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배움이 키우는 삶(3)
이제 2장을 시작하며 던져보았던 질문을 다시 등장시킬 차례이다.
과연, 누가 배워야 하는가?
아이들만 배워야 하는가?
학생만이 배움의 이름으로 존재하는가?
대한민국의 교육제도는 중학교 교육까지 의무화가 되어있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고등학교 교육까지 이수하며, 고등교육기관(4년제 대학 및 전문대학 포함) 진학률은 무려 70%에 이른다. 이는 OECD국가들 중에서도 최상위권에 달아는 높은 수준이다.
수치상으로 보면 다양한 분야의 전문적인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이 대한민국 전체 성인의 70%에 달한다. 우리는 국민의 대부분이 학자인 나라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를 체감하지 못한다. 그 이유는 아마 다양할 것이다. 교육제도와 교수법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며 현대의 교육 방식이 충분하지 못했다고 비판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근본적인 이유를 말하고 싶다.
아직 우리는 학자로 살고 있지 않기에, 학자들로 가득한 세상에 살고 있다고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이는 어느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학문에 능통하며 학문을 연구하는 문자 그대로의 '학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학교를 졸업함과 동시에 우리의 삶(生)에서 '학(學)'이라는 문자를 지워낸 스스로에 대해 제안을 하고 싶을 뿐이다.
우리 사회의 대부분 성인들은 학생이 아니면 더 이상 배우지 않는다고, 또는 배우지 않아도 된다고 믿고 있다.
이는 배움은 곧 학창 시절을 말하는 것이며, 성인은 이미 완성된 존재라는 생각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의 나를 바라본다.
거울을 들여다본 나는 과연,
완성된 사람일까?
아니면,
더 나아질 수 있는 존재일까?
조금이나마 나를 향한 변화의 열망이 남아있다면, 그것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존재라는 뜻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변화의 힘은 배움이 가지고 있다.
그러니 우리는 아직 배움이 필요한 존재이다.
대부분의 인류 문명 안에는 ‘배움은 젊을 때 하는 것’이라는 문화적 통념을 갖고 있다. 거의 모든 문명권에서 성인이 되면 사회에 나가 일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근로는 개인에게 요구되는 사회와 공동체가 가진 궁극적 의지였으며, 다양한 형태의 배움은 '근로'를 위해 행해져 왔다.
이러한 문화적인 통념이 굳어져 내려와, 오늘날의 공공교육도 청소년기에 중점적으로 이루어진다.
사회에 나가 일을 하게 된 성인은 새로운 지식과 통찰의 요구를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회와 공동체가 그 사람에게 그 이상의 것을 요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회의 요구로 인한 배움이 습관화된 사람은 더 이상 자신에게 배움을 요구하지 않자 그것이 배움의 끝이라 인식한 것이다.
이처럼 공동체의 발전을 위해 시작된 공공 교육은, 아이러니하게도 배움의 주체성을 흐려지게 만들었으며, 스스로 배움의 종점을 정하게 만들어 버렸다.
이러한 우리의 관념은 '졸업(卒業)'이라는 말에서도 잘 드러난다. 학교를 다니던 학생이라는 직업을 마치며, 자신의 업이었던 학업을, 즉 배움을 마친다는 것이다.
하지만 조금 더 이 단어의 뜻을 유심히 살펴보자.
사전적인 정의는 '학생이 규정에 따라 소정의 교과 과정을 마침'을 뜻하지만, 단어의 뜻을 자세히 풀이해 보자면, '짓는 행위를 끝내는 것이다.'
'학업'이란 배움을 통해 존재를 다시 짓는 것을 의미했다. 존재의 재구성을 통해 '자기 갱신'이 이루어지며, 이는 사회 변혁의 열쇠가 된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보았다.
그렇다는 것은, '졸업'이란 말은 단순히 학업을 마치는 의미로 끝나지 않는다. 자기 갱신의 중단이며, 변화의 흐름이 멈춘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 변화를 멈출까?
이미 완성되어서? 그것은 아니라고 본다.
이런 질문을 던진다면, 배움을 통해 이미 목적을 달성했기에 가지는 정당한 의문일 거라 생각된다. 아마도 원하는 직장에 취업을 했거나, 자신의 지식을 적절하고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배움의 진정한 가치는 '오늘'에 있지 않다.
그 가치는 '내일'에 담겨있다.
최초의 생명이 배움을 통해 자신을 변화시킨 이유는 지금 당장을 살아내기 위함이 아니었다.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유지시키기 위해, 즉 앞으로를 살아가기 위해 '진화'라는 이름의 변화를 이용한 것이다.
우리가 종종 간과하고 있는 진실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바로, '나'라는 사람이 공동체라는 사실이다. 개인이 없는 공동체는 없다. 개개인이 모여 공동체가 되는 것이며 이 말은 곧, '나'의 존재가 '인류'의 존재라는 말이다.
개인의 변화와 성장은 곧, 인류 문명의 변화와 성장이 된다. 반면에 개인의 중단과 정체는 곧, 인류 문명의 중단과 정체를 의미한다.
변화와 갱신을 멈춘 인류에겐 더 이상의 진화도 없을 것이다. 이는 생물학적인 적응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우리'로 나아갈 힘을 잃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진화를 멈춘 생명은 다가올 미래, '내일'을 살아낼 수 없다.
