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성장촉진제를 물고 태어난 강원도의 풀
추위와 폭설로 악명 높은 겨울 못지않게, 강원도는 여름에도 살벌한 더위를 자랑한다. 우리 부대는 더위가 심한 여름 기간 동안엔 기존 일과와 다른 혹서기 일과표를 적용한다. 혹서기 일과는 05시 30분에 기상해서 21시 30분에 잠을 잔다. 오후에 폭염을 대비해 해가 뜨기 전에 1시간이라도 더 빨리 일과를 시작하는 것이다.
내가 속해있는 예초병도 혹서기 일과표를 적용했다. 하지만 일반 병사들과 그 일과표가 달랐었다. 예초를 오랫동안 해왔던 강 상병과 서 상병이 중대장님과 결판을 본 뒤 일과표를 수정했다.
우선 05시에 기상. 다른 병사들보다 30분 빨리 기상한다. 해가 뜨기 전, 새벽바람을 맞으며 예초기를 1시간 정도 돌리고 조식을 먹는다. 여기서 가장 좋았던 것은 아침 점호를 빠질 수 있었던 것이다. 아침을 먹고 조금 쉬다가 다시 예초기를 돌린다. 그러다가 점심을 먹고 14시 30분부터 다시 예초를 시작했다. 그런데 당시 예초병의 규모도 적고, 나머지 3명의 선임이 말년이어서 그랬는지, 아침을 먹고 '조금 쉬는 시간'에 정확한 개념이 딱히 없었다.
다시 말하지만 나를 제외한 3명의 선임은 모두 말년이었다. 당연히 그 '조금 쉬는 시간'을 교묘하게 이용하기 시작했다. 우선 예초복으로 갈아입는 시간은 30분으로 잡고, 그리고 야외 흡연장(쉼터)에서 이야기를 하는 시간 30분은 기본으로 먹고 들어갔다. 그러다가 간부님들이 거기서 뭐하냐고 물어보면 예초를 하다가 너무 힘들어서 쉬고 있었다고 말한다. 할리우드 주연 배우 뺨칠만한 힘든 표정 연기는 덤이다.
그런데 문제는 강원도의 풀은 기본적으로 친환경 성장 촉진제를 달고 자라난다는 것이다. 풀의 성장 속도는 우사인 볼트 급으로 빨랐다. 부대 한 바퀴를 돌고 나면, 똑같이 자라 있는 마법을 볼 수 있었다. 그렇다고 풀을 방치해 버리면 어떻게 될까?
어쩔 수 없이 장마가 찾아와 1주일 동안 예초기를 돌리지 못했는데, 단 1주일 사이에 풀의 키가 2배 넘게 자라 있었다. 심지어 배수로 주변의 풀은 물을 더 많이 먹었는지 평균적으로 150cm가 넘었다. 그리고 당연히 그만큼 두께도 무시 못할 수준으로 두꺼웠다. 예초기로 풀 스윙을 5번 정도 후려 쳐야 잘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풀들 중에는 2미터가 넘는 풀들도 있었다. 진짜로, 장난이 아니다. 군부대에서 사진 촬영이 가능했다면 그 풀 사진들을 꼭 찍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군대에서 크기가 큰 고라니, 멧돼지 등의 야생동물들을 본 이야기를 하는데, 나는 사람보다 키가 큰 풀에 대한 이야기를 할 것이다.
어쨌든, 그렇게 혹독한 환경 속에서 우리 4명은 매일매일 정해진 일과대로 풀을 돌려도 모자랄 판이었는데, 당연히 그렇게 흘러갈 수는 없었다. 군필자들은 말년 3명이 정해진 일과를 매일 정석대로 수행하는 경우는 로또에 당첨될 확률보다도 적을 것이라는 사실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선임들이 쉴 때는 나도 쉬어야만 했다. 혼자서 예초를 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그럴 때에도 나는 예초를 잘하고 싶어 선임들에게 자세를 봐달라고 하며 혼자 밀 때도 적지 않았다. 나는 일병이었고, 쉬고 있는 것보다는 뭐라도 해야 마음이 편안했다.
우리는 비가 오는 날이나 특별한 행사나 훈련이 있는 날이면 예초를 하지 않았다. 그럴 땐 다른 선임, 동기들과 함께 일과를 보냈는데, 그들과 함께 부대 곳곳을 다닐 때마다 그들은 나에게 물었다. "근데 너 풀 밀긴 미는 거냐? 왜 계속 그대로야?" 그럴 때마다 나는 "죄송합니다!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해야 했다. 지금 생각하면 눈물겨운 순간이 아닐 수가 없다. 주변에서 풀을 왜 이렇게 밀지 않냐는 선임, 간부들의 꾸지람은 일병 나부랭이 었던 내가 고스란히 받아야만 했다.
그래도 예초병 생활은 즐거웠다. 선임들이 매우 잘 챙겨주었고, 선임들이 한 번 예초기를 잡으면 풀을 순식간에 밀 수 있었다. 그들은 비록 게을렀지만, 실력은 최고였다. 나도 그 선임들을 본받아 예초를 시작한 지 2달이 지났을 때는 그들과 비슷한 속도와 효율을 자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짬의 순리대로, 내가 예초를 잘하기 시작했을 때부터는 난도가 높았던 경사로 지형도 내가 담당하기 시작했다. 나름대로 예초에 자부심이 생길 때었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9월이 찾아왔다. 그리고 선임들의 전역날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분명 선임이 전역한다는 것은 좋은 소식인데, 나는 앞날이 걱정되었다. 다른 예초병을 할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미 다른 동기들은 자신들의 주특기에 완전히 적응했고, 다른 선임들은 휴가를 준다고 해도 하지 않았었다.
나는 이제 홀로 남게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