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본능

1-4. 왜 배움인가?(1)

by 더블윤

교육은 밖을 향한 렌즈다.
배움은 안을 향한 렌즈다.
우리는 지금까지, 그 렌즈가 사회라는 거대한 무대를 어떻게 변모시켜 왔는지 지켜보았다.

그렇다면 이번엔, 그것이 나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살펴볼 차례라 생각한다. 시선을 우리 자신의 존재, 그리고 ‘지금 여기’의 삶으로 돌려보자.


왜 배움인가? 우리는 왜 배우는가? 다시 말해, 우리는 왜 ‘배움의 존재’가 되었을까?
이 철학적인 질문에 답을 내기 위해, 우리는 길고 느릿했던 생물의 진화사와 인류 문명의 역사를 잠시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내가 생각한 첫 번째 이유는 바로, 배움이야말로 '존재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생존은 모든 생명의 가장 원초적인 본능이자 욕구다.
존재를 유지하기 위해 생명은 변화에 적응해야만 했다.
원시 지구의 환경 속에서 생명은 세포 기능을 조정하고, 빛과 온도, 위협에 반응하며 살아남는 법을 ‘기억’하기 시작했다.

이 모든 과정은 ‘배움’이었다. 생존 본능은 단순한 반응을 넘어, 축적된 경험을 활용하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단세포 생물의 무의식적인 ‘원형적 배움’에서부터, 신경계의 등장으로 가능해진 기억과 판단, 사고를 통한 배움, 그리고 나아가 집단 기억의 공유를 통한 ‘배움의 전이’까지. 이 모든 배움의 공통점은 단 하나, ‘어떻게 하면 생존에 유리할 것인가’였다.

생명은 분명 배움을 통해 그 존재를 이어왔고, 배움은 존재의 언어이자 생명의 본능이었다. 누군가 가르치지 않아도, 생명은 본능적으로 ‘먹는 법’, ‘숨는 법’, ‘번식하는 법’을 배운다.
어쩌면 배움은, 생명이 가진 가장 깊고 오래된 욕구일지도 모른다.

수컷 가시고기는 붉은색 물체를 보면 공격하는 본능이 있다. 이는 학습이 아닌 선천적 행동으로 나타난다. 배움이란 것도 선천적으로 나타나는 본능인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라는 생물은 조금 다르게 보이기도 한다. 인간은 단지 살아남는 데 머물지 않는다.

일본 만화 《원피스》의 드럼섬 에피소드에는 'Dr. 히루루크'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가 남긴 마지막 대사는 만화 팬들 사이에서 오랫동안 회자되는 명장면이다.


“사람이 언제 죽는다고 생각하나?
심장이 총알에 뚫렸을 때? 아니.
불치병에 걸렸을 때? 아니.
맹독 버섯 수프를 마셨을 때? 아니야!
사람들에게서 잊혔을 때다!
내가 사라져도, 내 꿈은 이루어진다!”


만화의 한 장면일 뿐이지만, 이 대사는 철학적으로도 깊은 울림을 준다. 죽음을 ‘생물학적 정지’가 아닌 ‘존재의 망각’으로 정의한 점은, 인간 존재에 대한 통찰로 다가온다.

실제로 인간은 존재에 대한 질문을 본능처럼 품고 살아간다.
"나는 왜 여기 있는가?", "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들은 성장기에 접어든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던져보았을 질문이다.
그러나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지 못할 때, 인간은 생존 본능을 넘어서는 극단적인 선택, 즉 ‘자살’이라는 행위에 이르기도 한다.
인간은 지구상에서 존재의 의미에 대한 욕구가 생존 욕구를 초월할 수 있는 유일한 생명체인 것이다.

이것은 인간이 단지 이성의 산물이 아니라,
존재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본능적 욕구를 가진 생명이라는 사실을 시사한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싶어 하는 존재이며, 그 갈망 또한 배움이라는 형식으로 표현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시 질문할 수 있다.


인간의 배움은 단지 생존을 위한 본능에 머무는 것일까?


앞서 말했듯이, 모든 생명은 존재를 위해 배우기 시작했다. 인간도 예외는 아니다. 인간도 태어남과 동시에 생존을 위한 본능을 실행한다.
갓난아이는 먹기 위해, 안전을 위해, 자신의 생리적 필요를 울음이라는 방식으로 표현하며, 자신의 존재를 부모에게 알린다.

그리고 아이는 기억하고 학습한다.
젖 냄새는 어미의 품이라는 안도감을, 자장가는 안전한 공간임을 인식하게 하고, 부모가 기저귀를 갈아주는 일련의 반복 속에서 ‘요청과 반응’의 규칙을 배워간다.
부모는 자녀에게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교육을 실시하고, 아이는 이를 모방하고 기억하며 세상을 이해해 나간다.
인간도 결국 본능적으로 기억하고, 사고하며, 판단하고 배운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다른 생물종에겐 없는 특이점이 있으니, 아이들은 자라며 질문이 많은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아마 아이를 키워본 사람이라면 이러한 질문들을 매일같이 들었을 것이다.

“이건 왜 그런 거예요?”
“이건 어떻게 움직이는 거예요?”
“그게 무슨 뜻이에요?”
“저건 어디에서 나온 거예요?”

이 질문들은 단지 호기심이 아니라, 인간이 자기 존재를 확장해 나가는 방식이자, 배움의 가장 순수한 형태다.
그리고 성장한 인간은 마침내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된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과연 존재란 도대체 무엇인가?”




인간의 본능은 생존을 넘어 존재에 대한 물음을 향한다. 그렇기에 인간은 가장 고차원적인 배움이 필요한 존재다.

모든 생명에게 있어 배움은 곧 존재의 방식이었다. 배움은 삶을 유지시키는 도구이자, 존재를 해석하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인간은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외부 세계를 알기 위해 배우고, 자기 자신을 알기 위해 배우는 존재다.

존재한다는 것은 단순히 변화에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그 변화 속에서 자신을 자각하고 이해하려는 행위이다.
그래서 인간은 생존을 넘어 의미 있는 존재가 되기 위해 끝없이 배우고 질문한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단지 철학이 아니라, 우리 존재에 새겨진 가장 오래된 본능적 학습의 명령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배움의 존재’라는 말이 타당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인간은 생명의 일부로서, 배움이라는 존재의 언어를 자연스럽게 따르며 살아가고, 고차원적인 질문을 품고 사는 유일한 생명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의식하지 않아도 존재에 대한 물음을 안고 살아간다.
그리고 그 답을 얻기 위해, 자기도 모르게 배움을 갈구한다.

우리에게 있어 배움은 단순한 생존이 아니다.
그렇다고 단순한 지식도 아니다.
배움은 우리의 존재를 완성시키는 하나의 황금길이며,
우리는 그 황금길을 본능적으로 열망하는 존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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