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 not go gentle into night...

2-2. 배움의 연속(2)

by 더블윤

시간과 배움의 역설

배움의 존재로서, 존재의 변화와 완성을 위해 다시 시작하는 배움.
앞서 살펴보았듯이 우리는 성인이 되어서도 배움을 향한 의지를 불태워야만 한다. 하지만 의지만으론 해결되지 않는 거대한 장벽이 하나 있다.
바로 절대적인 시간의 흐름이다.

모든 사람에게 시간이 공평하다고 하지만, 이는 동일 연령대의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일 뿐이다. 청년기에 느끼는 시간의 흐름과 성년기, 노년기에 느끼는 시간의 흐름은 그 격이 다르기 때문이다.

청년기에게 시간이 '성장'이라면, 성년기의 시간은 '쇠퇴', 그리고 노년기의 시간은 '소멸'이다. 멈출 수 없는 시간의 강에 던져진 우리의 몸은 쇠퇴와 소멸이라는 내리막길을 향해 흘러가게 된다. 우리의 배움을 관장하는 가장 중요한 기관인 뇌도 이러한 흐름 속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렇기에 청년의 뇌와 노년의 뇌에겐 시간이 공평하게 흐르지 않는다. 노년이 쌓아가는 배움의 탑은 청년이 쌓아가는 그것과 풍화의 속도가 눈에 띄게 다르다. 실제로 나이가 들면서 시간이 빨리 간다고 느끼는 이유 중 하나가 우리의 기억력이 나날이 감퇴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역설이 생기게 된다. 인간은 배움의 존재라 하였으나, 우리의 신체(뇌)는 시간이 갈수록 우리를 배움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는 존재로 만든다.
이것이 과연 우리의 한계이자 운명인 것일까...?




"Do not go gentle into that good night"
어두운 밤을 쉬이 받아들이지 말기를
"Old age should burn and rave at close of day"
노년은 날이 저물수록 불타고 포효해야 할 것이니
"Rage, rage against the dying of the light."
꺼져가는 빛을 향해 분노하고, 또 분노하라.

— 딜런 토마스(Dylan Thomas), 《Do not go gentle into that good night》 중


영화 《인터스텔라》에도 삽입된 딜런 토마스의 이 유명한 시 구절은 야속한 시간의 흐름에 대한 원망을 너무나도 잘 표현했다. 딜런 토마스는 노년의 저물어가는 날에 순응할 것이 아니라 분노하고 싸워야만 한다고 외쳤다.
'쇠퇴'하고 '소멸'되어가는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가 바로 이것이라 생각한다. 시간의 강 속에 떠밀려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강물의 흐름에 역행하기 위해 끊임없이 물장구를 치는 것. 이것이 우리를 변화의 길로 인도하리라 믿는다.


영화 <인터스텔라>의 브랜드 박사가 두려워 하는 것은 오직 흐르는 시간이었다.


노화는 필연이지만, 그 속도와 방식은 달라질 수 있다. 많은 이들이 나이가 들수록 뇌의 쇠퇴와 함께 배움은 불가능하거나 무의미하다고 느낀다.
하지만 최근의 뇌과학은 오히려 성인기의 배움이 노화를 지연시키고, 뇌의 가소성을 유지하는 핵심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려는 몸부림, 이것은 우리가 실제로 흐름을 완전히 역행하진 못하더라도 소멸의 길에 쉽사리 접어들지 않게 만드는 힘이 된다.




뇌의 저항력, 신경가소성

지구상의 거의 모든 생물은 자극과 반응을 통해 환경에 적합하게 적응하며 변화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이는 유전적 형질의 변화, 즉 진화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유전자에 의해 발현되는 유기체의 결정된 형질뿐 아니라, 우리의 신체 기능 자체가 특정한 환경적 요인을 따라 특정 방향으로 변화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다.
이러한 변화는 우리의 신경계에서도 나타난다. 바로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이다.


신경가소성은 뇌가 경험과 학습을 통해 스스로 신경 회로를 재구성하고 재배선하는 능력을 말한다. 즉 뇌는 성형 가능하며 적응적(순응적)이라는 뜻이다.


과거 과학자들은 두뇌가 유년기 같은 초기 단계 이후에는 변화하지 않는다고 믿었다. 척추동물의 뇌에 있는 모든 뉴런이 배아 발생기나 늦어도 유아기 동안 형성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감각 경로 역시 특정한 시기 이후에는 고정되어 그 시점을 지나면 뇌는 뉴런을 상실할 수는 있어도 절대로 다시 생성할 수 없다는 전통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21세기에 이르러 다양한 연구들이 환경적 변화가 기존 뉴런 간의 연결을 수정하고, 해마와 소뇌를 비롯한 일부 뇌 영역에서 성인의 신경 조직 발생을 통해 행동과 인지를 변화시킬 수 있음을 밝혀냈다.


독일 옥스퍼드 대학에서는 성인들이 6주간 저글링 훈련을 받은 후 뇌의 회백질 밀도와 백질 연결성이 실제로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또한 미국의 신경과 전문의인 커크 에릭슨(Kirk Erickson)은 중년 이후에도 꾸준한 유산소 운동이 해마의 부피를 증가시키고 기억력이 개선시킨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러한 뇌의 변화는 단지 물리적 구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평생에 걸친 지속적인 지적 활동과 학습은 ‘인지 예비력(cognitive reserve)’이라는 특별한 방어막을 형성한다. 호주 시드니 대학의 발렌주엘라는 지적 활동을 활발히 한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치매 발병이 평균 4~5년가량 지연된다고 보고했다.


결국 신경가소성 이론은, 학습 경험이 뇌의 물리적 구조와 기능적 조직 모두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강조한다.




