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시대보다 앞선 배움(2)
빅데이터 분석, 인공지능(AI), 로봇공학, 사물인터넷(IoT), 무인 운송 수단, 3D 프린팅, 양자 컴퓨터, 나노 기술. 불과 10년 전만 해도 SF 소설 속에서나 볼 수 있었던 실로 놀라운 기술들이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이와같은 혁신적인 기술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기술들로 이루어진 오늘은, 바로 4차 산업혁명의 시대이다.
정보화 시대를 넘어, 4차 산업혁명이 도래하면서 우리의 생활 모습은 놀라울 만큼 달라지고 있다.
냉장고가 자동으로 식재료를 주문하고, 조명은 사용자의 습관에 따라 켜지고 꺼진다. 개인의 행동은 알고리즘을 통해 분석되고, 디지털 세상 속에 나의 취향으로 저장된다. 우리의 일상 자체가 ‘디지털화’되고 있는 것이다.
반복적이고 기계적인 업무는 더 이상 사람의 손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AI는 ‘머신러닝’을 통해 스스로 학습하며, 제조업·물류·고객 응대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자동화를 실현하고 있다. 로봇은 점점 더 고도화되어 인간을 대체하는 것을 넘어, 인간이 할 수 없었던 일마저 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이 몰고 온 변화의 바람은, 그 자체로 형태 없는 공기가 되어 삶의 구석구석에 스며들고 있다.
그리고 그 변화는 ‘존재의 건축 현장’, 바로 배움의 존재 안으로도 깊숙이 들어오고 있는 중이다.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온 변화의 공기를 따라, 우리의 교육 역시 변화의 필요성을 감지했다.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직업과 사회 구조의 급변으로 인해 미래의 '일'은 점점 더 예측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고, 틀에 박힌 교과나 평가 방식으로는 그에 대비하기가 어려워졌다. 교육은 디지털 전환 시대의 핵심 역량을 누구나, 언제나 기를 수 있는 학습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전략적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다.
AI 디지털교과서, 고교학점제, 학생 역량 중심의 교육. 이러한 새로운 교육 방향의 설정을 통해, 한국 교육은 이제 지식 전달 중심의 시스템에서 학습자 주도형·평생 성장형 생태계로 이동하고 있는 중이다.
대한민국 교육의 최상위 목적은 교육기본법 제2조에 명시된 ‘홍익인간(弘益人間)’ 정신이다. 이는 인격 도야(수련, 수양), 자주적인 생활 능력, 민주시민으로서의 자질을 기르고, 인간다운 삶과 더불어 인류와 국가의 공동 번영에 기여하자는 숭고한 이념을 담고 있다.
교육과정이 어떻게 바뀌어왔든, 대한민국이 국민을 교육하는 목적을 담은 이 위대한 이념은 단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다. 다만, 때로는 그 정신이 훼손되어왔을 뿐이다.
그러나 깨어 있는 사람, 살아 있는 삶은 다시 역사를 써 나간다. 오늘날 교육이 추구하는 변화 역시 마찬가지다.
AI 디지털교과서는 ‘모든 국민’에게 공정한 배움을 제공한다. 이는 ‘홍익인간’이 담고 있는 가치인 ‘인류 공동 번영’과 ‘민주시민 자질’을 기술로 실현하는 일이다.
AI가 학습 이력과 오답 패턴을 분석하여 개념 설명과 문제를 즉시 조정하는 개인 맞춤형 학습은 학습 격차를 줄이는 데 기여한다. 그리고 다국어 및 UDL(범용설계) 지원은 장애 학생이나 다문화 가정의 학생에게도 동등한 학습 기회를 제공한다. 교사는 AI를 통해 학급과 학생의 다양한 학습 정보를 기반으로 수업을 재설계하며, 이를 통해 참여와 협력의 문화를 조성할 수 있다.
즉, AI 디지털교과서의 활용은 모든 학생이 장소·능력·배경에 상관없이 핵심 역량을 기를 수 있게 하는 공공성을 지닌다. 이러한 모습은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홍익의 이상과 직결된다.
고교학점제는 자주적 생활 능력과 평생학습의 토대가 될 수 있다. 학생이 진로와 흥미에 따라 과목을 ‘수강 신청’하고 ‘학점 이수’를 통해 ‘졸업’하는 대학식 구조는, 획일적이고 정형화된 시간표에서 벗어나 자기 설계형 배움을 가능하게 만든다.
이는 자기 주도성과 책임감을 핵심 역량으로 길러주며, 스스로 삶을 설계하고 지속적으로 배울 수 있는 힘을 제공한다. 결과적으로 이는 홍익인간 정신이 요구하는 자주적이고 성숙한 민주시민의 자질을 기르는 데 기여한다.
