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어갈수록, 사람은 새로운 것을 익히는 일에 점점 더 큰 거부감을 느끼곤 한다.
아마도 대한민국의 치열한 입시 문화를 통과하며, ‘공부’라는 단어 자체에 피로와 두려움을 함께 배운 탓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대학에 입학한 신입생들이 오히려 해방감과 자유를 느끼는 아이러니한 현상이 벌어진다.
더 높은 수준의 지식을 다루는 공간임에도, 그들은 잠시나마 배움에서 벗어난 것처럼 느낀다. 물론 이는 일시적인 착각에 불과하다.
이후 소위 말하는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들은 공부에 대해 이렇게 말하곤 한다.
“나는 이제 머리가 굳어서 안 돼.”
공부를 하지 않은 시간이 길어질수록,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는 뇌의 능력도 사라졌다고 느끼는 것이다.
정말 그러할까?
놀랍게도, 이 말에는 일정 부분 과학적 근거가 있다.
뇌과학에 따르면, 인간의 뇌는 ‘시냅스 가지치기’라는 과정을 통해 자주 사용되지 않는 신경 연결을 자연스럽게 제거하고, 자주 사용하는 연결만을 강화한다.
이는 효율적인 뇌 설계를 위한 생물학적 전략이지만, 동시에 사용하지 않는 능력은 점차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성인이 된 이후에도 뇌는 스스로를 재조직할 수 있는 능력, 즉 신경가소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지적 자극과 학습, 새로운 경험이 줄어들면 이 가소성도 점차 낮아지며, 집중력과 기억력, 사고력 같은 인지 기능이 서서히 약화될 수 있다.
이 상태가 장기화될 경우, 노년기에는 치매나 인지 장애의 위험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를 ‘나이 탓’이라며 당연하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배우지 않는 뇌는 퇴화하지만, 배움은 퇴화된 뇌를 다시 깨울 수 있다.
퇴화란 끝이 아니라, 깨어날 수 있는 침묵의 시간일 뿐이다.
배움과 사고, 그리고 새로운 경험은 뇌를 유지하고 확장시키는 생물학적 필수 조건이다.
우리는 앞선 1장에서 배움의 기원을 따라 생명의 흐름을 되짚어보았다.
생명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세상 속에 머물기 위해 배워왔다.
그리고 인간은 더 나아가, 자신을 넘어서기 위해 배우는 존재였다.
이제 새로운 질문을 던져볼 차례이다.
과연, 누가 배워야 하는가?
아이들만 배워야 하는가?
학생만이 배움의 이름으로 존재하는가?
‘배운다’는 행위는 결코 특정한 시기나 계층에만 속하지 않는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세상을 배우기 시작하며, 죽음에 이르기까지 배움의 흐름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
배움은 선택이 아니다.
그것은 생명의 본질이자, 존재 자체에 깃든 능력이며 운명이다.
만약 인간이 단 한순간이라도 배움을 멈춘다면,
그 순간부터 그는 ‘살아있는 존재’라 부르기 어렵다.
왜냐하면 배우는 행위는 곧 살아 있는 뇌를 유지하게 하며, 변화하고 성장하면서 자신과 세계를 새롭게 마주하려는 의지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이 장에서는 우리가 왜 평생 배워야 하는 존재인지,
그리고 그 배움이 누구의 몫이며 어떤 권리와 책임을 지니는지를 함께 탐색하고자 한다.
배움은 결코 누군가의 특권이 아니다.
그것은 모든 생명이 감당해야 할 존재론적 사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