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수학이 왜 필요해요?(2)
인류 문명 안에서는 수학이 매우 중요한 학문임이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막상 개개인의 일상에서 직접 수학을 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
당신이 수학자나 통계학자, 또는 금융 업무 종사자나 전문적인 공학자가 아닌 이상 간단한 더하기, 빼기, 곱셈조차 계산기를 켜서 해결하곤 할 것이다. 심지어 수학적 지식이 중요한 업종조차 복잡한 문제들은 컴퓨터, 엑셀, 금융 앱, AI가 대신해 준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묻곤 한다.
“내가 배운 수학, 도대체 어디에 쓰이는 거지?"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고등학생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과정에서 대학수학능력시험, 일명 ‘수능시험’을 치른다.
이는 고등학교 졸업(예정)자를 대상으로 대학 교육에 필요한 ‘수학(修學)’ 능력을 측정하기 위해 시행하는 한국의 대표적인 표준화 시험이다.
이 수능시험 안에서 수학(數學)이라는 학문은 수리영역이라는 이름으로 출제된다.
그런데 왜 ‘수학영역’이 아닌 ‘수리영역’일까?
그 이유는 수학이 우리에게 주는 배움의 본질 속에 담겨 있다.
‘수리(數理)’는 수학 안의 이론과 이치를 가리킨다. 그 단어 안의 ‘理(리)’ 자를 주의 깊게 살펴보면 王(임금 왕) 자와 里(마을 리) 자가 합쳐진 형태이다.
즉 수리(數理)에서 사용하는 理(이치 리)라는 한자어는 본래 왕이 마을을 다스린다는 뜻을 품고 있다.
이는 다스림이란 감정이나 추상적 기분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이치적이고 논리적이며, 합당한 질서 위에 세워져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다시 말해, 수리(數理)라는 단어 안에는 ‘수(數)’라는 학문적 도구를 통해 논리적이고 질서 있는 문명을 건설하고자 했던 인간의 지혜가 담겨 있다.
따라서 수능시험에서 수리영역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단순한 수학적 지식이나 계산 능력이 아니다.
수리영역이 우리에게 진짜로 묻고 있는 것은 바로 다음과 같다.
당신은 수학이라는 학문을 통해 문제를 이해하고, 논리를 전개하며, 문제 상황을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는가?
수학은 외부 세계의 관찰에 의존하지 않고, 인간 이성의 내적 구조와 논리적 사고로부터 독자적으로 체계를 수립하는 선험론적 학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학은 과학뿐 아니라 철학과도 깊은 연관성을 가진다.
고대 그리스의 탈레스나 피타고라스 같은 철학자가 동시에 수학자이기도 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수학이 논리적인 사고력을 향상해 준다는 증거는 여러 실험이나 관찰을 통해서도 확인되어 왔다.
1. 인지·심리 실험
크레스웰과 스필먼의 연구 논문(2020)에 따르면,
수학을 많이 학습한 집단일수록 추론 오류가 덜하다는 사실이 발견되었다.
대학생부터 수학 교수에 이르기까지 여러 그룹을 비교한 국제 연구에서, 수학 전공자는 비전공자보다 수학적 지식과 관련 없는 논리 문제 정답률이 유의미하게 높게 나타남을 확인했다.
2. 두뇌·신경 과학
고등 수학을 다루는 사람은 전두-두정 네트워크(논리·집행 기능 담당)가 강화되어 있으며, 수학·논리 추론 과제에서 활성화되는 뇌 부위가 겹친다.
캐나다의 뇌 및 정신 연구소에서는 2019년 fMRI 메타 분석 결과, 수학·논리적 상징체계 과제 모두에서 좌·우 후두상두정피질, 하전두회가 공통적으로 활성됨을 확인할 수 있었다.
3. 발달·교육 연구
어린 시절 수 체험과 집행 기능(Executive Functions, 이하 EF) 훈련은 수 개념뿐 아니라 전반적 사고의 유연성, 문제 해결력도 끌어올린다.
‘EF + Number training’이 유아의 EF·수학·논리 퍼즐 성과를 동시에 끌어올렸다는 사실은 여러 기관의 실험에서 증명되었다.
(예: ScienceDirect 오픈소스 논문 / 《미취학 아동의 실행 기능과 수학: 훈련 및 전이 효과(2022)》 등)
4. 장기·사회적 지표
수학 학습 기회가 차단된 10대는 전두엽 GABA 농도가 감소해 이후 학습·기억 능력까지 영향을 받는다.
영국 옥스퍼드대 PNAS 종단 연구에서는, 고교에서 수학을 포기한 학생의 뇌 발달이
그렇지 않은 학생들보다 현저히 지연됨을 확인했다.
이러한 효과가 나타나는 이유는 수학을 통한 뇌의 훈련에 있다.
수학은 ‘구체 → 기호 → 보편 규칙’으로 압축·확장하는 반복 연습이다. 이 과정은 우리로 하여금 패턴 감지, 가설과 검증 루프를 자동화시키게 만든다.
