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배움이다

3-3. 학교에서만 배우나요?(3)

by 더블윤

인간의 경험이란 지식이전에 존재하며 삶에 필요한 배움을 제공한다.

앞서 살펴본 교육이론들, 존 가드너의 자기갱신, 엘리슨 고프닉의 이론-이론, 잭 메지로우의 전환 학습 등, 에서 볼 수 있었던 모든 배움은 내가 틀렸음을 깨닫는 순간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경험이란 바로 그러한 자극을 주는 주체였다. 실패와 고통, 성찰의 경험들이 나를 변화시키며 배움의 전환점을 만든다.

그러고 보면 인간의 삶은 곧 경험이다. 경험은 나의 모든 삶을 뒤덮고 있으며, 심지어 잠을 자고 있는 순간에도 꿈을 꾸며 그것을 기억하기도 한다. 의식이 잠들어 있을 때조차 우리는 경험 안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보면 우리는 새로운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바로,
'세상 모든 것이 가르침'이며 '나의 삶은 배움'이라는 것이다.




배움은 특별한 행위가 아니다. 우리는 흔히 배움을 특정 장소나 순간에 국한시키지만, 실은 숨 쉬는 순간부터 배움은 시작된다.
아이의 손에 쥐어진 장난감, 눈앞을 스치는 낙엽, 한 번의 다툼, 한 번의 침묵, 그리고 이별까지도 배움이 된다.
배움은 사건이 아니라 과정이며, 삶의 또 다른 이름이다.

경험은 어디에나 있고, 모든 것은 나를 바꾼다.
인간은 하루에 수만 번의 감각과 감정을 주고받는다. 이 모든 자극이 뇌를 변화시키고, 의식을 진화시킨다.
예술, 자연, 관계, 고통, 책, 실수, 기다림... 모든 것은 배움의 텍스트다.
자연은 순환을, 고통은 성장의 가능성을, 침묵은 언어의 깊이를 가르쳐준다.
타인의 얼굴에서, 한 권의 책에서, 또는 하루의 피곤함 속에서도 우리는 배운다.


그러니 배움은 존재의 방식이다.
배움을 멈춘다는 것은 곧 살아있음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이 장은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라는 물음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알고 보니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을 배울까'가 아니라 '무엇이든 배울 자세'이다.




세상에 쓸모없는 경험은 없다. 인간의 뇌는 아무리 작은 경험이라도 전기적 신호를 통해 자극을 받는다.
땅을 기어가는 작은 개미의 움직임을 바라볼 때도,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의 백색소음을 들을 때도, 집을 나설 때마다 늘 만져온 차가운 문고리의 감촉도, 그 모든 감각과 작은 경험들은 우리의 뇌에 실재하는 형태로 각인된다.
그리고 그 '실재함'을 활용할 것인지, 가지치기하듯 버릴 것인지는 전적으로 우리에게 달려 있다.


‘브레인스토밍(Brainstorming)’은 참으로 흥미로운 표현이다.
우리의 뇌 속에서 격렬한 전기 폭풍이 일어나는 모습을 상상해 보면, 그 속에서 수많은 단어들이 마구 휘몰아치며 뒤섞이는 장면이 떠오르곤 한다.
하나의 단어나 개념을 가지고 사색에 잠겨 브레인스토밍을 하다 보면, 어느새 복잡한 신경망처럼 얽힌 마인드맵이 자연스럽게 그려진다.
그 구조는 마치 우리의 뇌를 연상시키는 형태로 자라난다.

이 복잡하게 얽힌 마인드맵 안에서 우리는 단어와 단어를 엮고, 개념과 개념을 연결해 새로운 아이디어와 독창적인 사유를 완성해 낸다.
이러한 브레인스토밍의 과정을 복기해 보면, 우리의 뇌가 작동하는 방식과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브레인스토밍’을 언급한 이유는, 이것이 우리가 실재하는 감각과 경험들을 버리지 않고 활용할 수 있는 좋은 방법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스쳐 지나가는 작은 물체 하나에도, 그것을 보고 상상하고, 추론하고, 사유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마치 뉴턴이 떨어지는 사과를 보며 달과 우주, 운동과 만유인력까지 사고를 확장해 나갔던 것처럼 말이다.


뉴턴이 그 작은 경험으로부터 뇌 안에 폭풍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오늘날의 물리학이 완성되기까지는 훨씬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그러니 아무리 작은 경험이라도 하찮게 여기지 않는 태도는, 우리를 더 위대한 존재로 이끌어 줄지도 모른다.




