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히는 물건들
도끼와 톱. 20~30대라면 어쩌면 손에 쥐어본 적조차 없는 물건에 관한 이야기일지 모르겠다.
시골 생활에서는 늘 가까이 있었고, '먹다 자다'와 같이 일상적인 삶을 구성하는 물건이었던 때가 있었다. 이는 의, 식, 주의 특정 영역에 해당하지 않으면서도 삶을 안온하게 껴안는 것들이다. 날카로우면서도 부드럽고 저항을 박살내면서도 달래는 듯한 그런 쇠다.
예전에 시골에서는 나무를 땔감으로 사용했다. 내가 어릴 때는 그것이 일상이었다. 작은 솔가지는 낫 같은 연장으로 쳐내고 묶어 가져올 수 있었지만, 그런 건 밥이나 국을 끓일 때 쓰는 것이지 긴 겨울의 구들을 덥히기에는 화력이 딸린다.
가을걷이가 어느정도 마무리되고 겨울이 다가오면, 집집마다 땔감을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지천에 쓰러진 소나무, 참나무나 잡목을 베어 집으로 가져온다. 요즘은 전기톱을 사용할 테지만, 예전엔 온전히 인간의 노동을 더해 나무를 쓰러뜨렸다.
나무를 벨 때 가장 중요한 건, 날 선 톱인데 톱날이 무뎌지면 잘 썰리지 않는다. 날이 잘 선 톱은 밀 때와 당길 때의 힘 조절을 하면 쉽다. 밀 때는 천천히 부드럽게 당길 때는 좀 더 강하면서 단호하게를 반복하면 된다. 쓸려나간 곳의 톱밥은 일하는 자의 앞쪽에 쌓이는데 그 양이 수북해지면 통나무는 잘게 토막이 난다.
어린아이들은 통나무 근처에서 놀다가, 덜컹이는 통나무를 잡고 앉아서 톱질이 수월하도록 무게를 더해준다. 이마저도 안되면 톱질하는 사람은 제 발을 나무에 지지하며 톱질을 한다. 토막 난 나무가 쌓여 산을 이루면 톱질하던 근육은 울룩불룩해지고 피로를 뿜어내는 육신의 아우성으로 이제는 쉬어야 한다.
쉴 때는 새참을 먹는데, 쌀쌀한 날 땀이 맺히는 고된 톱질에는 김치를 담뿍 썰어 넣고 끓인 라면이 격에 맞다. 아궁이의 작은 솥에서 솔가지의 화력만으로 끓여 낸 라면은 뜨겁고도 맵쌉하다. 마루에 앉아 라면을 먹다 보면 시선은 자연스레 먼 산을 향하게 되는데, 그곳에는 바람이 나무를 흔들어 대는 경쾌한 율동감이 있다. 겨울의 산은 삭막해 보이지만 사철 초록의 소나무가 있어 위안이 된다. 이마에 흐르던 땀도 식고 바람의 재롱도 보았다면 이제는 도끼질을 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도끼는 온전히 남성의 도구다. 육체의 고된 힘을 요구했기 때문에 우리 집에서는 오빠들이 도맡았다. 무거운 쇠머리를 가진 도끼는 전래동화에도 자주 등장하는데, 금도끼 은도끼의 나무꾼이 산신령과 조우하게 되는 계기가 바로 도끼날이 연못에 빠진 덕분이다. 도끼로 나무를 쪼개는 일을 '나무를 팬다'라고 표현하는데 요즘의 젊은이들에게는 낯선 말일 것이고, 용불용설에 따라 얼마 가지 않아 사라질지도 모르는 말이다.
도끼질은 사람의 힘으로만 해내는 일이 아니다. 사용자는 통나무의 결이나 옹이를 잘 파악해야 한다. 옹이가 있는 곳은 결이 부드럽지 않고 거칠고 질기다. 옹이를 피해 제대로 쪼개질 자리를 보아가며 힘을 배분해야 한다. 도끼머리의 힘과 도끼가 떨어지는 순간의 가압력이 부드러운 결의 나무에 닿을 때, 두툼하던 통나무는 쩌~억하고 패진다.
그렇게 조각난 나무는 아궁이에서 당장 쓰일 수 있는 장작이 된다. 톱질을 하던 애초부터 톱의 길이만큼을 재어 나무를 썰면 팬 장작을 쌓을 때도 모양새 있고 정교하게 쌓을 수 있다.
나는 이 작업을 좋아했는데 가로세로의 각이 잘 맞는 장작은 쌓는 즐거움만큼, 가져다 쓰는 동안에도 더미의 아름다움과 균형미를 유지할 수 있게 했다. 장작을 쌓는 일은 놀이이고 나만의 조형 예술 같은 것이었다.
이제는 시골에서도 솔가지를 써서 불을 지피지 않는다. 장작을 팰 이유도 그럴만한 노동력도 사라진 지 오래다. 군불 아래 고구마를 구워 먹고 알밤을 묻어 두던 소소한 즐거움을 더는 기대할 수 없다.
손으로 톱질하던 시절엔, 나무가 잘려나가는 소리와 향, 통나무에 쓸리는 손바닥의 감촉까지도 즐거운 노동의 일부였다. 지금의 전기톱은 굉음으로 모든 것을 묻어버린다.
비바람에 쓰러진 나무를 볼 때, 가로수를 전지 하는 기계톱의 소리를 들을 때, 나는 어린 시절 우리의 겨울을 덥혀주고 밥을 먹여주던 그 장작과 솔가지에 대해 생각한다. 자연물의 또 다른 형태로 장작을 가능케 한 톱과 도끼와 오빠들의 노고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