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 있는가?"
"거실에서는 옷 갈아입으면 절대 안 돼요. 누가 들어올지 몰라요."점심시간에 시골에 사는 대리님과 나눈 대화였다. 우리 둘은 서로 동쪽 끝과 서쪽 끝 시골에 산다. 둘 다 농사를 짓는 집 딸이라 봄 농번기에는 주말 내내 일을 도와드리고, 근육통으로 인해 어정쩡한 걸음으로 출근하면 눈을 마주치며 빵 터지곤 한다. '아, 대리님도 주말 내내 일을 하셨군요.'라며 말하지 않아도 눈으로 생각을 공유한다. 그리고 서로 집의 마지막 농번기가 끝나면 같이 농사 스트레스 해소 여행을 떠난다.사는 환경이 비슷해서 자주 이야기를 나누곤 하는데, 내가 아침에 옷 갈아입다가 불쑥 들어온 손님 때문에 놀란 이야기를 하니 대리님이 이렇게 말했다."제가 안에서 입고 있어서 망정이지. 아휴. 정말 우리 집 거실은 더 이상 우리 집이 아니야.""맞아요. 누가 거실에서 옷을 갈아입어요!""시골집 거실은 거의 마당이죠!"이렇게 대화를 나누며 깔깔깔 웃었다.
오랜만에 주말에 낮잠을 잔다. 내 방은 어쩐지 답답해서 거실에 나와 시원하게 잠을 잤다. 문이 왈칵 열리고 이장님이 오셔서 "아빠 어디 갔냐? 논에 계시나?" 하신다. 다 뜨지 못한 눈으로 안경을 주섬주섬 쓰며 "아마요? 전화해보시면 어때요?"라는 말을 다 듣기도 전에 가신다. 인사도 못했는데, 다시 잠을 청한다. 이제 막 맛있는 잠에 들려고 할 때 다시 문이 열린다. "정수기 점검 왔습니다.~" 하며 내가 대답할 필요도 없이 주방으로 들어간다. 아주 익숙한 모양새다. "엄마랑 통화했어요~" 아무도 나를 집주인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긴 하지만, 어쨌든 집주인의 딸이니 어떤 것을 어떻게 하고 계신지 살짝 얼쩡거려본다. 정수기 아주머니는 자신만의 루틴으로 정수기 점검을 빠르게 마치고 가신다. 다시 못다 잔 잠을 보충해보려 눕는다. 세 번째 시도다. 잠에 몰두한 딱 기분 좋은 상태. 인기척이 느껴진다. 가위에 눌린 것일까? 행여나 흉측한 모습을 볼까 해서 한쪽 눈만 실눈을 살짝 떠봤다. 할머니다. '어? 우리 할머니는 돌아가셨는데? 뭐지? 가위 맞구나. 하. 진짜.' 조금 더 정신을 차려보니 우리 할머니가 아니다. 치매를 앓고 계신 옆집 할머니다. 할머니가 입을 움직인다. 워낙 작은 목소리여서 귀를 기울여보니 "집이 어디야? 집. 우리 집 가고 싶어." 때마침 엄마가 들어온다. "어머니! 아이고, 어떻게 여기까지 오셨어요? 식사는 하셨어요?"라고 묻는다. 다행히 할머니가 우리 엄마는 기억하고 계신다. 이 할머니는 앞집 사는 이모(진짜 이모는 아니고, 동네 이모. 시골에서는 통상 엄마와 비슷한 동년배의 여성들을 이모라고 부른다.)의 엄마다. 왕래를 자주 하다 보니 엄마를 익숙하게 생각하신다. 엄마는 할머니와 조금 이야기를 나누다가 집에 모셔다드리고 이모에게 전화를 한다.
아무나 열 수 있는 문. 우리 집은 거의 문을 잠그지 않는다. 꽤 먼 거리를 갈 때에도 문을 잠그지 않고 간다. (동네 사람들이 CCTV처럼 낯선 사람이 우리 집에 들어가면 귀신같이 알고 전화를 준다.) 우리 집만 그럴까? 요즘은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 한 동네에 오래 산 분들은 가까운 곳에 나갈 때 문을 잠그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이 쉽게 우리 집 문을 열었던 것처럼, 나도 그들의 문을 열 수 있다. 문. 고려대한국어사전에는 1번 뜻으로 '드나들거나 물건을 넣었다 꺼냈다 하기 위해 틔워 놓은 곳. 또는 그곳에 달아 놓고 여닫게 만든 시설.'이라고 설명되어 있고, 2번에는 '상황을 가능하게 하는 통로나 경계의 입구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내가 말하고 싶은 문의 뜻은 2번 뜻이다. 통로나 경계의 입구. 시골의 문들은 얇다. 그냥 얇은 것은 절대 아닐 테고, 아마 서로 나눠온 세월과 그 안에서 쌓인 신뢰가 두터울수록 문은 더 얇고 낮아지지 않을까?
두터운 정만큼 아무나 열 수 있는 문을 가진 이곳은
아무튼, 시골이다.
P.S. 우리 집 문은 꼬맹이도 열 수 있다. 일을 가야 하는 젊은 엄마가 아이가 등교하기 전까지 갈 곳이 없자 우리 집으로 보냈다. 저 아이는 아주 익숙하다는 듯이 인사하고 들어와 누워서 우리 엄마랑 이야기를 하고 있다. 아무튼, 시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