사실 경험의 중요성을 많은 사람이 알고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소위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않기 위해 시간과 돈을 들여 색다른 경험을 하려 한다.
하지만 경험을 배움으로 승화시키는 데에는 ‘절대적인 경험의 양’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앞서 말했듯, ‘무엇을 배우는가’보다 ‘무엇이든 배우려는 자세'가 더 중요하다.
즉, 어떤 경험을 하든 배우려는 자세가 없다면, 그 경험은 나에게 배움이 되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험의 양을 늘리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책을 읽자. 모든 지식과 지혜와 경험이 그곳에 있다.”


인간의 뇌에는 약 1,000조 개의 시냅스(유아기엔 약 1,500조 개)가 형성되어 있다.
만약 우리의 시냅스 하나하나가 'Yes' 혹은 'No'를 판별하는 하나의 비트(bit)를 처리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면, 인간의 뇌는 한 번에 약 120 테라바이트의 정보를 처리할 수 있는 고성능 컴퓨터인 셈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재미있는 상상을 해보자. 인간의 뇌라는 이 컴퓨터의 처리장치에 정보를 주입하는 행위가 바로 '경험'이라고 가정해 보는 것이다.

자극이라는 것도 결국 전기적 신호이기 때문에 비트(Bit)라는 정보량으로 환산할 수 있다. (물론 경험을 정확한 정보량으로 측정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예컨대, 인간의 눈은 초당 약 10⁷ 비트의 정보를 받아들이지만, 뇌는 이 중 극히 일부(약 40에서 50 MB)만을 수용한다. 하지만 경험이란 단순히 시각적, 청각적 감각으로만 정의되지 않는다. 과거의 기억, 감정, 맥락적 해석 등이 복합적으로 참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나의 개별 경험은, 단순 자극이 주는 정보량의 몇십 배에 이르는, 수백에서 수천 메가바이트(MB) 규모의 정보량을 갖는다고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책이 가진 정보량은 어떠할까?
구글 북스(Google Books)는 전 세계 책을 모두 디지털화하기 위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2010년에 약 1억 2,900만 권의 책이 존재한다고 추산했다. 그로부터 10년이 넘게 지났으니, 어림잡아 약 2억 권의 책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가정해 볼 수 있다.
이 모든 책의 텍스트를 정보량으로 환산하면 약 1,000조 비트에 달한다. 놀랍게도, 이는 인간 뇌의 시냅스 수와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즉, 우리의 뇌는 전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책의 '텍스트'만을 처리하더라도 뇌 전체 용량을 모두 활용해야 할 만큼, 책은 어마어마한 정보량을 지닌 것이다.

그러나 책은 단지 텍스트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책에는 저자가 삶을 통해 얻은 단편적인 경험부터 일생에 걸친 통찰까지, 다양한 감각과 기억, 감정이 녹아 있다. 그래서 우리는 책을 읽으며 그 사람의 삶을 엿볼 수 있고, 간접적으로 그의 경험을 느낄 수 있다.
따라서 책 속에 담긴 경험의 정보량은 1000조 비트의 몇십 배나 더 될 것이니, 실로 헤아리기 어려운 정도의 정보량을 가진 것이다.
어쩌면 수치상으로만 본다면, 우리가 실제로 몸으로 겪으며 얻는 직접 경험보다, 책을 통해 얻게 되는 간접적 경험의 정보량이 훨씬 더 클 수도 있다.


물론 위의 예시는 하나의 재미있는 가정일 뿐이지만, 책이 주는 간접 경험 안에 수많은 정보가 담겨 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그러니 책을 읽자.
우리는 책을 통해 전 세계를 여행할 수 있고, 과거로 시간 여행을 떠날 수도 있으며, 먼 미래와 외계 행성을 꿈꾸며 마주할 수 없는 경험들까지도 접할 수 있다.

책은, 우리가 겪을 수 없는 것들에 대한 가장 확장된 경험의 형태이자, 경험을 배움으로 이끄는 지혜의 도구이다.




이렇듯 인간의 삶은 스승이 된다.
하루는 교실이고, 만남은 교재이며, 실수는 시험지가 된다.
우리는 눈을 뜨고, 호흡하고, 사랑하고, 아파하는 그 매 순간 배운다.

그렇기에, 살아있는 모든 순간이 곧 배움이다.


배우려는 자세만 있다면 우리는 항상 배움을 향해 초대받을 수 있다.
과학에서 자연을 보고, 인문학에서 인간을 보며, 삶을 통해 우주를 보는 동시에 책을 통해 우리의 의식은 심우주만큼이나 깊어질 수 있다.


결국, 인간이란 삶 자체가 배움이며, 배움이 우리의 삶이 된다.
삶을 살아내는 그 자체가 이미 위대한 배움의 과정이기에,

그렇다.
우리는 '배움의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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