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먹을까?
그리고 다음 날.
고라니가 또 왔다 갔다.
이번엔... 치커리
텃밭 가장자리에 남겨둔 치커리였다.
쓴맛이 강해서 사람도 잘 안 먹는다.
한 포기도 아니고, 두 포기도 아니고,
열두 포기를 순식간에 싹둑싹둑.
가위로 자른 듯한 절단면을 보며,
나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야생의 성악가는 오늘도 풍성하게 소프라노를 지르며 내 자존심을 뜯어먹었다.
고라니는 나보다 이 땅에 익숙한 존재다.
텃밭은 더 이상 나의 영역이 아니었다.
이건 그냥 고라니의 신생맛집.
나는 공급자였고, 그놈은..
구독을 해지하지 않은 충성 고객이었다.
오늘은 시장출동.
계획은 없다.
이유는 있다.
분노는 분산해서 뿌리는 게 맞다.
각종 씨앗과 모종,
포장에 적힌 설명도 읽지 않았다.
‘강한 생명력’ ‘잘 자람’
’햇빛 필요 없음‘
그런 문구만 눈에 들어왔다.
나는 지금 농사를 짓는 게 아니었다.
나는 복구 중이었다.
열 맞춰 심기? 생략.
농사법? 그런 거 모르고.
지금부터는 뿌린다. 투하한다.
씨앗, 모종, 이름 모르는 것들까지 싹 쓸어 담았다.
나는 텃밭을 아마존으로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물조리개 대신 호스를 집었다.
정확히 말하면, 고라니 진입 방지용 워터캐논.
호스를 샀다.
[아이템 획득: 워터캐논 Lv.1]
공격력은 낮지만, 겁만줄 거라서.
마음은 편하다. 정당방위다.
집에 가는 길,
잠깐 망설이다가
“그래도 이사했는데...”
하는 말로 스스로를 설득했다.
그 말 한마디에,
나는 자연스럽게
짜장면 집에 들어갔고,
자연스럽게 앉았고,
아무렇지 않게
단무지를 두 개 먹고 있었다.
“유기농 선언은, 언제부터였더라?”
면은 잘 비벼졌고 선언은 흐려졌다.
이제 진짜, 정말로,
이 세상 음식과는 작별이다.
... 오늘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