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초가 다가온다는 건, 평소에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근사한 음식들이 체계적으로 준비된다는 뜻이기도 했다.
어릴 적 설날은 한 달 전부터 집 안 구석구석을 들뜨게 만드는 구석이 있었다. 음력 설은 그 시절 가장 큰 명절이었다. 객지에 나가 살던 자식들이 돌아오고, 따로따로 흩어져 지내던 친지들은 일가 어른들을 찾아 세배했다.
어머니는 솜씨가 좋았다. 한 번은 명절 음식의 가짓수를 세어본 적이 있는데, 그릇이 많고 뒤엉켜 서른몇 가지쯤에서 셈을 멈췄던 기억이 난다. 어린 내가 특히 좋아하던 것은 달달한 강정이었다.
참깨 강정, 들깨 강정, 찹쌀 강정, 유과, 콩 깨잘, 쌀버무리 과자 등등... 그 종류는 다양했다. 가을걷이의 풍성함에 따라 무엇을 얼마나 만들 수 있을지가 결정됐다.
이들 개개의 이름에는 농경사회가 지향해 온 맛의 방향과 생산물의 다양성을 고루 포괄하고 있다. 어머니의 곁에서 명절 준비를 지켜보고 맛보는 일은, 가난했던 유년 시절의 결핍조차 기억할 수 없게 하는 마법 같은 구석이 있었다.
강정 만드는 방법은 나름의 정해진 절차를 따른다. 참깨나 들깨는 까불리고 세척해서 이물질을 제거한다. 솥에 넣고 약한 불로 서서히 볶는다. 불 조절을 잘못하면 깨는 이내 타버려 쓴맛이 돌지만, 어머니는 손의 열기로 적당한 온도를 찾고 눈으로 불의 강약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
불 위에서 들썩거리는 작은 알갱이들은 고르게 익었고 고소한 냄새를 먼저 풍겼다. 잘 볶아진 깨에 꿀과 물엿을 넣어 섞는데, 너무 질면 흐물거리고, 너무 되면 버그러지기 쉬워 형태를 유지하기 어렵다. 훌훌 잘 섞은 재료를 커다란 판도마 위에 펼친다. 들러붙지 않도록 도마와 밀대에 기름을 발라야 한다.
이제는 힘의 균형을 잡아가며 얇게 밀어낸다. 네모반듯한 모양을 잡아가며 밀어야 버려지는 것 없이 하나하나가 보기 좋게 나온다.
나는 겨울날의 부엌 아궁이 곁에서 불을 쬐며, 밀대질 하는 어머니를 지켜보았다. 그 호흡과 밀대의 리듬에 맞춰 균일하게 두께를 맞추는 어머니의 고요한 집중에는 나름의 질서가 있었고, 나는 그 속에서 설명할 수 없는 안온함을 느꼈다.
타닥타닥 장작불이 타오르면 차가운 눈바람조차 부엌 한켠의 따스함과 설렘이 주는 충만함을 방해하진 못했다.
밀어낸 강정 판은 한나절 차갑게 식히며 굳힌다. 깨와 꿀과 물엿이 제 나름으로 엉기고 눌러 빚어진 형상 그대로, 굳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가지런히 네모 귀를 맞춘 모양으로 강정이 썰리고 나면 이제 완성을 앞두고 있다.
강정의 첫 시식은 언제나 내 차지였다. 앞니가 빠진 어린 나는 겨우 오물거리며 단맛을 씹었고, 참깨의 고소함이 입안 곳곳에 터져서 오래 행복했다. 긴 시간 마음을 채우는 행복감은 부유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소소하지만 특별한 기억 속에 있음을 안다.
어린 시절엔 집집이 세배를 다니며 어른들을 뵙는 일이 당연했다. 부끄럽고 떨리는 마음으로 외할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았던 기억. 그리고 귤과 세뱃돈을 받아 들고 어머니 손을 붙들던 순간들의 총합은 나의 유년기를 단단히 지지하는 것이었다. 내가 유교적 가치나 실천을 중히 여기는 사람은 아니지만, 때때 한복을 차려입고 세배를 하던 옛 시골 마을의 정서는 가끔 떠오른다.
이제는 명절에 친척들의 발길이 줄었고 나의 아이조차도 딱히 인사를 다니지 않는다. 그땐 몰랐지만, 이런 정초의 풍경은 농경사회의 공동체적 전통이자, 공자의 법을 따르는 사회가 지켜온 무언의 약속 같은 삶의 방식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욱 정성을 다하라’는 친친지도(親親之道)의 정신이 자연스레 녹아 있었다.
이제 어머니는 연로하시고 더 이상 명절의 음식을 만들지 않는다. 50년이 흐르는 동안 정초의 의미도 세상의 풍경도 많이 달라졌지만, 내 가슴속 설날은 여전히 장작불 타닥이던 부엌에 머물러 있다. 어머니의 고른 숨소리와 규칙적인 몸놀림, 달콤한 강정을 오물거리던 어린 나, 그리고 그 겨울 아침의 평화 속에 여전히 시간은 머물러 있다.
*사진은 집밥의 여왕 고여사님께 빌려왔다.