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왜 배움인가?(3)
지금까지 우리는 왜 '배움의 존재'인지에 대해 탐구해 왔다.
첫째, 우리는 하나의 유기체로서 생존과 번영, 그리고 지속을 위해 본능적으로 배움을 갈망하는 존재였다.
둘째, 우리는 개인을 넘어 공동체의 지속과 '우리' 안에 속하기 위해 배운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 두 가지 이유는 우리가 곧 ‘삶을 위해 배운다’는 뜻이다.
하지만 인간이라는 존재는 그 이상을 꿈꾼다.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한 이 우주에서 유일하게 인간과 자연의 존재에 대해 깊이 질문하고, 끝없이 답을 찾아가는 생명이다.
존재의 종속과 유지에서 벗어나, 존재의 의미를 발견하며 더 나은 존재로 발전하고자 하는 본능적인 의지를 지닌 생명, 그것이 바로 인간이다.
그렇다. 인간은 변화를 위해 배움을 지속하는 존재다.
인간은 배우며 자라난다. 그러나 단지 자라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배우는 과정을 통해 태어날 때의 나를 한 줄 한 줄 다시 써 내려간다.
이름을 얻고, 언어를 익히며, 세계를 이해하는 순간마다 우리는 ‘나’라는 존재를 새롭게 정의한다.
우리는 단지 사회의 일원이 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배움을 통해 세상을 다시 그려보고, 스스로를 새롭게 써 내려가려는 존재다.
그렇다면, 배움은 어떻게 ‘변화’의 도구가 되었을까?
나는 내 아이들에게 ‘자세’의 중요성을 자주 강조하는 편이다.
식사할 때는 바른 자세로 오롯이 음식에 집중해야 하며, 공부할 때도 마찬가지로 바른 자세로 교육하는 이의 말에 경청해야 한다.
이런 눈에 보이는 ‘자세’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사람이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나 역시 그렇게 교육을 받았고, 내 친구들도 같은 방식으로 길러졌다.
자세를 바르게 해야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올바른 자세에서 올바른 태도가 비롯된다고 말할 수도 있고,
신체적 건강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으며,
혹은 바른 자세를 갖춘 사람을 더 호감 있게 바라보기에 사회적 관계를 위해 습관화해야 한다고 설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이유든, 아이들은 내 말을 들으면 자세를 바로잡는다.
이유는 몰라도, 주입받은 교육의 형태를 스스로에게 적용하며 자세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아주 작고 사소한 변화지만, 이 또한 분명한 변화다.
우리는 개미나 벌처럼 유전자 안에 공동체의 규율과 법을 내재하고 태어난 존재가 아니다. 하지만 평생에 걸쳐 배우며 스스로를 공동체의 일원으로 형성해 간다. 이 변화는 대부분 사회적 일원으로 성장시키기 위한 주입된 배움에서 비롯된다.
이 또한 분명한 변화지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변화는 그것보다 더 깊은, 의식과 내면의 진화와 관련이 있다.
조금 더 자라난 아이를 떠올려보자.
그들은 학교에서 필수 과목을 배우며 지식을 축적하고, 자연과 사회에 대한 이해를 넓히며, 점차 자신만의 가치관을 형성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시기에 그들의 머릿속은 수많은 질문들로 가득 차기 시작한다.
'우리 사회는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나는 이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
'나는 이 사회 안에서 무엇을 하고 싶은 걸까?'
'무엇이 행복이고, 어떻게 해야 행복할 수 있을까?'
'나는 커서 무엇이 될까?'
'그 이전에, 나는 누구인가?'
이러한 질문들을 스스로 되묻고, 때로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답을 유추해 본다.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도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은 계속된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이 곧 개인의 신념과 가치관이 된다.
그리고 그 답을 찾는 과정에서 인간은 자신의 배움을 활용한다.
미국 교육부 장관이자 사회사상가였던 존 W. 가드너는 『자기 갱신(Self-Renewal)』에서 “사회와 개인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갱신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개인의 정체성이 습관화되고 고정될 때 정체되고, 새로운 자극과 학습을 통해서만 갱신된다고 보았다.
