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벌 패턴의 철학자 (1)

복붙의 달인



가끔은 의미 없이 땅만 보고 걷는다.

그날도 그랬다.



갯벌로 가는 길목,

마른 가지 하나가 발끝에 걸렸다.



딱히 특별할 것도 없는데

그 문양이 이상하게 눈에 밟혔다.


잔가지를 따라 난 무늬들이

어딘가 폐와 닮았고,

전선을 타고 흐르던 무언가 같았고,

번개의 형상 같기도 했다.



‘이런 구조, 어딘가서 본 적 있지 않나?’



그 생각이 퍼질 때,

은하는 자기 자신이 잠깐 투명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속을 들여다보면,

그 안도 저런 식의 결일 것 같았다.





나무는 왜 폐를 닮았을까.

아니, 폐는 왜 나무를 닮았을까.

뿌리는 왜 번개를 닮았을까.


닮았다는 건 누군가 한 번쯤

복사해서 붙여 넣었다는 뜻일까.

의도를 숨긴 복붙.

아니면 우연을 가장한 반복.



나무... 지상과 지하.

그 경계에 선 존재.


얜.. 진짜 중간 관리자야.




은하는 잠깐 멈춰 섰다.

그 순간, 고라니가 멀리서 지나가며

잠깐 눈이 마주쳤다.



그 눈빛에 이런 말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구조는 다 비슷해.

단지, 누구는 나뭇가지로 태어나고

누구는 고라니로 살아갈 뿐이지.”



은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고라니고, 고라니는 우주고, 우주는... 폐포다.”


심호흡을 해봤다.

폐가 나뭇가지처럼 흔들렸다.



그 말이 맞다면,

은하도 그저 한 구조일 뿐이다.


사람이라는 구조.

텃밭이라는 구조 안에서

양배추를 수확하며

무언가를 기다리는 구조.



그날 이후로, 은하는

잎맥 하나에도 경외심을 갖게 됐다.

고라니의 발자국에서도,

자기 손바닥 선에서도

같은 결을 보게 됐다.





“이거, 프랙탈 아냐?”

그 단어가 머릿속을 스쳤다.


은하는 순간

이 우주에 Ctrl+Z가 없다는 사실에 멍해졌다.

이 우주는... 하나의 미친 복붙 파일이었다.



그날 이후 은하는 확신했다.

“이 세계는 프랙탈이고,

나는 그 안의 한 점, 한 선, 한 유기농 농사꾼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걸 아무도 안 믿었다.



회관에서 그 얘길 했다가

왕언니가 말했다.

“어이~ 은하야.

너 요즘... 김장 담글 때 쪼매 쉬어.”





결론


이 우주의 진실을 마주하면 마을 어른들이 걱정한다.

그러니 은하는 조용히 혼잣말로 되뇐다.



“프랙탈... 그건 그냥, 갯벌의 패턴일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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