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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하나 된(번외 편)

by 더블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아이들이 처음으로 초록색을 인식하는 순간은 무엇을 통해 올까? 아마도 풀과 나무를 눈앞에 두는 그 하루가 아닐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인간은 언제나 초록과 함께 살아간다. 자연의 생명력을 품은 그 색이 사라진 세상을 우리는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그러나 단언컨대, 여러분들은 진정으로 초록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아직 모를 것이다.




산지가 많은 대한민국의 지형 특성상, 대한민국 군대만큼 자연과 밀착해 살아가는 조직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리고 자연과 함께 산다는 것은 곧, 초록과 함께 산다는 의미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초록은 단순히 자연을 의미하진 않는다. 문자 그대로의 초록빛 세상을, 군대에서는 경험할 수 있다.

군대는 맨몸으로 입대해도 될 만큼, 준비해야 할 물품이 거의 없다. 의·식·주가 모두 제공되기 때문이다. 그 말인즉슨, 병사들이 입을 속옷까지도 보급으로 나온다는 뜻이다.

자, 여러분께 그 놀라운 디자인을 공개하겠다.


심플한 디자인이 유니X로나 무X사의 의류를 연상시키는듯 하다.


마치 천 조각을 초록 염료에 푹 담갔다 그대로 꺼낸 듯한 수려한 초록빛 속옷.
그것이 우리들의 군용 속옷이었다.
물론 지금은 기능과 디자인이 개선되어, 이런 속옷을 입고 생활하는 군인을 더는 보기 어렵다.

군대를 다녀온 이들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만한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바로 ‘팬티 도둑’.
도대체 이런 속옷을 왜 훔쳐가는지 영문을 알 수 없지만, 건조대에 걸어두었던 속옷이 사라지는 사건은 거의 모든 병사들이 겪는 희한하면서도 흔한 일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속옷에 이름을 적었다.


정확히는 붉은 원으로 표시된 부분에 하얀색 태그가 달려있었고, 그곳에 이름을 적어넣었다.


자, 상상해 보시라. 자신이 입고 있는 팬티 앞면에 본인의 계급과 성명이 적혀있는 모습을...
아마 상상하기도 싫은 장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모습이, 그 시절 우리의 일상이었다.




군인의 녹색 사랑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이번에 다룰 것은, 군인들의 침구류다.


군용 모포와 침낭. 따뜻해보이지만 혹한기 야외의 추위를 막아줄 순 없다.


고스톱 판에 딱 어울릴 것 같은 담요. 안으로 들어가면 인간 번데기가 되어 나비로 우아하게 변태할 것만 같은 침낭. 군인들의 잠자리 필수 아이템들이다.
물론 요즘에는 일반 가정에서 쓰는 침구류로 대체되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중요한 군장 품목인 것만은 변함없다.

병사들에게 있어 하루의 시작은 사용한 모포와 침낭을 각 잡아 개는 것에서 시작된다. 군대에서는 ‘시작이 반’이 아니라, 위와 같은 ‘개인정비가 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 그러면 이번에도 다시 상상력을 발휘해 보자.
녹색 반팔, 녹색 팬티를 입은 사내들이, 녹색 침낭에서 기어 나와 녹색 담요와 침낭을 야무지게 접고 있는 그 아침의 풍경을.
그 자체가 하나의 초록 생태계 아니겠는가?




그 외에도 군대 안의 대부분의 물자와 장비, 차량들은 모두 녹색이다.

물론, 이는 지극히 합리적인 이유에서다.
앞서 말했듯 산지가 많은 대한민국의 지형에서 녹색은 가장 확실한 위장색이다.
그리고 군에서는 이 녹색을, 이름도 든든한 ‘국방색’이라 부른다.

국방색이라…
색 이름 속에 국토를 방위한다는 뜻을 담아낸 색.
생각해 보면, 초록이라는 색이 이토록 장엄한 이름을 부여받은 곳이 또 있을까.

그러니 이 초록은 군인들에게 특별할 수밖에 없다.
매일, 매 순간 눈에 담는 그 색 속에는, 자연이라는 '생(生)'과, 군인이 마땅히 지켜야 할 또 다른 '생(生)'이 결코 분리될 수 없는 형태로 담겨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초록의 유니폼을 입는다.
하지만...

초록색 팬티는 앞으로 더는 입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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