또한, 개정된 교육과정은 여섯 개 핵심 역량(자기관리, 지식정보처리, 창의적 사고, 심미적 감성, 의사소통, 공동체 의식)을 모든 교과 및 창의적 체험 활동에 녹여냄으로써, 지식과 인성, 시민성이 통합된 전인 교육을 실현하고자 한다.
이는 ‘인격 도야’와 ‘민주시민 자질’을 학습 경험 전반에 녹여내어, 개인의 성장을 사회적 책임으로 확장시키는 것이다.
이제 AI의 활용은 멈출 수 없는 변화의 흐름으로 작용하고 있다. AI의 활용이 곧 경쟁력이자 성장의 동력이 되고 있는 세상이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인간의 학습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AI가 글쓰기나 문제 해결을 대신해 주면, 두뇌를 덜 쓰게 되어 오늘날 문제가 되고 있는 디지털 기억상실증(digital amnesia)이 더욱 심화될 수 있다. 또한, 정답을 빠르게 제시하는 AI에 지나치게 의존할 경우, ‘왜?’를 탐구하는 과정이 사라지고 사고의 깊이가 얕아질 위험도 존재한다.
이러한 실태와 학업 평가의 신뢰성 붕괴를 우려하여, 대학교에서는 AI 활용에 대해 ‘투명하게, 책임 있게, 그리고 상황별로’라는 원칙을 지속해서 강조하고 있다. 학생들의 과도한 AI 의존이 오히려 그들의 학업 성취를 저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점을 우리는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까?
배움의 본질이 흐려지지 않기 위해서는, AI를 어떻게 받아들여야만 할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우리 스스로에게 있다.
이제 ‘배움을 제공하는 존재’였던 교육에서, ‘배움을 실천하는 주체’인 우리에게로 AI 활용의 바통이 넘어왔다.
그리고 그 핵심에는 AI를 통해 해결하는 인간이 아닌, AI를 통해 배우는 인간이 있다.
AI는 방대한 데이터에 기반해, 놀라울 정도로 빠르고 정확한 정보 접근과 처리(요약, 정리, 분석 등)가 가능하다. 이는 학생들이 정보를 찾고 정리하는 데 드는 시간을 크게 단축시켜 준다.
어디 그뿐인가? 이해하기 어려운 정보나 개념을 알기 쉬운 언어로 해설해 줄 수 있으며, 사용자의 질문 수준, 이해력, 관심사에 맞춰 맞춤형 피드백을 제공할 수도 있다.
이러한 능력은 시간과 비용 등, 인간이 배움에 소모해야 하는 자원과 에너지를 획기적으로 절약해 준다.
이야기를 이어가기 전에, 잠시 인간 종의 출현 이전, 우리가 어떻게 지금의 우리가 되었는지를, 생명의 신비와 생물 진화의 긴 흐름 속으로 되돌아가 살펴보자.
약 700만 년 전, 지구의 역사 위에 등장한 초창기 유인원은 천적을 피해 나무 위에서 생활하며 과일과 풀을 주식으로 삼았다. 하지만 기후 변화로 숲이 점차 사라져 가자, 나무에서 내려올 수밖에 없었던 그들은 생존을 위해 진화의 압력에 직면하게 된다. 그리고 모두가 알다시피, 그들은 이전의 다른 생물들과는 다른 방향의 진화를 택한다.
나무 위에서 생활하며 손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고, 그로 인해 점차 커져 가던 뇌는 더 이상 예리한 송곳니나 날카로운 발톱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주변에 널린 돌멩이가 그 역할을 대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돌이나 뼈와 같은 도구를 사용하기 시작하자, 식단에도 변화가 생겼다. 죽은 짐승의 머리뼈를 깨거나, 살점을 떼어내어 먹을 수 있게 되었고, 고기 섭취량이 증가하면서 더 많은 열량을 확보할 수 있었다.
신체 구조는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에, 기초대사량 역시 변화가 없었다. 따라서 섭취한 열량의 잉여분은 그대로 뇌로 공급될 수 있었다. 점점 더 많은 에너지를 공급받은 뇌는 점차 고도화되었고, 마침내 고대 유인원들은 불을 사용해 음식을 익혀 먹을 수 있는 능력까지 갖추게 되었다.
놀라운 순환이 시작되었다.
익힌 음식은 소화에 드는 에너지를 줄여 주었고, 그 잉여 에너지는 다시 뇌의 성장에 투입되었다. 그렇게 뇌의 성장을 반복해온 존재가 바로 호모속, 즉 인간 종이며 우리의 조상이다.