즉, 그는 개인의 신념과 가치관이 교육과 배움을 통해 변화될 수 있다고 믿은 것이다.
교육과 배움이 인간을 자기 갱신(self-renewal)하게 만드는 이유는, 단순히 새로운 정보를 알게 되기 때문이 아니다. 그 정보를 통해 자신을 다시 바라보고, 다시 선택하고, 다시 설계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 메커니즘을 구조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배움은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우리는 새로운 지식을 통해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몰랐는가?”, “나는 왜 이렇게 생각했는가?”를 자문하게 된다. 이는 자기 인식의 확대이자, 존재에 대한 새로운 자각이다.
내가 변한 게 아니라, 내가 바라보던 세상이 달라졌기에 나 자신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배움은 익숙한 세계를 흔드는 자극이다.
새로운 지식은 기존의 사고방식과 충돌하며, 그 불일치는 자기 개념을 재정비하도록 요구한다.
예컨대, 내가 믿고 있던 정의가 누군가에게는 폭력이었음을 알게 되는 순간, 우리는 가치관을 다시 묻고 삶의 방향을 수정하게 된다.
배움은 가능성의 지평을 넓혀준다.
배움은 “이렇게도 살 수 있구나”, “이런 직업도 가능하구나”, “이런 세계도 있구나”라는 새로운 선택지를 보여주고, 지금의 나로는 도달할 수 없는 가능성에 '변화된 나'로 진화하려는 동기를 부여한다.
언어와 표현은 존재를 재구성한다.
말을 배우고, 글을 쓰며,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자기 경험에 이름을 붙인다. 그 이름은 곧 정체성이 된다.
“이것이 나야”라고 말하는 순간, 우리는 존재를 새롭게 정의하는 것이다.
인간은 의미를 만들고자 하는 존재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왜?”, “어떻게?”, “무엇을 위해?”를 묻는다. 배움은 그 물음에 임시적이나마 답을 내리게 하고, 그 답은 “나는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자기 설계의 욕구로 이어진다.
이처럼 우리는 배움을 단순히 지식이나 정보의 습득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습득한 정보를 객관화하고, 때로는 추상화하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체화하여 내면을 바꾸는 힘으로 전환시킨다.
배움은 우리를 다시 보게 만들고,
다시 설계하게 만들고,
다시 살아가게 만든다.
“자기 갱신은 삶의 가장 고귀한 도전이며,
그것 없이는 어떤 개인도, 어떤 조직도, 어떤 문명도 살아남을 수 없다.”
- 존 W. 가드너
르네상스, 계몽주의, 국민국가의 탄생, 대중교육의 확산. 이 모든 역사적 변화는 교육이 인간을 변화시켜 왔음을 증명한다.
배움을 통해 인간은 피지배계층에서 스스로 사유하고 판단하는 민주시민이자 철학자가 되었다.
개인의 배움은 자신의 생각과 가치관을 변화시켰고, 그 변화들이 모여 과학의 발전, 기술의 혁신,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라는 것을 만들어냈다.
‘나’라는 개인의 변화는 단지 나 하나의 삶만을 바꾸지 않았다.
교육과 배움은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운동이자 힘이 되었다. 지성들이 모여 이론을 만들고, 의식들이 모여 사상을 만들었다.
그리고 개인의 변화로부터 시작된 이 모든 흐름은 지금 이 순간에도 갱신되고 있다.
결론적으로, 교육과 배움은 우리의 삶을 다시 쓰는 가장 강력한 도구였다.
읽을 수 없었던 자가 읽기 시작하고,
생각하지 못했던 자가 사유를 시작하며,
변화를 요구하지 못했던 자가 역사의 주체가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변화를 위해 배운다.
더 나은 나, 더 나은 사회, 더 나은 미래.
배움은 단순히 공동체 안의 ‘우리’를 이전처럼 반복되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배움은 우리를 재창조하는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배움의 존재이다.
지식을 넘어 지혜를 위해,
삶을 넘어 공존을 위해,
나를 넘어 우리를 위해,
그리고 미래의 더 나은 인류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