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배움이 키우는 삶(1)
여담이지만,
"나도 아이를 키운다. 그리고 아이를 올바르게 키우고 싶다."
여전히 철들려면 멀기만 한 서툰 존재이지만, 나도 어느새 두 아이의 아빠가 되어버렸다.
나는 그러지 않을 줄 알았지만, 나도 어쩔 수 없는 부모인가 보다. 내 아이가 특별했으면 좋겠고, 누구보다도 똑똑하고 유능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러면서 세상의 대부분 부모들도 나와 같은 마음이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키우다’는 ‘크다’의 사동사다.
즉,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아이를 더 크게 만든다는 의미와 같다.
하지만 우리말에서 ‘크다’라는 말은 단순히 길이나 부피, 또는 외형적 발육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 안에는 ‘어른이 된다’는 의미, 다시 말해 ‘변화’라는 개념이 깊숙이 숨어 있다.
그렇다면 내 아이들을 향한 바람을 다시 표현해 보겠다.
“나도 아이를 변화시키고 있다. 그리고 아이를 올바른 방향으로 변화시키고 싶다.”
인간은 모든 생명과 마찬가지로, 탄생과 동시에 존재의 본능인 배움을 시작한다.
그리고 아마도 그 첫 교육과 배움은 부모를 통해 이루어질 것이다.
아이는 부모의 언어, 관계, 감정, 도구 사용 등 모든 것을 보고 듣고 배우기 시작한다. 그래서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라는 말이 나왔는지도 모른다.
아이는 부모가 하는 모든 것을 모방하고 익히며, 자신의 의식 속에 그들의 교육을 각인시킨다.
이 과정에서 아이는 서서히 변화한다. 우리는 그 변화를 ‘성장’이라 부른다.
인간은 유년기부터 끊임없이 탐색하고 관찰하며 스스로 확장한다.
그 행위는 놀이와 모방을 통해 나타난다.
미국의 현대 인지발달심리학자인 앨리슨 고프닉과 그녀의 동료들(앤드류 멜처프, 헨리 웰먼 등)은 아주 흥미로운 이론을 하나 제시했다.
그 이름도 재미있게, ‘이론-이론’이라는 이름의 이론이다.
이론-이론은 외부 세계에 대한 이해의 인지 발달과 관련된 과학 이론 중 하나다.
고프닉은 유아를 ‘작은 과학자’라고 부르며, 아이들의 놀이가 곧 실험이고, 모방이 가설 검증이라고 주장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아이들은 자신의 신념, 욕구 또는 감정과 같은 타인의 정신 상태를 추론하기 위해, 이에 대한 '순진한 이론'을 가지고 있다.
이 순진한 이론은 타인의 행동 의도를 이해하거나 미래 행동을 예측하는 데 사용된다.
황당하지만 직관적인 예를 들면, 아이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아! 내가 큰 소리로 울기 시작하면 엄마 아빠가 내 기저귀를 확인하는구나! 앞으로 기저귀를 갈아입고 싶으면 울어야겠다.’
이처럼 아이는 순진한 가설을 세우고, 그것을 실험하고 검증하며, 자신만의 세계를 구성해 간다.
아이는 성장하면서 부모와 주변 세상을 끊임없이 관찰한다.
그에 대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더 많은 정보가 축적될수록 스스로 만든 이론을 수정해 간다.
세상의 인과 구조에 대해 예측하고, 어쩌면 이를 테스트하기도 한다.
아이들이 저지르는 수많은 귀엽고 엉뚱한 사고들은, 사실 그들이 만들어낸 이론을 증명하기 위한 실험일지도 모른다.
아이들의 입장에선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실험과 검증을 반복하며, 일련의 ‘개인 과학 혁명’을 일으키는 중인 것이다.
아이들은 놀이와 모방을 통해 자신만의 직관적인 이론을 형성하고, 새로운 결과와 관찰을 통해 그것을 수정하고 확장해 나간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자주 질문을 던지며, 종종 어른들에게 "왜?"라고 묻는다.
