라고 정확히 휴대폰이 기억을 하고 있고 정확히 기록을 하여 놓았다.


2021년 2월 14일

그날 휴대폰 카메라로 찍은 사진들이 선명하게 냉장고 냉동실에서 얼려져 있는 음식 마냥 하나 변함없이 잘 보관이 되어 있다.


산책길에서 찍은 하얗고 빨간 매화꽃 사진이다.

이날 나는 이제 막 피어난 그 앙증맞고 귀여운 매화꽃들을 보고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하였다고 정확히 기억이 나고 실제 내 일기장에도 그리 쓰여 있었다.

꿈을 꾸는 듯 기쁘고 믿어지지 않는다고 일기장에 쓰여 있었다.


오늘 점심을 먹고 날씨가 너무 좋고 햇볕이 너무 따스하여 작년에 걸었던 그 산책길을 다시 걸었다.

봄 마중을 나간 것이다.

님 마중을 나간 것이다.


그냥 가만히 집에 앉아서 맞이 하기에는 너무 귀하고 소중한 손님이라 한 발자국이라도 더 가까이에서 오시는 님을 맞이하러 길목으로 님 마중을 나섰다.


님이 한 번도 눈에 담아 보지를 않아서 혹여 어색해하실까 겨우내 하였던 그 어느 것도 내 몸에 걸치지를 않고 님 마중을 나갔다.

두꺼운 패딩도, 워모도, 장갑도, 털모자도 하지 않고 어쩌면 미리 와 계실 님의 모습 마냥 가볍게 가볍게 님이 오실 그 길로 미리 가고 있었다.


역시나~

이미 님은 시냇가에 미리 와 계셨다.

흐르는 시냇물 위에 님이 오셨고 그늘져 아직은 얼음이 낀 시냇물 아래에도 님이 와 계셨다.


님이 이끄는 데로 졸졸 소리를 내며 흘러가는 시냇물 위를 헤엄쳐 다니는 다섯 마리의 오리 가족들이 머리에 님을 이고 등에 님을 업고 다니고 있었다.


내 눈이 자꾸만 바빠진다.

약하게 부는 바람에 나부끼는 작은 낙엽을 보면 혹여 나비일까?

매화나무의 곁을 차마 떠나지 못해 가지에서 작년 겨울을 통째 보낸 하얀색 낙엽을 보고 혹여 매화꽃일까?

시냇물의 작은 일렁임에 혹여 벌써 개구리라도 나왔을까?


산책길이 내어준 끝까지 마중을 가 보았지만 님은 흐르는 물 위에, 얼은 물아래에만 계시고 꽃과 나비, 벌의 모습으로는 아직 오시지 않았다.


'아직 2월 14일이 되지 않아서 안 오시나?

날씨가 이리 좋고 햇볕이 이리 좋은데 올해는 조금 일찍 오시지.'


구시렁구시렁 걷고 있는 내 옆으로 할머니와 아직 아장걸음을 걷고 있는 손자가 천천히 걸어간다.

손자가 알아듣던, 알아듣지 못하던 할머니가 손자에게 손가락으로 길 끝을 가리키며 혼잣말을 하였다.

"아무개야~ 봄이 왔네.

저기 봄 보이지?"


아~

님이 벌써 오셨구나.

님이 벌써 온 지천에 와 계셨구나.


매화나무를 다시 올려다보았다.

매화나무가 님을 곁에 두고도 보지 못한 아둔한 내 귀에 작은 소리로 속삭인다.


"꽃은 아직 아니랍니다.

꽃은 나비와 벌이 데리고 오고 나비와 벌은 또 꽃이 데려 온답니다.

내일도 오늘처럼 이리 오고

모레도 오늘처럼 이리 오고

그다음 날도 오늘처럼 이리 오시면

내 가지 위에 어느새 앙증맞고 귀여운 매화꽃이 피어나 있답니다.

그 꽃 위에 벌이 내려앉고 그 꽃 위로 나비가 날아다닐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은 아니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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