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왜 배움인가?(2)
학생이라는 죄로
학교라는 교도소에서
교실이라는 감옥에 갇혀
출석부라는 죄수 명단에 올라
교복이란 죄수복을 입고
공부란 벌을 받고
졸업이란 석방을 기다린다
위의 글은 버디버디, 네이트온, 싸이월드가 한창 유행하던 나의 학창 시절, 인터넷상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학교에 관한 문장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땐 참 어렸고 유치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지만, 당시에는 이 글을 서로에게 보여주며 키득거리기도 하고, 은근히 공감하며 진지한 반항심을 키워보기도 했었다.
학교라는 제도에 대해 오해하고 있었고, 배움의 본질과 목적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기에, 이와 같은 글에 (오늘날로 표현하면) ‘좋아요’를 눌렀던 것 같다.
하지만 공교육과 학교라는 제도의 본질은 학생들을 가두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이번에는 함께 학창 시절로 돌아가, 학교에서 배웠던 과목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도록 하자.
국어(언어)를 배우며 우리는 말하고, 듣고, 쓰는 법을 익혔다. 문자는 문명의 첫 제도적 교육이었다. 한때는 소수의 특권이었지만, 오늘날 우리는 모두 그것을 익히며 문명의 일원으로서의 소양을 쌓아간다. 국어는 모든 학문의 기초가 되었고, 우리는 읽고 쓰고 말하기를 반복하며 감수성과 문해력을 키웠다. 생각을 표현하는 법을 알게 되었고,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을 배웠다.
과학과 수학을 배우는 일은, 세계의 진리를 향한 발걸음을 내딛는 것이었다. 알고 보면 '수학'으로 짜인 작품을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것이 이 세상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수’라는 마법 같은 언어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수학의 꽃이라 불리는 방정식과 함수는 ‘수포자(수학 포기자)’들을 낳기 시작했고, 미분과 적분에 이르러서는 “이게 정말 삶에 필요한 학문인가요?”라는 질문도 나오게 되었다.
그럼에도 수학은 그 자체가 가진 아름다움이 있다. 답을 구하는 데 이토록 명확한 도구는 드물다. 그리고 갈릴레이가 말했듯, “수학은 과학의 언어”이다. 우리는 진리를 이해하기 위해, 진리의 언어를 배우고 있었던 것이다.
과학은 그 탄생부터가 세상을 이해하는 학문이었다. 개인적으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과목이기도 했다. 과학은 배울수록 이치에 닿아 있었고, 경이로웠으며, 마음속에 쌓여 있던 수많은 물음을 시원하게 풀어주었다. 물론 그 언어인 수학은 나에게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제3의 외국어 같았지만, 그것이 과학이 주는 감동을 흐리게 하지는 못했다. 마치 외국어로 된 영화를 보더라도 그 안에 담긴 메시지와 감동은 여전하듯이.
하지만 과학은 단지 흥미롭기 때문에 배우는 학문이 아니다.
과학 대중화의 선구자 칼 세이건은 말했다.
“과학은 인간이 자신과 우주를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도구다.”
과학은 자연 현상의 원리, 생명의 기원, 우주의 구조 등,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이해하는 길이자 사유의 원천이 되어 왔다.
또한 과학은 단순한 정보 습득을 가르치지 않는다. 문제를 인식하고, 가설을 세우며, 논리적으로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 합리적 사고력을 길러주는 학문이다.
역사와 정치 등을 담은 사회과목, 그리고 윤리와 인성 등을 가르치는 도덕과목도 빠질 수 없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인문학이 우리 교육 과정에서 조금 더 강조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인문학은 마치 거울처럼 우리 자신을 성찰하게 만든다. 역사는 그 자체로 인류의 거울이 되어 반성의 기회를 주며, 찬란하거나 위대했던 순간들을 돌아보게 하며 자부심과 인류애를 일깨운다.
도덕은 조금 더 직설적이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대신, “우리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방향을 제시한다.
사유를 빼앗는 주입식 교육이라 비판할 수도 있겠지만, 지식의 주입은 때로 불가피한 방법이기도 하다. 깊이는 부족할지언정 빠르고 효과적으로 사람의 머릿속에 각인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도덕이라는 과목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래 연구된 학문 중 하나이며, 그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다. 우리는 사회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모두의 선’을 위해 올바른 신념을 갖추어야 하며, 주입을 통해서라도 도덕적 가치관을 세울 의무가 있다.
그 외에도 우리는 외국어, 기술, 가정, 예술, 체육 등을 배웠다. 고대 그리스에서 예술과 체육은 시민 교육의 핵심이었다. 그리고 산업혁명 이후로부터 꾸준히 우리는 산업의 일꾼을 필요로 하고 있다. 현대의 대중교육은 이러한 전통과 요구를 계승하고 있다.
이 모든 과목들은 건강하고 조화로운 사회를 위한 시민을 기르기 위해 마련된 교육이었다.
인간은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단 한순간도 공동체 없이 완전한 독립으로 존재할 수 없다.
우리는 사회 속에서 길러지는 동시에 사회를 길러가는 존재가 되며, 언어와 질서, 역할 등을 배움으로써 진정한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
즉, 우리가 배움의 존재인 두 번째 이유는, 사회화(socialization)를 위해서이다.
학교에서 배우는 과목들은 단지 정보 전달을 위한 것이 아니다. 진학이나 취업을 위한 수단도 아니다. 그것들은 사회화라는 큰 틀 안에 포함된 작은 범주일 뿐이다.
우리가 교육의 의무를 가지고, 국가의 지원 아래 공공 교육을 받는 이유는, 그것이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기 위한 규칙과 태도, 감각과 역할을 내면화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언어를 배움으로써 타인과 소통하고, 도덕을 배우며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익힌다.
수학과 과학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사유하는 법을 배우며, 사회를 통해 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그려본다.
기술과 가정, 예술을 통해 우리는 스스로의 관심과 능력을 탐색할 수 있고, 외국어를 통해 국경을 넘어 전 세계적 공동체의 일원이 될 준비를 한다.
다시 말해,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모든 과목에는 사회가 요구하는 가치와 역할이 숨어 있다.
우리는 학교라는 제도를 통해 사회의 구성원이 되는 법을 배웠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
우리 교육의 모든 제도는, 우리가 성숙한 시민으로 성장하고 성숙한 사회를 만들어가길 바라는 공동체의 의지와 기대를 담고 있다.
사회는 우리가 지식을 익히고, 그것을 활용하고 응용하여 공공의 기술을 발전시키길 원했다. 생각하고 소통하는 법을 익혀 공동체의 제도와 시스템을 개선시키길 바랐다.
개인의 성장은 곧 공공의 이익이며, 공동체의 원동력이 된다.
사회가 우리에게 가르친 기본적인 규칙 지키기, 협동, 경쟁, 책임, 질서... 이 모든 것은 결국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기 위한 훈련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배우면서 ‘사회인’이 된다.
인간은 배움을 통해 사회적 자아를 형성하고, 시민으로 성장하며, 타인의 고통을 공감하는 존재가 된다.
우리는 배움으로써 사회를 이끌어가며, 조화와 질서를 유지한다.
결국, 우리가 배우는 이유는 인간이 공동체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배움이란, 인간이 개인을 넘어서 ‘우리’가 되는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