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배움의 대상

by 더블윤

사람이라면 누구나 실수하거나 잘못을 저지르며 살아간다.
밤에 잠들기 전, 이불을 걷어차며 ‘아, 내가 그때 왜 그랬지?’ 하고 후회한 적, 당신에게도 분명 있을 것이다.

내 주변엔 이런 순간을 아주 다르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다.
그는 긍정적이고 진취적인 성격으로 유명한데, 자신의 실수를 마주할 때마다 호쾌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하곤 한다.
“좋아! 오늘도 하나 배웠네!”

누군가 그의 실수를 지적했을 때, 그도 민망하고 부끄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 감정을 유쾌한 웃음으로 녹여낸다. 그리고 "배운다."라는 표현을 통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변화와 갱신을 향한 의지’를 드러낸다.
그는 실수라는 균열 위에 통찰의 벽돌을 하나 더 쌓아 올려 그를 한 단계 더 완성된 건축물로 만들어냈다.

그렇다면 그 순간, 그는 무엇을 두고 배웠다는 표현을 썼을까?
그것은 새로운 수식이나 이론이 아니라, 아마도 실수에서 배운 ‘삶을 다루는 기술’ 일 것이다.




우리는 모두 끝없는 배움 속에서 미완의 자신을 짓는다.
하지만 ‘나’라는 건축물을 완성하기 위해, 지금 어떤 자재가 준비되어 있고 어떤 자재가 필요한지 헷갈릴 때가 많다.
이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재료들이 널려 있기 때문이다.

그 재료, 곧 배움의 대상은 무엇일까?

우리는 흔히 학문, 지식, 정보만을 배움의 대상으로 떠올린다.
하지만 위에 언급한 사례에서도 봤듯이, 우리는 '배우다'라는 표현을 수많은 상황에서 사용한다.
‘배우다’라는 동사의 앞에는 수많은 목적어가 따라올 수 있다. 그 말인즉슨, 배움의 가짓수가 무궁무진하다는 뜻이다.
예컨대 우리는 인간관계에서 배우고, 실패에서 배우며, 자연에서 배우고, 심지어 고요한 침묵 속에서도 배운다.

영어에서도 ‘learn’, ‘study’, ‘lesson’ 등 수많은 단어들이 배움을 가리킨다.
배움에 대한 표현이 그만큼 다양하다는 건, 그만큼 이 세상에는 무한한 배움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그렇기에 우리의 고민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배워, 어디에 사용할 것인가?”




이번 장에서 우리는 배움의 대상을 살펴보며 그 질문의 답을 찾아볼 것이다.
그 안에는 이미 잘 알려진 지식과 정보뿐 아니라, 당신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배움의 보고들이 숨겨져 있다.
더 나아가, 성인이 된 우리가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도 함께 고민해보려 한다.
무엇을 배우는지만큼 중요한 것은, 그 배움이 향하는 방향이기 때문이다.

함께 배움의 대상을 살펴보며 나에게 알맞은 건축재료를 찾아보길 바란다. 그리고 그 재료를 어떤 식으로 활용할 지도 깊게 고민해 보았으면 좋겠다.

이제 함께 설계도를 펼쳐, 본격적인 리모델링을 시작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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