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 칼에 대하여

by 이채이

나는 칼의 정신을 모른다. 옆 나라 일본은 칼에 정신을 담는다고 한다. 일본의 칼은 주방의 것마저 실용을 넘어선 형이상학적 존재로 승격시키는 듯하다. 정신을 담는다는 말처럼, 그들의 칼은 강압적이고 냉철한 두려움을 지니고 있다. 사무라이의 칼을 굽던 섬나라의 장인들이 만드는 것은, 섬뜩하면서도 묘한 비린내가 난다. 나는 그런 일본의 칼을 쓸 수 없다.


내게 칼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어린 시절 쑥을 캐러 가는 봄이 되면, 어머니는 장터 대장간에서 만든 자그만 나물 칼을 사다 주셨다. 작은 나의 손에 꼭 맞는 것이었는데 손잡이에는 대장장이의 이름이 한자로 적혀 있었다. 봄날에 대바구니를 들고 논두렁이나 밭두렁에 앉아 쑥이나 쑥찌를 캐기에는 소박하고 아담했던 대장간의 칼이 적격이었다. 날카로웠지만 곧 무뎌졌고 자주 숫돌에 갈아 써야 했다. 어린 나는 숫돌에 물을 끼얹어 칼날 가는 법을 배웠다.


어머니는 부엌에서 식칼 하나로 나물을 다듬고 무를 채 치고 국을 끓여냈다. 칼은 식(食)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다. 그 손끝에서 나온 음식은 정갈하고 아름다웠다. 음식을 음식답게 만들고 그 모양새를 결정하는 것은 칼과 어머니의 직관이 매개되어 이루어지는 예술 같은 것이라고, 나의 기억은 그리 보존되어 있다.


어떻게 칼날 하나로 실보다 가늘게 채를 쳐낼 수 있는지, 나박나박 썬 무는 어찌 그리 가로세로가 딱 맞는지, 수제비 반죽을 그토록 매끄럽게 칼국수로 바꿀 수 있는지가 늘 궁금했다.


그 손놀림은 어린 내가 흉내를 낼 수 있는 영역의 것이 아니었지만, 단지 연장으로서의 칼도 경이로운 행위를 입히면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겨우 짐작만 할 수 있었다. 어머니는 매일 삶에서 예술을 실천하고 계신 것이었다.


칼에 대한 나의 애착은 결혼 후에 드러났다. 결혼 1주년은 흔히 ‘종이 결혼식’이라 불린다. 혼인신고서의 잉크가 마르지 않은, 여전히 신혼의 온기가 남아 있는 시기다. 어떤 이는 이날 다이아몬드나 진주, 명품 지갑이나 향수를 받고 싶어 한다. 그러나 나에게 첫 선물은 칼이어야 했다. 어머니의 칼처럼, 일상에서 예술이 시작되는 그 지점에 꼭 있어야 하는 물건. 나는 그런 칼을 갖고 싶었다.


칼은 생활의 최전선에 있었고, 당시 나는 '좋은 칼이 있어야 집안이 잘 나간다'라는 다소 비논리적인 확신을 품고 있었다. 그 신념은 묘하게 나를 지배했다. 나는 모양과 색과 쓰임이 확실한 칼을 마음에 두고 있었다.


남편 손을 잡고 칼을 살 수 있는 곳으로 갔다. 나는 이 물건을 반드시 가져야 할 이유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았다. 그저 보여 주었고 반드시 그 칼을 꼭 내 집에 데려와야 했다. 당시의 나는 그게 필요했고, 그 칼이 아니면 안 되었다.


나는 결국 '칼'을 선물 받았다. 그 칼은 흰색의 단단한 손잡이를 갖고 있었고, 손에 닿는 칼등의 느낌이 마치 오래된 나무처럼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했다. 내가 찾던 건 날이 아니라 감촉이었는지도 모른다. 신혼의 그 칼을 지금 20년 넘게 사용하고 있으니 나의 선택은 매우 합당하고 경제적이었으며 고루 만족스럽다 할 수 있다.


요즘도 칼을 사용하다 보면 어머니가 요술처럼 만들어 내던 음식과 다닥다닥 거리던 도마질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칼은 도구일 뿐, 음식은 사람의 손에서 태어난다. 아무리 좋은 칼을 쥐었어도, 구체적 재료를 현실의 음식으로 실현시킨 어머니 솜씨는 아직도 내가 닿지 못한 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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