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
몇 년 전 재미있게 읽었던 네이버 웹툰 중에 〈뷰티풀 군바리〉라는 작품이 있었다.
‘군바리’(사실 군인을 비하하는 표현이라 좋아하는 단어는 아니다)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군대를 소재로 다루고 있다. 다만 작중 주요 무대는 의무경찰, 즉 ‘의경’ 복무 생활이기 때문에 엄밀히 말해 군인의 이야기를 그대로 반영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작품 속 설정에 따르면 1990년대 초반 대한민국에서 여성 징병제가 도입되어, 여성도 남성과 마찬가지로 의무적으로 군 복무를 하게 된다. 웹툰은 바로 그 여성 복무자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얼핏 보면 현실의 군대와는 거리가 있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작품만큼 군대 안의 또 다른 ‘사회’를 생생하게 표현한 웹툰은 드물다고 생각한다. (2000년대에서 2010년대 초반까지의 군 생활을 들여다보고 싶은 분들께는 한 번쯤 감상해 보기를 추천한다.) 작품 속 캐릭터들은 모두 여성으로 설정되어 있지만, 성별만 다를 뿐 그 안에서의 다양한 인간 군상과 갈등 구조는 실제 내무생활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옮겨놓은 듯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많은 이들에게 가장 큰 공감을 불러일으켰던 장면은 역시 ‘훈련소’에서의 에피소드였을 것이다.
육, 해, 공군과 의경뿐 아니라 공익근무요원들조차도 훈련소에서 기초 군사훈련을 받는다. 그러니 훈련소는 대부분의 대한민국 남성들의 동일한 추억이 담겨있는 곳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기억이라는게 어떤 것은 굳이 떠올리려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레 뇌리에 박혀 남아 있는 경우가 있다. 내게 있어서 그런 기억 중 하나가 바로 훈련소에서의 사건들과, 그에 얽힌 인물들이다. 그 기억 속 인물들은 함께 같은 무게를 감당하던 동기들도 있었지만, 우리 위에 서 있던 조교들도 포함된다.
나는 꽤 늦은 나이에 입대했다. 덕분에 동기들 중에서는 가장 나이가 많은 축에 속했고, 심지어 몇몇 조교들보다도 나이가 많았다. 그러나 신분이라는 것은 참으로 묘하다. 훈련병이라는 나의 위치와 신분이 납득되고 나니, 내 또래 혹은 그보다 어린 조교들조차 무서운 형이나 위엄 있는 어른처럼 보였더랬다.
훈련병들의 입장에서는 직접적인 권한을 행사하는 교관들보다, 항상 곁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조교들이 더 공포의 대상이 되곤 했다. 조교들의 임무는 단순히 교육훈련 시 교관을 보조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훈련병 인솔과 생활 통제까지 맡고 있었기에, 일과가 끝나 퇴근하는 교관들과 달리 조교들은 24시간 훈련병들과 함께 생활하며 우리를 통제했다.
훈련소를 수료한 지 십수 년이 지난 지금, 요즘의 조교들이 어떤 모습일지는 잘 모르겠다. 오늘날 군대는 병사들에게 예전만큼의 권한과 책임을 부여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아마 지금의 조교들은 예전만큼 훈련병들에게 공포의 대상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다만 내 기억 속 그 시절의 훈련소 조교들은, 훈련병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던 존재인 동시에 흐트러짐 없는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었던 군인들이었다.
조교들도 훈련소가 곧 자신의 자대이기에, 분대 규모의 편제로 조직되어 있었다. 이들도 여타 군인들과 마찬가지로 이등병부터 병장까지의 병사들로 이루어져 있었고, 그 안에는 소위 말하는 ‘실세’도 존재했다. 그중 우리 기수의 훈육을 담당했던 조교들의 실세는 '서 상병'이라는 조교였다.
큰 키와 날카로운 눈매를 가졌던 그의 첫인상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우리 앞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그가 내무반에 들어서기만 하면 모두가 순식간에 침묵에 잠길 수밖에 없었다.
훈련소 교육기간 내내 그가 미소 짓는 모습을 본 기억은 거의 없다. 그의 차가운 인상만큼이나 행동도 거칠고 투박했으며, 불친절하기까지 했다. 어느 날은 관물대 정리 상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힘겹게 정리해 놓은 군장과 물품을 몽땅 바닥에 엎어버리기도 했다. 이런 모습 때문에 나를 비롯한 동기들은 그를 두려워하면서도 뒤에서는 욕을 하곤 했다.
“쟤는 왜 항상 화가 나 있는 거야?”
그에 대한 우리의 평가는 늘 이 한마디로 귀결되곤 했다.
