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도

by 오흥주

춥다. 에어컨바람이 넘 세서 카페에 와서 글을 쓰지만 오한이 겹쳐서 난 무엇을 할 수도 없다. 그냥 춥다는 것 외에는 유리한 장 너머로 밖은 더워서 손바람을 일으키며 더위를 달래 보지만 유리 한 장 차이로 이 안쪽은 너무 춥다.

나는 이 유리한 장의 차이를 초자본주의 물질적 차이로 이해하려고 한다. 자본과 자본이 없는 사람들의 이약기 그 차이로 그 유리를 바라본다. 즉. window는 안에서 밖을 바라볼 수 있지만 유리만큼 잔혹한 것은 없다. 실내와 실외를 구분 짓는 보이자 않는 벽이 오히려 인간적일 수 있음을 나이가 들어 알 수 있을 것 같다. 무조건 적인 투명함이 얼마나 잔혹하고 냉혹한 지를 나이가 들면서 알아 갈 수 있기 때문이다. window는 안에서 바깥을 볼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원치 않는 투과를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창은 바깥을 바라볼 수 있게 하지만 나의 모든 일상을 노출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연을 느낄 수 있음과 자연을 같이 하게 되는 것은 유리 위의 100층을 보여줄 수 있지만 100 층 아래로 떨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난 유리한 장과 옷 실오로라기 1개로 비유하고 싶다. 벌거벗은 임금님이 느꼈던 수치심을 현대인들은 모두 경험하고 있다는 것이다. 남을 너무 들여다본다는 것이 반대로 내가 모든 것을 노출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얻으려고 하면 잃고 잃고 자면 얻게 된다는 그 역설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수치심이란 자극과 반자극이라는 논리에 직면하게 된다.. 보고 싶은 만큼 수치스럽게 되고 욕심이 많아질수록 얼마나 욕심에 상처받을 수밖에 없고 현학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당연한 진실이 흔들리고 분간할 수 없게 되는 현대인의 병에 이르기 때문이다.

투명함과 비투과로 시작된 단순함이 결국은 모두를 죽음과 파멸로 감싸기 때문이다. 유리창 너머로 다시 모순이라는 죽음의 전쟁은 끝을 모르고 뫼비우스의 띄처럼 원인과 결과 또는 만약 ~ 하지 못한다면이라는 끊임없는 전제에 전재를 낳고 모순을 만들며 죽음을 만들어 낸다. 유리 한 장 차이로 비와 눈이 천국과 지옥이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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