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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회

# 24

by 더블윤

훈련소 수료식이 끝나면 훈련병들에게는 꿈같은 시간이 주어진다.
바로 입대 후 처음으로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영외 면회가 허가되는 것이다.

그날의 햇살이 아직도 선명히 기억난다.
눈부신 태양 아래, 여자친구의 손을 잡고 거닐던 입영심사대의 풍경은 그 어떤 공원보다도 아름답게 느껴졌다.

시원한 그늘이 있는 벤치에 앉아 그녀가 정성스레 싸 온 도시락을 열었다. 커다란 3단 도시락의 뚜껑이 열리자, 형형색색으로 예쁘게 담긴 음식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학창 시절 소풍 때마다 내 도시락은 언제나 김밥천국의 천 원짜리 김밥 한 줄이 전부였다. 그런 나에게 그녀가 싸 온 도시락은, 그 자체로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을 주는 선물 같았다.
‘짬밥’이라 불리는 군 식단만 먹은 지 한 달 남짓, 자극적인 음식의 맛이 그리웠지만, 이상하게도 음식은 쉽사리 목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인천에서 논산까지, 그 먼 길을 달려오기 전 새벽부터 불 앞에 서서 도시락을 준비했을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는 자꾸만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그녀는 그런 나를 보며 조용히 미소 짓고 있었다. 나는 연신 “고마워.”라는 말만 반복하며, 음식과 함께 눈물을 삼켜냈다.

너무나 먹고 싶었던 아이스 아메리카노도 등장했다.
보온병 속에서 따라낸 그 짙은 암갈색의 액체가 얼음과 함께 목으로 쏟아져 들어오자, 씁쓸하면서도 약간의 산미가 도는 그 맛이 은은한 커피 향과 어우러져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지금 생각해도 이상하다. 늘 달달한 믹스커피만을 고집했던 내가, 왜 그토록 아메리카노를 원했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아마도 단순한 ‘맛’의 갈망이 아니라, 잊고 지내왔던 ‘평범한 일상’이 주는 감각을 되찾고 싶었던 마음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 한 모금의 아메리카노는 그동안 훈련소에서 느껴온 모든 갈증을 단숨에 해소시켜 주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아니었더라도 괜찮았을 것이다. 그녀가 내게 건네준 것이 무엇이었든, 그저 그녀의 손끝에서 전해진 음료라면 내 모든 갈증은 충분히 사라졌을 테니까.
내가 그때 느끼고 있던 가장 깊은 갈증은, 결국 그녀를 향한 그리움이었으니까 말이다.




두 시간 남짓한 짧은 면회 시간.
그간 다 하지 못한 이야기나, 서로를 향한 애틋한 마음을 나누기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내가 계속해서 디지털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던 이유는, 아마 이 시간을 조금이라도 붙잡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따스한 햇살을 느끼는 시간도, 그녀의 부드럽고 하얀 손을 잡고 있을 시간도, 내 미소를 그녀에게 보여줄 수 있는 그 짧은 시간마저도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렸다.

눈을 깜박이는 순간조차 아까웠다.
할 수만 있다면, 함께 있는 이 시간을 영원으로 늘리고 싶었다.
세상의 모든 흐름이 우리를 남겨둔 채 멈추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만 갔다.

내게 주어진 면회 시간이 끝나가던 그때, 그 순간의 심장 박동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그것은 이전에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전혀 다른 종류의 박동이었다.

그녀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 느꼈던 설렘의 박동과 달랐다.

그녀에게 처음 고백하던 날 느꼈던 긴장의 박동과도 달랐다.

입대 날, 홀로 입영심사대를 지나며 느꼈던 두려움의 박동과도 확연히 달랐다.

그날, 그 시간에 내 가슴을 울리던 박동은, 숨이 막힐 만큼 고통스러운 박동이었다.




“나, 갈게…”

“어… 먼저 들어가. 가는 거 보고 갈게.”

“아니야… 먼저 가…”

우리는 끝내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웃음과 햇살이 가득하던 얼굴들이, 이제는 어두운 그늘을 머금고 있었다.
애써 지은 미소 아래로, 눈물이 울컥 치밀어 오를 것만 같았다.

결국 내가 먼저 발걸음을 돌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마치 삼보일배를 하듯, 몇 걸음 옮길 때마다 자꾸만 고개가 뒤로 돌아갔다.
그곳엔 여전히 하얀 원피스를 입은 채 그 자리에 서서, 내게 손을 흔들고 있는 그녀가 있었다.

사실 다시 그녀에게 돌아가고 싶었다.
그녀와 기차를 함께 타고 가고 싶었다.
아니, 그저 기차역까지만이라도 배웅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우리의 만남이 허락된 범위는 딱 거기까지였다.

하얀 원피스를 입은 그녀,
그리고 초록빛 군복을 입은 나.
우리가 그날 입었던 옷은 우리의 현실에 대한 반영이었고, 우리의 만남은 기약 없는 ‘다음’을 약속한 채 입영심사대의 정문을 넘어서지 못했다.

내가 경험한 어떤 이별보다도 그날의 이별이 가장 가슴 아팠던 것 같다.
서로를 사랑하기에, 넘을 수 없는 선을 뒤로하고 각자의 길로 걸어가야 했던 그 현실이 너무나도 잔인하게 느껴졌다.

그녀의 모습이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자, 그리움과 아픔은 배가 되어 한꺼번에 밀려왔다.

이렇게나 아플 줄 알았다면, 차라리 보지 않았더라면 좋았을까.

돌아가는 그녀에게 전화를 걸고 싶었다.
짧은 두 시간의 면회를 위해 수 시간을 달려왔을,
아니, 수백 시간을 기다려온 그녀의 마음을 어떻게든 위로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의 벽 앞에서 결국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결국 나는 훈련병 막사 앞 구석에 앉아 소리 없이 울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나중에서야 들었다.
그 시간, 기차 안의 그녀 역시 눈물을 참지 못하고 울고 있었다고.
우리의 기쁨이 연결이 되어 있었 듯, 우리의 슬픔 또한 연결되어 있었다.

면회.

그날의 기쁨은 결국 눈물로 끝이 났다.

찬란하던 태양이 어느덧 뉘엿뉘엿 저물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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