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둔하여 지혜롭지 못하고, 신명 나고 정교한 짜임이 있는 문장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 책을 읽다 보면 밑줄을 긋고 싶은 문장을 만날 때가 있다.
문장은 단순히 단어들의 무분별한 나열이 아니다. 단어마다 제각각의 자리가 있어 그곳을 찾아 들어 앉힐 때 비로소 문장이 된다.
단어가 문장이 되는 단순한 원리에도 불구하고 뒤죽박죽 섞인 낱말의 집합체가 나의 허름한 문장이다. 내 것은 세련되지 못하고 옛것에 머물러 있는 것만 같다. 누군가의 정제되고 견고한 글을 보다가 나의 누추한 글을 보면 허황되고 삿되며 시무룩해지는 것만 같다.
글에도 표정이 있어서 간만에 쓸만한 문장을 하나 건지면, 문장이 스스로 알고 웃으며 걸어서 내게 온다. 나는 문장이 가진 자율의 동적인 힘에 놀라고 제스스로 가진 판단의 힘에 마음이 기울어진다.
글을 쓰려고 자판 앞에 손을 얹으면 헛된 생각들이 손가락 사이를 분주히 오간다. 글이 손가락에서 나오는 것은 아닐 테지만 머릿속의 생각이 말로 되어 나오기 전에, 이미 손가락이 먼저 낱글자를 두드려 찾아간다. 이것은 손의 기억일 것이다.
생각이 정리되고 다듬어져서 얌전히 걸어 내려오는 문구의 행렬을, 일상의 삶을 사는 분주한 손은 기다릴 수 없다. 머리와 손의 엇박자에도 생각은 현현히 드러날 때가 많은데, 알맹이 없는 허망한 내용일지라도 치달아 가는 손의 기계적 움직임을 저지할 방법은 없다.
글자가 배열되는 것은 두 발로 걷는 것과 비슷해서 오른발의 내딛음 뒤에 반사적으로 따라오는 왼발의 보조를, 왼발의 작동 후에 연결되는 오른발의 뒤 따름을 번번이 설명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들의 움직임은 자의성이 없고 고의성이 없는 생득적 행동 같다.
그럴 리 없는 것을 알지만 달리는 사람이 교차하는 두 발의 운동성을 헤아리려 들면 어느 순간 꼬여서 넘어진다.
글을 쓸 때 손가락은 위치에 맞는 자음과 모음을 제알아서 찾아간다. 손가락 끝에 달린 육감의 눈으로 더듬지 않고 직방으로 찾아간다. 눈은 낱말과 낱말 사이의 간극을 기억하고 숨 쉴 틈을 열어준다. 긴 문장에 구두점 하나를 추가하는 것은 손의 일이 아니라 눈의 일이다.
글을 쓰는 손가락의 기억처럼, 깨어 있는 이들의 몸도 반복과 훈련을 통해 내면을 드러낸다. 오늘 읽은 노스님의 이야기도 그런 맥락에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새벽 예불에 목탁을 칠 때마다 온몸의 세포가 열리는 경험을 하신다는 스님. 매초 마다 갱신되는 변화의 이치를 어스름의 순간에 올올이 느끼고 계신 것이다. 이는 말로는 다 풀 수 없는 수행의 증거일 것이다.
동양의 불교나 도교의 법을 공부하다 보면 깨달음에 이른 사람들이 등장하는데, 공을 경험하고 도를 득한 사람의 말이나 행동거지는 나 같은 어리석고 눈먼 자가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허공에 온몸을 휘젓고 간절히 구하기만 하는 중생은 갈 수 없는 경지이고, 일상의 번잡함을 벗어나지 못하면 영영 볼 수 없는 무엇이다.
나는 중국의 위산 선사와 양산 선사의 대화를 특히 좋아한다. 제자 양산이 하안거를 마치고 스승인 위산을 찾아뵙고 나누는 문답이다.
- 여름 내내 무엇을 했느냐?
- 땅을 갈아서 수수를 뿌렸습니다.
- 음, 여름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구나.
- 스승님은 여름에 무엇을 하셨습니까?
- 아침에는 죽을 먹고, 낮에는 밥을 먹었다.
- 여름을 헛되이 보내지는 않으셨군요.
이 대화는 그저 그런 선문답이 아니다. 일상을 수행과 정진의 규칙적인 활동으로 꽉 채운 경험을 한 사람만이 생생하게 이해할 수 있는 말이다. 땅을 갈아 수수를 뿌리고 죽을 먹고 밥을 먹는 지루한 일상의 반복에서, 차원을 뛰어넘는 두 사람만의 대화의 경지를 체험한다. 그들은 고해에 허우적거리지 않고 삶은 기름지지 않으며 억지로가 없다. 그들의 태도에는 관능이 없고 허상이 없어서 알차다. 그럼에도불구하는 애씀이 없다.
돌아보건대 나의 단조로운 일상의 반복이 두 선사의 대화를 만나 오래 기쁘다. ‘새벽에는 글을 쓰고 저녁에는 글을 읽었습니다’라고 말하는 중에, 생각은 곧 깨달음이 되는 줄을 알겠다.
나는 그들의 대화를 오래 기억하려 한다. '기억하려 한다'는 이마저도 욕심이고 욕망이며 욕된 것이라는 것을 안다. 세속의 것을 벗어던지지 못하고 매몰된 채로 매일의 글을 읽는 나는 머물다 가는 바람같이 그저 공하다.
글을 쓰다가 잠시 창밖을 내다볼 때 온 세상은 푸르고 새들은 지절거리고 있기에 이곳이 현실의 세상임을 알겠다. 햇빛이 부셔서 가늘게 눈을 뜨는 이곳이 바로 그림자가 생기는 나의 세계임을 알겠다.
비루한 문장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삶의 결을 따라 쓰인 것이라면, 나는 그것으로 족하다고 말할 수 있기를. 언젠가는 나의 문장도 누군가에겐 조금은 괜찮은 것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