노년의 배움, 삶의 힘

단순히 뇌과학적인 뇌의 변화가 아니더라도 배움이 노년기에 미치는 효과는 더욱 다양하고 풍부하다.


미국의 CLSA 연구(2021)는 6개월간 온라인 강좌에 참여한 노년층에서 우울 지표가 평균 18% 감소했다고 보고했다.
꾸준히 새로운 것을 배우고 도전하는 노년층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우울과 불안, 무력감을 덜 경험하며 자존감과 긍정적 정서를 더 많이 느낀다는 것이다.
또한 배움은 사회적 연결을 강화하여 노년층의 고립감과 외로움을 감소시킨다. 유럽의 'Learning Neighbourhoods' 프로젝트(2019)에 따르면, 지역의 학습 동아리에 꾸준히 참여한 노년층은 사회적 고립 지수가 참여하지 않은 그룹보다 약 22% 낮았다. 이는 학습 활동의 참여가 새로운 인간관계를 형성하며, 세대 간 대화를 촉진하고 사회적 소속감을 높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배움은 삶의 목적감과 자기 효능감을 키우는 데도 큰 역할을 한다. 일본의 JAGES 코호트 연구(2023)는 지속적인 취미 학습에 참여한 노년층이 '삶의 목적'을 높게 평가할 가능성이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약 2배가량 높다고 보고되었다.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고 성취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아직 성장 중이라는 긍정적인 자기 서사를 만들어가기 때문이다.


당연하게도 신체적인 건강 증진 역시 중요한 효과 중 하나다. 꾸준한 춤, 악기 연주, 스포츠 같은 신체 활동 중심의 학습은 균형감과 근력, 심폐 지구력을 향상시키고, 낙상 위험을 줄이며 만성 질환 관리에도 효과적이다.
더 나아가, 질병 예방과 만성질환 관리에도 효과가 나타난다. 미국 스탠퍼드 대학의 CDSMP 프로그램 메타분석은 만성 질환 관리에 대한 지속적인 교육을 받은 노년층이 그렇지 않은 이들에 비해 1년 내 응급실 방문율이 12%가량 낮아진다고 밝혔다. 또한 정기적인 배움은 치매와 심혈관 질환 같은 질병의 발병 시기를 지연시키는 데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한국에서 나타난 사례도 인상적이다. 우리나라에서 진행된 고령층 대상의 디지털 문해 프로그램에서는 모바일 금융 사기 피해율이 약 30% 감소했다는 보고가 있었다.
이는 디지털 문해 프로그램 참여가 노년층의 금융 사기나 디지털 정보 격차에 빠지는 것을 방지하는데 크게 기여한다는 긍정적인 지표이다.


마지막으로 배움은 노년의 삶에 문화적 통합과 자아완성이라는 깊은 철학적 의미를 제공한다. 심리사회적 발달 이론에 따르면 노년기에는 '자아통합'과 '절망'이라는 두 가지 갈림길이 나타난다. 이때 꾸준한 학습은 삶 전체를 다시 되돌아보고 재구성하며 의미와 통합감을 형성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실제로 시니어 대학의 글쓰기 수업에 참여한 노년층은 인터뷰에서 "자신의 삶을 다시 한번 서사화하며 평화와 통합감을 얻었다"라고 말했다. 이는 배움 자체가 자아통합을 선택케 하는 실천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배움은 단순히 지식을 쌓는 행위를 넘어, 노년기의 삶을 정서적, 사회적, 신체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한꺼번에 개선하는 총체적 자원이 된다. 노화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살아내게 하는 힘, 그것이 바로 배움이 지닌 놀라운 영향력인 것이다.




배움, 노화와 싸우다

평생학습은 단순히 재사회화를 위한 노력에 머물러 있지 않다. 노년의 배움은 그들의 뇌를 유지시킬 뿐 아니라, 나아가 재구성하게 만든다. 어쩌면 신경망의 재구성을 통해 젊은 세대보다도 더 통합적이고 창의적인 발상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서두에서 언급한 '시간은 같은 연령대의 사람에게는 공평하다'는 말을 이제 정정하고 싶다. 우리의 뇌도 시시각각 늙어간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러나 늙어감을 받아들이는 이와 그렇지 않은 이에게도, 시간은 결코 공평하게 흘러가지 않는다.
과연 우리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분노하고 저항하는 삶을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포기하고 순응하는 삶을 살아갈 것인가. 이는 곱씹어볼 가치가 있는 질문이다.


노화를 늦추는 것은 약이나 기술만이 아니다.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려는 태도, 그 자체가 생명력을 지키는 힘이다. 우리는 배움을 통해 정신이 새로운 자신을 써 내려가게 할 수 있다. 절대적인 시간의 흐름만큼이나, 이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존재의 유지와 갱신, 변화는 노년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그렇기에 인간은 세대를 막론하고 '배움의 존재'임이 더욱 확실하게 드러난다.
인간인 우리에게, 우리가 나이에 상관없이 여전히 인간이라면, 배움은 우리와 결코 멀어질 수 없는 숙명과도 같은 것이다.


얼마나 다행인가.
우리는 지구상의 모든 생물 중 유일하게, 배움에 대해 거의 모든 것을 '지각'하고 있다.
배울 수 있는 권리와 환경이 주어지고 있으며, 배움의 종류는 무궁무진하고, 배움이 우리를 변화시킨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다. 그리고 이 순간에도 우리는 새로운 배움을 통해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그것이야말로 인간만이 가진, 배움의 기적이다.


따라서 우리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우리 존재를 쇠퇴시키거나 소멸시킬 필요가 없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잃어가는 일이 아니라, 배움을 통해 더 깊은 나를 완성해 가는 과정으로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도 당신에게 이렇게 제안한다.


Do not go gentle into that good 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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