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해서 공항을 최근에 가본 적이 있었던가?
단체여행 말고 혼자서
한 번도 나를 위해서 그런 배려를 한 적이 있었나?
나는 기차역 주변에 살아서 그러나, 떠나는 걸 이레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히려 기차역옆에 살았던 경험이 떠나는 행위에 대해서 기피의 수단으로써 방향을
이별을 온몸으로 스러질 때까지 막아온 삶을 살아나 싶다.
그래서, 삶이 너무 막막할 때 지하철을 타고 공항입국과 출국 트랩에서 사람들을 지켜보곤 했었다.
아무래도 들고나갈 때 한국인이냐? 외국인이냐? 따라 달랐지만 아마도 많은 것들에 대해 난 혼자 들고나가는 사람에 대해 주의 깊게 관찰했던 것 같다.
아마도 혼자 나갈 용기가 없었던 내가 남은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았던 것 같다.
아주 많은 트렁크와 짐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은 자기 짐에 집착이 강했던 것 같아 다른 사람을 지켜보지 못하고 아마도 자기 짐만을 주시하였고 가벼운 짐 하나 핸드 캐리를 했던 사람들은 로봇처럼 지속해서 좌우를 쳐다보았다.
하나, 둘 사람들이 사라지고 대개는 출국을 위한 사람들이 공항을 채우고 입국하는 사람들이 나간 거의 모든 자리를 배치되었고 외국인들이 많아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자리를 옮기고 수많은 항공사의 비행기들이 비행기 활주로에 서있고 떠나기를 기다리는 비행기를 보며 아마도 대리 만족을 했을 듯싶다.
가족과는 적지 않은 시도를 했지만 아마도 나를 위해서는 한 번도 그러한 시도를 하지 못했던 것 같다.
난 "가족과 함께"해야 한다는 약간의 강박이 존재한다. 그 강박은 사실 제주 하나도 자유롭지 않게 나를 구속했고 지금껏 그러한 원칙에서 한 번도 예외가 없었던 것 같다. 어머니 모시고 제주도 한 번을 가지 못했다는 죄의식이 많이 나를 괴롭혔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 사치라는 죄송함이 여러 가지와 똘똘 뭉쳐서 나를 괴롭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말도 안 되는 이유처럼 들리기도 하겠지만 실제로 그런 것을 어찌하랴!
이젠 조만간 나를 위해 그것을 할 수 있을 듯하다. 아마도...
그때 공항에서 돌아오며 무슨 생각을 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가는 것이 워낙 중요했기 때문에 돌아올 땐 매우 피곤하고 내일 출근할 생각들로 가득 찬 일요일 저녁이지 않았나 싶다. 그러다가 일요일 오후를 영화를 보는 시간으로 바꾸어 버렸다.
공항에 가는 것이 굳이 의미 없는 것으로 판단이 되었기 때문이다. 영화도 집사람이 가지 않으면서 영화도 멈췄기 때문이다. 나를 위한다는 것이 것도 의지가 명확해야 가능했기 때문이다.
난 떠나기를 너무 좋아하는 것 같다. 그런데 현실의 삶은 떠나기보다는 그러한 삶을 대리충족 하지 않았나 싶다. 떠나기를 좋아하는데 한 번도 떠나지 못했던 사람들 그 의지가 박약한 사람들의 뿌리 깊은 정서는 "굳이 혼자서" 이러한 미안함과 쑥스럼움들이 아마도 그 길을 막았던 것 같고 그 성숙한 삶을 막아서게 한 기피와 장애물로 작요 한 것 같다.
기차의 기적소리에 길들여져서 그런지
비행기의 이륙은 아직도 나를 흥분시키는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제주도의 창 넓은 횟집에 앉아서 국적기가 갈 때마다 폭탄주를 마시던 그 삶의 재미는 테이블에 4명 이상 앉아 비행기를 떠오를 때마다 소맥을 해서 먹는 이 행위는 내가 너무도 좋아하고 좋아했던 루틴이다. 업무상 제주도를 가는 경우가 많다 보니 그 놀이는 너무도 재밌고 내가 최애의 놀이다.
애초 나는 혼자 떠나기가 어려운 사람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