이는 단순한 지식의 습득이 아니라, 자기중심적 관점에서 문제의 개념과 자신과의 관계를 탐색하려는 시도다.
그런 식으로 아이들은 그들만의 배움의 방식으로 세계를 구성한다.
결국, 아이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한 통계적·과학적 사고를 놀이라는 장을 통해 수행하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유년기 인간의 배움은 우리의 생각처럼 결코 단순하지 않다.
매 순간 아이들은 배움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검토하고 증명하며, 끊임없이 혁명을 겪고 있다.
그렇게 아이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변화시키며 '성장'해 간다.
우리는 자라나는 아이를 보며 “많이 컸네”, “쑥쑥 자라네”라고 말하지만, 그 말속에는 보이지 않는 변화에 대한 인식이 담겨 있다.
아이는 말의 의미를 이해하고, 질문의 의미를 고민하며, 자신의 행동이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점점 더 깊이 생각하기 시작한다.
몸이 자라는 만큼, 마음도 자라고, 사고도 자란다.
그 모든 변화의 동력은 배움이다.
배움은 아이의 사고를 밖으로 확장시키고, 안으로 재구성한다.
처음엔 부모의 말과 행동을 따라 하지만, 어느새
자기만의 의견을 말하고, 자기만의 질문을 품고, 자기만의 관점을 세우게 된다.
아이의 성장은 매 순간의 새로운 언어, 새로운 관계, 새로운 감정을 배우는 경험의 누적이다.
즉, 성장이란 생물학적인 몸의 크기가 아닌, ‘존재의 크기’가 조금씩 확장되어 가는 일이며, 배움의 다른 이름인 것이다.
성장이 곧 배움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라면, 배움의 주체가 아이여야 한다는 사실은 이제 분명해 보인다.
그리고 아이도 부모도 의식하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행해왔던 일이기도 하다.
부모는 아이를 먹이고 입히며,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만들어주었고, 아이는 그런 부모의 행동을 통해 자연스럽게 세상에 대한 가설을 세우고,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자연스러운 배움만으로 아이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잘못된 방향성을 가진 이론은 파괴적인 무기가 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작은 과학자로서의 실험은 아이를 날카롭고 민감하게 만들 수 있지만, 그 실험이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않게 하려면 우리는 아이에게 ‘어떤 방식으로 세상과 마주해야 하는가’를 가르쳐야 한다.
성장의 방향을 잡아주어야 한다는 의미다.
놀이와 모방, 질문을 통한 배움은 존재를 확장시키지만,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자라나기 위해서는 자기 조절과 타인 인식, 책임감이라는 또 다른 축의 배움이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에게 훈육을 통해 규율을 가르치고, 때로는 금지하고, 때로는 기다리게 한다.
부모가 아이에게 “안 돼! 하지 마!”라는 말을 자주 하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그 말속에는 자녀의 자유를 억제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공동체를 향한 책임과 진정한 자유를 배우기를 바라는 마음이 응축되어 있다.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과 ‘할 수 있지만 하지 않는 것’ 사이의 차이를 배우는 순간, 아이의 배움은 지성에서 인격으로, 호기심에서 책임으로 나아가게 된다.
우리는 아이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성장해 나간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니, 그렇지 않았다.
아이의 적절한 성장을 위해서는 영양을 제공해주어야 하고, 적절한 활동과 편히 쉴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어야 한다.
아이의 내면 성장도 마찬가지다.
아이의 진정한 변화는 배움을 통해 이루어지며, 이는 어른들의 행동과 언어, 그리고 사회적 규범에 대한 교육을 통해 나타난다.
그러므로 어른들은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영양가 높은 배움을 제공하기 위해 고민하고 노력해야 하며, 무엇보다 우리 스스로가 바로서야 한다.
그래야만 올바른 배움이 아이를 길러주며,
아이는 영양가 있는 배움을 통해 자라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