다시 말해, 에너지 소비의 절약이 곧 오늘날의 우리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이 기나긴 진화의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바로 그 역사 속에서 인류의 미래를 내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이, 오늘날 AI의 활용은 우리의 뇌가 배움에 소비하는 에너지를 획기적으로 줄여 주고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어쩌면, 이 또한 ‘배움의 진화’로 우리를 인도하는 전주곡은 아닐까?"
4차 산업혁명의 도래 이후, 우리는 실로 놀라운 혜택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지식과 정보는 온 세상에 넘쳐나며, 우리는 단순한 질문만으로도 그 지식의 바다에 접근할 수 있다.
침대에 누워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을 공부할 수 있으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칸트나 데카르트와 대화할 수도 있다.
언제 어디서나 배울 수 있는 세상이며, 그 어느 때보다 쉽고, 빠르며, 폭넓게 새로운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시대다. 그것도 그 어느 때보다 적은 에너지 소비로 말이다.
하지만 단순히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는 것을 ‘배움’이라 부르진 않는다.
배움은 본디, 존재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 과정이어야 한다.
기술이 아무리 진보하더라도, 배움의 본질은 여전히 인간에게 있다.
인간은 단순히 정보를 암기하는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질문을 던지고, 맥락을 파악하며, 그 안에서 스스로를 돌아본다.
타인과의 협력적 학습, 메타인지, 창의적 탐색, 질문 능력 등은 기계가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사고 작용이다.
AI의 등장은, 우리가 지식과 정보의 탐색과 정리에 들이는 에너지를 줄여줌으로써, 오히려 이러한 인간 고유의 사고 작용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오늘날 인간의 뇌가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새로운 방식인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제 이러한 인간의 사고 능력들이 AI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더욱 자극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챗GPT와 같은 생성형 AI는 단순한 정보 제공을 넘어, 학습자에게 ‘왜 그렇게 생각했는가?’, ‘다른 관점은 어떤가?’와 같은 질문을 던지게 하고, 자신의 사고 과정을 되짚어보게 하는 메타인지의 거울이 되기도 한다.
또한, 최근 학교 현장이나 학습 플랫폼에서 활용되고 있는 AI 기반 디지털 튜터는 학생의 수준에 맞춰 피드백을 제공하고, 오류를 인식한 후 그에 맞는 설명을 제안하는 등의 개별화된 학습 안내자로 기능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학습자는 단순히 AI의 지시를 따르기보다는, 어디까지는 기계가 돕고, 어디부터는 내가 생각해야 하는가를 끊임없이 고민하게 된다.
다시 말해, AI는 사고를 대신하는 존재가 아니라, 사고를 끌어내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뇌는 오랜 시간 동안, 좌뇌와 우뇌라는 듀얼코어의 용적을 확장하는 방식으로 진화해 왔다(물론 뇌의 용적이 곧 지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뇌의 성장은 정체되다시피 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뇌는, 또 한 번의 위대한 진화의 문턱 앞에 서 있다. 이번에는 생물학적인 진화가 아니다. AI라는 도구를 통한 ‘물리적 진화’, 즉 외부 지능의 확장이다.
700만 년 동안 유지되어 온 듀얼코어의 처리 체계는, 이제 AI와 결합된 트리플코어 구조로 진화하려 한다. 이는 곧 우리의 ‘배움’ 또한 진화의 문을 열고 있다는 증거다.
그렇기에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이 새로운 도구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를 먼저 배워야 한다. AI를 문제를 대신 풀어주는 마법사로 보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돋보기, 존재를 건축해 나가기 위한 획기적인 장비로 바라보아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도구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에 달려 있다.
나는 AI에게 어떤 질문을 던질 것인가?
어떤 지식과 정보를 원할 것인가?
그 정보를 바탕으로 함께 사유할 것인가, 아니면 그대로 받아 적을 것인가?
이처럼 스스로 던지는 질문들이, 미래의 배움이 나아갈 방향을 인도하게 될 것이다.
이제 우리에겐 정보를 찾아주고 정리해주는 ‘새로운 뇌’가 생겼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 고유의 뇌가 지닌 ‘신경가소성’을 잃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다.
기존의 뇌는 여전히, 그리고 점점 더 깊은 사고를 향해 발걸음을 재촉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우리는 진정한 변화와 진화를 맞이 할 수 있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인간.
다시 말해, 새로운 배움의 존재다.
이 새로운 배움의 존재에게는,
새로운 존재의 변화가 펼쳐질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앞날이 무척이나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