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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둘기 May 02. 2024

가장 느린 학생

그날 이기지 못한 사람은 오직 나뿐이었다….

달리기.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움직임이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배우지 않아도 걸을 수 있고, 달릴 수 있다.

하지만 그 속도는 다르다.



누군가는 100m를 10초 만에 뛴다.

누군가는 42.195km를 2시간 조금 더 걸려서 뛴다.

누군가는 100m를 42.195km처럼 오래도록 뛴다.

누군가는 100m를 뛰다 지쳐 쓰러진다.     



사람들은 말한다.

누구나 자신만의 속도가 있다고.

빠르고 느리고는 중요하지 않다고.

자기 자신의 속도를 찾아가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그러니 좌절하지 말라고.      



초등학교 체육 시간 나는 깨달았다.

학생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달리기가 빠른 학생.

달리기가 느린 학생.

체육 시간은 달리기가 느린 학생에겐 좌절의 시간이었다.



하루는 릴레이 달리기를 했다.

규칙은 간단하다.

주자는 바통을 들고 출발한다. 빠르게 달려 반대쪽에 있는 반환점을 돌고 다음 주자에게 바통을 건넨다. 그러면 다시 다음 주자가 출발한다. 이를 반복하고 마지막 주자가 먼저 들어오는 팀이 이긴다.         


 

선생님께서는 우리 반 학생을 두 팀으로 나누셨다.

“자! 얘들아!! 우선 번호대로 홀수 한 줄, 짝수 한 줄 서봅시다!”

1분이 소중한 체육 시간이었기에, 우리는 빠르게 줄을 맞췄다.

선생님은 다시 말씀하셨다.

“음…. 이쪽 팀이 잘하는 친구들이 많네요. 그러면 A가 비둘기랑 바꾸자!”

기울어진 추를 맞추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가장 무거운 추와 가장 가벼운 추를 바꾸는 것이다.

릴레이 달리기 밸런스를 맞추는 가장 좋은 방법도 마찬가지다.

가장 빠른 학생과 가장 느린 학생을 바꾸면 된다.

그중 나는 ‘가장 느린 학생’ 역을 맡았다.



원래 홀수였던 나는 짝수 팀으로,

원래 짝수였던 A는 홀수 팀으로 갔다.     



역시 선생님은 교육 전문가이다.

양 팀의 밸런스는 완벽했다.

양 팀은 늘 아슬아슬하게 승부를 다퉜다.

한 판은 홀수 팀의 승리.

한 판은 짝수 팀의 승리.



이렇게 끝이 나면 모두가 행복한 체육 시간이 된다.

짜릿한 승리의 기쁨도, 처절한 패배의 아픔도 없는.

1:1의 평범한 하루.

그런 하루는 쉽사리 잊혀지는 법이지만,

20년도 더 지난 지금. 난 그날이 생생히 떠오른다.      



첫 번째 판이었다. 선생님께서는 달릴 순서를 정해서 줄을 서라고 하셨다. 우리 팀은 그냥 키 순서대로 서자고 합의를 했다. 키가 컸던 나는 뒤에서 두 번째 주자가 되었다. 상대 팀과 줄을 맞추고, 나와 함께 뛸 상대 친구를 보았다. 나보다는 빠르지만, 엄청 빠르지는 않은 친구였다.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이 자식은 해볼 만하다.’

진짜로 그렇게 믿었다. 이기지는 못해도 비슷한 속도로 달릴 것으로 생각했다. 나보다 먼저 달린 같은 팀 친구들은 굉장히 잘해줬다. 내가 뛰기 전에 이미 상당한 차이가 나고 있었다. 우리 팀은 이미 이겼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바통은 나에게 넘어왔다.     



이겨놓고 하는 싸움이었다. 상대 팀도 이미 포기한 듯 보였다. 내가 이미 반환점을 도착했을 때, 내 상대 친구는 그제야 바통을 넘겨받았다. 그런데 이상하다. 나를 향해 뛰어오는 그 친구. 너무 빠르다. 원래 그렇게 빠른 애였나? 잠시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뒤에서 들리는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우리 팀의 환호성은 조금씩 괴성으로 바뀌었고, 나는 그때야 사태의 심각성을 느꼈다.

‘아…. 따라잡히겠구나….’ 생각하는 순간.

상대 친구가 내 앞에 보였다.

결국 우리 팀은 졌다.

홀수 팀의 승리였다.     



두 번째 판이었다. 선생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지금 보니, 두 팀이 서로 비슷하네요. 팀은 그냥 홀수, 짝수로 나누겠습니다. A랑 비둘기 다시 바꾸고, 원래 팀으로 가자!”

이긴 팀은 이미 한 번 이긴 마당에 거절할 명분이 없었고,

진 팀은 느린 놈 가고, 빠른 놈 온다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서희 장군 같은 담임 선생님의 협상 능력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나는 원래 팀인 홀수 팀으로,

A도 원래 팀인 짝수 팀으로 갔다.     



새로운 팀에서는 당연히 나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친구들은 나를 가장 먼저 뛰게 하고, 뒤에서 조금씩 만회하는 작전을 썼다.

일명 버리는 카드 작전.



그래도 친한 친구 녀석 한 명이 용기를 주었다.

“비둘기야! 그냥 너가 맨 앞에서 뛰어. 우리가 다시 따라붙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

그 한마디가 큰 힘이 되었다.

내 임무는 애당초 이기는 게 아니었다.

너무 차이나지 않게 지는 것. 이게 내 목표였다.

이번엔 목표를 꼭 이루고 싶었다.      



첫 주자라 이전 판보다 훨씬 긴장되었다.

선생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준비!”

총알 같이 튀어 나가는 내 모습을 상상하며 출발 신호를 기다렸다.

“출발!”     



난 전혀 총알 같지 않았다.

마치 나홀로 갯벌을 뛰고 있는 듯했다.

조금씩 멀어져가는 친구를 바라보며,

나는 의심했다.

'혹시 초고속 카메라가 오직 나만 찍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내 뒤의 많은 친구들이 조금씩 차이를 줄여나갔지만,

내가 벌여놓은 간격을 메우기엔 역부족이었다.

나는 애처로운 눈빛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 경기는 짝수 팀의 승리였다.      



내 신체 능력이, 이렇게 많은 이들에게 폐를 끼친다는 사실이 미안했다.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누군가가 차라리 나에게 욕을 해주길 바랐다.

하지만 주위를 보니 다들 평화로웠다.      



미안한 마음에 먼저 다가가 우리 팀 친구들에게 말을 했다.

“진짜 미안해.. 완전 나 때문에 졌다.”

친구들은 웃으며 대답했다.

“괜찮아! 1:1이잖아. 한 판 이겼으면 됐지.”     



그랬다. 나만 빼고 모두가 한 판은 이긴 날이었다.

모두에겐 1:1의 평범한 하루.

A에겐 2:0 완승의 하루.

오직 나에게만 0:2 완패의 하루..



그날 이기지 못한 사람은 오직 나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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