또한 명확한 정답·증명 구조 덕분에 ‘가설-검증-교정’ 메커니즘이 즉각적으로 작동한다. 이는 메타인지(자기 사고 감시) 능력을 길러주며, 오류-피드백 사이클을 지속적으로 습관화시킨다.
뇌가 이러한 사이클에 꾸준히 노출되면 감정이나 권위보다는 근거를 우선하는 인지 습관이 자리 잡는다.
수학적 증명은 항상 ‘모순 0, 근거 100’을 요구하기 때문에, 우리는 수학이라는 학문을 접하면서 우리도 모르게 근거를 제시하고 논리적인 방안을 마련하는 사고를 향상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활동은 우리의 뇌를 항상 살아 있게 만들어준다.
우리의 뇌는 스스로 신경회로를 재구성하는 능력, '신경가소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이전에 언급한 바 있다. 우리의 노화되는 뇌가 경험과 학습을 통해 다시금 깨어날 수 있다는 말이다.
수학은 이 능력을 구체적으로 실현시킬 수 있는 학문이다.
우리가 수학을 마주하며 복잡한 식을 머릿속에서 조작할 때, 전두피질이 반복 활성화되어 집행 기능과 주의 조절이 강화된다.
우리 뇌의 전두피질은 ‘뇌의 CEO’라 불릴 만큼 고차 사고를 총괄하며, 손상 시 충동 조절 장애, 계획 무능력, 사회적 부적응이 나타난다.
수학은 이러한 뇌의 CEO가 계속해서 일할 수 있게 만들어줌으로써, 우리 몸이라는 조직이 정상적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이 외에도 수학이 가져다준 사고방식과 문제풀이를 통한 뇌의 훈련은 다양한 방면에서 개인의 역량을 향상시킨다.
수학을 통해 단련된 리터러시는 경제나 건강에 관한 지표, 또는 각종 데이터를 단순 '감'이 아닌 정량적 근거나 통계적 확률을 통해 분석하고 결정하는, 행동의 길잡이 역할을 해준다.
수학적 증명을 완성하기까지 거치는 수많은 시행착오는 지속적 노력과 성취감이라는 강력한 정서적 동기부여를 일으키기도 한다.
또는 수학문제를 풀어가며 '어디서 막힌 거지?'라는 반복적 피드백을 통해, 스스로를 진단하고 조정할 줄 아는 메타인지적 습관이 형성되기도 한다.
이처럼 수학은 단순한 계산의 학문이 아니라, 인간 이성이 만든 최고도로 정교한 논리의 구조물이자, 인간의 뇌를 더욱 복잡하고 성숙하게 만들어주는 학문이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학문 중 수학이 으뜸가는 핵심 과목으로 여겨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 뇌의 논리적 사고의 틀은 ‘수학’이라는 학문을 통해 우리도 모르게 형성되어 왔다.
어찌 보면 논리학을 한 번도 배우지 않은 우리가 논리적인 생각과 판단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나도 모르게 수학에 의해 길러진 사고력 덕분이었을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글의 시작에서 던졌던 질문,
“내가 배운 수학, 도대체 어디에 쓰이는 거지?”
라는 물음은, 사실 내가 수학을 배웠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질문이다.
수학으로 인해 발전된 나의 뇌가
'나는 수학을 배웠다.', '나는 세상을 살아간다.', '나는 세상을 살아가며 수학 공식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라는 여러 명제들을 엮어가며, 하나의 논리적인 의문을 만들어낸 것이다.
수학이라는 교과를 통한 배움은 우리를 날마다 논리적인 사람으로 성장시키고, 더 이성적인 사람으로 변화시킨다.
다만, 오늘날의 수학 학습 방식은 수학이 가져다주는 배움의 힘을 제대로 흡수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우리는 점점 수학을 이해하고 해석하기보다는, 공식을 외우고 요령을 터득하는 방식으로 공부하고 있다. 이는 제한된 시간 안에 많은 문제를 풀어야 하는 오늘날의 시험 방식과, 수학적 사고 능력이 오롯이 점수로만 환산되어 측정되는 오늘날의 평가 방식이 만들어낸 문제라 생각된다.
우리는 수능시험이 무엇을 위해 치러지는 시험인지, 그리고 수리영역은 우리에게 무엇을 묻고자 하는지 다시 한번 돌이켜 생각해보아야 한다.
수학은 우리에게 단순히 문제풀이를 위한 도구가 아닌, 이성과 논리의 학문이 되어야만 한다.
그 본질을 잃어버린 수학은 결코 우리를 변화시킬 수 없으며,
변화의 힘을 잃어버린 수학은 더 이상 ‘배움’이라 칭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인류는 여전히 논리와 이성이 사라진 세상을 원하지 않는다.
감정과 비합리가 우선시 되는 세상은 결단코 질서와 공존, 그리고 지속을 이루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수학을 배운다.
차가운 이성과 논리의 언어를 통해, 보다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가기 위해,
개개인의 생각의 샘을 더욱 깊게 파내려 간다.
아직도 수학을 배운 경험이 나에게 어떤 유익이 있는지 모르겠다면, 스스로에게 이렇게 질문해 보자.
“나는 지금 내 행동의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
당신의 대답이 “그렇다.”라면,
당신은 지금도 수학을 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