지금의 삶에 충분히 만족하는가?
지금 나의 변화와 사회, 인류 문명의 변화가 불필요하다고 여겨지는가?
그렇다면 불합리와 차별 속에서 살고 있는 이에게 같은 질문을 해보자. 아니, 가까이 나의 옆에 앉은 사람에게도 물어보자.
왜냐하면 그 사람도 당신과 같은 인류이자, 하나의 문명이니 말이다.
"성인도 배움이 필요한가?"
라는 질문은
"인류는 더 이상 나아질 필요성이 없는가?"
라는 질문과도 같다.
유아기의 배움이 존재의 성장이었고, 학생으로서의 배움이 존재의 재구성이었다면, 성인의 배움은 무엇이 된다는 걸까?
질문이 잘못되었다.
우리는 여전히 학생이기 때문이다. 자기 갱신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으며, 존재의 재구성은 계속되어야 한다.
성인들은 자신들이 이미 완성되었다는 착각 속에 살아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생각은 배움을 단절시키고, 배움이 없으니 자연스럽게 존재의 변화도 사라져 간다.
변화되지 않는 그들의 이론과 가치관은 점점 내면 깊숙이 뿌리내리기 시작한다. 이를 방치하면 그 내면 안에 크고 단단한 거목이 자라나게 되니, 그 나무의 이름은 바로 '고정관념'이다.
때때로 어른들은 자신들의 이론과 생각을 굽힐 의지가 없어 보인다. 이는 그 안에 뿌리내린 고정관념이 철옹성같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단단한 고정관념은 배움의 의지를 갖는 것 만으로 생각보다 쉽게 뿌리 뽑을 수 있다.
다시 학생의 자세로 돌아가 경험과 관찰을 통해 성찰과 수용, 탐색과 실험을 시작하는 것이다.
미국의 사회학자이자, 성인 및 평생교육 교수였던 잭 메지로우는 성인의 학습 방법으로 '변혁적 학습 이론'(또는 '전환 학습 이론')을 제시했다.
메지로우는 변혁적 학습이 다음과 같은 일련의 심리적·인지적 전환 단계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설명했다.
1) 당혹스러운 딜레마 경험 : 기존 신념으로 설명되지 않는 사건이나 경험 발생
2) 자기비판적 성찰 : “내가 믿던 것이 틀릴 수도 있다”는 각성
3) 자신의 감정 탐색 : 두려움, 죄책감, 불안 등을 직면
4) 변화의 필요성 인식 : 나의 사고체계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자각
5) 대안 탐색 : 새로운 관점, 믿음, 지식 탐색 시도
6) 새로운 관계 형성 : 비슷한 변화를 겪는 타인과 상호작용
7) 새로운 역할 실험 : 변화된 정체성을 시도해 봄 (행동 단계로 진입)
8) 역량 강화 : 새로운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 개발
9) 자신감 증대 : 새로운 자아로의 확신 형성
10) 완전히 통합된 새로운 관점 : 새로운 자아와 신념 체계가 삶에 일관되게 적용됨
이 과정 전체를 통해 학습자는 자기를 새롭게 정의하고, 세계와의 관계 방식 자체가 바뀌게 된다.
앞서 설명한 고프닉의 '이론-이론'과 학습의 메커니즘이 비슷하지만, 메지로우의 '변혁적 학습 이론'은 성찰과 담론, 자기비판을 통해 기존의 자아와 정체성을 재편한다는 점에서 조금 더 존재론 적인 변화를 이끌어낸다는 차이점이 있다.
즉, 성인의 배움은 그동안 쌓아온 배움의 토대 위에서, 세상뿐 아니라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고등 배움이라 할 수 있다.
지식을 벽돌로 비유하자면, 유아와 청소년기에는 열심히 벽돌을 모으고 쌓으며 존재를 짓기 시작한다. 하지만 아직은 완성된 집이 아니기에 우리는 성인에 접어들어서야 비로소 온전히 스스로를 재건축하며 완성에 가까워질 수 있는 셈이다.
그렇기에 성인의 배움이야 말로 진정한 의미의 자기 갱신이며,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배움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배움은 아직 끝이 나지 않았다.
완성되었음을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직도 나아갈 수 있다는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아직은 학생으로 남아있을 필요성이 있다.
성인으로서 우리가 할 일은, 배움의 멈춤이 아니라,
배움을 통해 자신을 재편하며,
변화의 실천을 다듬어 가야 할 존재이다.
그리하여 성인의 배움은 지식의 확장이 아니라, 존재의 재구성이다.
과거의 나를 해체하고,
새로운 나를 설계하며,
마침내 더 나은 인류를 함께 빚어가는 일이다.
우리는 여전히 학생이다.
우리에게 '졸업'은, 우리의 존재가 끝나지 않는 한 존재해서는 안될 단어일 것이다.
우리는 다시 한번 학생으로서, 삶이라는 거대한 교실 안에 들어섰다. 그리고 이젠 어느 정도 배운 존재로서 스스로를 더욱 가르쳐 보도록 하자.
그러면 우리의 변화는 다시 한번 시작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원히 배우는 존재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 우리는 '내일'을 꿈꿀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