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누가 만들었어요?
갯벌에는 경계가 있다.
감정에는 간격이 있다.
그리고 글은,
띄어쓰기가 있다.
나는 늘..
감정과 은유 사이에서
스페이스바를 눈치로 누른다.
사람은 붙고 싶은데
문장은 자꾸 떨어지라고 한다.
’의존명사는 띄어야죠.‘
’조사는 붙이는 게 원칙입니다.‘
’띄어쓰기 하나 잘못하면, 뜻이 달라지잖아요.‘
뜻이 달라지면 어때?
내 뜻도, 원래 잘 안 통했는데?
나는 지금… 의미 없는 틈새에 껴 있다.
은하는 오늘도 스페이스바랑 싸웠다.
이겼는지는 모르겠다.
왜냐하면, 눈물이 떨어지자
스페이스바가 자동완성을 꺼냈기 때문이다.
[감정적으로 공백을 처리하시겠습니까? Y/N]
나는 띄어쓰기 못하는 게 아니다.
안 하는 것이다.
이해받지 못할 뿐이다.
갯벌에서 나는
한 번도
공백을 본 적이 없다.
미역과 홍합 사이에도 간격은 있었지만,
그건 스페이스가 아니라 생존 거리였다.
바다는 띄어 쓰지 않는다.
자연은 다 붙어 있다.
그러니까 나도 그렇게 썼다.
이장님은 말한다.
“이거 왜 이렇게 붙여 썼어, 헷갈려 죽겄어.”
나는 말한다.
“이장님도 나 헷갈리잖아요.”
가끔 생각한다.
내가 띄어쓰기를 못해서 반항을 하는 걸까?
아니면
그냥 미쳐버린 걸까?
백여 년 전 생긴 규칙에,
우리는 말보다 공백에 더 익숙해졌다.
‘띄 어 쓰 기’도 예술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문장과 문장 사이의 정중함이 아니라,
삶과 삶 사이의 애매한 거리두기.
나는 오늘도 글을 쓴다.
때로는 붙고,
떨어지고,
그리고 항상,
말은안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