그런 그를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은 교육훈련 시간에서였다. 첫 사격훈련을 앞둔 PRI훈련(Preliminary Rifle Instruction, 사격술 예비훈련, 혹자는 피(P)가 나고, 알(R)이 배기고, 이(I)가 갈리는 훈련이라 말한다.) 시간. 교관이 “조교 앞으로!”라고 외치자, 그는 소총을 잡고 우리 앞에 섰다. 능숙하게 각 잡힌 구분동작으로 바닥에 엎드린 뒤, “거총!”이라는 구령과 함께 사격 자세를 취했다. 그 순간,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우리 손에선 저절로 박수가 터져 나왔다. 아직 계급이 낮은 동료 조교들 조차 입을 동그랗게 만들곤 박수를 치기도 했다.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그가 굉장히 멋진 사람으로 보이기 시작한 것은.
그 모습 앞에서, 그가 나보다 어린 사람이라는 사실이 좀처럼 믿기지 않았다.
서 상병의 미소를 처음 볼 수 있었던 시기는 모든 교육훈련이 끝나고 훈련소 수료를 앞둔 무렵이었다. 그때가 되자 조교들은 약간은 풀어진 분위기 속에서 우리를 편하게 대해주었고, 자대 생활에 대한 팁을 알려주며 새로운 곳으로 내보낼 준비를 해주곤 했다.
모든 조교들이 평소 각 잡힌 모습이 그들의 전부가 아님을 보여주듯, 농담을 주고받으며 인간적인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서 상병도 예외가 아니었다. 주차가 거듭될수록 그는 우리 사이에서 범접하기 어려운 인기스타가 되었고, 마지막 시간을 함께하는 자리에서는 수많은 질문 세례를 받았다.
그의 표정은 더 이상 차갑지도, 무겁지도 않았다. 그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페이스북 친구 추가하겠다는 말 하지 마. 너네 연락 안 할 거 다 알아. 내가 너희 같은 애들 한두 번 경험해 본 줄 알아?”
그때 동기들은 “저는 다릅니다!”라며 너도나도 대답했지만, 지금 수많은 병사들의 전역을 지켜본 지금에서야 그의 말이 깊이 공감이 된다.
가장 많이 쏟아진 질문은 단연 “그때, 저한테 왜 그러셨어요?”였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그는 “그거 일부러 보여주기식으로 그런 거야. 미안하다.”라는 말을 시작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병사의 입장에서 같은 병사들을 통제해야 하는 조교라는 위치. 서 상병에게도 그것은 두려움과 긴장의 연속이었다. 조교들은 훈련병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것도 아니었고, 특별히 압도적인 신체조건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 (물론 실제로 조교들의 체력 수준은 훈련병이었던 우리와는 차원이 달랐다.)
그런 상황에서 감독자이자 관리자인 조교들이 훈련병을 이끌어가기 위해 택할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았다.
바로 본보기를 보여주는 방법과 공포심을 자극하는 방법이었다.
그리고 어리고 평범했던 서 상병 역시 그 두 가지를 몸으로 터득해야만 했던 것이다.
조교들이 짊어져야만 하는 짐, 그 무게는 그에게 다른 모습의 자신을 강요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단순히 그것을 즐기는 것이 아닌, 꼭 해야만 하는 자신의 책임감으로 받아들인 그의 모습은 그의 본모습과 인간됨을 알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조교들도 결국 우리와 같은 사람이었다. 그저 그들에게 부여된 책임이 달랐을 뿐이다.
어찌 보면 모든 것이 처음이고 서툰 20대 초반의 청년들, 그 가운데 누군가는 통제와 관리라는 책임을 부여받았고, 누군가는 순응과 복종의 책임을 부여받았다. 그 차이가 그때의 우리들의 모습을 만들어내게 되었다.
수료식이 끝나고 훈련소를 퇴소하던 날, 모든 조교들이 버스 양옆에 도열해 이등병 계급장을 단 우리를 배웅해 주었다. 그들의 거수경례 속에서, 우리는 뜨거운 감정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끼며 함께 경례를 올렸다.
그 무리 속에서 듬직하고 늠름했던 서 상병의 모습도 발견할 수 있었다.
멋지게 자신의 역할을 수행해 낸, 어쩌면 악역을 강요받았던 그를 향해 나는 존중과 존경의 마음을 담아 마지막 경례를 드렸다.
조교.
군에서 말하는 대의를 위해 스스로의 색깔을 버린채, 누군가에게 미움받기를 각오하는 존재들.
그 직책이 품고 있던 색깔과 무게는, 훈련소를 거쳐 간 모든 군인들이 존경해야 마땅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